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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10 18:49
[기타] 광해군의 실리외교는 옳은가? (명분과 실리)
 글쓴이 : 으라랏차
조회 : 5,739  

무슨 거창하게 춘추대의를 말하려는게 아니다.
극단적인 명분론이나 극단적인 실리론을 떠나 명분 없는 실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국사교과서엔 광해군의 실리외교란 말이 나온다. 
명나라와 후금사이에 중립외교를 펼쳐 전쟁을 참화로부터 나라를 지킬수 있었는데
광해군이 실각하고 서인정권이 들어서면서 숭명배금으로 돌아서는 바람에 두차례에 걸친
호란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중원의 싸움에 조선이 굳이 끼여들 필요도 없고 그러므로 광해군의
외교는 옳은 것이고 서인정권의 배금정책은 무책임함에 연속이었을뿐이란 얘기다. 

그래서 광해군과 주화론자 최명길은 조명 받고 송시열,김상헌,임경업 같은 척화론자들은 
상대적으로 잘못된 사람같이 묘사되니 이 역시 좀 문제가 있다.

하나 하나 짚고 넘어가자. 

우선 광해군의 명에 대한 감정.

광해군은 임란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간 상황에서 세자에 책봉되어 분조를 이끌고
사실상 적지나 다름없던 충청,경기,강원 각지를 떠돌며 근왕병을 모집하고 전선을 이끄는등
실질적으로 엄청난 공을 세웠다. 

그러나 동복형제 임해군과 왜란후 선조의 새로운 계비 소생인 영창대군이 존재하므로
세자책봉에서부터 명나라와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세자책봉시에는 명나라에서 형 임해군을 놔두고 왜 왕위에 앉히느냐 영창대군이 태어나고 나서는
왜 정실부인에서 낳은 영창을 놔두고 후궁소생의 서자인 광해군이 왠말이냐 하는식으로 해서
광해군은 세자책봉시에도 후에 왕위 계승시에도 명나라에 정식 책봉을 받지 못했다.

나중에 막대한 뇌물을 주고 명나라에 정식으로 왕위를 인정받지만 암튼 그랬다는거다. 

당연 광해군 개인의 명에 대한 감정이 좋을리는 없었다. 


당시 후금의 상황. 
일단 광해군 시대 후금은 아직 황제를 자처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누르하치는 아직 조선과 본격적인 전쟁을 펼칠 생각을 못할때였다. 명과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펼쳤으나 상대적으로 명에비해 인원이나 물자 모든 부분에 밀렸기에 장성을 넘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때다.  

명나라가 산서성 농민 반란으로 본격적으로 청을 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조정은 환관들의 동창과
사대부들의 청류파로 나뉘어 당쟁이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명나라가 망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할때였다. 실제 명나라가 망한건 이자성의 농민반란군이 북경을 점령했을때였지 청나라 힘으로
명나라가 망한건 아니다. 

아무튼 광해군 시기 후금은 대놓고 명나라와 싸움을 벌였지만 황제를 칭할 정도로 크지도 않았고
명나라와 조선이 힘을 합쳐 본격적으로 싸울 생각을 했다면 단숨에 무너졌을지도 모를 취약한
상태에 있었다.  

광해군의 강력한 정치적 지지자였으며 왜란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북인 정권의 실세 정인홍
조차도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강력하게 후금을 칠것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광해군은 그러지 않았다. 명에 대한 반감과 총애하던 김상궁(개시)의 요청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명분도 없고 별다른 실리도 없는 눈가리고 아웅하기식 전략을 택하게 된다.

만약 후금이 이때 홍타이지가 들어선 상황이었다면 광해군이 이렇게 하든 안하든 후금은 쳐들어
왔을 것이고 광해군이 강력하게 반청 정책으로 전력을 다했다 한들 이 당시 후금의 상황으로
조선을 칠 생각도 못했을 상황이다.  바로 심양 코앞 영주성을 비롯한 요동 각지에 명나라의 요새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조선으로 대규모 병력을 뺀다는건 당시 후금의 상황으로썬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명나라 일부 부패한 고위 관료들이 후금에게 시간을 주었듯이 광해군도 후금에게 시간을
주고야 만다. 결국 시간이 흘러 조선에 대해 반드시 정벌(영토적인 정벌이 아니라 인력 확보)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 불세출의 영웅 홍타이지가 칸이 되면서 이제 상황은 돌이킬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때 조선은 성곽을 보수하면서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지만 후금은 전략은
성을 무시하고 기병만으로 곧장 한양에 진격하는 전략이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긴 하지만 
아무튼 중요한건 이미 이때에 이르러선 조선이 아무리 주화론으로 중립외교를 했다고 한들
어짜피 홍타이지는 조선을 침략했을 꺼라는거고, 광해군 시절에는 광해군이 아무리 강경책으로
후금과 결사항전을 외쳤다고 한들 후금이 감히 조선을 칠 생각을 못했을꺼라는 사실이다. 

또한 중요한 것 한가지는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도 이를 뒷받침할 지지세력이 없다면
절때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점인데 광해군은 이 점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명과 후금사이에서의 중립외교(?)는 어느 당파로도 지지를 받지 못했고 어떤 거창한 대의 명분으로
포장되어 선전되지도 못했으며 단지 광해군 독단으로 정치세력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뛰어난 한 개인의 역량에 의해 임시방편적으로 위기를 넘길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런 개인플레이
는 결국에는 합리적인 시스템과 정책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어정쩡한 여야 정치권에 대한 양비론(정파를 초월한 진보,보수를 초월한 합리성 어쩌고로 포장한)
과 일시적인 지지도에 일회일비 하며 휩쓸리는 거 보기 한심하다. 

예전에 노무현 대통령도 문국현등 비정치인의 일시적인 지지도에 일회일비하는걸 경계하는 말을 했었다.
정치인이란 단지 신선하고 깨끗하다는 이미지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진흙탕에 뒹굴면서 검증되어
져야 한다고. 

그리고 결국은 명분과 실리가 동떨어진것이 아닌 하나인거고 그때 그때 약간의 차이는 발생할수
있지만 명분 없는 실리도 실리없는 명분도 존재할수 없는 거다.

양자간에 사안에 따라 차이는 있을수 있겠지만 반대개념으로 존재하는것이 아니란 사실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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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꼬이떡밥 14-01-10 19:15
   
광해군은 실리 라기 보다 국가의 기본 조선의 기본이 무엇이였나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버들강가지 14-01-10 22:57
   
음.. 새로운 시각의 광해군이네요.
잘 보고 갑니다!
gaevew 14-01-10 23:19
   
슬픈구름1 14-01-11 01:11
   
재미있는 시각이네요.
하지만 크게 공감이 가지는 않는군요.
광해군 시기의 조선이 풍요로운 시기였다면 고개를 끄덕이겠지만
당시 조선은 왜란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국고는 텅텅비었고 인구수는 크게 줄어있는 상황에서 전쟁은 말그대로 멸망의 지름길이죠.
명의 멸망의 원인중 하나가 왜란때의 파병으로 인한 국력감소인데.
그 전쟁터였던 조선에서 다시 전쟁을 준비한다는 건 전 상상이 안가네요

명과의 의리라는 명분보다
내실을 다질수 있는 시간을 버는 실리라는 측면에서 전
광해군의 외교가 올바른 정책이었다고 봅니다.
드라이브1 14-01-11 01:15
   
결론을 쿠데타로 광해군 치고 명나라 선택해서 청나라한테 개발살난것 그뿐임
신씨 14-01-11 01:32
   
이러니 저러니 해도 광해군 이후에 청나라에 박살나서 백성들을
쳐죽인게 다임. 이게 결말. 인조가 광해군보다 뭐가 잘났는지
도통 모르겠군요.
     
연아는전설 14-01-11 02:32
   
최악의 임금이엿죠 인조는 ㅋㅋ
적어도 임란이전에는 자주성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임란이후 귀족들은 귀고리도 하지 못했죠 명에서 여진족의 풍습이라고  하지말라고 하니까~~~
명이 패하니 뜬금없이 소중화를 들고 나왔습니다. 우리가 문물의 중심이다~~~ 이런 것이죠.
그러나 세조때 기록을 보면 명이 타타르에 패하자 가소롭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세조의 초상화는 유일하게 통천관(황제의관)을 쓴 것이 있습니다.
지금 남은 기록은 인조이후 새로 작성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청나라에 땅 다뺏기고 소국으로 전락한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인조와 이후의 왕들이 조작에 가담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저도 그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해군이 계속 왕으로 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임금으로 계속있었다면 오늘날 한반도와 동북3성의 대부분과 산둥은 계속 조선땅으로 남았을 테니까요 그 넓은 영토와 2억이 넘는 인구로 강대국으로 남았을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상황이 지금과 다르지 않습니다.
왜군의 명나라 침공을 저지하려고 파병한 명나라와 공산주의의 확장을 저지하려고 파병한 미국
비록 명과 미국모두 그 이후 많은 불공정 처사로 비난을 받았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미국을 좋아합니다. 만일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는 어느 편을 들까요? 지금 중국이 우리의 제1의 경제파트너임을 감안한다면 미국편을 들면 우리 경제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게 뻔하죠. 그럼 병자호란이전처럼 의리로 미국을 돕자는 쪽과 실리를 지켜 중립을 하자는 편으로 나눌 것입니다.
당시 지배층뿐 아니라 일반 민중도 의리를 지켜 명나라를 돕자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당시의 지배층과 백성들의 잘못은 의리를 지킨 것이 아니라 우둔한 군주를 내세운 것입니다. 이왕이면 광해군처럼 똑똑한 분을 임금으로 내세웠어야하는데 ....
          
신씨 14-01-11 03:06
   
결국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이익을 최대한 취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실력을 기르는 수밖에 없겠죠. 경제력도 그렇고 과학기술을 발달시켜서
국방력도 길려야 합니다. 인조와 그당시 유림들은 말로만 북벌 북벌 했지 실제로
북벌을 위해서 한건 별로 없죠. 백성들에게 세금만 더 뜯어내려고 하면서
막상 자신들은 군역도 면제받고 세금도 잘 안내려고 했으니까요.
세조는 조선의 국력을 발달시키면서 자주성을 내세웠으니 인조하고는 상대가
안되죠 ^^
          
mymiky 14-01-11 03:07
   
광해군이 왕을 계속하면, 한반도와 동북3성과 산둥은 조선땅으로 남는다?라는건 뭔 말이지-.-;;
역사엔 이프란 없습니다.

광해군이 정통성이 약해 명나라에 책봉장 하나 받으려고 명 조정에 보낸
뇌물이 얼마나 많은데;;

미국이 중국의 경제적 공격을 받는다?라는건 또 뭔 의미인지 모르겠군요;;
미중이 g2로 내세워주니, 진짜 둘이 같은 물에서 노는줄 착각하시는듯;;

인조가 워낙 병맛이라,
광해군이 그나마, 왜란때 분조한 공도 있고, 허울뿐이였지만 듣기엔 좋은 실리외교란
타이틀도 있으니, 광해군이 더 낫다고 사람들이 여긴다는 점은 알겠습니다만

까놓고 말해서, 광해도 똑똑한 왕은 아닙니다. 항상 약점이였던 약한 정통성 문제도 있구요.
아버지 선조가 방계혈통의 최초로 왕이 되면서 어쩔수 없이 후손들에게도 되물림
되다시피한 문제지만..
어쨎든 광해도 정작, 왕이 되고 보여준 정책들은 세자시절 총기가 어디로 갔나? 할정도로
실책이 많습니다.

제 생각엔, 그 당시엔 어느 왕자를 세워도 문제가 되었을듯 합니다만;;
왕은 하늘이 낸다고, 인조가 간택된 것도 뭐 운명이라면 운명이겠죠..
첼파 14-01-11 22:09
   
뇌물쓴건 인조 아닌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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