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역사 고서 속 만주족
[금사 - 금나라 시조 신라 황족 '김함보']
金史. 本紀 第一世紀
금사 본기 제1세기
金之先,出靺鞨氏。
김함보는 말갈 출신이다.
靺鞨本號勿吉。
말갈은 본래 물길이다. (물길족)
勿吉,古肅慎地也。
물길은 예전 숙신 땅에 있었다.
元魏時,勿吉有七部:曰粟末部、曰伯咄部、曰安車骨部、曰拂涅部、曰號室部、曰黑水部、曰白山部。
북위 때 말갈은 일곱으로 나뉘어져있었다: 속말부, 백돌?부, 불열부, 호실부, 흑수부, 백산부
隋稱靺鞨,而七部並同。
수나라 때 말갈이라 칭하고 일곱으로나누었다. (해석 불확실)
唐初,有黑水靺鞨、栗末靺鞨,其五部無聞。
당나라 초, 흑수말갈, 속말말갈이 있었고 나머지 다섯은 전해지지 않는다.
粟末靺鞨始附高麗,姓大氏。
속말말갈은 고(구)려에 속했으니 대씨였다.
李績破高麗,粟末靺鞨保東牟山。
이적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속말말갈이 동모산을 지켰다.
後為渤海,稱王,傳十餘世。
그 뒤에 발해라 불렸으며 왕이라칭하고 십여명의 왕이 있었다.
有文字、禮樂、官府、制度。有五京、十五府、六十二州。
문자가 있었고, 예악, 관부, 제도가있었다. 행정구역은 5경15부 62주로 나뉜다.
黑水靺鞨 居肅慎地,東瀕海,南接高麗,亦附於高麗。
흑수말갈은 숙신의 땅에 살았다. 동쪽으로는 바다에 닿았고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했으며 고구려에 속했다.
嘗以兵十五萬眾助高麗拒唐太宗,敗於安市。
15만명의 군사로 고구려는 당 태종을 막았고 당나라는 안시성에서 패배하였다(해석 불확실)
開元中,來朝,置黑水府,以部長為都督、刺史,置長史監之。
당 현종 연간에 조공하고 흑수부를설치하였으며 흑수부의 우두머리로 도독, 자사, 장사감을 두었다.
賜都督姓李氏,名獻誠,領黑水經略使。
도독에게 이씨성을 하사하고 名獻誠(해석 불가) 흑수경략사를 거느렸다.
其後渤海盛強,黑水役屬之,朝貢遂絕。
그 후에 발해가 강성할때 흑수말갈은발해에 붙어 조공을 했다.
五代時,契丹盡取渤海地,而黑水靺鞨附屬於契丹。
오대 시대에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키자흑수말갈은 거란에 복속되었다.
其在南者籍契丹,號熟女直;其在北者不在契丹籍,號生女直。(해석 불가)
生女直地有混同江、長白山,混同江亦號黑龍江,所謂「白山黑水」是也。
여진 땅에 살며 혼동강과 장백산이있었는데 혼동강은 흑룡강이라 불리며 이른바 백산흑수가 그것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김씨 시조의 휘는 함보이며 고(구)려출신이고 60살 정도살았다.
[금사]
우리의 조종은 고려에서 나왔다.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 집안이다.
[금사]
금의 시조는 함보이며, 본래 고려에서 나왔고, 그때 나이 60세였다
* [고려사]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도 금나라 시조가 고려사람 함보(금준)임을 밝히고 있다.
"승려 금준이 여진으로 도망하여 아지고촌에 살았는데, 여진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고을이라 불렀는데 금나라 시조 아골타(아구다)가 그 후손이다."
* 여진족은 자신들의 기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전설(삼조전설)을 남기고 있다.
“우리 금나라의 시조인 함보는 고려에서 왔다.시조의 형 아고내는 불교를 좋아했기 때문에 고려에 남았다. 아고내는 떠나가는 동생을 바라보며‘후세에 자손들이 유능하다면 반드시 서로 모일 것이다!’ 라고했다. 우리 시조께서는 완안부의 땅 복간수 강변에 터를 잡았다. 그후 아고내의 후예들이 갈소관에서 우리 태조(아골타)에게 스스로복속했다. 그리고 힘을 합쳐 거란을 공격했다. 또 양복간답자(梁福幹答刺)를 발해인들이 사는곳으로 보내 여진과 발해는 본래 한가족이니 다시 뭉치자 호소했다.”
* 이 전설은 금사 외에도 송나라 사람들의 기록인 송막기문이나 신록기에도 수록되어있다. 황금의 제국을 건국한 아골타는 피의 봉기 후1117년고려의 동참을 요구하며 보낸 문서에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적고 있다.
[고려사] 예종 10년
이 달에 생여진 완안부의 아골타가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김씨나라라는 명칭으로 금(金)이라 했다. 아골타는 김행의 후손이다.
여진 사신이 고려에 와서 ‘옛날 우리 태사(족장) 영가께서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우리 조종이 고려에서 나왔으니 자손에 이르러서도 의리상 귀부(복속)함이 마땅하다’고 했고 ‘지금태사 오아속 역시도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라 하였다.
[만주원류고]
함보가 신라종성인 김씨이므로국호를 '금'으로 했다.- 신라왕의 성을 따라 국호를 금(金)이라 했다
[만주원류고]
고려인 금준은 30세에 전국을 방랑하다가 성숙사에 들어가 스님이 된다. 그곳에서동주관원의 부인과 정을 통하다가 들켜 국경을 넘어 여진족이 사는 곳으로 피신했다. 금준은 의원으로 자처하며떠돌아 아지고촌에서 촌장의 딸 셋을 부인으로 삼았다. 금준은 아들을 데리고 만주땅으로 이주해 "너희들은 무술을 익혀 흩어진 여진족을 통합하여 거란을 치고 중원으로 들어가라"며 아들들에게 여진족의 통합을 역설했다. 후에 금준의 손자핵리발과 영가는 완안부를 평정했고 핵리발의 둘째 아들 아골타가 금을 건국했다.
* 발해는 멸망 후에도 200년간발해유민들에 의해서 후속국으로 이어져 왔는데 후발해국, 정안국이 발해를 계승하면서 금나라가 건국하는배경을 마련하게 된다.
[송막기문]
금나라가 건국되기 이전에 여진족이 부족의 형태일 때 그 추장은 신라인이었다.
[고려사]
평주의 승려 김행의 아들 김극수가 금나라의 조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