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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2-11 06:56
[기타] 유네스코 인류의 기원은 한국이다...?
 글쓴이 : 설표
조회 : 10,092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재밌게 보고 인류의 기원은 어디서 시작된걸까?
지구 밖에 우주랑 정말관련이 있을까? 생각하며 네이버에 검색을 하다보니 
왠 연관검색어에 '유네스코 인류의 기원 한국' 이 뜨더군요 (음?)
그래서 봤더니..
 
유네스코,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발표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라는 책의 내용이다.
이 책은 존 카터 코벨과 앨런 코벨이 함께 저술하였으며 여러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고조선(실제로 고조선뿐만이 아니다.)을 인정하고 인류의 기원을 한국인이라 말하고 있다.
책의 내용으로....
 
유네스코에서 인류의 기원이 이집트가 아니고 한국인이라 할수 있는 증거는 요동성 근방 만주 지역에서 대량의 탄미 발견함으로 시작됨.
 
DNA검사결과 자연산이 아닌 교배종이란것이 판명 됨으로서 농사 기술이 첨단 과학을 이룩했던 것으로 판명됨
 
군량미로 생각되며 불에 탄 흔적으로 보아 대단한 전쟁이 있었던 듯 하다는 의견
 
1만 7천년전 것으로 추정됨.
 
사람의 DNA 검사 결과 평균 수명 1000세에 달함.
 
고조선 이전의 왕국을 인정함
 
노예 제도 가 없었던 유일한 환국 나라 역사를 유네스코에서 인정
 
사람이 하늘이라 믿는 신앙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수가 없는 사상임
 
이제 환단고기가 역사서의 사실로서 인정될 날이 머지 않았음
 
아래 책은 단군의 실존 이야기와 일본 모든 문화의 뿌리는 한국의 것이라는 것을 말함
 
안타까운 점은 한글 번역본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어가 된다면 구입하셔서 번역을 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
 
제목: Korean Impact on Japanese Culture
저자(By): Dr. Jon Carter Covell & Alan Covell
출판사: Hollyn International Corp.
일본천황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임을 밝히고 있음
 
 
 위의 책 검색 결과

by Jon Carter Covell & Alan Covell | Hollym International Corporation 2006년 03월 23일

책소개 일본 황실의 감추어진 비밀 몇가지를 다루고 있다.고고학과 어법분석 기술과 일본고서를 이용하여 일본 천황의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임을 밝히고 있다.
 

 
일본천황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책 소개
 
일본문화에 미친 한국의 영향
 
일본 황실의 감추어진 비밀 몇 가지를 다루고 있다. 고고학 어법분석 기술과 일본고서를 이용하여 일본천황의 혈통의 기원은 한국이며 일본의 시조는 통설대로 기원전 660년이 아니라 서기 369년임을 밝히고 있다.
This book probes into subjects still frowned upon in Tokyo; it explores a few "skeletons in the imperial closet." A half century ago this subject brought authors to prison or death. Using tools such as archeology, stylistic analysis and Japan's sacred scriptures themselves, its imperial line is here traced back to Korean origins, its legitimacy established by an iron sword form Paekche (kept inaccessible at Iso-no-Kemi) with a gold inscription, which dates Japan's founding ruler from 369 A.D., rather than orthodoxy's 660 B.C.
 
인류의 기원은 한국인이다






 

‘부여기마족과 왜(倭)’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한 미국인 여성 사학자에게 대한 헌사로 보인다. 존 카터 코벨(John Carter Covell·1910∼1996). 미국 태생의 동양미술 사학자로 서양인으로는 맨 처음 일본미술사 박사학위를 받았고,캘리포니아 주립대와 하와이 주립대에서 동양미술사를 가르쳤던 인물이다. 출판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코벨의 한국문화 시리즈’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조만간 나올 2권의 제목은 ‘일본에 남은 한국미술’. 이름도 낯선 서양 사학자를 뒤늦게 재조명하고 나선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코벨은 1978년부터 1986년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일고대사,한국미술,불교,도자기 등에 대한 1400여편의 칼럼을 썼고,‘한국이 일본문화에 미친 영향’ ‘한국문화의 뿌리’ 등 5권의 한국문화 관련 책을 냈다.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코벨만큼 정력적으로 한국문화를 연구한 서양 학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

그러나 코벨의 존재가 진정 빛나는 것은 연구의 양이 아니라 그 질 때문이다. 그녀의 연구는 한일간 역사전쟁의 한복판을 통과한다. 바로 한일 고대사 분야다.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문화를 전수받았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있을 뿐 아니라 되려 임나일본부설을 통해 자신들이 한국을 지배했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일본 미술사 분야의 거장을 꿈꾸던 코벨은 일본에서 발굴되는 고대 유물의 대부분이 한국 땅에 뿌리를 두었다는 ‘고대사의 진실’을 눈치채게 된다. 그때부터 그녀의 시선은 한국미술사에 집중되었고,일본의 고대유물에 남아있는 한국의 흔적들을 찾아내는데 매진하게 된다.

코벨은 1970년대 후반부터 매우 대담한 주장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4세기경 한국인들이 일본에 건너가 문화를 전수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건설을 주도했다” “일본인의 조상 중 상당수는 한국에서 건너간 한인이다” “일본 왕실은 한국에서 말을 배에 싣고 건너간 모험가들이 건국한 왕실에서 시작된 것이다” 등 그녀의 주장은 당시의 한국 사학계에서조차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게다가 그녀의 글 대부분이 영문으로 발표되는 바람에 대중에게 닿기 어려웠다. 코벨이라는 이름은 얼마 지나서 잊혀지고 만다.

죽은 코벨을 되살려낸 편역자는 김유경(59)씨다. 언론인 출신인 김씨는 1980년대 초반 문화부 기자로 코벨의 글을 받아 1년간 신문에 연재했던 인연이 있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후에 코벨을 다시 기억해낸 이유가 뭘까? 김씨는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코벨만한 사람이 없다”면서 “코벨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한 한국문화 해설자”라고 소개했다. 제3국 학자라는 객관적 위치,유물과 예술품을 통한 고고학적 접근,누구나 읽기 쉬운 칼럼 형식 등 코벨의 미덕이다. 김씨가 코벨의 글을 수집하고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 1999년 출간된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무속에서 신라 불교까지’(학고재)는 그 첫 결과물이었다.

이번 책은 바다 건너 일본을 정벌한 부여족과 가야에 대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부여족의 야마토 정벌 과정과 왕권 수립의 증거,일본에 남아있는 한국문화의 흔적,한국이 일본에 전한 영향,일본의 역사왜곡 등을 다룬 62편의 칼럼이 수록돼 있다.

코벨은 부여의 일본 정벌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수의 외국 학자들을 동원한다. 미국의 그리피스,페놀로사,게리 레저드 등이 코벨보다 앞서 일본문화의 근원이 한국이라고 주장했고,일본인 학자 중에도 에가미 나미오,기다 사다기지 등이 기마민족 정벌론을 인정했다. 한국 사학자로는 북한의 김석형과 남한의 천관우,최태영의 연구 결과가 소개된다.

김유경씨에 따르면 코벨의 연구에 대해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베푼 지원은 없었다고 한다. 코벨은 6개월마다 있었던 비자갱신 때 입출국을 하지 않고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되기를 바랐지만 그런 도움도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코벨은 말년까지 “나는 한국의 가야사가 분명하게 확립되는 것을 볼 때까지 오래 살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 책의 출간은 그녀에게 빚진 마음을 다소 덜어준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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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를 일본것으로 기만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한 미국학자 존 카터 코벨
일본이 오래 전부터 한국문화의 산물을 일본 국적의 것으로 기만하고 역사를 왜곡해온 사실을 폭로한 서양 학자가 있다. 미국의 동양미술사학자 존 카터 코벨(1912~96) 박사가 그 주인공.
컬럼비아대에서 일본미술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백인 최초의 일본학 박사이기도 하다. 그는 일본문화를 연구하다가 그 근원인 한국문화에 심취해 깊이 있는 연구활동을 벌였다.
14세기 일본 大화가 80%는 한국인
역사왜곡이 문제다. 왜 모든 사람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데 대해 그처럼 치를 떠는가.
일본은 과거 500년이 넘게 역사를 왜곡해왔고, 대부분의 사람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공부한 한국의 고대사와 고고학에 따르면 바로 한국인들이 고대의 지도자들이었으며 당시 중국인에게 난쟁이들, 혹은 왜구로 알려진 지금의 일본인 이야말로 선진문명을 감지덕지 받아들인 수혜자임을 확신케 하는 것이다.
일본은 ‘난쟁이’‘왜구’ 같은 단어를 아주 싫어해 7세기부터 이 단어를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왜 인들은 오직 백제사신들을 통해서만 선진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이를 증명하는 좋은 자료가 전 주일 미국대사 에드윈 라이샤워가 번역한 ‘옌닌(圓仁)의 일기- 입당구법(入唐求法) 순례행기’다. 승려 옌닌은 “한국인 해상왕 장보고의 통치 아래 있던 중국 내 한국 식민지 신라방이 자신에게 베풀어준 배려가 아니었다면 중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썼다. 불교도인 옌닌 일행이 방문한 840년경 중국은 불교를 탄압하고 있었다.
옌닌 일행은 중국인에게 뇌물을 주고 한국인에게도 선물을 주어 중국으로부터 벗어나 금강경을 일본에 가지고 들어왔다. 모든 배편은 한국을 경유했으며 배도 모두 한국 배였다.
오늘날 일본이 저지르는 역사왜곡의 맥락에서라면 머잖아 히데요시의 군사들이 한국인 도공을 ‘초청’해다가 ‘일본에 파견근무’케 하고 이들에게 ‘무료 교통편과 숙식을 제공’하여 ‘그들이 기술을 이곳에 전파했다’고 할지도 모른다.
당시 일본의 도자기 기술은 5~6세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에 전한 스에키 토기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 사이 1000여 년 동안 일본 도공들은 한반도에서 온 도자기 기본을 따라 도자기를 만들어왔는데 16세기에 들어 그들은 조선 도자기산업의 새 피를 수혈할 필요성을 느꼈다. 새 피의 수혈은 뛰어난 기술혁신을 가져다 준 것이기에 이후 일본의 도자기는 한국적 착상에 힘입어 발전을 이룩했다.
한국 점령이 자랑거리?
1923년 도쿄와 요코하마를 덮친 관동대지진 때 한국인은 인명과 재산피해로 광포해진 일본인들의 희생양이 되어 타격을 받았다. 교과서가 씌어진 1930년대에는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빈곤지역을 ‘마늘 먹는 조선인’들이 사는 곳이라 부르며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지역으로 몰아갔다.
미국 정부는 2차대전 당시 광분한 미국인으로부터 재미일본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을 일정 지역에 피난시킨 루즈벨트 대통령의 조치를 교과서에 수록하도록 요구할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1982년)에 와서 일본 자본가들은 그때 잃은 땅과 사업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배상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일본은 이 같은 조치를 한국인들에게 취했는가.
아니다. 일본인들은 과거 한국에 해악을 끼친 사실에 대해 치욕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시건방진 자랑거리로 여기며 수십년 전과 달라진 바 없는 차별과 왜 곡을 일삼고 있다. 일본 군부는 2차대전에서 아무 교훈도 못 얻었단 말인가. 겉보기에 그들은 분명히 반성의 기색이 없다.
그런데 일본문화사에서 한국의 영향을 모두 제거한다면 남아나는 것이 거의 없다. 적어도 서기전 3세기부터 8세기까지는 그러하다. 순수한 일본 고유 문화가 이룩됐다고 하는 10세기에 와서도 일본 대궐에서 벌어지는 가장 신나는 일 중의 하나는 대궐 사람들 중 누가 제일 한국춤을 잘 추는지 가려 뽑는 행사였다.
일본이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는 14세기 새로운 수묵화의 기법은 사실 조선에서 먼저 생겨난 것이다. 일본의 수묵화를 그린 화가들 중에 조선 출신의 수묵화가이던 선승(禪僧)들을 다 추려낸다면 일본이 뽐낼 만한 부분은 거의 없다. 적어도 일본이 내세우는 14세기 수묵화 대가의 80%는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다. 
   
 16세기에 들어와서도 조선에서 유입된 사상과 노동력이 일본의 예술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일본은 한국을 강제합방해 한국인을 노예로 부려먹었다. 또 있다. 정확히 언제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왜 구의 노략질이 고려시대에는 특히 심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역사왜곡까지 새롭게 시도해서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이런 압력에 굴복하거나 모욕을 한 귀로 흘려넘기는 한, 일본은 소리 없이 등뒤로 다가와 한국을 밟고 설 것이다.
역사왜곡은 712년부터 이어졌다.
일본인이 쓴 글에는 한일관계를 거짓으로 기록한 것이 아주 많은데, 한국인들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 히틀러는 “거짓말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잘 믿는다. 거짓말이라도 자꾸 되풀이하면 머잖아 많은 사람이 진실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첫 번째 왜곡은 1300여 년 전 씌어진 첫 일본 역사책에서 일어났다. 당시 나라(奈良)의 왜(倭) 지배자들은 일단의 학자들에게 사서 편찬을 의뢰했다. 편찬 목적은 당대의 일왕들이 정통성을 가진 지배자임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역사가들은 369년 가야 부여족의 왜 정벌 이래 700년까지 한국이 정치·문화적으로 일본을 전적으로 지배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감춰버렸다. 히틀러가 말한 것처럼, 거짓말은 클수록 사람들을 속이기가 쉬운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일본 사가들은 역사를 뒤집고 가야에서 온 부여족이 왜를 정복한 게 아니라 왜가 가야를 정복했다고 썼다.
‘일본에서 와 가야와 신라를 정복했다’고 알려진 유명한 신공(神功)왕후는 사실은 선단을 이끌고 왜를 침략해 정벌한 강인한 의지의 한국왕녀였다. 369년의 오진왕부터 게이타이왕 이전까지(또는 일본역사에 등장하는 15대 천황부터 25대까지)는 전혀 일본인이 아닌, 순수 한국인 혈통의 왜왕이었다.
일본 건국자로 알려진 초대 일왕 진무는 4세기 부여인들이 일본을 정벌한 사실을 반영할 뿐이다. 해의 여신인 천조대신(天照大臣)은 무당이며, 그녀의 오빠 스사노오노 미코도(素尊)는 신라인이다. 그러나 8세기 역사가들은 이 두 인물에게 일본옷을 입혔다. 20세기에 와서 이들의 정체가 드러나기까지, 역사가들은 사람들을 속이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나이 든 부모를 버리는 불효자식 이야기가 있다. 일본인들은 두 세대 전 한국인들에게 한국문화는 열등한 것이라며 일본말과 일본 이름, 일본식 제도를 따라야 한다고 강권했다. 한국의 수많은 서책이 불에 타 없어지고 예술 활동도 금지됐다. 숱한 보물이 나라 밖으로 실려 나갔다. 석굴암을 해체해 돌 하나하나를 일본으로 옮기려고까지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일본은 거짓말과 날조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문화적 대량학살을 감행했다. 그러나 진실은 일본이 초기 역사부터 8세기에 이르도록 한국이 떠주는 음식을 받아먹고 자란 어린아이였다는 것이다.
정말 배은망덕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제 한일강제합방이 ‘한국을 위한 선택’이었으며, ‘한국인들이 원한 일’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역사를 재구성하려 한다.
일본이 일으킨 지금의(1982년) 교과서 파동은 첫 단계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는 일본 헌법의 전쟁 금지조항을 삭제하고, 셋째 단계에 가서는 천황가를 ‘성스러운 권력체’로 되살린다는 게 일본의 속셈이다. 이것이 실현 가능할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집권여당이 된 자민당은 그 이름과는 동떨어지게 보수성과 상업성을 추구하는 정당으로 군림했다. 이제 자민당은 상징적인 존재인 일왕을 실제적인 국가원수로 키우고 싶어한다.
일본인은 솔직해질 수 없다.
1980년 나는 유네스코 강당에서 3대의 영사기로 컬러 슬라이드를 비춰가며 한국·중국·일본의 예술형태를 통해 극동의 세 나라를 비교하는 강연을 했다. 세 나라의 특성을 한마디로 요약할 말을 찾다가 영어의 C자로 시작하는 낱말을 떠올렸다. 중국은 통제(Control), 한국은 무심함(Casual), 일본은 작의적(Contrived)이라고. 이런 대비는 삼국의 도자기를 비교해보면 뚜렷하게 드러난다.
중국 도자기는 가마와 유약의 사용을 철저하게 관리한 결과 특히 도자기에서 완벽의 경지를 이뤄냈다. 한국의 도공은 언제나 자연스럽기 짝이 없고 무심해서, 이들이 만들어낸 도자기에는 도공의 기질과 불이 어떻게 작용했는지가 그대로 반영된다.
일본인들은 15세기 이도다완 전쟁에서 보듯, 이러한 한국적 무심함을 높이 취해서 과도하게 발전시킨 나머지, 그들의 도자기는 자의식이 담긴 작의적인 것이 됐다. 일본인들은 가마에서 구워낸 화병의 한 귀를 일부러 구부리거나 깨버림으로써 한국 도자기가 갖는 것 같은 ‘무심함’의 미를 주려고 한다.
미국인이 보기에 한국 도자기의 이런 무심함은 솔직함과 통한다. 내가 일본의 교토보다 서울에서 더 편히 지내는 이유는 지극한 미소로 일관하는 교토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솔직한 서울사람들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10여 년 동안 매년 여름과 겨울을 교토 대덕사(大德寺)의 유명한 선사찰 진주암에서 보냈는데, 그 무렵 나는 주지스님과 삶에 있어 ‘솔직함’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자주 다투곤 했다. 면전에서 하는 말과 등뒤에서 하는 말이 다른 일본인의 이중성에 대해 지적하면 그는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정당화하곤 했다. 그것이 바로 ‘호벤(方便)’, 즉 편의라는 것이었다.
일본에서는 솔직함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자기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일본인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거기에 맞는 표정을 지어 보일 수 있다. 그들이 진짜로 느끼는 감정은 속에서 억제되고 대신 ‘작의적 얼굴’로 외부에 알려지는 것이다. 일본인에게 인생은 이미 오래 전에 의도된 대로 따라가야 하는 것이니 누구든 자신을 거기 맞춰 살아야지 예상에 없는 짓으로 혼란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진주암은 일본 역사상 아마도 유일하게 100% 솔직했던 인물을 받드는 절이기 때문에 나는 그런 개념을 특별히 더 기만적이라 생각했다. 겉으로는 독신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온갖 난잡한 일을 다 저지를 대신 승려 잇큐(一休)는 거리낌 없이 여자들과 즐겼고 그로 인해 계율로 엄격하게 금지된 것들에 대해 잘 알았다. 이 때문에 잇큐는 호벤, 혹은 ‘편의상의 거짓말’을 생의 방편으로 정당시하는 사찰에서 받드는 인물이 됐다.
진주암에서 이런 문제로 한바탕 논쟁이 벌어지면 스님이 으레 하는 말이 “그래, 당신이 옳소. 잇큐는 솔직한 사람이고 우리도 그래야겠지만 여기는 일본이요. 잇큐처럼 정직한 건 미국에선 괜찮겠지만 일본에선 맞지 않아요”.
나는 일본에 있는 절이 모두 그런 식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짓말이 살아 있는’ 진주암에서 지냈다. 적어도 잇큐를 추모하는 사찰인 이곳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고 벽에는 섬세한 수묵화가 걸려 있었다. 그것은 여기서의 표준개념인 ‘살아 있는 거짓말’로부터의 도피이기도 했다.
존카터 코벨이 말하는 일본의 뿌리는 한국
 
 
 
 
 
 
으음.. 존 카터 코벨..ㅡㅡ? 위 말이 확실하다면
난 왜 그런 뉴스나 기사를 본적이 없는거지..
전 잘 모르겠지만 YTN에서도 존 카터 코벨을 언급한적이 있더군요
2007년도 기사인대..
으음,,, 미국의 동양미술 사학자 라는군요
 
그런대 우리나라에 고인돌 무덤이 밀집되어있어서
어떻게보면 우리나라에서 인류의 기원이 시작되었을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생각일뿐이에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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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engi 14-02-11 07:41
   
인류의 기원이 아니라 문명의 기원이라고 해야겠죠.
홍산문화/요하문명/발해문명이 현재 문명의 기원이라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비교될 정도로 오래됐습니다.  지금 발굴중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오래된 유적이 요하문명에서 나와서 요하문명이 최초의 문명이라고 밝혀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럼 왜 따뜻한 지역인 메소포타미아지역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추운 만주-한반도가 문명의 시작일까요? 그 이유는 유인원시절 따뜻한 지역에서 번창해서 인류로 진화는 했지만 따뜻한 환경이 지능이 높아야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따뜻한 지역에서는 옷이나 집없이도 그냥 발가벗고 다니면서 주변의 열매따먹고 사냥해서 먹고 살아도 됩니다. 문명이라는 것이 필요가 없는 환경이죠. 하지만 만주지역처럼 적당히 추운지역에서는 옷, 집, 토기등 문명의 힘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빙하기시절 만주-한반도가 얼음으로 뒤덮혀있을 때 극한의 환경에서 지능이 높은 종족만 살아남아서 급격하게 뇌가 커지는 진화가 이뤄졌습니다. 높은 지능을 생존기반으로 삼은 신인류는 요하문명을 건설하고 최초의 거대피라미드를 짓고 전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현대 한국인의 뇌는 비율상으로 모든 인류중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 현대 아이큐측정에서 한민족이 가장 지능이 높고 그 관련 민족(일본-중국북방민족)의 지능도 비슷합니다.  그 이유가 바로 빙하기시절 급격하게 뇌를 키워서 높은지능을 발달시키고 최초의 문명을 세웠을 거라는 가설입니다.  아직은 이른 가설 수준이지만 앞으로 요하문명이 어떻게 발굴되느냐에 따라서 진실로 드러날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gagengi 14-02-11 08:05
   
만약 추운 환경이 인류지능의 급격한 진화의 원동력이 되고 문명태동의 시작을 만들었다면 왜 하필 만주-한반도일까요? 추운지역은 다른 곳도 많은데 그럼 그곳의 인류는 왜 문명의 태동까지 가지 못했을까요?

다른 추운지역의 인류는 모두 한결같이 따뜻한 남쪽으로 이주해서 인종이 다 섞여버렸습니다. 즉, 어느정도 지능의 진화가 이뤄질 시간여유도 없이 그냥 따뜻한 남쪽으로 가버려서 진화를 위한 고립된 환경이 만들어 질 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남방계가 북상해서 섞여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반도의 특성상 추운지역에서 지능을 발달시킨 민족이 만주-한반도에 갇혀서 완전히 고립된 환경에서 진화를 계속했습니다.  한민족은 고대로부터 이민족과 한번도 섞이지 않은 단일민족의 역사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적당히 추운 환경에 진화를 계속할 최적의 환경이 바로 만주-한반도일대입니다. 이런 환경은 지구에서 오로지 만주-한반도에서만 존재합니다.

한반도와는 달리 중국대류에서는 밑의 열대지역까지 연결되어 있기때문에 추운 북쪽에서 지능을 발달시킨 민족이 남하해서 남쪽의 인종과 섞여버려 지속적인 진화를 할 환경은 못되었던 것입니다.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을 만든 은나라는 동이족으로 홍산문화-고조선인들이 남하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남방계인종과 섞여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로지 만주-한반도일대만 진화에 적합한 적당히 추운 환경을 고립시켜서 진화를 계속 할 수 있는 지정학적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인류가 지능을 급격히 발달시키고 최초의 문명을 건설해서 세계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이것이 요하문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입니다.
웃다가꽥 14-02-11 10:59
   
요즘 인터넷에서 떠도는 신종용어 국뽕???
     
대은하제국 14-02-11 12:55
   
이분은 무조건 알지도못하면서 국뽕 환빠 거리는지?

국뽕이라는건 울나라가 짱짱맨이라 생각하고 다른나라를 좆밥취급하는게 국뽕이다
     
PKbong 14-02-12 14:07
   
윗 글의 사실여부도 않따지고 국뽕??

무식한거 옮을까봐 댓글 달기도 찝찝하네...
공생민진 14-02-11 17:38
   
미친 환빠놈들.....
     
정의의사도 14-02-11 18:22
   
미친 식민빠놈들.....
규돌규돌 14-02-11 18:35
   
너무 거창해서 뿜었다 ㅋㅋㅋ
나와나 14-02-11 18:57
   
아래부분은 대충 알겠는데 윗부분은... 음? ㅋ
센스 14-02-12 11:30
   
저 양키는 3자입장아닌가?  객관적입장에서  지가 연구하고해서 발표한걸  환빠로 취급하는


저런 무식한넘은 모하는넘임?
진이 14-02-12 12:36
   
나도 환단고기 의심 반 신뢰반이지만 환빠로 무조건 몰아가는 분들, 그거 아세요??
미국이나 러시아 이런 국가도 인정하는 고조선 또는 고조선 이전의 시기를 오히려 우리나라가
믿지 못하고 신화 등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감방친구 14-02-12 16:58
   
제가 코벨의 저 책들을 오래 전에 사서 모두 소장하고 있습니다.
저런 내용 아닙니다.
에휴~
일본민족과 일본문화의 바탕과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얘기고
한국인의 중심은 부여, 즉 부여족이라는 게 저 분 논지요 책의 주 내용입니다.

맨 위 상단의 파란글씨에 열거된 내용, 코벨 박사의 책 내용과는 하등 관계 없습니다.
녹두장군 14-02-15 06:57
   
네 다음 환단고기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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