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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2-06 19:08
모택동은 미소녀를 좋아해.
 글쓴이 : 서탈린 대…
조회 : 13,419  

아래 본문은 지금은 절판된 고려원에서 나온 책인 <모택동의 사생활>과 까치글방에서 2007년 번역된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에서 발췌했습니다. 특히, <모택동의 사생활>을 쓴 저자 이지수(리즈수이)는 22년 동안 모택동의 주치의로 생활하다가 그의 사후, 미국으로 망명하여 자신이 곁에서 직접 지켜보았던 모택동의 어두운 과거를 자신이 쓴 책을 통해 밝혔습니다.

 

 

   

 

  (해맑게 웃어보이는 모택동, 그러나 저 미소의 이면에는 끔찍한 흑역사가...)

 

  현대 중국의 태조 황제라고 할 수 있는 모택동. 그만큼 그에 얽힌 이야기도 무궁무진하지만, 본인이 모택동의 인생 역정을 모두 파헤치는 전기 작가도 아니고, 카페의 게시판에 전부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오늘은 그와 여자에 관계된 부분만 말하겠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모택동이 중국 여성들의 인권을 향상시켰다고 말합니다. 그가 "남자만 아니라 여자도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라고 한 발언과 공장을 비롯한 노동 현장에 많은 여자들을 동원한 점을 들어서 말이죠. 

 

  그러나, 살아 생전에 모택동이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에게 한 말과 행동을 보면 별로 신빙성이 없어보입니다. 

 

 모택동은  공산주의 활동 초기 시절부터 여자를 무척 밝혔습니다. 그는 국민당의 공격을 뚫고 연안으로 이동한 대장정이 끝나자, 이미 아내 허쯔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외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은 동료 난봉꾼에게 자신은 "기껏해야 40일" 정도만 섹스를 참을 수 있었다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연안에 근거지를 튼 마오는 그곳으로 몰려오는 여자들과 방탕하게 놀아났는데, 26세의 젊은 여배우 릴리 우와 여성 작가인 딩링이었습니다. 물론 이 사실을 안 허쯔전은 남편에게 화를 내며 항의했습니다.

 

  [이 돼지 자식아, 거북이 알아, 쓸모없는 호색한아! 하찮은 부르주아 계집과 동침하기 위해서 감히 여기에 기어들어올 수 있느냐?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요? 어떤 남편이며 공산주의자인가요?]

 

  그러나 모택동은 아내에게 무관심했고, 그녀에게 어떠한 애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허쯔전은 극심한 우을증을 앓아 불면증에 시달린 끝에 1937년 어린 딸인 자오자오가 살고 있는 소련으로 떠났습니다.

 

  골치아픈 아내가 사라지자 모택동은 금방 새 아내를 골랐는데 그녀는 강청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급우들로부터 여학생 깡패라는 악명을 얻은 장청은 14살 때 가출하여 상해의 유랑극단에 들어가 여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녀의 외모는 매우 아름다웠지만, 성격은 오만방자하고 거칠어 배우로서는 그다지 명망을 얻지 못했습니다.

 

  모택동이 있는 연안으로 가 경극 공연을 한 것을 계기로 모택동의 눈에 띈 장청은 뛰어난 미모로 금새 모택동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1937년 결혼을 올렸습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 공산당 내부의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모택동과 함께 대장정에 참여한 학생들 대부분은 그가 아내인 허쯔전을 버리고 행실이 방탕하다고 소문난 강청과 결혼하는 일에 분노했으며, 몇 명은 아예 강청과 결혼하지 말라는 편지를 써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모택동은 그들의 충고를 전부 무시하고, 그녀와의 결혼식을 강행했습니다. 허쯔전과는 1939년 무렵에 이혼을 선언했지요.

 

  -<마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상 260쪽~265쪽>

 

   그러나 새 아내를 얻었다고 해서 모택동의 바람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강청의 미모 뒤에 가려진 거칠고 사나운 성질을 알게 된 모택동은 이내 그녀에게서 애정을 끊었고, 대신 다른 대상에게 성욕을 투사했는데 그것은 바로 순진하고 어리면서 귀여운 미소녀들이었습니다. 

 

  1949년,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 전체를 지배하게 된 모택동은 그와 동시에 자신의 성욕을 무한정으로 충족시킬 수 있게 됩니다. 

 

   모택동은 1959년의 상하이 회의 기간 동안, 자신을 위해 준비된 특별 열차에 머물면서 그 안에서 근무하던 여성 간호사 리에게 몰두해 있었다.

 

  그의 대담함은 계속되었다. 모택동은 간호사 리를 데리고 고위급 지도자들을 위한 상류 클럽인 진쟝 클럽으로 매일 밤 놀러갔다. 여자에게 집착하는 모택동의 성격을 잘 알고 있던 상하이 보안 당국은 모택동이 상하이의 가장 유명한 여배우들과 가수들을 만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러나 그들의 선택은 모택동을 흥미롭게 하지 못했다. 그 여자들은 너무 늙은데다 순진한 맛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세상 물정에 굉장히 밝았기 때문이다. 모택동은 어리고 경험이 적은 여성을 더 좋아했다. 그런 여자들은 다루기가 쉬웠다. 그래서 그후부터 상하이 당국은 좀 더 순진한 소녀들로 구성된 문화 공작대의 공연을 매일 밤 준비했다.

 

  -<모택동의 사생활 2권 143쪽>

 

   고금을 통틀어 사치와 향락에 몰두하는 폭군에게는 반드시 그의 곁에 바싹 붙어있는 간신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모택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의 문란하고 난잡한 엽색 행각을 적극적으로 거들어주는 채홍사 역할은 공산당에서 가장 부패한 관리였던 왕둥싱과 예쯔롱이 맡았습니다.

 

  1950년 경, 북경으로 와서 모택동의 주치의가 된 리즈수이는 왕둥싱과 예쯔롱에게 자신들이 모택동에게 여자를 소개시켜주는 일종의 뚜쟁이 역할을 맡았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왕둥싱과 예쯔롱 자신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그(예쯔롱)는 모택동의 뚜쟁이 역할도 담당했다고 한다. 여성들은 여러 곳에서 보충되었는데, 특히 당 중앙 판공청의 기밀 사항국과 당 중앙 경위단(제8341 부대) 소속의 문화 공작대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젊고 순진하며, 학력이 낮지만 정치적으로는 노선이 바르고 모택동에게 전적으로 충성을 다하는 여성들이 선발되었다. 

 

  예쯔롱의 집은 보좌관과 기밀 비서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 모택동의 저택 단지 내에 있었다. 그리고 모택동의 여자들은 예쯔롱의 집에 먼저 와 머물며 숨어 있다가 모택동의 아내인 장청이 완전히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에 아무도 몰래 식당을 지나서 모택동의 침실로 인도되었다. 그리고는 새벽 무렵에 다시 밖으로 빠져 나왔다.  

 

 -<모택동의 사생활 1권 242~243쪽>  

 

    그러나 아무리 모르게 한다고 했지만 강청은 남편이 자신을 놓아두고 수많은 여자들과 방탕하게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마침내 알게 됩니다.

 

   강청은 물과 수면제 한 알을 더 먹기 위해 한밤중에 일어나 간호사를 찾았다. 그러나 그녀가 보이지 않자, 진작부터 모택동을 의심하던 강청은 바람같이 남편의 침실로 쳐들어갔다. 그리고 간호사가 모택동과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리 인챠오는 그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자기가 강청을 알게 된 후, 처음으로 모택동에게 화를 내는 것을 보았다고.

 

  강청은 일단 분노가 폭발하자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다른 의심들도 모두 쏟아 놓았다. 최근에 모택동의 옛 심복의 딸이 그를 찾아왔는데, 모택동은 그 어린 소녀에게 학교 입학금으로 300위안을 주었으며, 1958년에는 겨울 방학중에 모택동을 찾아와 침실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1~12월 모택동이 우한에 머물 때도 비슷한 방문을 했었다.

 

  강청은 그 사실을 알고는 남편이 자기 간호사와 어린 소녀뿐만 아니라 소녀의 어머니와도 관계를 가졌을 거라고 의심했다. 이 모든 일이 그들 부부가 늦은 밤까지 싸우는 과정에서 터져 나왔다.

 

  모택동은 아내의 분노에 조용히 방을 나가 한 밤중에 베이징으로 떠나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러자 강청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던 것을 후회하고, 사과 편지를 보냈다.

 

  -<모택동의 사생활 2권 131쪽~132쪽>   

 

  강청이 결국 모택동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그가 중국의 최고 권력자였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도 전적으로 모택동의 아내라는 신분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만일 그를 분노하게 만들어 이혼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더 이상 그런 특권도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죠.

 

  여하튼, 이로 인해 귀찮은 아내의 방해도 떨쳐버린 모택동은 더욱 더 미소녀를 중심으로 한 엽색 행각에 탐닉해 갑니다.

 

    모택동에 의해 선택받은 젊은 여성들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으로 생각했다. 그녀들은 출세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여겼다. 모택동과 잠자리를 함께하는 젊은 여성들은 엄격한 선별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모택동에 대한 충성심과 숭배심을 가지고 있음이 보증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모택동과 성관계를 가지는 여성들은 자신의 가족들이 공산당에 은혜를 입고 모택동을 구세주라고 믿는 가난한 농민 출신들이었다.

 

  모택동의 잠자리에 불려가는 것은 그녀들의 일생에 최고의 영광이었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천안문 광장에 서있는 모택동은 신성한 존재이자 위대한 지도자였고, 그런 모택동과 성관계를 갖는 일은 매우 영예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모택동과 동침했던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성적 경험담을 나에게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숨기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어떤 여성은 내게 <그분(모택동)은 모든 면에서 위대해서 나를 거의 중독시킬 정도>라고 모택동의 성 기교를 칭찬하기도 했다. 중난하이의 무도회에서 모택동과 만난 한 여성은 자신과 그와의 관계가 주위에 알려지자 무척 기뻐했다.

 

  [모르는 게 반, 아는 게 반, 아무튼 이것이 인생 아닌가요?]

 

  그녀는 모택동이 자신과 잠자리를 하고 친숙해지자 그가 자신을 존중해주는 것에 크나큰 자부심을 느꼈고, 이것이 발전하여 오만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택동의 여자로 자신이 선택된 것은 자기가 남들보다 더 우월하고 특별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모택동의 여자들은 처음 그에게 불려왔을 때는 대개 매우 순진한 여인들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똑같은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보았다. 어리고 순진한 여자들이 일단 모택동의 침대에 불려가기만 하면, 차츰차츰 타락해 갔다. 모택동의 성적 욕망과 그녀들 자신의 성격 때문에 타락하는 것이 아니라, 모택동의 권력이 그녀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었다. 겸손했던 여자들이 모택동 때문에 점점 더 거만하게 변했다.

 

  아무리 배우지 못했고, 기술이 없고, 용모가 못생겨도 일단 모택동과 사귀기 시작하면 그녀들은 변했다. 모택동과의 관계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과시했으며, 날이 갈수록 모택동에게 버림받았던 젊은 여자들까지 나서서 모택동과의 인연을 이용해서 권력을 잡으려고 했다.

 

  -<모택동의 사생활 2권 234쪽~246쪽>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중국의 여자들이 모택동과의 성관계를 자랑스럽게 생각한 것은 그가 중국의 최고 권력자이며, 그와 관계를 가지면 자신들도 행여 그의 권력을 나눠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거기에 만일 운이 좋으면 모택동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의 후계자를 낳아 자신이 모택동 사후에 더 큰 권력을 쥘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모택동에게는 크나큰 결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생식 불능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_-;)

 

   (마오의) 전립선 진찰 결과가 나왔다. 전립선은 정상이었으나 생식력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마오는 세 부인들 사이에서 여러 자식들을 얻었고 당시에는 강청이 낳은 딸 리나가 15세로 막내였다. 그러니까 아마도 중년 이후 생식력이 없어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치료도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내가 내시가 되었단 말인가?]

 

  모택동은 내가 불임이라고 말하자 이렇게 반응했다. 걱정이 많이되는 눈치였다.

 

 

  (내가, 내가 고자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말도 안 된다구~~

  사진 속의 인물은 본문의 내용과 상관이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중략)

 

  [정자에 이상이 있습니다. 그것이 생식 불능의 원인이죠. 하지만 정자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성욕과 성기능에 장애가 오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후 나는 마오가 생식 불능을 걱정하는게 아니라 성 불구자가 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 <모택동의 사생활 1권 177쪽>

 

   덧붙여, 그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점도 있었습니다. (-_-;...)

 

    여러 여자들과 잦은 성관계를 맺다 보면 성병의 감염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트리코모나스에 걸린 한 여자가 성병의 연결 고리의 시작이었다.

 

  그 병에 감염된 여성이 남성과 성적 접촉을 하게 되면, 남성에게도 전염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남성이 다른 여성과 성관계를 가지면 차례로 다른 여성들도 이 병에 감염되는 것이다. 대게 이 병은 여성에게만 심각한 타격을 주고, 남성에게는 눈에 두드러지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모택동의 (섹스) 파트너 중 한 사람이 감염되어 모택동도 그 병에 걸렸다. 그리고 그와 관계를 가진 모든 여성들에게 병이 퍼져 나갔다.

 

  모택동은 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 여자들을 나에게 보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이 그 병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으로 여겼다. 모택동에게 병이 전염되었다는 사실을 마치 훈장이라도 받은 양 여겼는데, 그것은 곧 모택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들은 모택동의 주치의여던 나에게서 직접 치료를 받는 일을 하나의 특권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모택동과 접촉한 여자들을 치료했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택동 자신이 전염자였기 때문에 그가 치료를 받지 않는 한 그 병은 끊임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가 약물 치료를 끝내고 완쾌될 때까지만 성생활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의사들은 늘 사물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내 요구를 무시했다. 나는 그가 그 병의 전염자이며, 아무런 병적 증세를 느끼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전염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내가 괴롭지 않으면 문제 될 게 없어. 그런데 자네는 왜 그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흥분하는 거지?]

 

  그래서 나는 그에게 최소한 목욕과 세수는 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모택동은 따뜻한 타월로 문지르기만 할 뿐이지, 실제로 목욕을 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기도 물로 깨끗이 씻을 리 없었다. 그는 목욕마저도 거부했다.

 

  [나는 여자의 체내에서 씻고 있다구.]

 

  그는 태연히 그렇게 말했다. 나는 구역질이 났다. 모택동의 성적인 탐닉과 그의 타락, 여리고 순진한 여자들을 점점 타락으로 내모는 행태 등은 나를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병이 확산되지 않도록 막아야 했다. 그래서 모택동을 보좌하는 제 1조의 참모들에게 모택동의 병명을 말해 준 후, 각자의 수건만을 쓰도록 은밀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모택동의 침실과 수건을 소독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모택동은 죽는 순간까지 그 병을 가지고 갔다.

 

  -<모택동의 사생활 2권 246쪽~248쪽>

 

   모택동의 엽색 행각은 그가 노환으로 쓰러져 사경을 헤매기 직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산당 내부에서 그의 문란한 사생활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들 알면서도 정권의 체면을 생각해서 쉬쉬하는 판국이었죠. 이런 걸 두고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하던가요?

 

  하지만 모택동에게 여자를 조달해주는 부하들이라고 해서, 그의 난잡한 성생활에 대해 불만이나 반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덧붙여, 모택동이라고 해서 항상 미소녀만 찾지는 않았습니다. 때로는 유부녀와 성관계를 갖기도 했는데, 아마 색다른 재미를 위해서...였다고 추측됩니다.

 

    1961년 12월, 모택동은 우시에 머물고 있었는데, 한 육군 장교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언니를 자신이 묵고 있던 저택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함께 했다.

 

  모택동은 만찬이 끝나자, 육군 장교의 아내와 언니는 남게 하고 장교 혼자만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3일 동안 두 여자와 침대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로 인해 상하이 시장인 커 칭스와 안후이 시장인 쩡 시성을 만나기로 한 약속도 취소되었다.

 

  육군 장교는 아내와 처형의 부정을 알고도 치욕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택동에게 아내를 바치는 일이 더 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진습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일로 인해 모택동에게 여자를 물색해주는 일에 적극적이던 왕둥싱조차도 분노를 터뜨렸다.

 

  [만약에 그 여자의 어머니가 여지껏 살아있었다면, 아마도 주석님은 그 여자와도 잠자리를 같이 하려고 들었을 거야.]

 

  왕둥싱은 이처럼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그의 불만은 모택동에 대해서 보다도 아내의 부정을 방조한 육군 장교에게 더 컸다.

 

  [그는 마누라를 팔아먹었어.]

 

  왕둥싱은 짜증스럽게 내뱉으며 혀를 찼다.

 

  -<모택동의 사생활 2권 244쪽~245쪽>

 

 

  그 소식을 접한 왕둥싱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우리가 이런 더러운 일만 처리해야 하나? 이 따위 문제를 놓고 회의를 어떻게 소집할 수 있겠소. 주석님의 여자 관계가 너무나 복잡해서 생긴 일인데, 회의를 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을 것 같소?]

 

  -<모택동의 사생활 2권 335쪽>

 

    모택동의 타락한 사생활은 그가 죽는 순간까지도 계속되었는데, 그는 장위훵이란 간호사와 내연의 관계를 가졌고, 그녀를 주치의인 리즈수이보다 더 총애했습니다. 모택동이 죽는 순간, 장위훵은 모택동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총애를 믿고 자신이 권력을 잡으려 했으나 결국은 비참하게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택동의 공식 아내였던 강청도 비슷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모택동의 여인들 중에서 끝까지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은 별로 없었던 셈입니다. 그의 문란한 사생활이 불러온 결과라고 보면 어떨까요?

 

 

http://blog.daum.net/timur12/7090221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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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na 11-02-06 20:02
   
ㅡㅡ 김정일이네..
     
서탈린 대… 11-02-06 22:20
   
이 색휘가 저 색휘고 저 색휘가 곧 그 새퀴임.
skeinlove 11-02-06 20:11
   
* 비밀글 입니다.
서탈린 대… 11-02-06 22:20
   
skeinlove//다시 적어봐요! 저 못봤다고요!
고양이마왕 11-02-07 00:52
   
토할것 같네요.
스탈린 11-02-11 22:11
   
안대 서탈린이라니 으윿 근데

토할거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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