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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11 21:18
[기타] 중국‘황제’는 동이족 (경향신문기사)
 글쓴이 : gagengi
조회 : 6,451  

중국은 탐원공정에서 중국의 시조 황제를 동이족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식민빠들은 중국동해안지역의 동이족은 한민족이 아니다라고 우기고 있는데, 이를 어쩝니까? 중국황제가 동이족이라는 것은 홍산문화의 주인을 일컬어 동이족이라고 하는 겁니다.  식민빠들이 이를 또 반박하려면 홍산문화가 한민족과 관련없다라고 우겨야될 판입니다. 실제로 식민빠들은 홍산문화가 한민족과 관련없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홍산문화가 동아시아 역사의 뇌관인 이유는 바로 그 홍산문화가 고조선과 관련된 고고학적 유물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그 사람들이 남하해서 은나라를 세우고 갑골문을 만들어 중국에 최초의 문명을 세웠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황제의 후예라는 중국인들의 조상 황제가 바로 동이족이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이는 하나의 학설이 아니라 현재 중국역사학계의 공식역사입니다. 

황제는 중국인의 조상인데 동이족이라니? 그럼 중국인과 한국인이 같은 민족이라는거냐?라는 헛소리를 식민빠들이 지껄이고 있습니다.  중국을 최초로 지배한 황제는 중국인이 아니라 고조선의 직계인 홍산문화에 속한 동이족이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은나라때 뿐 아니라 북위,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등 수천년간 중국은 한민족계 북방민족에 정복당하고 식민지배를 받아왔습니다.  야만족이었던 중국인들이 한민족의 식민지배를 통해 문명을 받아들인 것이 지금의 중국문화가 된 것입니다.

야만족의 땅이었던 중국의 문명시대를 연 황제는 고조선직계 홍산인이었고 그 이후로도 수천년간 한민족계 북방민족에 식민지배를 받아왔습니다. 동아시아문명자체가 동이족 한민족 문명입니다. 중국문명이 아닙니다. 중국문명이라는 것은 한민족에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식민지원주민으로서 받아들인 결과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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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黃帝)집단=훙산(紅山)문화 대표. 옌산(연산·燕山) 남북지구가 주요 활동범위. 어렵이 주요 경제활동.’

‘신농씨(염제) 화족(華族)집단=양사오(앙소·仰韶)문화 대표. 중원 속작(粟作)농업이 주요 활동범위.’

지난해 7월30일, 이른바 랴오허(遼河)문명전이 열리던 랴오닝성 박물관 전시실. ‘훙산문화와 오제전설’이라는 제목의 전시공간은 기자의 눈과 귀를 멎게 했다. 훙산문화 시대를 오제전설과 연결시킨 것까지는 좋았는데, 중국인의 조상이라는 황제를 훙산문화 대표로 ‘등록’한 것이었다.

훙산문화와 오제전설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랴오닝성 박물관 전시공간. 황제와 치우의 전쟁이 벌어진 쌍간허 유역 쭤루의 인근 위센에서 훙산문화와 양사오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 공반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또 중국인의 조상이라던 황제(黃帝)를 동북의 훙산문화 대표로, ‘염제 신농씨’를 중원의 양사오 문화 대표로 둔갑시켜 놓았다. <선양/김문석 기자>


-마오쩌둥도 찾은 황제릉-

참 이상한 일이었다. 황제가 누구인가. 중국인의 조상이 아닌가. 그런 황제가 동이(東夷)의 땅을 대표한다는 것이니…. 그렇다면 치우는? 단군은?

-염제 vs 황제의 1차대전-

그러나 훙산문화 발견 이후 중국학계는 황제의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놓기 시작한다.

쑤빙치는 ‘통고(痛苦)의 연구’ 끝에 황제의 고향을 중국 동북방, 즉 훙산문화의 본거지인 발해연안에서 찾은 것이다. ‘훙산시대=황제시대’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고고학 성과와 역사서의 오제전설 기록을 토대로 지금부터 5000년 전후의 문화구를 3대 고고문화구로 나누었다.

즉 훙산문화의 동북문화구, 양사오 문화의 중원문화구, 그리고 다원커우(대문구·大汶口) 문화의 동남연해문화구 등이다. 그리고 고대 전설상의 오제시대를 다시 전·후기로 나누었다. BC 3500~BC 3000년전 시기를 전기, BC 3000년전~하나라 건국(BC 2070년) 이전을 후기로 각각 구분했다.

훙산문화는 바로 오제시대 전기, 즉 양사오 문화와 상응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훙산문화는 중국문명 기원 과정에서 한걸음 먼저 나갔으며(先走一步) 양사오 문화와 기북(冀北·허베이성 서북부)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바로 제1차 대전인 ‘황제 vs 염제 전쟁’이며, 시대는 오제시대 전기(BC 3500~BC 3000년)에 일어난 일로 보았다.

즉 훙산문화의 용무늬 토기와 양사오 문화의 꽃무늬 채도가 싼간허 유역 싼관 유적에서 공반되어 나온 것은 바로 이 ‘황제 vs 염제 전쟁’을 의미한다.

이것은 쉬즈펑(徐子峰) 츠펑대교수의 말처럼 “두 문화가 충돌한 동시에 교류했다는 증거”인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쑤빙치는 “이렇게 충돌·교류한 문화는 다시 발해연안으로 올라가 그 유명한 훙산문화의 단(제단)·묘(신전)·무덤(총·적석총)으로 발전하여 전성기를 이뤘다”고 결론을 내렸다. “중국학계는 동북방과 중원문화의 충돌·교류 이후 훙산 고국(古國)이 탄생했다고 보았지. 훙산 고국의 초대 왕은 ‘황제’라는 것이고….”(이형구 교수)

쑤빙치 등은 황제의 고향을 동북방으로 연결했다. 황제가 염제와 싸울 때 함께 전쟁터에 나선 곰과 범, 살쾡이 등은 이런 짐승들을 토템으로 삼은 부족들의 명칭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또한 사기 오제본기는 “황제는 일정한 거처없이 옮겨 다녔다”고 했다. 중국학계는 이를 ‘황제족’의 성향을 일컫는 것으로 동북방 민족과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라고 보았다.

-황제 vs 치우의 2차대전-

그렇다면 동이족의 신으로 알려진 치우는 무엇인가. 중국학계는 바로 ‘황제 vs 치우 대전’ 역시 오제전설과 역사서를 고고학 성과와 끼워맞춘다.

즉 ‘황제 vs 치우’전을 오제시대 후기(BC 3000~BC 2070년)에 일어난 ‘사실’로 본 것이다. 훙산문화의 전통을 이은 황제족과 산둥반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치우족의 문화, 즉 다원커우 문화가 역시 충돌·교류한 증거라는 것이다.

BC 3000년 무렵 다링허(大凌河)와 시랴오허(西遼河)에서는 훙산문화의 전통을 이은 이른바 훙산후(紅山後) 문화라 하는 샤오옌(소하연·小河沿) 문화가 꽃을 피웠다. 이는 다시 조기 청동기-샤자뎬(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로 성장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누공두(鏤孔豆·구멍뚫은 굽달린 접시)와 주전자(壺), 고족배(高足杯·다리가 높은 그릇) 등 다원커우 문화의 특징을 보이는 유물들이 속출한다. 바로 이것이 동북방(훙산문화 계열)과 동방(산둥반도)의 충돌 및 교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궈다순(郭大順) 랴오닝성 문물연구소 연구원은 “사기 오제본기는 황제·염제 싸움을 먼저, 황제·치우 싸움을 나중에 기록했다”면서 “고고학 성과를 검토하면 역사서가 딱 들어맞는다”고 자화자찬한다. 

-치우는? 단군은?-

그런데 여기서 의문 하나. 이 해석대로라면 훙산문화의 창조자와 치우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훙산문화의 주인공은 황제이고, 산둥반도 다원커우 문화의 주인공이 치우라는 이야기이니…. 어찌된 일인가. 그리고 또 하나.

중국학계는 황제를 비롯한 오제전설(황제·전욱·제곡·요·순) 주인공들의 고향을 대체로 동북방으로 본다는 것이다. 훙산문화를 꽃피운 것은 바로 황제라는 것이다. 후계자 전욱(전頊)도 “북방의 대제(大帝)”라는 칭호를 얻는다. 뉴허량 신전에서 끊어진 하늘과 땅의 관계를 혼자 독점하며 제정일치 시대를 이끈 이가 전욱이라는 것이다. 또한 제곡(帝곡·3대왕)은 훗날 상나라의 선조라고 했다.

모골이 송연하다. 이미 ‘하상주 단대(斷代)공정’을 단행, 전설상의 하나라 건국연대를 BC 2070년이라 확정한 중국이다.

그렇게 올려놓은 중국역사가 4000년이다. 그런 중국학계가 이젠 더 나아가 발해문명, 즉 훙산문화를 창조한 이가 바로 황제이며, 그 황제가 중국인의 조상이라 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 다시 전설의 1000년 역사가 ‘사실(史實)’로 회복된다. 이른바 중국문명 5000년이 확정되는 것이다. 이것이 ‘중국문명 탐원공정’의 핵심이다.

우리 학계는 중국으로부터 헤어나고 싶은 망령과, ‘실증할 수 없다’는 지나친 결벽증(?) 탓에 제대로 된 연구조차 ‘재야사학’이라며 무시하고 있다. 그런 사이 중국학계는 이미 ‘중국문명 5000년’의 틀을 짜놓고 있는 것이다. 발해연안에서 무수히 발견되는 적석총과 빗살무늬 토기, 그리고 곰 숭배의 원형들…. 중국학계의 견강부회로 그 역사가 황제의 역사라면, 치우와 단군, 그리고 웅녀 등 우리 민족의 흔적은 깡그리 무시되는 셈이다.

전설과 고고학 성과를 완벽하게 끼워 맞추는 중국학계의 움직임과 우리 학계의 무력함에 기자는 가슴이 탁 막혔다. 

경향신문 기사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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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_Jin_Goryeo.jpg
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사입니다.  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쳤습니다. 
우리역사인 금청사를  원래대로 한국사로 복원해야합니다. 

"신라 김함보후손이 중국을 정복해":
조선-청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한민족의 남북조시대:
오랜식민지배 끝에 중국인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바뀌어: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427&page=4 
"닫힌 반도사관으론 동북공정 못 막는다": 
금 청사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이도학교수, "여진족 역사, 한국사에 넣어야":
김위현교수, "금나라는 우리 역사로 편입해야":
원래 한국사였던 금청사를 원래대로 복구해야: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의 주장과 반박 1:
금청사 한국사복원에 대한 식민빠들 주장과 반박 2:
서길수교수,"금청사 한민족사에 포함시킬 수 있다":
말갈은 원래 한강상류사람:
세계최초 화약무기는 고대 한민족의 발명품:
고려-금 남북조시대 지도:
아시아의 남미 천년식민지 중국:
KBS역사스페셜 금나라 신라의 후예 동영상보기:
조선-청 남북조시대 최초 국사교과서 목차:
중국인들의 기원은 미얀마: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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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gengi 14-01-11 21:31
   
일본천황이 야요이시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이라는 것은 역사학에서 상식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국최초의 황제는 고조선 직계인 홍산문화에서 건너간 동이족인 것입니다.

일본이 한민족에 의해 문명이 개화되었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하는데, 이상하게도 중국도 한민족에 의해 문명이 개화되었다는 것은 못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편견을 빨리 버려야합니다.

발해문명(요하문명, 홍산문화)의 발견으로 동아시아 문명의 시원이 이미 밝혀졌습니다.  한중일 동아시아는 한민족 문화권이자 한민족 문명입니다.  고대한민족의 식민지배와 문화전파에 의해서 동아시아 전체가 문명국으로 발전했습니다.
     
연아는전설 14-01-11 22:23
   
ㅋ 제발 저 지도 좀..... 저 지도 역시 잘못된 지도입니다
걍노는님 14-01-11 21:46
   
정말 이래서 역사학이 중요하네요.....
연아는전설 14-01-11 22:31
   
고대기록에서 유웅씨의 나라는 유주에 있다고 했다 .명나라지리지에 유웅씨의 나라는 신정의 서족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하나라의 우임금이 9주를 나누었을 당시의 기주가 현재의 낙양서쪽임을 알수 있고 낙양에서  신정은 유주였고 개봉에서 그 동쪽은 청주였음을 알수 있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일대에서 내려온 환웅은 장안서쪽에 살던 투족(호랑이를 섬기전 부족)대신 곰족(유웅씨)의 공주를 아내로 맞고 동맹한뒤에 진국을 세우고 그 사이에 난 아들 단군 왕검이 바로 황제의 부친이며 황제의 아들 소호금천이 기주땅에 전욱고양과 제곡고신이 유웅씨의 땅에 나라를 세웠음이 이해될 것이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고대에 중국이라는 개념이 한족의 땅이란 개념이 아니라 곰족즉 우리 조상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중원지방의 현재 거주민은 동이족인가? 내가 대략 유전자조사결과와 현지인들의 사진을 검토해보니 약 7:3정도로 한족이 우세했다. 북위때는 8:2로 한족이 우세했다고 한다. 이것은 지배층이 동이족이고 피지배층이 한족이라는 개념으로 이해될수 있다.
 초나라의 경우 왕족만 웅씨즉 곰족이고 나머지는 전부 한족이다. 비율로 따지면 압도적으로 한족이 우세할 것이다.
 월왕구천의 생김새에 대한 글에서 얼굴이 길고 눈이 작고 찢어졌다고 한다. 전형적인 동이족이다. 그런데 지금 월나라주민은 압도적으로 한족이다. 은나라멸망시기에 기주는 소호씨가 다스렸고 그 딸이 소달기즉 바로 은나라주왕을 파멸시킨 희대의 요부라고 한다. 이는 소호금천의 나라가 바다동쪽에 있다는 옛기록과도 유사하다. 소호금천의 후예가 옛 기주즉 지금 산서성최남단과 황하건너편 낙양서쪽에 살다가 일부가 북진하여 훈족이 되고 이들이 신라의 조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백과사전을 찾아보았더니 그들도 역시 황하일대는 원래 동이족의 거주지라고 써 있었다. 그들은 한족이 밀려와서 동이족을 몰아냈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그런데 실제로는 황하북쪽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동이족의 거주지였고 황하남쪽은 동이족이 지배한 나라였으나 한족과 융화되어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황하문명은 한족의 것이 아니라 동이족의 문명이며 요하문명이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었다고 밝혀진 것은 환웅이  장안으로 이주하기전에  히타이트의 후손인 스키타이인들이 이미 먼저와서 자리를 잡았기 떄문인 것이다.

 스키타이인들이 바로 마곡즉 마곡의 후손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을 고려 고리 구리 등의 이름으로 부른 것이고 치우는 바로 동방의 구이즉 동방에 먼저와 있던 스키타이인들의 왕인 것이다. 왕검의 아들인 황제가 유웅씨와 손잡고 염제를 쳐서 이기자 치우는 대군을 이끌고 황제를 치러 온다. 그 장소를 우리는 하북성의 탁록으로 배웠지만 산서성 최남단에 치우성(현지기록으로는 치우의 군대가 패해서 그 피로 강을 이룬곳)이 있고 장안 동쪽에 치우성(치우가 군대를 이끌고 주둔한 곳이라는 현지기록)이 동시에 존재한다.  정황으로 봐서 장안동쪽의 치우성이 진짜 치우성이 맞을 것이다. 산서성 최남단의 치우성은 주나라가 훈족계열에 밀리면서 지명을 동쪽으로 이동시켰는데 그때의 이동된 지명이 아닐까 한다.,
 그럼 유웅씨의 나라가 신정서쪽에 있다는 명나라기록역시 원래 유웅씨의 나라가 투족과 마찬가지로 장안일대에 있었을 가능성도 제시해준다. 그러면 환웅은 3천명을 이끌고 남하하여 투족과 곰족의 도움으로 나라를 건설하고  아들 왕검 손자 황제의 시대에 힘을 키워 먼저 황하이남을 정복하고 있던 염제의 세력을 쳐서 흡수하고 염제의 후손(아들이라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치우가 대군을 이끌고 동쪽에서 장안일대까지 진격한 것이고 황제는 거의 패배직전까지간 상황에서 겨우 막아낸 것으로 보인다.
 (치우가 주둔한 치우성이 장안동쪽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치우군대가 황제의 본거지를 압박했다는 것이고 전황이 유리했다는 것이다.) 치우군대의 출혈도 굉장히 커서 아마 양쪽군대는 무승부로 끝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나라사람들은 치우가 이겼다고 생각하는데 큰 관심을 갖는데 전체적인 전황은 치우가 유리한 것은 맞지만  치우군대의 피가 강을 이루어 호수를 만들었다는 현지의 기록을 참고하면 치우군이 승리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치우는 동방으로 가고 황제는 황하이남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워나간 것이고 황제의 후손중에서 동국(아사센즉 조선)과 서국(하나라)으로 갈라지고 치우의 후손들은 최씨가 되어 고대의 낙랑인 개봉동북부에서 산둥일대를 다스리게 된다. (중국기록을 살펴보니 치우의 후손들이 황제의 후손인 전욱고양과 제곡고신에의해 토벌되었다혹은 밀려난 기록이 있었다.,아마도 지금 황하북쪽의 땅을 뻇긴 것으로 보인다.)

 치우의 영토는 진국이 되고(진국은 원래 동방국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때는 산둥과 그 일대만이 진국이 된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제후국으로 분열되었다가 기자의 후손에 의해 마한제국이 되고 다시 백제에 의해 점령된다. 조선은 위만조선과 부여로 나뉘었다가 고구려에 의해 점령되고 사실상의 2국시대로 지속된다.

 발해는 동쪽으로 밀려나서 옛 진국의 영토에서 나라를 세웠기에 국호가 대진국인 것이고 궁예의 고려역시 진국의 땅에서 세웠기에 마진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것이다. 금나라에서 분리된 동진국역시 진국의 땅에 세워진 것이라서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술담배여자 14-01-12 00:16
   
서토국애들은 멍청한건가  지들은 지나족이면서 동이족을 조상으로모시면 어쩌자는거냐?
나와나 14-01-12 02:24
   
짱개들은 황제를 시조로 모시는 한족,우리는 단군을 시조로 모시는 동이족(한민족)인데 황제가 동이족이라고 할 때 정상적인 사람은 중화 문명의 시초가 동이족 문명이구나 할 텐데 짱골라놈들은 무식해서 중국이 시조로 모시고 있는 황제가 동이족이니 동이족 문명은 중화문명이고 고로 한국도 중국이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 궤변을 늘여놓죠
버들도령 14-01-12 13:47
   
우리민족의 진짜 역사를 찾아가데 힘이되어주는 여러분들의 노고에 감사를드립니다
나드리 14-01-12 15:18
   
잡게에서 어떤분이 알려주신 홍산문명에 대한 동영상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PC28YRDZ50

한시간 정도의 동영상인데 그중에서 50분 정도에 동북공정의 핵심이 되는 논리가 나옵니다.

황제가 동이족이니 고조선도 황제의 후손이 되고 고구려도 황제의 후손이 되는 동북공정의 논리입니다.

중공은 이미 이것을 자기들의 공식 역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천군치우k 14-01-15 21:02
   
여담으로 만화가 이현세씨가 천국의 신화를 그리고나서, 1편이 너무 야하다해서 문제가 됬던때가 있읍니다,
그렇지만 그거때문에 그랬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이현세씨가 직접 발품팔아서 조사한게 현재 우리나라 그 어떤 역사학자들보다 많은 양의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제 생각은
외압이 들어 왔다고 밖에 생각이 안됩니다, 모든 부분에서 이슈화해서 난리 쳣었으니까요!
말마따나, 만화이고 상상이고, 성인으로 해놨고, 뭐가 문제 이었을까요? 전 이해가 안된단거죠, 당시 만화책을 냈을땐 성인19세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게까지 한건 다른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천군치우k 14-01-15 21:08
   
또 홍산문명하고 저렇게 짜마추느라 진땀 뺏겠네요! 몇 천년을 다시 왜곡할려고 진짜 고생들 하고 있구만요, 나중에 시대가 변해서 탄로나면, 뭔 쪽을 당할라고, 일본도 고대 조작해서 걸려서 개쪽이란 개쪽은 다 당했는데,  아무리 왜곡한들 진실은 땅에서 나온다고 했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구만요, 독일고고학자들이 중국 곳곳에있는 피라미드 같이 조사하자니까 못하게 하고, 댐만들어 버리고 하는넘들인데, 그당시 발굴단 학자중 유언이 있읍니다, 그후론 이야기도 못꺼내게하고, 다시 묻어 버리고, 피라미드 나무심고 평지화시키고 참,,, 또 나중에 다른거 나오면 , 이젠 지들이 말하는거 또 다시 수정해서 거짓말 꾸며야 하는데, 애들쓴다, 우리나라가 힘이 없고 이 와중에도 위정자들은 백성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당과 자기 이득이 우선시하고 자빠졌으니, 오호 통재로다
내일을위해 14-03-19 00:05
   
이상하네요. 위 발췌글을 읽고서 경향에 들어가 내용을 다시 보니 전혀 다른 내용인데요. 전 상고시대까지는 몰라서 열심히 찾아보구 있습니다만 gagengi 님께서는 경향의 글을 잘못 이해하셨던가 아님 왜곡을 하신듯 보이네요. 경향의 내용은 중국은 홍산문명까지 중국에 편입시키기 완료해가고 있으며 치우나 단군과는 관계없다고 중국쪽에서 내논 결론에 대하여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님께서는 오히려 황제가 동이족이라고 했다, 중국도 인정했다라고 하네요. 다시 한번 제가 본 내용은 중국의 황제등 중국인의 조상들의 고향을 기존의 주장에서 바꾸어 북방쪽이다고 하면서 홍산문명을 대입시켜 홍산문명을 우리와는 관계없는 자신들의 문명으로 주장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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