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도눌은 장춘시 북쪽의 송화강발원지근처이다.
조선이 망하기 며칠전에도 순종실록에 보면 간도에 관리(굿잡스님글참조)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땅을 만주중앙에 있는 옛 고려장성이남으로 표기했다. (조선은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고려와 원의 관계처럼 조선과 청은 속국관계가 되었다. 그래서 조선땅도 모두 청나라땅으로 표기한 것이다. 원나라가 고려에게 충선왕처럼 왕의 시호앞에 충(忠)자를 내렸는데 청나라 역시 조선에 충(忠)자를 쓰도록 했는데 조선이 거부했다.)
만주국정치구획도에 나타난 옛 고려장성유적
왜놈들도 알고 있었고 조선말기의 순종황제도 알고 있었다. 간도가 우리땅이라는 것을
黑龙江省依兰县城北门外,距哈尔滨市区261公里. 那里有个坐井观天遗址, 据传说便是徽宗,钦宗的墓冢所在
흑룡강성 의란현성문밖에 전하는 말로 휘종과 흠족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오국성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강계(江界)에 있으니, 벌등보(伐等堡) 강월(江越) 가에 네모꼴의 성터가 있고,
하나는 회령보(會寧甫)에 있으니, 을하보(乙下堡)
서쪽 두만강 남쪽의 옛 성 모양의 터가 이것이다.” 하였다. 《송사(宋史)》에 이르기를, 금(金)나라 사람들이 두 황제를 균주(均州) 오국성으로 옮겼는데, 성은 백두산(白頭山) 남쪽에 있다.” 하였다. 사료에
의하면 균주는 지금 회령부(會寧府)이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보(堡)의 서쪽에 큰 무덤이 있어
황제총(皇帝塚)이라 부르고, 또 겹겹의 작은 무덤이 있어 시신총(侍臣塚)이라 불렀다 한다. 지금 옛 성의 근처에서 금은(金銀)의 기물이 발견되는데 궁중에서 쓰던 물건이고, 또 옛날 돈이 나오는데 바로 흠종(欽宗 북송의 마지막 황제) 이전의 연호가 찍혀 있다.
임하필기 제11권 >
문헌지장편(文獻指掌編
오국성이 왜 둘이겠는가? 조선전기에 보면 이징옥이 난을 일으켰을때 종성에서 살해되었는데 종성바로 옆이 오국성이라고했다. 종성과 회령은 거리가 엄청나게 멀다. 그렇다면 조선후기의 강계가 바로 조선전기의 종성일 것이라는 추측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회령에 있는 또다른 오국성은 지명이 옮겨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고죽국이 여러개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며 쌍성이 여러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고 철령이 여러개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팔로대총이라는 조선후기 지도이다. 분명히 선춘령과 흑룡강을 조선영역으로 그렸다.선춘령은 고려땅 경계이다. 조선이 고려보다 더 넓으니 선춘령이북도 조선땅이라는 것이다.
북도(北道)의 오국성(五國城)에
황제총(
皇帝塚)이 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러한가?”하니, 대답하기를,
“과연 고실(故實)에 밝은 노인들이 서로 전하는 말이 있습니다.”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그 당시 고려(高麗)에 길을 빌리려 하였다면 오국성이 북도에 있었음은 의심할 것이 없다. 이미 황제의 무덤이라 하니 도신으로 하여금 꼴베고 나무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라.”
회령 고령진(高嶺鎭) 동쪽 산골짜기에
황제총이란 것이 있는데, 그 주변에 딸려 있는 묘들이 많다. 민간에서는 그것이 송나라 휘종(徽宗)과 흠종(欽宗)의 묘이고, 딸린 묘들은 그 신첩(臣妾)들의 묘라고 전해 온다.
회령(會寧)의
황제총(
皇帝塚)
청성잡기 제4권 >
성언(醒言) >
조선후기에 조선땅 회령일대에 송나라 휘종과 흠종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지금 중국에서는 흑룡강성 의란현이 바로 휘종과 흠종의 무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영조시기의 조선땅 회령관할은 바로 흑룡강성 의란현으로 서쪽으로 가면 하얼빈 즉 지금 학자들이 금나라의 회령이라고 생각하는 곳이 있다. 학자들은 금나라의 회령과 조선의 회령은 다른 곳이라고 주장하지만 기록을 보면 같은 곳임을 알수 있다.
조선의 지도도 지리지도 심지어 러시아의 1700년대 기록도 아무르강이 조선과의 국경이라고 한다.
그럼 간도와 연해주는 조선후기에도 조선땅이었음을 알수 있다. 조선영조시기 조선의 강계는 심양근처이고 조선의 회령은 하얼빈에서 의란현일대를 관할하고 있었던 것이다. 심양이 가까우니 조선군부에서 10일만에 심양을 함락시킬수있다고 임금에게 보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