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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14 20:36
[기타] 먀오족과 고구려는 같은 민족
 글쓴이 : 치우비
조회 : 7,086  

"한국민속과 중국 서남민족의 민속비교"  (김선풍,김인회.타오리판/ 도서출판 박이정) 을 보면

 

먀오족을 민속학과 여러 문헌을 근거로 치우천황과 전욱, 구려의 후손이며 동이족의 후손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 경에는 삼묘라 불리고 기원전 1000년 경에는 남만이라 불렀습니다. 고대 한민족도 동이족으로 먀오족과 같은

 

족속으로 보고 있습니다.(회이, 서이, 숙신도 모두 동이족)

 

결론적으로 말하면 먀오족은 장강과 황화강 유역에 살았는데 치우천황이 패하면서 동이족의 북쪽과 남쪽으로 밀렸났다는

 

이야기입니다. 밀려난 동이족의 후손들이 고구려를 이루고 남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고구려의 기원설은 예맥기원설, 탁리구기원설, 부여기원설, 염제기원설, 고이기원설, 상나라기원설이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그 뿌리는 동이인데...

 

중국내에서 검사한 하플로에서는 02b가 많지 않다고 하는데, 이 먀오족의 주요 하플로는 무엇일지 궁금해 지는군요?

 

학자들의 판단도 먀오족이 고구려 유민이엇다

 

                       먀오족은 고구려의 선조다는 식으로 앞 뒤를 가설을 내 놓고 있습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는데

 

                     

 먀오족이 치우천황 -> 전욱 -> 부여 - > 고구려 -> 벡제 식으로 흘러간다면 한민족의 주요 하플로그룹이 되어야

 

 맞다는 이야기인데...

 

 김해 금관가야 대성동 고분도 처음엔 흉노계통과 똑같다 하더이만 부여기마족과 더 흡사하다는 이야기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초기 가야국의 외부집단이 먀오족일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네요.

 

  고구려하면 북방민족, 몽골등만 생각하는게 현재 저희들의 고정관념인데요.

 

  책에서는 이렇게 나오네요.

 

  " 고구려의 민속문화들은 북방민족보다는 장강 이남의 남방민족의 문화에 가깝다. 이러한 원인은 남방문화의 전파에 의한 것으

 

    로 볼수도 있으나 상투, 좌임, 혼속은 민족을 단위로 명확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쉽게 전파되는 요소가 아니다.

 

    띠라서 고구려기 남방문화적  요소를 갖는 것은 민족의 이동에 의한 것을 볼 수 있으며 그 기원은 남만과 맥이 함께 거주

 

    하였던 주나라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라고 합니다.

 

   고구려 하면 북방민족, 기마민족만 생각하는 현재의 고정관념 대비 먀오족은 동이족이면서 농경문화였습니다.

 

   흉노, 몽골 지역의 주요 하플로가 C3로 보나요?   02B하플로의 주류가 농경문화라 하였던가요?

 

   한국민의 주요 하플로로 중국에서 비율이 낮다는 02B 비율이 먀오족에는 얼마나 나올지 궁금해 지는 군요.

 

   그들의 현재 중국에서 차지하는 인구수는 900만명 소수민족 중에서는 5위라고 합니다/

 

   13억 중국 총인구(10년전) 대비 그들은 1% 미만의 인구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민족이 한족화된 지금 순수한 그들의 혈통이 궁금해 지는 군요.

 

   혹시 이들의 주요 하플로 그룹이 발표된 건 있나요?

 

【고유 명사】먀오족

중국 구이저우 () 중심으로 윈 () 후난 (따위 중국 남서부 여러 () 사는 소수 민족인도차이나 반도 북부 산지에도 거주하며몸집 작고 살갗 누르며 성격 하다여러 세대 함께 살며 부모 죽으면 자식들 분가한다  직접 지은 단층집에서 살며농업 주요 산업이다. ‘먀(Miao)’ 우리 한자음으로 읽으면 ‘6()’이다

참고

http://levi.tistory.com/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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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남부 먀오족은 고구려 후예다”

김인희 전북대 연구원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출간

중국이 동이족 수장으로 꼽히는 치우(蚩尤)를 중화 3대 시조로 모시는 것은 만주 등 동북지방에 대한 종주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여기에는 남부 산악지역에 살고 있는 먀오(苗)족 문제도 있다. 인구가 1000만명에 이르러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다섯 번째로 크다는 먀오족은 자신들의 조상으로 치우를 내세운다. 그런데 먀오족이 치우의 후손이 아니라 패망한 고구려 유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김인희 전북대 쌀·삶·문명연구원 전임연구원이 지난 10여년간 중국 남부지역을 현지답사한 결과를 총정리한 ‘1300년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푸른역사 펴냄)에 담긴 주장이다.

▲ 중국 윈난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서부 먀오족. 옷 뒤에 붙이고 다니는 도성 문양은 량차오, 다이가러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어떤 단어든 ‘오래된 옛 성’을 뜻한다. 네모 형태의 고구려 옛 성을 본뜬 문양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김 연구원은 “역사상 최초의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가 먀오족”이라고 주장한다. 디아스포라는 이산(離散), 흔히 국가 소멸 뒤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을 뜻한다.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재일교포나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카레이스키 등을 지칭한다.

김 연구원의 주장은 구당서, 신당서, 자치통감 등 중국 측 기록에 근거를 두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장수 이적은 평양성을 함락한 뒤 668년 보장왕과 함께 20만명의 유민들을 끌고 귀국했고, 이듬해인 669년 이들을 남쪽 공한지(空閑地)에 배치했다. 고구려 핵심 지배층을 고구려 본토와 머나먼 곳에 살게 해서 재기 의욕을 끊고, 포로들을 투입해 변경지역을 개발하려는 의도였다. 중국 문헌에 먀오족에 대한 기록이 일절 없다가 10세기 이후 송나라 시대 때부터 갑자기 “고구려와 풍속이 닮았다.”면서 언급되는 까닭은 이때서야 중국 남부에 자리잡은 먀오족을 중국인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먀오족이 고구려 유민이라는 증거로 우선 전통 바지 ‘궁고’를 든다. 고대 복식을 보면 중국 남방지역은 무덥고 습하기 때문에 대개 엉덩이와 허벅다리 뒤쪽을 그대로 노출하는 개방형 바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먀오족만 유일하게 바지 위에다 또 한번 큰 천을 덧대는 방식의 바지, 궁고를 입고 있다. 이는 고대 흉노족 복식이나 고구려 벽화에서 발견되는 복식과 비슷하다. 종아리 부근은 바짝 조이고,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은 통을 크게 넓힌 뒤 그 위에다 바지 천 하나를 덧씌워 두르다 보니 엉덩이 부분은 뾰족하게 솟아나도록 한 모양새다. 이는 추운 곳에서 말을 타야 하는 북방 유목민의 전형적인 복장이라는 것이다.

이외에도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는 형사취수(兄死娶嫂) 문화, 장례 전에 집안에 시신을 모셔 두는 풍습, 동명왕 신화처럼 아시아 동북부의 대표적 설화인 난생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점 등 다양한 근거를 든다.

결정적으로 먀오족은 옷에다 조상에 대한 옛 기억을 그려 뒀다. 이는 인디언 이러쿼이족 출신 미국 학자 폴라 언더우드(1932~2000)가 ‘몽골리안 일만년의 역사’라는 책을 남긴 것과 비슷하다. 문자가 없던 인디언들은 옛 조상들의 대이주 행렬을 장대한 구전 서사시로 남겨 뒀고, 언더우드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적 얘기’라고 들어왔던 이 서사시를 기록으로 남겼다. 

먀오족 옷의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여자들의 주름치마에 두 개의 강을, 웃옷 뒤편에는 큰 성을 그려 뒀다. 구전설화에 따르면 이들은 추운 곳에서 적에게 패배해 노란 물과 맑은 물을 건너 남쪽으로 왔다. 이게 바로 황하와 장강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조상들이 머물렀던 곳을 잊지 않기 위해 고향에 두고 온 옛 성을 그려뒀다. 이 성의 문양은 장방형인데, 고대 성곽에서 장방형으로 지었던 성은 고구려 성이 가장 대표적이다.

재미있는 점은 서부 먀오족과 달리 동부 먀오족에게서는 ‘큰 강’에 대한 얘기 대신 ‘동쪽의 해 뜨는 바닷가’ 얘기가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이를 고구려 패망 뒤 만주 일대에서 남쪽으로 끌려온 이들은 서부 먀오족, 고구려 평양성에서 바다 건너 끌려왔던 이들은 동부 먀오족이라고 해석한다. 동부 먀오족이 서부 먀오족보다 더 반항적이고 남방문화와 비교적 덜 섞여 든 이유와도 연결된다. 한마디로 평양성에 거주했던 고구려의 핵심 지배층이었던 까닭에 서부 먀오족에 비해 문화 자존심이 유달리 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고구려가 아니라 치우를 조상으로 내세웠을까. 이는 만주족 청나라를 붕괴시키고 한족 중심의 근대국가를 성립시키려 했던 반청 운동가들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은 먀오족을 이민족으로 정벌했던 고구려로 보기보다, 한때 다투었던 형제인 치우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이 편했다는 것이다.

문자가 없어 옛 조상에 대한 희미한 기억만 갖고 있는 먀오족 역시 중국과는 조상이 다르다는 민족 자주성 차원에서 이를 받아들였다는 해석이다. 실제 저자는 먀오족의 조상이 치우라는 주장을 주로 한족 학자들이 내놓는 반면, 먀오족 스스로는 치우에 대해 그다지 알지 못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이는 동북공정이 최근 들어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1950년대부터 이미 시작됐다는 학계 일부 주장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마오쩌둥이 꿈꾼 것은 공산주의 정권이 아니라 한족 패권 정부였다는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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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주의 13-06-14 23:12
   
나름 일리 있는 연구결과네유.
근데 고구려 후예라면 몸집이 작을리가 없을텐데 좀 이상하네유
     
덕배 13-06-14 23:21
   
고구려 후예인데 한자가 없는 게 더 신기해유.
          
꼬퉁퉁이 13-06-15 08:08
   
고구려가 멸망한게 지금으로부터 1400년이나 됐는데 지식의 전수가 이뤄졌을리가 없죠
               
덕배 13-06-15 08:25
   
먀오족과 고구려와의 문화적 연결성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고구려가 5세기초 장수왕 시절에 이미 지방까지 경당이라는 교육기관을 둬서 평민도 글, 역사, 무예도 배울 수 있었어유.
한자는 고조선 이전부터 사용되었다고 추정되고 한자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골각문자도 동이족 영역에서 발견되고유.
최소 1600년 전에 이미 지방까지 교육기관이 다 들어선 고구려고 이두도 가장 먼저 사용했는데 문자가 없다고 하니 이상하쥬.
애먼 소수민족 데려다 고구려 후손이라 그러면서 고구려 후예가 중국인이니 동북공정에 이용할 거라는 생각은 안하세유?
                    
치우비 13-06-15 08:28
   
동북공정에 이용할거 같으면 벌써 이용했습니다
먀오족이 고구려 후손이라는게 동북공정을 하는데 별다른 도움이 안되니
짱개들은 가만히 있는거지 역사왜곡에 활용하려고 했으면 하고도 남았습니다
                         
덕배 13-06-15 08:34
   
차차 연구해봐야 되겠지만 평양에서 끌려갔다는 고구려 핵심 지배층이 문자조차 유지하지 못했다는 건 굉장히 납득하기 어렵네유.
동이족의 방계이거나 백제 담로의 유민일 가능성도 고려해봐야 겠지유.
                         
치우비 13-06-15 08:43
   
먀오족 유전자 분석을 해보니 상당수가 한민족 유전자와 일치 했습니다
백제 담로의 유민일 가능성과 고구려 후손의 가능성
분명 두가지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Nephilim 13-06-15 02:56
   
마오저뚱이 마오족이라는 설이 있던데. 마오타이주를 좋아해서 그런가?정말인가?
꼬퉁퉁이 13-06-15 08:10
   
고구려 디아스포라 저 책은 제가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매우 신빙성이 있어보였고 왜 이런 주장을 학계에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는지 궁금하더군요. 중국과의 마찰을 두려워해서 인것 같은데 먀오족은 고구려 유민이 확실합니다.
책을 한번 읽어보시면 알게되실겁니다.
seharu77777 13-06-16 21:38
   
제가 알기론 먀오족이 바로 그 지방으로 간게 아니라 서북쪽으로 유배갔다가 세대가 지나면서 차츰 남방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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