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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2-31 14:10
[통일] 신라어와 발해어가 유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
 글쓴이 : 정신차려
조회 : 9,079  

우리가 익히 잘아는 일본에간 신라학어가 발해인을 통역해줬다는
기록말고도

청화천황실록 872년 5 월 27일 일본의 공식 대외관문이던 대제부에
60명가량을태운 배두척이 나타나자 일본관리가 통역과 군사들을
대동하고 어느나라에서온 배인지 조사를 벌인 기록이 있습니다.

통역을 동반한 대제부의 조사에 자신들을 발해대사 최종좌가 이끄는 발해사신과 상인단이라고
소개하는데 그때마침 항구에 정박하기도 전에 강풍에
떠밀려 두척중 한척이 망망대해로 떠밀려 사라져버립니다

이를두고 대제부 관리들은 신라인들이 발해인이라 속이고
있다고 강하게 의심하고는 조정에 신라해적이라 보고해 버립니다.
이에 조정에서도 이들이 발해인인지 신라인인지 면밀히 조사하라 명하지만
결론을 내는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대제부란 곳은 오랫동안 신라 발해인들을 상대해왔고
경험많고 노련한 통역들도 항시 준비된 곳이라
대충 말 몇마디 나눠보거나 자기들끼리 나누는 얘기 엿들으면
금새 신라인인지 발해인인지 구분 가능했음에도 구분히 어려워
끙끙댔다는 사실은 발해어와 신라어가 구분하기 어려웠다는 셈이 되죠.

사실 이사건이 있기전에도 신라상인들이 자신들을 발해인이라
사기치고 물건팔다가 나중에 들통나서 달아난 사건도 있었습니다.

만일 신라어와 발해어가 서로 다른 언어일경우,
 신라상인단이 발해인인양 위장하여 일본인들을 속이려면
일본어나 발해어에 능통한 한두사람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고
상인단 대다수가 그리해야 하는데 이건 불가능했습니다.
당시 상인단은 한번에 백명이상은 물론이요 천명가량 대동해 오는것도
다반사였기 때문에 신라 발해 모두를 오랫동안 상대해온 대제부의
일본인들을 속이려면 상인단 대다수가 발해어에 능통해야했습니다.

 참고로 발해문왕때는 발해사신단이 철륵인 상인 수백명까지 도합
천백명가량을 이끌고 온것도 가록에 남아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당시 신라어와 발해어가 유사했기에 경험많은 관리 통역을 포함함
일본인들도 신라상인들에게 속을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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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잡스 13-12-31 14:34
   
첨언하자면

되도록이면 신라어 발해어 이런 용어보다(이건 마치 유럽어 중국어, 한국어처럼 다른 계통의 언어로

이미 재단된 용어기술임) 한뿌리 언어에서 나와서 지역적, 방언적 특색이 가미된

신라말, 발해말로 표현하는게 더 합당한.(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정신차려 13-12-31 15:30
   
ㅎㅎㅎ 그렇군ㅇㅛ
없습니다 13-12-31 17:52
   
발해어 자체가 알려진바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해의 구성원에 따라 서로 다른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고(지배층-고구려어, 피지배층-퉁구스계통 말갈어) 중국에서는 말갈어를 사용했거나 공통어로 중국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죠.

발해에서 일본에 사신을 보낸게 200년동안 20차례에 불과하니 10년에 한차례정도이니 일본에 통역이 존재하거나 발해어에 대해 잘알고 있을 확율은 낮습니다. 그래서 신라인이 발해인을 사칭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는게 다 타당할것 같네요.
     
끄으랏차 13-12-31 18:10
   
지배층-고구려어 라는 부분이 오류입니다.
발해의 지배층은 대조영을 고구려계라고 보더라도
어차피 조정중신이 전부 말갈입니다.
          
mymiky 13-12-31 18:14
   
조정중신들 전부 말갈이다?-.-;; 아니 증거좀..
그리고, 말갈족이 조정중신이나 될 정도로 뭔가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 애들인가요?
오히려, 말갈족들은 군사,장군, 무관 힘쓰는 이쪽으로 고관들이면 또 모를일이지만,
행정업무쪽으로 말갈족들이 조정중신이 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ㅋㅋㅋ
뭘 믿고 조정중신이 전부 말갈족이라고 하는건지? 개어이가;;

글고, 사실 말갈어가 구체적으로 어떻건지 알수는 없어요.
삼국시대 언어는 남아있는게 거의 없습니다. 다만 몇몇 단어들로 조합하거나 추측할 뿐이죠
               
끄으랏차 13-12-31 18:37
   
저 무슨 말갈족은 전부 짐승가죽으로 몸 싸고 힘만 세고 무식하게 도끼 휘두르며 끼우끼우 하는 수준인걸로 생각하시는가 본데요.
말갈이 그러면 고구려도 그렇습니다.
고구려는 그 말갈보다도 더 강력하게 힘쎄고 무식해서 결국 말갈을 복속시켰던거고요.
무슨 고구려가 님이 생각하는 상야만인 말갈을 머리써서 굴복시킨줄 아십니까?

거기다 발해는 뭐 엘리트 교육요?
애초에 발해를 세운 사람들이 다 도망자라는건 역사에서 안배우셨습니까?
나라 망하고 핍박받고 도망다니던 사람들이 무슨 대단한 엘리트 교육받는다고 나 원참.

애초에 발해는 걸걸중상과 걸사비우의 동맹으로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국가입니다.
걸사비우는 말갈족 족장이고요. 걸걸중상도 솔직히 이거 말갈이름이지 ㅋㅋ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이 발해를 세웠다고 그걸 애써 분리하려드는데
우리나라 말고는 고구려 유민을 한민족과 말갈족 양쪽 다로 봅니다.
고구려에 대한 애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지 민족으로 고구려 유민을 나눈건 아녀요

이 대표적인 증거가 발해를 세운 고구려유민과 말갈족 그룹의 최초 지도자는
걸사비우였습니다. 말갈족 족장인 그 걸사비우요.
고구려유민은 모두 한민족이라고 치더라도
그 사람들도 결국 걸사비우를 지도자로 추대한겁니다.
그리고 대조영은 걸사비우 사후 이 집단을 이어받았고요.
거 좀 착각좀 하지맙시다.
정말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으시면
한민족 말갈족 구분하려 드는것부터 바꾸셔야되요.
구분해야 되는 부분이 있고 아닌 부분이 있는데
무조건 한민족이 말갈족 지배함식이니
                    
정신차려 13-12-31 18:43
   
이사람은 발해가 대당유학생을 많이 보내고 유학의 원리 인의예지충의 같은걸로 6부 이름짓고
유학교육기관에 거기다 '여사'라는 명칭의 여성 유학 교사가 귀족 집안 여성들을 가르쳤다는 사실을
알면 까물어치겠네

발해가 강력한ㅊ무력으로 월희 철리 흑수 같은 여러 부족들을 굴복시킨건ㅊ맞는데
문 특히 유교적 문화 또한 번창했던 나라라는건 공뭔시험 기본 상식이기도 함

그리구요 발해 귀족 성씨에는 고씨 양씨 같은 전형적인 고구려귀족 후손들이 천지빽가리였어ㅁ
                         
끄으랏차 13-12-31 18:47
   
죄송한데 애초에 제 얘기는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 피지배층 말갈인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말갈인이 지배층이라 할 조정에도 많았을 정도로
그 둘의 구분이 없다는 얘깁니다.

심지어 중국쪽 사서에서는 아예
발해는 속말말갈이 건국한 국가이고 대조영은 속말말갈의 족장이라고 까지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이 얘기와 발해가 이후에
유학교육을 뭘 하고랑은 별개의 얘기입니다.

애초에 발해는 한민족만 지배계층이다 해서 교육시킨 국가가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부디 발해의 그 교육기관서 민족을 가려서 입학시켰다는 자료 좀 보여주십시요.

성씨 얘기는 다시 읽어보다 봐서 추가 좀 할께요.

애초에 발해를 세운 대조영 조차도 아버지 대의 성은 걸걸 입니다.
자신의 대에서 성을 바꾼거죠.

그런데 발해의 성씨가 고구려때의 그 성씨 그대로 쓰인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양씨는 둘째치고 고구려 귀족인 고씨가 많았다 ㅋ

공식적으로는 고구려의 고씨는 고구려가 멸망하며 사라진걸로 말하고 있고

비공식적으로는 신라에 의해 고구려 왕으로 봉해진 안승이 고구려 마지막왕인 보장왕 아들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현재 고구려의 고씨를 이었다는 횡성 고씨도 족보를 근거로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고
실제로 신라가 고구려왕으로 내세운것도 보면 그런것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고씨는 신라로 간셈입니다.

잡설이 길었는데요.
발해의 고씨는 고구려의 고씨랑 상관이 없다는겁니다.
상관 있는 사람도 있겠으나
대조영의 예에서 볼수 있듯 발해건국 전후로 성을 바꾸거나 만든 경우도 흔하며
안승의 예에서 볼수 있듯 실제 고구려때의 그 성씨는 다른 곳으로 갔기때문입니다.

아니 애초에 발해가 고구려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세운 국가인데
고씨가 정말 그 고씨면 그쪽이 지도자가 되지 걸걸씨나 걸씨가 지도자가 될수가 있습니까? ㅋ
                         
mymiky 13-12-31 19:03
   
속말갈이라 칭하는 그 숙이 익을 숙 한자예요.
어느정도 문명화가 된.. 이런 뜻이 있습니다.
생여진, 숙여진도 마찬가지구요. 누르하치는 숙여진이였지요.

발해가 이후에 유학을 하고랑 별개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고구려때 이미 중국과 교역하면서, 어느정도 정치체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고구려의 지방귀족? 관리했던 사람들이 다시 사람들을 규합해
발해를 세운거죠.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 피지배층 말갈인이라고 딱 2분법적으로 볼수 없다는 말. 뭔지 이해는 하는데, 님처럼 조정대신 전부가 말갈족이다-고 주장하는 것 또한 비약이 심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말갈족도 말갈족 나름입니다.

왕조 초반에는 당연히 군공을 많이 세운 자가 개국공신이 될 확률이 많습니다.
말갈족들도 그런 의미에서 조정고관으로 출세했을 가능성은 높지요.
                         
mymiky 13-12-31 19:26
   
금나라때 북경을 건설한 발해인 장호는 본성이 고씨고, 동명왕 후손이라고 합니다만?-.-;; 왜 고씨가 사라졌다는건지 모르겠넹;;

장호니까, 성이 장일꺼다. 뭐 이래 생각하나?-.-;; 안승도 성이 안이 아니라, 이름이 안승임. 고안승. 이쪽은 보장왕의 서자였나? 그러한데, 뭐 신라로 갔다 치더라도
고씨가 갑작이 사라지고 그런건 아님..

그럼, 왜 발해가 고구려를 잇는다면서 고씨를 왕으로 안하고, 대씨가 되었냐고 묻는다면, 개고생은 자기가 했는데 고씨성 가진 먼 방계왕족 하나 왕 삼아 왕올려주기엔
아까운 것도 있겠죠ㅋㅋㅋ
                    
mymiky 13-12-31 18:56
   
말갈족들은 움집이나 땅파서 토굴에서 생활했지요. 도기도 만들었지만, 그 수준은 높지 않습니다. 말갈족들은 부족별로 고구려에 복속 한 집단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었습니다. 일부는 님말대로 힘으로 복속시켰고, 일부는 필요한 생필품 줘가면서 복속시켰겠지요. 후금이 성장할때 마찬가지로, 기타 다우르족이나 몽골, 어원춘족 복속 시킬때처럼요.

또한, 한국가를 세운 사람들이 도망자이기에 엘리트 교육을 안 받았을꺼다?
아무것도 없는 무지렁뱅이가 국가를 세우진 않습니다.

중국의 농민란을 볼까요? 흔히 중국의 농민란으로 새 왕조가 들어섰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쌩초짜배기 농민이 황제가 된 예는 거의 없습니다.

중국의 학자 단원붕은 역대 중국의 농민반란을 연구해서
대다수가 군벌, 지방의 하급관리, 상인이 황제가 되었다는 결론을 내었습니다.

논에서 밭짓고 농사짓는 자들은 문화적 수준이 높지 못하기에, 적절한 명령이나 정치강령을 낼수도 없고 광범위한 사회관계망을 가지고, 조직능력을 가진 한 무리의 의거군들을 이끌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비해, 하급관리, 하급무관, 상인들은 일정수준 배운게 있어서 문화수준이 어느정도 있고, 견식과 조정체제를 본받는지도 알아서 자신의 규칙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을 이끌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대조영, 걸걸중상, 걸사비우는 그 시대 어느정도 엘리트입니다. 말갈족 족장식이나 하니까 대업을 이룩하거죠. 그냥, 말갈족이면, 그냥 무지렁뱅이ㅡ 빌어먹는 자였으면 안되었을겁니다. 나라 건국하는게 쉬운일이 아니예요-.-
군사력과 머리가 있어야합니다. 이성계가 제아무리 잘났어도, 정도전이 없었으면 안됩니다. 도망자이기 때문에, 머리가 없었을꺼라고 여기는건 잘못이죠.
                         
정신차려 13-12-31 19:18
   
어후 너무 심하네요 이건뭐--
고구려 멸망할때 고구려 고씨는 다 멸망해서
발해고씨와 고구려 고씨는 다르다구요?

ㅎㅎ;; 상상을 초월하네요 인터넷 무식용자님덜 ㄷㄷㄷ

이런 기초적인 상식부터 자기마음대로 떡하니 소설쓰고 우기니
대화불가
                         
끄으랏차 13-12-31 19:20
   
그러니까 말갈족은 움집파서 토굴에서 생활해서
조정중신이 될 정도가 못되는 수준인데.

또 걸사비우나 걸걸중상 대조영의 경우는 예외다?
무슨 스스로 모순을 만드십니까

네 애초에 움집파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인간을 조정에다 안 데려다 쓰죠.
그건 말갈족이 아니라 주몽이 돌아와도 그러고 있으면 누가 조정에다 씁니까

님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말갈족에도 계층이 있고 엘리트가 있는겁니다.
그 엘리트들이 조정일 못합니까?

각종 문헌을 통해 언급된 발해사람의 이름은 총 233명이고 성씨는 62개인데.
네 문헌에 까지 언급되고 성씨가 있을 정도니 최소한 지배계층이고
문헌에 등장할 정도니 최소한 지배계층 중에서도 상위 엘리트입니다.
주변 민족의 성씨와 비교했을때 저 62개 성씨중에
고구려 성씨는 9개. 말갈 성씨는 14개입니다. 말갈 성씨가 오히려 더 많아요.
거기다 앞에서도 말했듯 고구려 성씨도 성씨가 같아 고구려 성씨로 분류한거지
고구려의 그 사람들과는 별개로 발해가 세워지며 만든 경우가 많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겠죠.
율기계, 어부수계, 오나달리, 사나루
이거다 말갈 이름입니다.
발해 건국초에 외국으로 나가던 사신들 이름입니다.
현대로 치면 외무고시 통과한 외교관중에서도 젤 높은 사람들요.
사나루는 참모예요. 군사요. 네 제일 머리 써야하는 그 직책요.

무식한 말갈인이 어떻게 조정중신을 해서 말아먹었길래
발해는 결국 당나라의 압력을 뿌리치고 건국을 했군요?
                         
mymiky 13-12-31 19:37
   
모순?
제가 위에서도 분명히 말갈족도 말갈족 나름이라고 했습니다만?

님도 인정하시네요. 말갈족도 계층이 있고, 어느정도 문화의 덕을 입은 엘리트가 나랏일같은 큰일을 할수있는 법이죠. 

전, 조정중신이 전부 말갈족이다고 님이 단언하면서 주장하시니 썼을 뿐입니다.도망자들이 세웠다고 아무나 조정중신 말갈족이면 한자리 골라잡아로 되는건 아니니까요;
님은, 제가 말갈족이 전부 꾀죄죄하고 후달리는 애들이다? 뭐 이런 식으로 주장한다고 받아들이셨나보죠?
                         
끄으랏차 13-12-31 19:47
   
"말갈족이 조정중신이나 될 정도로 뭔가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 애들인가요? "

"행정업무쪽으로 말갈족들이 조정중신이 될 정도는 아니지 않나요? ㅋㅋ"

기억 못하시는것 같아서요.

지금와서 말갈족도 말갈족 나름이라고 말씀하시면 스스로 모순을 만드는거밖에 더 됩니까?
                         
mymiky 13-12-31 20:16
   
무엇이든 단언하는 것은 오해를 살수 있습니다. 더구나 [전부]같은 표현 같은건 더하죠. 전 님이 너무 자신있게 조정대신 전부가 말갈족이라시니ㅋㅋ 이해가 안되더군요. 고구려 시기 말갈족은 부족집단끼리 흩어져 살았고, 문화수준도 높지 않았으니까요. 대조영, 걸사비우야 족장아들이니까 그나마 교육은 잘 받았겠지만
말갈족도 말갈족 나름일텐데 싶었거든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때도 휘화의 여진부대의 공도 있었던 것처럼, 신왕조가 그렇듯 군사력에 의한 군공의 업적은 많을꺼고
초기 말갈족의 중신들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뒤 안정적으로 중앙 귀족화 되고난후 자기 아들, 손자에게 한문 교육 잘 시키고, 해서 고관들을 많이 배출시켰다고 하면 전부 말갈족이다는 표현 뭐, 그려려니 하도록하죠 ㅋㅋㅋ
     
정신차려 13-12-31 18:19
   
없습니다//발해가 일본에 보낸 공식 사신단 횟수만 34횝니다. 그냥 그럴듯하게 지레 짐작으로 횟수 지어내지 말고 정확한 팩트로 말씀하세요
더구나 공식 사신단에 합류하는 발해상인들까지하면 규모가 천명 이상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는 당시 발해 신라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역어제도가 갖추어져서
발해 사신단 상인단이 입국하는 대제부나 지금의 시마네현에
배치되있고 사신이 올때마다 거의 왜왕 만나고 현지 귀족들 상인들과 물물거래 교류하는등 체제기간이
오래걸리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통역이 없었을 거라니 어이없군요

당시 일본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이어서 발해에 비해 사산왕래횟수가 훨씬 적은 신라의
경우에도 통역이 있었는데 그 활발히 교류했던 발해가 없었를 거라니요 ㅎㅎ

막연한 짐작으로 반론한다고 다 통하는게 아닙니다.
     
굿잡스 13-12-31 20:55
   
지배층-고구려어 라는 부분이 오류입니다.
발해의 지배층은 대조영을 고구려계라고 보더라도
어차피 조정중신이 전부 말갈입니다>??


죄송한데 애초에 제 얘기는
발해의 지배층이 고구려인 피지배층 말갈인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말갈인이 지배층이라 할 조정에도 많았을 정도로
그 둘의 구분이 없다는 얘깁니다.

심지어 중국쪽 사서에서는 아예
발해는 속말말갈이 건국한 국가이고 대조영은 속말말갈의 족장이라고 까지 기술이 되어 있습니다.>???

남북국시대로 중딩만 되도 알 발해 국사를 가르치는 내용에도 이런식의 기술은 없는데

ㅋㅋ (어디서 이런식의 주장을..)


발해국지장편이라고 김육불이라는 양반이 전체적으로 동북공정삘 나는 서적를 만들었는데

우선 그런 시각을 떠나서 모아논 자료 중에  발해 지배계급은 317명

그중에 대씨 90명, 고씨 56명, 장씨 30명, 왕씨 22명, 리씨 18명 외 박씨와 최씨등

신라계쪽도 일부 포함되어 있음.


그럼 여기서 대씨를 마냥 생뚱맞은 수렵생활하던 말갈이라고 하느냐?

전혀 아님.

"고구려의 옛 장수 조영의 성은 대씨이니, 남은 군사를 모아 가지고 태백산 남쪽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발해라 했다." - 삼국유사 -

고구려의 장수 집안 내력에 이 대씨라는 성은 속말말갈 즉 송화강 일대에 있던

부여계 세력을 말함.(  발해의 2대 무왕이 왜국에 보낸 국서에 '고구려의 옛땅을 수복하고 부

여의 풍속을 이어받았다' 한 기록도 이런 맥락에서임)

부여가 우리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면면을 보여줬는지

여기서 딱히 자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서토 사서에 이미 최소 기원전 2세기부터

활동한 기록이 나오면서 (이미 고조선 말기 위만조선시대에 북만주의 강자로 열국시대의

큰 주도세력) 494년 고구려에 의해 흡수될때까지 고구려의 고씨가 부여에서 나왔고

백제역시 남부여로 지칭하며 부여가 멸망하자 남은 세력이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세운

북부여로 지칭될 두막루국이라는 나라나 백제의 요서 산둥 결략에서의 부여 잔존유민과의

결탁 그리고 최근 고고학적 성과들인 가야나 경상도 일대도 다르지 않는 부여계 출토 유물

확인등을 보면 가히 삼국시대 이전 우리의 고조선 문명권을 이어받아 곤고한

문명권을 이끈 고구려문명권의 실질적 모태가 바로 부여계일 것임. 즉 이 속말말갈인

대씨는 생뚱맞은 성씨가 전혀 아닐 뿐더러

그 다음 고씨는 더 말할 필요 없으니 넘어가고 장씨의 경우도

금사 장호(張浩)열전에 따르면 장호의 자(字)는 호연(浩然)으로서 요양발해인(遼陽渤海人)

이다’라며 ‘본래 성은 고씨로 동명왕의 후예(東明王之後)’라고 기록하고 있음.


자 보시길.

결국 발해의 지배계급의 317명 대다수가 부여계와 고구려계 혹은 신라계 또한 포함된

고구려의 연장선의 우리 주류 세력들임.(다만 과거 고구려시대에 고씨가 제왕이였다면

발해시대에는 대씨가 이어 받았을 뿐이고 고구려 조차도 초기는 고씨가 아니라

부여계 해씨일 거라는 어쩌고 주장도 있음.)


발해의 지배계층이 우리민족이 아니니(속말말갈=부여계, 혹은 예맥말갈계)

어쩌니 말보다 도리어 밑의 피지배계층이 누구인지 좀더 공부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ㅋ
     
굿잡스 13-12-31 21:08
   
그리고 오늘날도 발해 지배계층인 우리 부여,고구려계

피지배계층 말갈계 이런 이분법적 등식으로 보는 시각은 점차 바뀌고 있습니다.

왜냐?

이런 시각은 왜국이 발해 초기 연해주 일대의 일부 지역을 둘러보면서 기록한

유취국사에 근거한 것으로써 발해는 다들 알듯 고구려의 옛영토를 회복하고

이를 넘어 최근 한러 고고학탐사를 통해 이 당시 기온이 상승하면서

도리어 남시베리아 일대에 근접한 아무르강 일때까지

직접행정치소가 발견되는등 기존의 우리가 알던 발해의 북방 영토를 상회하는 훨씬 넓은

면적은 가진 가히 대국의 크기를 보이고 있음.

즉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고 조선에서 대한민국으로 국호가 바뀌었다고 그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하늘에서 새로운 종족이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기본 상식을 가지고 본다면

그리고 당시 당나라는 연남생을 필두로 하여 점을 따라 빠르게 진격해서 요동 일부성과

평양성 함락이라는 것이 유효했을 뿐 애초에 동만주나 한반도 동북부는 제대로 땅도 밟지

못했고 수많은 고구려 성들이 건재했던 가운데 3여년이 안되어 평양일대 당나라 군대는

이런 고구려 부흥세력에 의해 도륙당하면서 요동 요서로 밀려나다 이후 보장왕을 대리로

내세워 간접지배방식으로 선회하지만 도리어 보장왕은 반란을 회책하고 얼마 안가서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을 이끌고 천문령 전투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하고

기존에 건재하던 각지역 부여, 고구려계와 합심해서 다시 고구려영토에서 발해를 세우고

이후 고구려 옛영토를 다시 회복한다는 점에서 이들 대다수 주민들이 딱히 다른 이민족

세력였다는 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임.



또한 고수, 고당 전쟁이고 이당시 말갈이 고구려와 따로 이질적 혹은 거대한 분화된 세력

이였다면 도리어 이런 큰 대전에서 고구려 후방을 위협하던 세력이였을 것이나 이런 기

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상기해야겠죠.
정신차려 13-12-31 20:53
   
말갈에 대해 이렇게 많은 오해와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아직도 신당서의 시각으로 말갈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구당서엔 속말말갈을 고구려 별종이라 했는데 신당서엔 그저
대조영을 말갈이라고만 칭하고 있습니다.

중국 사서에 별종이란 표현은 동일민족이나 지파가 나뉜 경우에 씁니다.

다시말해 구당서의 고구려별종이란 속말수(지금의 송화강)에 사는
말갈인들이 고구려족 부류라는 소립니다.

그러나 흑수말갈이나 연해주지역에 살던 철륵 월희 불열 백돌말갈은
예맥족이라기보다는 계통이 좀 다른 퉁구스계일 가능성도 있죠

그러나 발해를 건국한 주도세력인 고구려 국인들과 속말수지역 예맥족
그리고 두만가ㅇ유역의 백산말갈이라 불린 옥저 동부여계 사람들 책성 주민들은
전형적인 예맥족으로 고구려 부여인들인 겁니다.

다시말해 말갈이란 한규철교수님 주장대로 고구려인과 구분되는 특정 종족을 일컫는다기 보다는
그저 국내성 요동성 평양 등 고구려 국인들에게 정복당한 예맥계 지방민들인 겁니다.

당시 사회는 지금과달리 정복사화로서
민족이 같던 다르던 정복자들은 주로 큰성에 몰려 살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문화와
경제생활을 향유한 반면에,

피정복민들은 고구려에 정복당한 옥저 동부여 동예 북부여인들처럼
민족이 같아도 피정복된 사람들로 주로 지방에 살면서
큰성에 몰려사는 지배계급인 고구려국인들과는 달리 문화적 신분적으로
차이가 났을겁니다.

더구나 고구려는 정복지역을 직접 다스리기 보다는 자치를 허용하는 간접지배방식을
띠었기때문에 제3자인 중국인의 눈으로 보면 평양 요동성 국내성 등지에 사는고구려국인들과
지방에서 촌놈 등의 비하적 의미가 들러간 말갈로 불리던 부여인 옥저인 등을
고구려와 구분되는세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고구려린들은 송화강유역에서 고구려에 저항하던 부여인잔여세력을
부유말갈이라고 비하해서 부른 예가 있습니다.
마치 고구려가 백제를 백잔 잔국으로 비틀어 부른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고구려 휘하에 있는 예맥족들을 자신들과 구별하기위해
비하적 의미로 말갈로 비틀어 불렀다는거죠.

당시 고구려인들을 두고 맥인이란뜻으로 북방민족들이
맥구리 맥클리라는 정식명칭을 썼는데
고구려 국인들은 자신들의 명칭인 맥구리를
같은 맥인이지만 피정복된 부여계통 종족들을 말갈이라
비틀어 불렀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이건 자연스러운? 언어습관으로서 지금도 우리는
홍어다 감자다 별의별 나쁜 비하작 호칭을 쓰지 않습니까?
없습니다 13-12-31 21:18
   
사신횟수가 몇회 더 늘어난다고 달라지는건 없고, 일단 글쓴이의 주장은 발해어와 신라어가 양쪽언어를 모두 아는 사람이라도 구분 못할정도로 사실상 동일한 언어라는 주장인데 이게 말이 안된다는 거죠. 우리가 경상도 방언이나 전라도 방언을 한 문장만 들으면 즉시 파악가능 하다는걸 생각해 보면 됩니다.

게다가 중국측 기록에 발해는 고구려와 풍습이 같다는 기록은 많아도 신라와 같다는 기록은 전무하거든요. 결정적으로 남아있는 발해어 단어(몇개에 불과하지만)를 보면 신라어와 연계는 되지만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일본관청에서 발해인이라는걸 구별 못한다는 말은 곧 발해어에 대해 모른다는 뜻이죠. 신라인이 발해인 사칭했는데 구별 못했다는건 발해어를 몰랐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만약 발해인이 신라인을 사칭했는데 몰랐다면 그건 신라어를 몰랐다는 뜻으로 유추하는게 논리적이고..

결론적으로 윗 일화를 신라어와 발해어가 사실상 동일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건 충분한 근거가 없으니 안된다는 뜻..
     
정신차려 13-12-31 21:32
   
다시말하지만 님이나 어쭙잖은 지레짐작으로 소설쓰지마세요

공식 사신단 횟수만 34 회로 15 회나 더 늘어났으면
공식 사신단 접촉만 6,7년에 한번꼴이요

대제부와 같은 공식 대외 창구뿐만 아니라 왜왕과 왜조정에 버젓이 통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자기만ㅊ어쭙잖은 소설질이군요?

발해인인지 신라인인지 일본조정이 조사하면
응당 언어부터 살피는건 당연한거고

근데 당시 통역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일본관청이 발해어 신라어를 전혀 몰랐다?

역시 무식한게 용감하죠 ㅎㅎ
그니까 님말대로라면 일본통역들은 병 신 꿔다논 보릿자루였겠네요
 ㅇㅋ. ㅋㅋㅋ
          
없습니다 13-12-31 23:27
   
통역이 없어서 신라인에게 통역시킨게 당시 일본이네요. 님이야 말로 좀 알아보고 주장하기바랍니다. 발해어 자체도 의문의 언어지만 최소한 신라어와 구별하지 못할정도라는 님의 주장은 아무 근거 없어요.. 학자들 연구 결과와도 다르고..
               
없습니다 13-12-31 23:37
   
그리고 당시 일본에 발해어 통역관이 통역전문관청에 상주 했다는 증거도 좀 부탁..
내 기억으로는 발해 사신단에 통역자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됨.
     
굿잡스 13-12-31 21:35
   
사신횟수가 몇회 더 늘어난다고 달라지는건 없고>?? ㅋㅋ

달라지는 게 있든 없든 최소한 역사토론이라는게 서지학적 사료든 고고학에 근거해서

풀어나가야 된다는 점에서 님의 글은 거의 일방적 자기식 주장일 뿐이라는 소리를 스스로

자인,자폭하고 있음 ㅋ


중국측 기록에 발해는 고구려와 풍습이 같다는 기록은 많아도 신라와 같다는 기록은 전무하거든요>?? ㅋ


이것만 봐도 님이 최소한의 기록도 알지 못하고 그냥 소위 떠든다는 걸 금방알 수 있는.

아래 우리 고대어 관련 질문에서도 이에 대해 간략히 댓글을 달았지만 다시 달죠

<이런식의 어휘(단어) 어쩌고로 한국어와 일본어 정도의 차이로 신라말이 고구려,백제말

과 이질적이고 거의 통하지 않았다는 식의 비약적 혹은 오해할 수 있는 말은 어디서 근거

하는 거죠??ㅋ

현대 남북한도 단어적으로 보면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고 탈북자들이 현재

남한사람과 의사소통을 마냥 못한다는 식이나 혹은 일본어 정도로 통역자를 둬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죠(서울과 경상도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양서 신라전에 보면 신라인들의 복식이 고구려와 다르지 않고 양나라 사람에게 백제인이

신라인 말을 통역해주는 기록도 보이며 신라인들이 따로 고구려 백제 혹은 발해말을

못알아들어서 역관을 두었다는 기록은 찾을길이 없음. 그리고 이게 고구려 전문가들이고

학계의 정론입니다. 물론 차자표기 연구등(임병준 : 고구려말의 차자 표기 연구)에서도

확인되는 부분들이고. >
     
굿잡스 13-12-31 21:45
   
그리고 다들 알듯 나당연합에 의해 백제, 고구려가 무너지면서 이후 발해는

더욱 팽창한 신라에 대한 경계를 느출수 없는 입장이였음.(시간이 지나면

신라도 당나라 말 생까버리지만 ㅋ)

실제 열도야 다들 알듯 삼국시대 아스카 도시문명을 중심으로 백제의 외치 영토였고 이후 우

리나라할때 나라 헤이안시대로 본격적 도성이 나오는 등 백제 일부 도래인에 의해 점차 국가

적 정치체가 출현하는데 발해는 이런 왜국과의 동맹을 통해 신라를 견제할 목적등으로 서로

의 왕래가 잦아집니다.(물론 왜국은 신라와도 잦은 교류를 하지만. 실제 견당사 어쩌고

식으로 덮은 당 교류보다 남북국시대에도 신라 발해와의 교류가 훨 빈도도 높고 왜국은

이런 남북국 우리세력의 정치적 영향력 아래에 있든게 실상임)

하여튼 얼마전 연구 성과중 하나에도 속일본기에

언어를 배우기 위해 파견된 신라학어라는 신라인 유학생이 왜국 대극전에서 발해 사신의

통역을 맡아 참석한 기록들을 발표했죠.

이런 저런 맥락을 보면서 저 내용도 첨부해서 봐야 할 것임.
          
없습니다 13-12-31 23:58
   
내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해석될수 있는 저 일화만으로 학자들과 고대 사료를 싸그리 무시하고 신라어와 발해어가 구별 못할 정도로 같았다는 주장을 하는건 무리라는 이야기..

저 일화는 오히려 일본측에서 발해어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가정하에서 더 설득력이 있으니까.

하나의 증거만으로 확대해석에 확대해석을 거듭하는 환빠적인 방식은 지양해야됨.
               
정신차려 14-01-01 00:36
   
고대사료를 싸그리 무시하고----  님이나 그 잘난 고대사료 공개하세요
도대체 어디에 발해와 신라말이 달랐다는 숱한 고대사서들이 존재한다는거여 ㅎㅎ

일본에 통역관이 있었다는 기록은 속일본기 등에 얼마든지 찾을수 있으니까
직접 찾아보세요 설마 사료 찾는것도 할줄 모르는건 아니겠지?

아무런 사실적 사료 근거도 없이 자신의 얄팍한 지레짐작으로
일본은 발해어 몰랐다느니 통역도 없었다느니 계속 궤변질이네

댁이 말하는 신라학어 일화는 740년 일본 대극전의 일로서
발해와 일본간 최초로 사신이 왕래한것이 720 년대 후반이고.
그 계기가 일본측이 발해의 힘을 빌어 신라를 협공하고자한것이었고.

그리고 본문의 사건은 872 년의 일로서 신라학어 사건이 있은지
130년가량 지난후의 일이요
그러니까 일본과 발해가 최초로 사신왕래가 있은지 얼마안된 시점이라
발해통역이 준비가 안되 있어서 신라학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을수 있었겠지
근데 5 년단위로 계속 사신왕래가 열린지 130 년이 지난시점에도 최대우방 발해의 통역이
없었다는겨? 발해와 일본간 접촉이 생긴지 얼마안지난 시점의
일화를 가지고 한참후의 사건을 논하는 수준좀 보소 ㅎㅎ
 
그니까 시대구분같은 기초개념부터 갖추고 헛소리하세요

그리고 720 년대 후반 일본이 신라침공을 준비하면서 가장먼저한게
일본 아동들 몇명 데려다가 신라말부터 배우게 한거여
근데도 댁은 위에 872년대 일본인들이 신라어 할줄아는 사람이
없어서 신라인들에게 사기당했다니 ㅎㅎ

 역사에 뭣도 모르면서 어디서 얄팍하게 줏어들은걸로
아는척하는 댁수준이 그렇지뭐 ㅉㅉ
                    
없습니다 14-01-01 01:08
   
역시 자기가 말한것에 대한 증거도 못내놓고.. 할말없으니 욕만하네.
애당초 발해와 관련된 사료가 너무나도 적기 때문레 기존에 안알려진 증거 같은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발해어에 대해서는 거의 유일하게 알려진게 고구려어와 같다는거다. 지금 고구려어가 신라어와 전문가도 구별 못할 정도로 같다고 주장하는거냐?

한심한 넘.. 아는게 없는걸 욕으로 해결하려는 형편없는 짓은  어디서 배운건지..
                         
굿잡스 14-01-01 01:19
   
발해어에 대해서는 거의 유일하게 알려진게 고구려어와 같다는거다. 지금 고구려어가 신라어와 전문가도 구별 못할 정도로 같다고 주장하는거냐>??? ㅋㅋㅋ

참 물타기 쪄심 ㅋㅋ(억지도 이정도면 ..ㅋㅋ)

정신님 제목도 타이틀이 유사하다라는 말을 올렸는데(이말의 뜻 모름?)

지역적 방언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서로 소통가능하다는 소리를 자신의

억지 주장을 위해 전문가도 구별 못할 정도로 같다?? 이건 또 뭔 소리임?

참 말장난만 구구절절 ㅋㅋ(위 내용에도 어느것 하나 정확한 근거 한줄

제시한 것도 없고. 그만 말하세요 님 밑천 다 드러나서 별 볼것도 없는 ㅋ)

이만ㅋ
                         
정신차려 14-01-01 01:52
   
ㅎㅎㅎ 없습니다 // 대가리에 든거 없이 헛소리 늘어놓는 니 수준 꼬집은게 욕이냐?
그리고 니나 욕질하지말려무나.
내가쓴 댓글들 찬찬히 읽어봐 니놈 궤변질과는 질적으로 다르니까

괜히 아는체하다 쿠사리먹고 쫀심상하고 분해서 쓸데없이 광분질이나 하지말려무나.
다 쓰잘데없는거란다. 니 얄팍한 밑천가지고 궤변질하는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 한마디하지
않을수 없더구나 그럼 잘자ㅉㅉ
                         
없습니다 14-01-01 02:58
   
굿잡스/ 본문에 전문가가 달라붙어도 구별 못할정도라고 분명히 잘 써져있구만, 또 뭔 헛소리...
               
정신차려 14-01-01 00:42
   
아무런 증거도 없이  엉뚱한 사례 하나를 들고(시대구분도 못한)
( 그것도 나와 다른분이 먼저 언급하니까 그제서야 그거보고 지껄이는 수준)
역사지식도 조옷도 없으면서
지레짐작으로 소설쓰는 댁이야말로 쪽팔리지않소?

그런 사람이 환빠운운?ㅎㅎ
     
고양양이 14-06-27 14:19
   
지금의 경상도, 전라도 방언은 그시대의 방언이 아니죠. 지금은 TV때문에 그나마 소통이 되는 것이지 요즘 어린세대들한테 순수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말 들려주면 못알아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래인인 백제왕가 사람들과 백성들이 말이 통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필살의일격 14-01-01 18:29
   
민중사관 다들 좋아하시는데 민중사관으로 보면 발해는 인구의 대다수였던 말갈의 국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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