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제가 쓴 글의 답글 중에 하나사라님이 이런 말을 하셨더군요.
"그런 사고를 하는 에스프리즘은 일본인인 게 분명하군요"
라고 말입니다.
이 답글을 읽고 든 생각이 한국인답지 않고 일본인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입니다. 친일적인 사람뿐만이 아니라 친일적인 사람이 아닐지라도 사고하는 방식이나 사고의 전제같은 것이 굉장히 일본적인데 이것을 자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다 일본만화를 보고 자란 드래곤볼 세대부터 일어난 일입니다. 일본만화에서 나타난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큰 것이죠.
그래서 어떤 점이 한국적인 사고이고 어떤 점이 일본적인 사고인지 엄청나게 다양하지만 당장 기억나는 몇가지만 먼저 짚으면서 시작해봅니다.
1.선악과 정의에 대한 관념이 희미합니다.
선악과 정의에 대한 문제가 나오면 입장에 따라서 선도 되고 악도 된다는 식으로 정하는 것을 피합니다. 에스프리즘의 논리가 그것이죠. 한국의 영웅이 일본에선 테러리스트라고요. 반대로 일본의 영웅이 한국에선 철천지 원수라고 이것이 입장에 따라서 선과 악이 다른 것뿐이라고하며 선악을 규정하는 것을 굉장히 꺼립니다.그리고 이것을 굉장히 성숙하고 어른스러운 견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의 문제글에 대한 답글들을 읽어보아도 단순한 욕설, 일본의 악행에 대한 재론 정도에 그칠뿐 직접적으로 '당신의 상대적 도덕론은 틀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무엇입니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더군요. 그건 친일인사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도 암묵적으로 도덕 상대주의에 대해 긍정한다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어찌보면 굉장히 이중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내 정치에 대해서 누가 자기 의견을 말하면 당장에 "그럼 넌 좌파냐 우파냐?"라고 물을 사람들이 조금만 추상적으로 문제가 변해도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니 말입니다.
본래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서양과 같은 깊은 정신적 전통을 가진 나라들에서는 궁극적인 진리, 혹은 궁극적인 도덕을 찾던 전통이 있습니다.그 전통의 형태가 기독교, 불교, 유교, 과학 등으로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인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죠. 그 열정적인 행동은 서양 기독교,과학의 역사를 배우셨으니 다들 아실태고 우리나라도 성리학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열정적인 탐구의 증거로 여러가지 저작물들이 있죠. 서양의 경우는 당연히 아실테고 우리나라는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이 있고 조선시대 수많은 성리학관련 저작물들을 들 수 있습니다.이러한 것을 보면 학문적 성과는 둘째치고 궁극적인 진리 혹은 도덕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추구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도덕과 진리의 추구에 관한한 이런 세계적으로 내세울만한 저작물이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기껏해야 무사시의 오륜서라던가 야마모토 쓰네토모의 하가쿠레 정도인데 이건 궁극적인 무언가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처세론,경영전략 정도에 불과합니다.
일본은 궁극적 진리, 도덕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거나 혹은 좋게 말해도 별로 열정적이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일본은 쭈욱 선악,시시비비를 구분하는 것에 대해서 불투명한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사무라이 문화아래에서 말한마디에 목숨이 달아날수 있었던 것이 여기에 더해지면서 이런 태도를 더욱 강화시켰을뿐 그것이 이유라고 보진 않습니다. 중세뿐만 아니라 고대에서부터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쭈욱 일본은 근본적으로 궁극적인것 절대적인 어떤 것을 추구하는데 관심이 없었고 그래서 분명하게 시비를 가리는데 불투명했습니다.
구체적인 경우마다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고 선악을 판가름하는 것은 무척 피곤하고 힘든 일이며 어떨때는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섣불리 판단을 하다가 잘못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것도 경계해야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비를 가리고 선악을 규정하는데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문명인이라면 응당 취해야하는 태도입니다.
앞으로 시비를 가리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해보지도 않고서 무슨 말만하면 '상대주의'를 들먹이면서 초점을 흐리는 자들은 왜색물이 든것임을 알고 경계해야할 것입니다.
그리고 선악을 구분하고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이 가져야할 태도라는 것을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악에 대한 상대주의,혼네와 다테마에,겉으로의 화목추구 이런 것들이 다 같은 맥락의 문화입니다)
2.가족과 친구를 지키자
선악의 논리를 무시하고 들어서는 것이 "나의 가족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운다"입니다. 일본 만화에서 항상 등장하는 논리입니다. '내가 사는 지구를 파괴하는 것을 막아야한다', '내 친구를 괴롭히지마', '내 가족을 지키기위해서 싸운다' 이런 것들입니다. 친구,가족,지구 이런 것이 나오니까 무척 친근합니다만 엄밀하게 말해서 전부다 개인적인 원한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정의를 수호하기위해서 싸우는 일본만화는 제 기억에는 없습니다.
이 점이 미국만화와 비교해보면 확실한 점입니다. 특히 배트맨이 그렇군요. 배트맨은 고담시의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 범죄인과 싸웁니다. 개인적인 원한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트랜스포머에서는 외계인임에도 불구하고 타행성의 침략은 정의에 어긋나기때문에 지구인을 돕습니다. 미국만해도 이처럼 정의를 추구해야한다는 관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상업적인 히어로 만화,헐리우드 영화에서조차도 이런 모습들이 드러납니다.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수는 있지만 결코 대의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을 대의처럼 포장한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3.힘의 논리. 쎈놈이 장땡이다
가족과 친구를 지키자는게 옹색해보였는지 이제는 대놓고 힘쎈놈이 장댕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것이야말로 성숙한 어른의 태도라고 포장하고 있습니다. 일드 여왕의 교실에서 드러나는 것이 그것이고 하얀거탑에서는 의료비리를 폭로하는 척하면서 권력욕에 찌든 주인공을 아름답게 포장합니다.
한 작품씩만 본다면 냉정한 현실을 반영해주는 좋은 작품이고 감명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작품이 한두개가 아닙니다.거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고 봐야 옳을 겁니다. 그렇다면 힘의 논리를 아름답게 포장하는 조류가 있음을 알 수 있고 그것에 대해서 비판할 수도 있습니다.
이 힘의 논리는 지만원같은 친일인사가 자주 이용해먹는 논리입니다.조선이 먹힐만해서 먹혔다고 하는게 지만원이니까요. 힘의 논리가 틀린건 아니죠. 성인이라면 누구나 현실의 혹독함 냉혹함을 압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한 힘인가가 중요한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힘의 논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자칫 힘의 논리만을 남겨두고 다른 논의를 제외시키는 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힘의 논리로 모든 논의를 배제시키는 것은 왜색에 물든자들임을 알아야합니다.
그 밖에 많은 점들이 일본식 사고방식이겠지만 일단 생각나는 것은 이것밖에 없군요.
상대주의,가족과 친구를 지키자,힘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이 모두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모든 것은 아니며 이것을 대의로써 내세우는 것은 한국인의 방식 또한 아니고 세계적으로도 보편적인 방식이 아닙니다.
궁극적인 진리, 절대적인 도덕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위해서 끊임없이 몸부림치고 추구하는 것이야 말로 세계 보편적이고 한국인다운 태도입니다.
일본만화를 보고자란 우리 젊은 세대가 제 글을 읽고 '혹시 내가 일본문화에 물든 것은 아닐까' 되돌아 보셨으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