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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29 18:04
[기타] 의자왕, 정말 무능한 왕이였나 上
 글쓴이 : 기타사운드
조회 : 5,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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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손들에게 이렇게 놀림감이 되곤 했던 의자왕, 그의 재평가가 시급하다)

1. 의자왕은 정말 방어할 생각이 없었나?


 660년 3월, 당나라 고종이 소정방을 총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백제 정벌 명령을 내림. 총 병력 13만. 하지만 고구려를 조지고 갈수도 없고

한번 크게 데인적이 있는 당나라 입장에선 고구려를 까부수고 백제를 갈수가 없었다. 결국 수군을 중심으로 대군을 상륙하는 작전을

펼치게 됨.


5월 26일, 신라 무열왕이 경주를 떠나 출병했다. 신라는 당나라가 백제정벌 주력군으로 공격하는 대신에 보급과 후방교란을 담당함.

흥수와 성충등이 기벌포 막고 동쪽은 산성에서 버티자요 라고 진언함. 뭐 이거에 대한건 여러가지 가설이 있음. 


1. 의자왕이 흥수-성충 말 씹어버리고 옥에 가둔 뒤 방관했다(국사책에 나오는 우리가 가장 많이 아는 썰

2. 막았지만 병력의 열세가 커서 역부족 이였다

3. 기벌포란곳이 1곳이 아니였다

4. 기벌포 열어주는척 해서 매복을 썻지만 역관광 당했다

5. 의자왕이 사비성 방어에만 목 메느라 기벌포에 병력을 적게 배치했다.


일단 1번은 논란이 많다. 전에 나온 이야기처럼 왕자들에게 권력이행 하려고 했기에 중신말을 무시하지 않았냐 라는 해석도 있다.

사극 많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사병이란 항상 존재했고 그로인해 사병제가 폐지되고 왕의 명이 강해진 조선시대에 와서

진정한 중앙집권 시대다 라고 말하는 사학자들도 많다.


2번 논란으로 가보자. 김부식과 당나라 역사서에서 말한 당시 백제병력이 2~3만이라는건 쌩구라다. 지방군까지 다 합치면 

10여만이 넘는 군대였고 수도 사비성의 인구만 5만호가 넘었고 멸망직전의 백제 인구는 [구당서]에서는 76만호라고 말한다. 

백제역사 연구가들은 말한다. 그래서 연구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중앙군은 당시 4~6만인데 최소치로 쳐도 

계백에게 떼어준 5천 뻬면 3만5천이 넘는다.(단 중앙군만)


당나라 군대 라는 말때문에 비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당나라는 중국 역사상 군대가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다.(최고는 아니지만 그 중 하나)

토번도 까부수고 북쪽 초원의 말타는 유목민 성님들도 밞은데다가 베트남까시 씹어먹던 그 국가에서 원정군을 각지에서 착출했다.

이건 뭐 시작부터 게임이 안돼는거긴 했다.(그런거 보면 대당 연합군 구축한 고구려가 참 대단하긴 하다)


3번으로 가보자. 당시 기벌포는 금강 하류라고 기록된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야기가 있지만. 금강 하류가 아닌 상류도 

기벌포라고 불렸다는  문헌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은 4번과 같은 맥락이지만 요새 기벌포를 장악했지만 당나라 대군이 

상류쪽에 별동대를 보내 교란해서 쌈싸먹은 뒤 기벌포해전에서 압승을 거두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5번은 솔까 말이 안됀다. 암만 인간적으로 왕이 병ㅅ오브병ㅅ이래도 휴전선이 뚫렸으니 청와대 주위에 병력을 배치하겠나? 만약 정말

주색에 빠진 왕이라면 자기가 떡치고 술퍼마실때 근처에서 병장기 소리 들리고 사람 죽어가는 소리 들리는 와중에 하고 싶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돼긴 한다.


계백장군초상화.gif
(우리가 흔히 계백으로 알고있는 인물)

2. 계백에게 고작 5천만 준것인가?


 영화 황산벌에서도 그러듯이 계백은 우리에게 5천 결사대를 이끈 백제의 마지막 장수로 나온다. 일단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이 있다.


계백은 이 장수의 이름이 아니다 칭호다.


계백은 당시 땅 몇만호 이상이 되면 받을수 있는 백제의 칭호 중 하나였다. 거기다 계백이란 이 인물이 달솔이라는 

직위를 가졌기에 지휘 가능한 병력은 2만 이였는데 왜 5천을 준 것일까? 그렇다면 이 계백 직위의 장수 이름은 무엇인가?


우린 이 사실을 지하에 있는 김부식찡에게 물어봐야 한다. 나라가 망하는 여러가지 원인 중 가장 하나는 지도자의 아둔함이다.

백제의 멸망에 대해 가장 폄하가 가능한 점은 왕을 멍청한 인물로 설정하고 신하들을 충신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럼 모두가


"아 신하 짱인데 왕이 ㅄ 이였네 쯧쯧" 이라고 납득이 가능하다. (사실 그래서 피해본 인물들이 동서양 막론하고 많지)


그럼 왜 계백이라고 불렀나.....뭐 자료가 남아 있어야 알거 아닌가. 백제 멸망후 사비성은 불바다가 되었고 멸망한 나라에서

목숨 챙기기 바쁘지 고서를 유지하는 국가가 몇이나 되겠나(대부분 우리 삼국시대 역사 근거는 그래서 중국의 문서에 많이 의존하는 안타까운 현실)


또 하나, 계백이가 뚫리면 사비성이 그냥 떨어지고 백제가 멸망 되는 것이였나? 그러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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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백제군은 이 전쟁에서 승리할 자신감이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당시 의자왕은 2가지 전략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1. 기벌포와 탄현을 막는다. 소수의 병력으로 수비가 용이하니 장기전으로 끌고가서 아작을 내자. (흥수,성충등의 주장)


2. 기벌포를 일단 내준다. 그리고 지방군을 우회시켜서 보급로를 막는다. 들어온 적은 철저한 보급로를 끊어서 게릴라전을 한 이후 한방에 몰살 시킨다



1번은 안전빵이고 2번은 확실한 승리로 갈수있고 위험이 따랐지만 시간단축이 가능했다. 거기다가 우리가 화랑도니 뭐니 하면서

신라군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백제 정예병들에게 신라는 나약한 존재였다. 예로 백제 의직장군이 3천 정예병으로 신라를

공격할때 신라 1만 정예병들이 몰려왔지만 끔살당한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1번으로 갔다가 추수기가 지나서 당에서 중공군 몰려오듯 쌀이 밀려오면 그때가서는 병력 차출로 인해

농사일이 어려워진 백제가 갈수록 불리해진다. (6가스 저그 vs 2가스 프토는?)


백제의 당시 공예술과 무기제작은 동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국가였고 상대적으로 철이나 광물들이 신라보다 우수했다. 

5천의 군사로 김유신을 막고, 그 사이 밀려드는 당나라 부대를 깊숙히 유인한 후 사비성을 내주어 끔살시키는 방법.

성공만 한다면 당분간 당나라는 백제를 건드리지도 못할 것이고 이 기세를 몰아 신라의 금성을 함락시켜 백제가 한반도 남부의

패자로 갈수 있었다.


위험부담이 따랐지만 여러가지 장점과 1번 전쟁승리로 방어가 아닌 적들이 다시는 넘보지 못하게 완벽한 승리 이후 신라 접수,

강대국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었던 백제의 야심과 자신감이 보이는 전술 채택으로 볼 수도 있다.


허나 제갈양이 자오곡으로 안가고 굳이 기산을 고집했던것 처럼, 어쩌면 국가 운명을건 일전에서 모험보다는 안전성이 우선이기도

한듯 하다; 그럼 다시 당시로 넘어가서 아무리 무기가 신라군보다 우수하고 정예병이라 하지만 10배가 많은 신라군을 어찌

막아낼 생각으로 저 자신감 있는 5천 정예병 출격을 명했나?


황산벌전투.jpg

답은 간단하다. 김유신 부대는 전투부대가 아닌 보급병들이였다. 맨날 훈련받는 애들이 아닌 농민-노비들을 끌어모아 세를 

부풀린 보급병 말이다. 실제로 고당서 기록에서는 5만 병력 중 싸울수있는 병력은 채 5천도 되지 않아 보였다 라는 말이 있었다. 

결과는 뭐 우리가 알다싶이 관창버프를 받아 신라군이 예상외로 분전했고 이에 놀란 정예병들이 뒷걸음질 치다가 패전했다.


그러다 지면 어쩔려고 저런 방안을 채택했냐. 역시 흥수 성충 무시하더니 의자왕 병맛이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지만 

당시 백제군대의 자신감과 사기가 얼마나 높았으면 18만의 대군을 내부로 깊이 오게만든 뒤 끔살시키려 했을까.

이는 그만큼 당시 백제군이 강했다는 증거일수 있다.



출처: http://fmkorea.net/index.php?mid=knowledge&search_target=member_srl&search_keyword=6200511&page=8&document_srl=35724707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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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itary韓國 13-06-29 18:19
   
kbs ㅄ들임 왜곡쩔음
치우비 13-06-29 18:45
   
이 캐븅신들 역사왜곡이나 하고 ㅉㅉㅉ
깡통의전설 13-07-02 01:06
   
6.25때도 썼었지. 임진왜란때도 그전법 썼었고. 우리군이 얼마나 강했으면 여유롭게 3일만에 서울 내주고 임진왜란때는 20일만에 내줬지. 얼마나 강했으면 그랬겠어? 반어법인거 알지? 우리나라 성채의 특성상 무조건 성에서 방어하면서 싸우는게 닥치고 유리하다. 고구려도 농성전하다 대충 털고나면 기병으로 패전병들 휩쓸고 다녔고 기본적으로 성을 베이스로 싸우는게 우리나라가 적은수로 대군을 막은 비법인데 도성을 오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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