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베이징시
명나라수도 북경은 정사각형모양인데 지금 베이징시 성벽은 정사각형밑에 직사각형이 붙어 있는 구조이다. 물론 일부사람들은 청나라가 명나라수도를 점령하고 확장했다라고 주장할수 있다. 그런데 명나라고지도에는 황궁근처에 거대한 호수가 없는데?
현재 자금성은 거대한 수로로 빙둘러쳐져 있다. 그런데 명나라고지도에는 그런내용이 없다.
현재 보정시
우리나라 경복궁에도 작은 연못은 있다. 당연히 명나라 궁궐에도 작은 연못은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연화지라는 지명은 명나라의 수도즉 북경과 연관된 지명이다. 왜 보정시에 연화지라는 지명이 남아있나?
우리는 이때까지 청나라가 명나라궁궐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약간의 개증축을 했다라고 배웠다. 즉 지금 베이징시의 자금성은 순전히 명나라 영락제가 다 만든 것이다라고 ~~~
“전하는 말은 들으면 유적이 황극전(皇極殿)에 오르려 하자 갑자기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워서 오르지 못하였고, 패주(敗走)할 때는
궁전을 다 불태우고 무영전(武英殿)만이 남았다고 한다.” 하였다. 선생이 대답하기를, “천리(天理)란 참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유적이나 청인(淸人)이 똑같은 역적인데 무엇을 구분한 것입니까?” 하였다.
조선시대 기록에 분명히 이자성의 반군이 퇴각하면서 명나라궁궐을 다 불태우고 오직 바깥쪽에 있는 작은 전각인 무영전만 남았다고 한다. 즉 지금 베이징시의 궁궐은 명나라가 만든 것이 아니라 청나라가 만든 것이다.
고대에는 나라를 멸망시키면 그나라 궁궐을 불태워서 재기의 의지를 꺽으려고 했다. 그래서 명나라도 원나라궁궐을 부수었다.
섭정왕 도르곤이 팔기군을 이끌고 명나라 수도 북경에 입성했을때 그곳은 잿더미였다. 그는 수도를 다시 정해야 했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의 베이징인 것이다. 왜냐면 베이징은 고구려의 국내성이며 발해의 상경관할이며 요나라의 동경관할이며 금나라의 상경관할이며 원나라의 동경관할인데 청은 금나라를 계승하기 떄문에 금나라의 옛 수도에 다시 자신들의 수도를 건설한 것이다. 그래서 청나라지리지에도 자신들의 수도를 금나라의 옛수도라고 했다.
지금 중국백과사전에는 베이징시북쪽 발해진을 가리켜 발해의 옛 상경성이다라고 했다. 명나라지리지에는 발해의 옛수도에 금나라가 수도 상경을 정했다고 했는데 즉 모두 베이징시일대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하북보정시위치
대명일통지 순천부(명나라의 북경을 순천부라고 불렀다
대통하는 통혜하라고도 하는데 옥하에서 나와 요도성의 동남을 흘러서 고려장과 백하에 들어간다.(중략)
대청광여도 1700년대후반 제작된 청나라고지도
청나라고지도에 요도성즉 요성이 표기되어 있다. 즉 하북성 보정시가 바로 명나라때 북경이자 연경이었던 것이다
원나라의 고지도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700년대 대청광여도 오늘날의 중국지리와 거의 유사하다.
원나라때 순덕부는 지금 광평부로 알려진 영년광평고성일대였음을 알수 있다. 청나라고지도역시 광평을 두군데 표시해서 원나라때 광평이라 불린 곳을 따로 표기했다. 중산의 위치는 원나라나 청나라나 같다. 실제로 중산국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전국시대 연나라의 수도인 지금의 태원시에서 중산국은 바로 옆에 있던 나라로 고구려와도 붙어있었다. 나중에 모두 고구려에 복속된다.
霸州洪武初,以州治益津縣省入。拒馬河舊在北,後徙治南。又南有沙河。東有苑家口巡檢司。北距府二百十裏。領縣三:
文安州南少東。西有易水。東北有得勝、火燒等澱。
大城州東南。東北有黃汊河,源自交河,分流至縣境,入三角澱。
명사
패주는 남쪽에 사하가 있다.
고지도를 다 찾아봐도 지금 패주 남쪽에 사하가 없었다. 오히려 위에 내가 명패주라고 표기한 곳의 남쪽에 사하가 표기된 지도가 대부분이었다.
원나라고지도
패주의 북쪽강에 유도즉 당시의 연경이 있고 그곳은 두개의 산악지대사이에 끼인 곳이며 그 북쪽으로 거대한 산이 있고 장성이 있다.
1805년 청나라고지도
원과 청의 고지도를 비교해보면 명때의 유도즉 연경을 알수 있다. 현재의 하북성 보정시는 양옆으로 산악지형이 있다. 그리고 그 북쪽에는 거대한 산이 있고 마침 청나라에서 진장성끝이라고 기록한 곳이다. 원나라고지도에서 유도의 북쪽 큰산에 또다른 도읍(도읍도자에 신성이라고 파악됨 그 위의 한자는 흐려서 파악이 안됨)은 청나라고지도에서 역현으로 마침 옛연국수도 황금대라고 표기하고 있다. 즉 보정시와 역현이 바로 수도였던 것이다.
위의 원나라고지도를 보면 이해가 쉽다.
우리가 배우기로는 금나라의 중도를 원나라가 대도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원나라시대에 분명히 대도와 중도가 별개로 존재했던 것이다.
단군조선의 도읍지였던 하북성 보정시는 고구려가 전성기에 평양성으로 바꾸고 발해와 요 금대에도 수도였으며 원나라말에는 대도라고 불리웠던 것이다. 이후 명나라가 연경혹은 북경이라 불렀던 것이다.
建制沿革:保定在殷商时期为北燕之地,西周至战国为燕赵之地。今保定市区在战国时期始建城池。汉为阳城县(治今清苑县)、北平县(治今满城县)地。西晋为乐乡县、北平县地。北魏太和元年(477)置清苑县(治今保定)、扶舆县(治今徐水境)。东魏兴和二年(540)析北平县西境置永乐县。北齐清苑、扶舆废入乐乡县,北平县废入永乐县。隋开皇十八年(598)乐乡县改名清苑县。唐天宝元年(742)永乐县改名满城县。五代曾置泰州
보정은 한나라때 양성현이고 북평현의 땅이다. 서진떄 낙향현이라 하고 북평현이라 했다. 동위때 북평현서쪽을 잘라서 영락현으로 했다.
《수서(隋書)》 지리지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상곡군(上谷郡)은 관할하는 현이 6개인데, 수성현(遂成縣)과
영락현(
永樂縣) 등이다. ○ 후위에서는 남영주에 5군을 설치하였는데,
영락현은 낙랑군에 속하고 대방현은 영구군에 속하였다. 후제(後齊)에서는 이들을 모두 없앴다
하북성 보정시 홈페이지는 지금 보정시가 원래 북평즉 명나라의 북경이었으며 고대에는 낙랑군에 속한 곳이다라고 했다. 조선황실에서 명나라 북경성을 고구려 평양성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런 기록때문이었던 것이다.
지금 국사학자들이 수서만 읽어보아도 낙랑군과 대방군을 한반도에 넣을 수가 없다.
지금 영락현이 속한 낙랑군은 하북성 보정시이고 대방현이 속한 영구군은 지금 산둥성 임치일대로 알려져 있기 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