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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6 18:35
[기타] 중국 지방에 내려오는 고구려 전설 몽롱탑
 글쓴이 : 치우비
조회 : 3,828  

1. 중국 중동부 양자강 지방에 당태종이 연개소문을 피해 숨은 우물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옴.

2. 당태종은 목숨을 건져 보답의 의미로 우물에 탑을 세웠는데 이름은 '몽롱하게 (당태종이) 보이지 않는다' 라고 하여 몽롱탑

3. 탑은 중국 정부 지정 문화재이고, 인근 주민들은 이 이야기를 모두 믿고 있고 연개소문이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알고 있음.

4. 산동 지역 및 강소성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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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강은 강소성 중남부를 관통함. 사료가 없어 전설로 남아있을 뿐이지만, 

과연 연개소문이 저곳까지 당태종을 쫒아 내려갔었을까요?.... 



 위 전설과 유적은 사학계가 위서취급하는 [환단고기-고구려 본기]기록과 일치한다.

 

"개화 4년 당나라 이세민이 군신에게 말하기를, "요동은 본래 제하의 땅이다. 수나라가 4번 출사하였어도 얻은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나는 이제 출병하여 제하를 위해 자제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고 하다. 이세민은 친히 활과 화살을 차고 이세적.정명진 등 수십만 명을 이끌고 요택에 이르다 진흙길 200여리 사람과 말이 다닐 수 없었다. 도위 마문거가 말에 채찍질하며 달려가 공격했지만 이미 싸움을 벌였던 행군총관 장군차는 대패했다. 이도종은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였고 세민은 몸소 수백기를 이끌고 이세적과 합쳐 백암성의 서남쪽을 공격했다. 성주인 손대음은 속여서 항복을 청하게 하고 실은 틈을 엿보아 반격하고자 하였다. 세민은 안시성에 이르러 먼저 당산으로부터 병사들을 진격시켜 이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북부의 욕살 고연수와 남부의 욕살 고혜진은 관병 및 말갈병 15만 이끌고 똑바로 전진하여 안시에 연결되는 진지를 쌓고, 높은 산의 험악한 곳에 의거하여 진지를 쌓고 성의 곡식을 식량으로 삼고, 병력을 종휭무진으로 풀어 놓아 당나라 군마를 약탈했다. 이에 당나라군은 감히 접근하지도 못하고 돌아 가려고 해도 진흙길이 가로 막았으니 가만히 앉아서 패하는 길밖에 없었다. 
 
고연수 등은 말갈과 병력을 합쳐 진지를 펴고 지구전을 벌이다가 어느날 저녁 표변하여 작전을 개시하여 급히 습격하여 번개처럼 치니, 이세민은 거의 포위될 뻔하게 되자 비로소 두려운 빛을 보였다. 이세민은 또 다시 사신을 파견하여 재물과 보화를 보내면서 연수에게 말하기를, "나는 귀국의 힘있는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였으므로 그 죄를 물으러 온 것이다. 그대의 나라에 들어와서 싸움을 하게 됨에 말 먹이와 식량을 공급할 수가 없어서 얼마간 노략질을 몇 곳에서 했었을 뿐이니, 그대의 나라가 예를 갖추어 수교를 기다리면 반드시 회복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고연수는 말했다. "좋다, 그대의 군사가 30리를 후퇴하면 곧 나는 우리 황제를 알현코자 한다. 그렇지만 막리지는 국가의 기둥이다. 군법을 스스로 갖고 있으니 많은 말도 팔요가 없다. 그대의 임금 이세민은 아비를 폐하고 형을 죽이고 동생의 아내를 음란하게도 받아 들였으니, 이것이야말로 죄를 물을 만하다. 이 뜻을 이세민에게 전하여라." 이에 사방으로 감시관을 보내 더욱 더 방비를 굳혔다. 산에 의지하여 전지를 굳히고 허를 틈타 기습하니, 이세민은 100가지 계략을 다 써도 어쩔수가 없어 요동출병의 불리를 통한히 여길 뿐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막리지는 수백기를 이끌고 난파를 순시하며 상세하게 정세를 듣더니 사람을 보내 총공격하여 사방을 칠 것을 명하였다. 고연수 등도 말갈병과 합쳐 협공하고 양만춘은 성위에 올라가 싸움을 격려하니 사기는 더욱 떨쳐저서 일당백의 용맹이 없는 자가 없었다. 이세민은 이기지 못함을 분하게 여겨서 감연히 나서서 싸우려 했다. 양만춘은 이에 크게 소리지르며 화살을 당겨 반공에 날렸다. 이세민은 진에서 나섰다가 왼쪽 눈에 화살을 맞아 떨어져 버렸다.세민은 어쩔 줄을 모르고 군사들 틈에 끼어서 도망쳤다. 세적과 도종에게 명하여 보볍 기병 수만을 이끌고 후군이 되도록 하였으나 요택의 진흙길은 군마의 행군을 어렵게 했다. 무기에게 명하여 모든 병사들에게 풀을 베게하여 길에 깔고 메우게 하고, 물이 깊은 곳은 수레로 다리를 만들게 하니 이세민도 몸소 장작을 말고삐에 연결하여 매고 역사를 도왔다. 

겨울 10월 포오거에 이르러 말을 쉬게 하고 길이 메워지기를 기다렸다가 모든 군사가 발착수를 건너는데 심한 바람과 눈이 몰아쳐서 사졸들을 적시니 죽는 자가 많이 많이 나왔다. 이에 불을 길에 지피고 기다렸다. 때에 막리지 연개소문은 승승장구 이들을 심히 급하게 적들을 추격했다. 추격군은 적봉에서부터 하간현으로 이르고, 양만춘은 곧 바로 신성으로 나아가니, 군세는 크게 떨쳐졌다. 당나라 군사는 갑옷과 병기를 마구 버리면서 도망가, 드디어 역수를 건넜다. 때의 막리지는 고연수에게 명하여 용도성을 개축케 하니 지금의 고려진이다. 또 제군을 나누어서 1군을 요동성을 지키게 하니 지금의 창려이다. 1군은 이세민의 뒤를 바짝 쫓게 하고 또 1군은 상곡을 지키게 하니 지금의 대동부이다.
 
이세민은 궁지에 몰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마침내 사람을 보내 항복을 구걸케 되니 막리지는 정국.양만춘 등의 수만 기를 이끌고 성대하게 의용을 갖추어 진열한 뒤 선도하게 하여 장안에 입성하여 이세민과 약속하였으니 산서성.하북성.산동성.강좌가 모조리 고구려에 속하게 되었다. "



연개소문 "스스로 물 가운데 살아서 능히 잠행할 수 있고 온 종일 더욱 건장하게 피로할 줄 모른다고 말하였다. 무리들 모두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가로대, 창해(황해)의 용신이 다시 몸을 나타내심이로다라고 했다."[환단고기-고구려 본기]강화도 출신이라는 사람들도  연개소문이 강화도 출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연개소문은 강화도 강화읍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려산 부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갓쉬흔살에 낳았다고 하여 이름을 갓쉬흔이라 하고 갓쉬흔을 한자로 적다보니 개소문이 되었다.강화도 출신의 고구려 조의선인 연개소문은 어떤 인물인가?

 

[한단고기]는 연개소문에 대해 아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조대기'에 가로되, "연개소문은 일명 개금이라고도 한다 성은 연씨. 그의 선조는 봉성 사람으로 아버지는 태조라하고, 할아버지는 자유라하고, 증조부는 광이라 했으니, 나란히 막리지가 되었다. 홍무 14년 5월 10일 태어 났다. 나이 9살에 조의선인에 뽑혔는데 의표웅위하고 의기호일하여 졸병들과 함께 장작개비를 나란히 베고 잠자며, 손수 표주박으로 물을 떠 마시며, 무리속에서 스스로의 힘을 다하였으니, 혼란한 속에서도 작은 것을 다 구별해 내고, 상을 베풀 때는 반드시 나누어 주고, 정성과 믿음으로 두루 보호하며, 마음을 미루어 뱃속에 참아두는 아량이 있고, 땅을 위로 삼고, 하늘을 경으로 삼는 재량을 갖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감동하여 복종해 한 사람도 딴 마음을 갖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법을 쓰는데 있어서는 엄명으로 귀천이 없이 똑같았으니 만약에 법을 어기는 자 있으면 하나같이 용서함이 없었다. 큰 난국을 만난다 해도 조금도 마음에 동요가 없었으니 당나라 사신과 말을 나눔에 있어서도 역시 뜻을 굽히는 일이 없었고, 항상 자기 겨레를 해치는 자를 소인이라 하고, 능히 당나라 사람에게 적대하는 자를 영웅이라 하였다. 기쁘고 좋을 땐 낮고 천한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있으나, 노하면 권세있는 자나 귀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겁냈다. 참말로 일세의 쾌걸인저!"라고 했다. 스스로 "물 가운데 살아서 능히 잠행할 수 있고 온 종일 더욱 건장하게 피로할 줄 모른다"고 말하였다. 무리들 모두 놀라 땅에 엎드려 절하며 가로대 "창해(황해)의 용신이 다시 몸을 나타내심이로다"라고 했다. 
 
좌장군 고성(고건무)은 은밀하게 수나라와 친할 마음이 있어 은밀하게 막리지(연개소문)의 북벌계획을 막았다. 이에 여러 차례 청해서 출사하여 공격함으로써 공을 세웠다. 그러나 홀로 막리지는 대중의 의견을 물리치고 남수북벌의 정책에 집착하여 여러차례 이해관계를 들어 말하므로 이 말에 따르게 되었다. 고성(고건무)이 즉위하게 되자, 전 황제(영양태왕)의 모든 정책은 폐기되었다. 사신을 당나라에 파견하여 노자의 상을 구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도덕경을 청강시켰다.

또 무리 수십만을 동원하여 장성을 쌓게 하였으니 부여현으로부터 남해부에 이르는 1,000여리이다. 때에 서부대인 연개소문은 청하여 도교를 강의하는 것과 장성쌓는 일을 중지시키고자 했으나 제는 기꺼워하지 않고 소문의 병사를 빼앗고는 장성을 쌓는 일의 감독을 시키더니, 은밀하게 뭇 대인과 더불어 의논하여 연개소문을 주살코자 하였다. 소문은 앞질러 이 말을 들을 수 있어 긴 탄식하며 말하기를, "어찌 이 몸이 죽고나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랴? 일은 급하다. 때를 잃지 말지라." 하고 모든 부장을 모아 마치 열병하는 것처럼 하고는 성대하게 술상을 벌려 뭇 대신들을 초청하여 함께 이를 시찰하자고 하였다. 모두가 참석하자 소문이 소리를 크게 내며 격려하기를, "대문에 호랑이 여우가 다가오는데 백성구할 생각은 않고 되려 나를 죽이려 한다. 빨리 이를 제거하라"하니 제(고건무=영류태왕)는 변고를 듣고 평복으로 몰래 도망쳐 송양으로 가서 조서를 내려 나라의 대신을 모으려 했으나 한 사람도 오는 사람 없고 보니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저절로 숨이 떨어져 붕어하였다. 
 
소문은 마침내 고성제(영류태왕)를 내어 쫓고 무리와 더불어 함께 고장을 맞아들여 이를 보장제로 삼다. 소문 드디어 뜻을 얻어 만법을 행하니, 대중을 위한 길은 정기.자유.개물.평등으로 하고, 삼홀을 전으로 하고, 조의에 율이 있게 하고, 힘을 국방에 쏟아 당나라에 대비함이 매우 완전하였다. 먼저 백제의 상좌평과 함께 의를 세웠다. 또 신라의 사신 김춘추에게 청하여 자기의 집에 머무리도록 하며 말하기를, "당나라 사람들은 패역하기를 짐승에 가깝습니다. 청컨대 우리나 그대들은 반드시 사사로운 원수를 잊고 지금부터 삼국은 백성들의 뜻을 모으고 힘을 합쳐 곧바로 당나라 서울 장안을 쳐 들어가 도륙한다면 당나라 괴수를 사로 잡을 수 있을 것이오! 전승의 뒤에 옛 영토에 따라서 연정을 실시하고 인의로써 함께 다스려 약속하여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영구준수의 계획으로 함이 어떻겠소?"라고 하며 이를 재삼 권하였으나, 김춘추는 종래 듣지 않았으니 애처롭고 가석할 일이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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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aru77777 13-06-16 21:34
   
저것 뿐만 아니라 경극의 일부중 이세민과 연개소문의 추격 내용을 다룬 내용이 이어져 내려오며, 각종 무협지나 민간 소설에서도 연개소문이 여기까지 내려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seharu77777 13-06-17 09:35
   
더불어 산동성 즉묵시 마산에서는 정관 17년(643년) 연개소문과 당태종의 마산대전이 있었던 사실이
청대의 초영제본 마산지와 즉묵향토지, 운대산지에 실려 있으며, 이때 당나라 장수 김걸이 사망하고 당태종이 또 패하여 도망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한 이전투에서 당태종의 형이 사망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전쟁과 관련된 당나라 유적과 고구려 군대의 주둔 성지와 무덤이 발견되고 있다.
(대왕묘, 일검천, 락가하, 쇄갑하, 장군동, 냉반대, 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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