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점심식사 자리에서
안중근 기념비 설치에 협조해달라고 요구한 데 대해, 일본 언론이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7일의 만찬에 이어, 28일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주최하는 점심식사 자리에 초대됐다. 이 자리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부인도 동석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기념비를 암살현장인 중국 하얼빈 역에 설치하는 데 협력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시진핑 주석은 "관계기관에 검토하도록 지시하겠다"고 응했다.
일본언론은 이 소식에 큰 관심을 드러냈다. 28~29일에 걸쳐 각 주요 일본언론이 일제히 이 소식을 전했다.
한국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한국의 식민지화에 앞장 선 악독한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를 지낸 인물로서, 그리고 근대화를 이끈 인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박대통령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인물의 기념비를 세우려한다는 점 자체가 일본, 일본인에게는 자신들을 향한 견제와 적대로 느껴질 수 있다.
각 일본 언론은 "역사인식 문제를 둘러싸고 한중 양국이 일본과 대립관계에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재차 일본의 식민지 역사에 대한 강한 자세를 나타냈다", "역사인식 문제로 일본을 견제했다"고 보도했다.
언론사 성향에 따라 약간 논조의 차이도 있었다.
박 대통령이 안중근 기념비 설치 협력을 요청한 데 대해, 일본의 진보 신문인 아사히 신문은 "
아베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정해진 것이 없다'"고 언급한 데 대한 반박이며, 아베 정권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았다. 한편, 보수 신문 산케이 신문은 "대일강경자세를 통해 한중 양국이 결속을 강화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 없다"며 정략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일본 언론은 이번 안중근 의사 기념비 건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 자체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로 여겨졌던, 그리고 실제로 중국보다 원활한 관계였던 한국이 라이벌 중국과 점점 관계를 가까이하려하자 경계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동북아시아에서 일본의 입지가 열악해지는 데 대한 우려도 있다. 실제 한일, 중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아베 내각 출범 6개월이 지나서도 한일, 중일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일본 정상보다 중국 정상을 먼저 만났다. 일본 정부가 한·중과의 관계 회복을 도모하는 가운데, 한중 양국이 대일대립자세를 통해 관계강화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언론은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체제, 같은 사고방식의 국가간에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며 한미일 동맹 강화를 외치는 일본 아베 정권으로서도 이 같은 상황은 탐탁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지고, 중국은 뜨는 이 상황에서 한국마저 중국을 더욱 중요시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착잡한 현실이다.
일본 언론은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이 관계 강화에 나서는 이유에 대해 잇따라 분석을 시도했다. 주로 북핵 문제 해결 등 안보상의 필요성과 경제적 필요성 등이 언급됐다.
왜 한국이 중국을 가까이 하는지, 일본보다 더 호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영토 문제, 역사 문제로 갈등이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주된 요인으로 꼽혔으나, 역사적인 배경을 언급하며 한중 관계를 바라보는 전문가도 일부 있었다. 한국이 오랜 시간 중국에 조공을 해온 역사가 있어, 오히려 중국의 부상에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일본의 삐딱한 시선이 그대로 담겨있다.
한편, 일본의 '역사인식'이 문제라는 분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궁극적으로, 일본이 현상황에서 바라는 것은 현재의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것이다. 안중근 기념비 설치 등 대일 강경자세로 한국과 중국이 뭉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과 중국 또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한중일 정상회담의 연내개최를 위해 노력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에 대해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28일 기자회견에서 "중국과는 전략적 호혜관계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한국이 극히 중요한 이웃국가라는 인식은 변함없다"며 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일본에서 역사인식 문제에 대한 문제적 언동이 또다시 나온다면 한일관계는 또다시 악화할 수 있어, 아직까지 관계회복의 길은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