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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9 14:46
[기타] .
 글쓴이 : 커피는발암
조회 : 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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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4-02-19 15:45
   
오~ 님 요즘 갈수록 나름 무게있는 내용 올리시네요^^

발해사 전문가인 한규철 교수도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관한 연구>에서

지적하고 강조하는 게 <말갈=고구려 지방민>의 비칭어라는 것임.

현재 짱국은 발해를 말갈일원 지배체재로 보는데 상당히 웃긴 소리죠.(최소

지배 고구려유민 피지배 말갈도 아니고. 왜국이 이런 주장을 처음했는데 이에 우리도 영향받아

현재 이런식이 아직 주류임)

이게 왜 웃긴가 하면 고구려말 당나라가 파악한 인구가 대략 70만호( 69만7,000호. 176성)

한호당 5명으로 잡아도

350만 요즘 발굴 탐사되는 고구려 성이 실제 이보다 많아서 500만까지 봅니다.

30여년이 안되어 일어난 고구려 영토 발해 지배 체재에 갑자기 무슨 말갈이 대다수?? 황당하죠.

당나라가 평양일대로 빠르게 치고 왔던게 주요했던거지 애초에 요동이나 동만주일대(국내성이고)

북한 동북부는 발도 못밟았음.

당시 상황을 보면 669년 당나라 장군 이적이 당 고종에게 했던말이

“압록강 이북에서 아직 항복하지 않은 성은 11개 성이며, 도망간 성도 7 개나 됩니다.

당군이 공격하여 빼앗은 성은 3개에 불과하며, 항복해 온 성은 11개 성입니다.”였음.


그리고 당나라가 평양지역 3만 8200호를 내지로 데려갔는데 대략 해야 20만 내외 그기에

신라가 황해도 일대를 먹고 일부 유입된 인구해봐야 전체로 4,50만 정도인데

나머지 300만에서 400만에 달하는 고구려인구는 어디로??? ㅋㅋ

이들이 갑자기 발해시대에 오면 말갈 어쩌고로 둔갑합니다. 웃기죠. ㅋ

이걸 동북공정 짱개학자들은 웃긴 소리쳐하고 있고.
심당이고선 14-02-19 15:56
   
당나라놈들 절대 북한땅과 남만주 밟은적 거의 없습니다.
羅唐전쟁에서 新羅가 승리해서 일시적으로 신라의 땅이 팽창하죠.
그때 신라가 남만주까지 치고 올라간것으로 압니다.
굿잡스 14-02-19 15:57
   
국내 학자중에서도 이 말갈이라는 말에 혹해서 실체가 있는 줄 한때 착각했던.

이게 쉽게 말하면

서토인들이 과거 지들 밖은 오랑캐로 정치적 왕조수준도 못오르고 제대로된 문명도

없다는 비하적 인식하에(부족으로 생활했다는 식)

동이족 어쩌고 이후 고조선도 뭉그러셔리 동호 어쩌고 고구려도 예맥 어쩌고 이후

발해도 말갈 어쩌고로 비하해서 본거죠.(점차 발해가 강성해지자 이후 군에서 발해국왕으로

인식이 바뀌는 것처럼)  이런게 다시 고려시대 삼국사기도 영향 받았고


실제 속말말갈은 바로 이미 열국시대 북만주의 강자 부여를 말하고 이후 두만강 위인 동만주일대

동부여세력이고 북한 동북부와 연해주 일대의 옥저고 동예등 왕조를 가진 세력들이고

우리의 고조선 일파에 세력이 제일 강성하고 북쪽에서도

인구수도 많았던 요지를 다 차지하고 있던 세력들인데 발해시대에 오면 갑자기 다 말갈 어쩌고 합니다.

천년사직 고구려기간동안 다 복속되어 고구려 백성으로 지방민으로 활동했던 이들인데요.


그리고 윗글에도 있지만 당나라는 평양섬 함락 이후 제대로 고구려 전역 통치도 못하고

교전을 하다 물러나기 바빴음

신성ㆍ요동성ㆍ안시성ㆍ북부여성이고 여전히 668년 평양성 함락 이후에도 교전 상태였고

황해도는 안승과 검모장을 비록해서 고구려군에 의해 평양 당나라 군대 도륙당했고 여차하다 요동 요서로

밀려났음.

이런 가운데 696년 요서 영주에서 거란의 반란을 틈타서 대조영이 끌려간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천문령

전투에서 당군을 대파시키고 동모산에서(697) 다시 고구려 세력을 중심축으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고 이미 안록산의 난 이전에 요동일대에 있던 소고구려 세력도 발해에 이른시기에

빠르게 복속되어 들어오게 됨.

신당서(新唐書) 발해전의 발해 건국 초기시기 “부여, 옥저, 변한, 조선, 해북제국을 모두 차지

하였다(盡得扶餘沃沮弁韓朝鮮海北諸國)”
심당이고선 14-02-19 16:05
   
말갈족이 아마 김용만 소장은 예족계열로 보시는듯 합니다.
굿잡스 14-02-19 16:12
   
매소성에 주둔하고 있는 20만대군을 격파하고 노획물로 말 30,330필과 많은 무기를 얻었다.

- 삼국사기

당나라는 668년 평양성 함락을 시키는데는 성공했지만 대다수의 고구려 지역을 밟아 보지도 못했고

이런 가운데 요동이나 황해도 평양이고 계속해서 교전상태였음 이런 가운데

당나라 주력 군대를 결정적으로 대파시킨게 다름 아닌 675년 매소성 전투와 676 기벌포 전투임.

매소성 전투에서 당군의 군사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과장이 있긴 한데 주력 병력이 상당히 타격을

받게 됩니다. 애초에 고당 2차대전에서 당 고종이 보낸 당군사들이 고구려에 거의 궤멸되다시피해서리

실제 고종은 모든 전쟁준비를 그만두고 생업에 종사하라고 할 정도로 이미 전쟁 후유증이 상당해서

포기한 상태였음. 이런 가운데 연남생이 투항해오면서 무리해서 출정했던게 3차 고당전쟁이였고

결국 고구려내의 계속된 교전과 고구려 신라 연합세력에 의해 와해되면서 요동 이후 요서로

안동도호부가 밀려났고 급기야 거란까지 반란을 거듭하고 내부의 정치적 여러 문제까지 겹치면서

요서일대가 막혀버리는 상황에서 발해가 빠르게 고구려민들을 통합한 거죠.(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당은 체력이 급격히 소진하면서 이후 절도사제도부터 반란에 세금도 안내는(고구려유민

이정기의 제나라처럼) 거의 독립적 번국들이 활개치는 춘추전국시대화됨.)
굿잡스 14-02-19 16:20
   
결국 이런 일련의 상황과 발해지방제도를 보면

이전 고구려에 복속된 우리 고조선 옛땅에서 분화되었던 열국인 부여부터 요동와 북한 서북부 일대의

소고구려(고구려 이후 발해 시기 사이에 생긴 요동일대 고구려세력), 동만주 일대 동부여, 북한 동북부와 연해주

일대 옥저등 대다수가 글자 그대로 고구려계 지방백성들이였다는 말임.

이때문에 서병국 교수도 발해 구성원의 7,8할이 고구려계라고 말한 것이죠.

우리가 따로 말갈 어쩌고 말하는 세력은 굳이 말한다면 인구수도 적고 나름 독립적인 흑수말갈만을

지칭해야함.  나머지는 고구려말갈이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조선 부여 옥저 동예 동부여등 우리

옛 왕조의 세력으로 고구려 지방민으로 말해야한다는 것이죠.

이들이 바로 <말갈=고구려지방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임.


그리고 나름 독자적이였던

흑수말갈도 현재 한러 고고학 탐사에도 나오듯 아무르 일대 트로이초코예 발해유적을 보듯

이미 흑수말갈은 발해인의 직접 지배하에 들어가서 200여년을 지내면서

거의 상당히 동화된 세력이였음.
나와나 14-02-19 16:52
   
우리나라는 교학사는 물론이고 현 교과서 내용도 수정할 내용이 너무 많죠...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내용도 적고 오류 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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