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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6-07 18:03
[기타] 금청사의 우리역사 편입에 대한 문제
 글쓴이 : 눈틩
조회 : 3,205  

금나라와 청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국가입니다.
그리고 여진족은 우리 고구려와, 발해의 피지배계층이며 끊임없이 우리민족과 교류를 하던 밀접한 관계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고대 국가의 한 축을 이루었던 여진족이 건설한 국가도 우리역사에 편입해야 한다는 것이 찬성 측의 주장 같습니다. 더군다나 후금의 시조인 아골타는 신라왕조 출신으로 역사서에도 분명 우리고대국가 출신임을 밝히고도 있죠.
 
 
이와 비슷한 논쟁이 과거 발해에도 있었습니다. 발해를 우리 역사로 편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당시에도 엄청난 대립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발해' 는 소위 듣보잡 국가였습니다. 일반 백성(국민)들은 물론 역사학자들조차도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국가였죠.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으로 내려오는 계보만이 정설로 여겨지던 때였으니까요. 지금의 금청사 논란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결국 발해는 우리역사로 편입되었는데 구한말 세계적으로 민족주의가 지배이념으로 자리를 잡고 서양세력의 침략을 막기 위해 우리민족 스스로의 사상을 고취하는 자주적인 역사의식도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실 금청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고려와 조선의 사대주의와 중화사상을 빼먹을 수가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기 당시 중국과 갈등을 빗던 고구려는 진취적이고 독자적인 문화, 세계관을 가진 반면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실제로는 속국관계죠)하면서 중국 중심의 질서에 편입합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게 되는거죠. 이때부터 중화사상이 서서히 유입되면서, 고려시기에 금나라의 사대관계 요구 수락, 중국의 유교사상 유입 등으로 본격적으로 중국을 '대국화' 하며 우리나라를 '소중화, 작은중국' 으로 칭하는 사상이 발생합니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더 강해져서 명나라를 섬기기면서 중화사상을 넘어 '모화사상, 존화사상'으로까지 발전됩니다.
과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중화주의 질서에 위배되는 '오랑캐' 들은 철저히 하류민족으로 여겼고 그런 오랭캐들과는 상종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고려와 조선시대 지배 사상이었습니다.
거란족이 고려를 3번이나 공격한 이유도, 고려가 송나라는 섬기는데 거란(요나라)은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였고
여진족이 조선을 2번이나 공격한 이유도, 조선이 명나라는 섬기는데 여진(청나라)은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였죠.
 
이런 중화주의사상 때문에 수백년 간 우리민족은 철저히 중국중심의 천하관, 세계관을 갖게 되었고 당대 사람들은 중국이 제1의 국가이고 그 다음이 '소중화'인 우리나라, 그리고 나머지는 오랑캐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존화주의' 의 상징이었던 '어버이의 나라'인 명나라를 멸망시킨 여진족은 철저히 배격해야하고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 당시 조선의 지배 이념이었습니다.
 
 
분명 후금의 시조는 신라왕조출신이라는 것이 역사서에 그대로 기록이 되어 있기에 사실이지만 지금와서 그런 이유로 여진족을 우리역사에 편입해야하고 그들이 건국한 금청도 우리 역사로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혁신적이면서도 뜬구름 잡는 소리일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랑캐라고 부르던 여러 민족들은 사실 따지고 보면 중국에 의한 사고관 때문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천하관인 중화사상이 수백년 간 우리민족의 천하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여전히 현대에 와서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입니다.
 
 
발해의 우리역사 편입에도 금청사 편입과 비슷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발해가 한민족의 국가인가? 발해의 대조영이 고구려 출신이라는 역사서의 기록은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우리국가라고 볼 수 있는가.
더군다나 발해에 대한 연구는 후대 고려나 조선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했습니다. 구한말이 되어서야 만주를 연구하면서 발해에 대한 의식이 본격적으로 생긴 것이지 그 전에는 거의 비중조차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중화사상에 탐닉되어 있었기에 더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죠.
 
이런 문제가 있었지만 결국 발해는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족(후대 여진족)으로 구성된 이원적 사회라고 규정짓고 우리역사로 편입이 되었습니다.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여러 증거 문헌들도 존재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금청사를 본다면 발해와 비슷하면서도 더 복잡합니다. 특히 중원을 지배한 적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중국과의 마찰도 피할 수 없고 역사전쟁으로 번질 위협이 있습니다.
 
그러나 금청사에 우리역사 편입에 있어서, 더 많은 문헌증거나 다른 증거가 있다면 과감히 우리역사로 편입해야 함이 옳다고 봅니다. 비록 현재 여진족은 중국에 흡수되어 모두 동화되었고 그 문화나 언어조차 남지 않았지만 우리역사의 일부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은 금나라와 청나라가 단지 자국의 영토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자국역사로 편입을 하였고, 민족성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자 중국은 다민족국가라는 주장을 하며 모순까지 겪고 있습니다. 즉, 중화민족 중화주의라면서 다민족국가다? 이건 다민족국가가 아니라, 중화민족(한족)이 모든 이민족들을 지배하겠다는 침략적 사상에 불과하죠.
 
 
역사는 이런 사실관계 이외에도 현재 정치적, 미래 외교관계 등을 가늠하는 척도로도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때 그 근거가 바로 '신공왕후의 남한 정벌설' 입니다. 이는 일본의 천황이 한반도 남부를 공격해서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고 지배하였다는 '신화'인데, 이 신화를 마치 '사실' 로 각색하여 역사로 만들고 그에 따라 '임나일본부설' 이라는 역사적 허구체를 만든 뒤 실제 현실의 침략을 위한 명분으로 사용했습니다. 즉, 한국을 침략하기 위해 신화를 역사로 바꾸고 없는 역사를 만들어서 침략에 대한 '명분과 당위성'을 만든 셈입니다. 현재도 그렇고 당시 일본인들은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알았으며 과거에 일본이 지배했으니 지금 다시 지배해도 된다는 국민여론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여전히 일본이 '임나일본부설, 광개토태왕 비문조작설' 등을 왜곡하는 것도 미래에 혹시 모를 일 때문이죠. 그 혹시 모를 일은? 미래에 또 다시 한국과 전쟁이 발생한다면 이런 저런 명분을 만들기 위한 장치인 것이죠. 중국의 동북공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반도 통일과 통일한국의 간도귀속문제 등을 놓고 마찰이 발생할 것 같으니, 미리 수를 써 놓는겁니다. 이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역사가 정치와 외교논리에 쓰입니다. 비록 우리입장에서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배워야 합니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꼭 성공하고 잘 살던가요??
 
더군다나 금청사는 역사의 왜곡도 아니고 실제 문헌에도 남아있는 부분입니다. 일본이 신화를 각색하여 역사를 만들어 조선을 침략하고 여전히 그 신화를 역사로 가르치고 있고, 중국은 동북공정이란 왜곡 날조 역사 프로젝트를 미래의 외교를 위해 준비하는데, 우리는 역사를 역사 그 자체의 학문만으로 봐야할까요?
금청사의 편입은, 역사 그 자체만의 진위 여부로 볼 것이 아니라 미래의 정치와 외교관계를 위한 시각으로 함께 봐야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당장은 금청사 편입이 어처구니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청사 문제를 그냥 사장시켜버리는 것 또한 잘못된 것이라 봅니다.
 
지금 제 생각에도, 당장 금청사를 우리 국사에 포함한다는 건 굉장히 무리수이고 부작용도 심할 것이라 봅니다만 그렇다고 연구자체를 하지 않는 것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하자는 것이 아니라, 주변국의 정황을 고려하여 사실여부가 충분한 역사에 대해서는 꾸준히 연구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 문제에 있어서 과거 역사문제가 무슨 명분이 될 것이고 된다 한 들 경제나 다른 더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크게 비중을 차지 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장 중국과 일본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한중일처럼 역사문제에 민감하고 역사를 학문 그 이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국가는 없을 겁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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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드리 13-06-07 18:30
   
좋은 글 잘봤습니다..~
     
눈틩 13-06-07 19:49
   
감사합니다. 좀 두서없긴 했지만 .. ㅎㅎ 읽어주셨네요.
seharu77777 13-06-07 18:47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불어 동북공정은 단순히 간도귀속문제에 따른 정당성 확보차원을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황하문명을 세계 최초의 동북아 지역 문명으로 규정짓던 중국에서 이보다 더 앞서고 수준이 높은 요하문명이 그들의 세계관이었던 만리장성 밖에서 발굴되고, 그 이후 그들은 큰 딜레마에 빠진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논리를 펼치기 위해 다민족국가체제의 역사적 논리를 주창하게.되고 그 문명 중심권의 역사적 주체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그들이 기존의 역사관이었다면 중국보다 앞선 문명권은 동이족의 문화였고 동이족의 후신이 고조선 부여 삼국 결국 대한민국이 그들보다 우수한 문명의주체였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역사를 다시 써야하는 일입니다.
     
눈틩 13-06-07 19:51
   
네, 맞아요. 저도 홍산문명 알고 있어요.
요하문명이 진짜 신발견이죠.

동북공정의 큰 목적 중 하위 부분에 우리나라와 엮인 만주 및 간도 지방이 있는 것이고
사실 동북공정 자체는 중국 동북부의 모든 영토와 민족들의 삶을 지들 것이라 우기기 위한 거니까요.
밥주세요 13-06-07 19:53
   
근데 님 말대로면 금나라가 우리 역사가 아니라는데 그럼 중국역사인가요?
     
눈틩 13-06-07 20:27
   
위에 적은 제 글은, 금청사도 우리역사로 편입하는 쪽으로 연구하고 검토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고 지금 중국의 한족들의 역사는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서라벌 13-06-07 21:48
   
고려가 사대주의를 하고 소중화를 외쳤다?? 난 이 말에 동의 못하겠는데 말입니다.
애초에 소중화 라는 말이 나온 것 자체가 조선 중기 이후입니다. 조선 전기 훈구파가 망하고 사림파가 등장하면서 부터죠. 초기에 실리주의로 시작한 사대관계가 이상하게 변질된거죠. 고려가 금에 사대한 것은 이자겸이 자기 권력 유지하려고 뻘짓 한거고..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만 봐도 고려가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수도 개경을 황도라고 부른다며 건방지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소중화에 빠진 고려가 황제를 칭합니까?
서라벌 13-06-07 21:50
   
그리고 발해와 금청사는 엄연히 다른 문제지요. 발해가 우리 역사에 편입이 된 가장 큰 요인은 발해 스스로가 고구려 계승 의지를 표방했기 때문입니다. 발해라는 이름은 중국에서 부르던 이름이고 고구려와 구별하기 위해 오늘날 까지 발해라고 부르는 것 뿐이죠. 발해는 처음에 진국이라고 했다가 후에는 고려라고 불렀구요. 일본에 보낸 국서에도 고려국왕이라고 칭하기 까지 했는데 발해는 논외죠.
그런데 금이나 청이 고구려 계승 의지를 밝혔다던지, 아니면 아골타 조상 중에 신라인이 있다 하여 신라를 계승했다는 역사적 인식이 있었나요? 그런 점도 없이 무턱대고 금청사를 한국사에 편입시키기는 어렵죠.
     
눈틩 13-06-07 23:21
   
그냥 배경 지식정도로 간단하게 적으려고 고려조선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지, 자세히 말하자면 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고려중기 이후 문벌귀족의 보수화로 인해 자주성이 다소 위축된 건 사실이니까요. 조선은 님 말씀대로 중기이후 중화가 심화된 것이 맞구요.

금나라 시조가 신라출신이라는 명백한 문헌은 존재하지만 금청, 여진족이 자기들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우리민족과 밀접관 관계였는지 등의 연구자료가 부실해서 저도 당장 금청사의 한국사 편입은 무리수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논의를 사장시켜버릴 정도는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님이 생각하신 그런 문제점들, 저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라벌 13-06-07 23:32
   
뭐, 저도 아주 사장 시켜야 된다는 생각으로 글 적는 건 아닙니다. 이미 학계에서 이런 저런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에 따른 충분한 연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겠죠. 근데 게시판 글을 보다보면 너무 앞서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입니다. 앞으로의 연구가 어찌 진행될지는 모르는 일인데, 현재 나온것만으로는 금청사를 한국사로 편입시키기는 어렵죠.
seharu77777 13-06-07 22:40
   
금청이 고구려 계승의식이 있어야지 한국사가 되는 것은 아닌듯 한데요.
물론 발해계승의식은 있었다는 내용은 보입니다.
더불어, 그 이전에 이미 한민족의 부류였다는 국내 주장이 있고, 중국학계에서도 손진기 부류가 주장하고 있으며, (물론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내세운 주장입니다.) 설득력을 많이 얻고 있다.
하기 내용은 인터넷에서 발췌한 뉴스이고, 무조건 폄하하실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여진족의 역사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역사학계가 들끓고 있다.

지난 20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린 ‘한국고대사의 시공간적‧문헌적 범위’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서 ‘한국사의 확대 과정과 여진사(女眞史)의 귀속 문제’가 논의됐다.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 편제… 동일지역서 활동한 여진족만 애매”
이 자리에서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유적학과 이도학 교수는 여진족 역사를 한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한국사의 강역(통치권이 미치는 영역)은 대동강에서 원산만까지의 북계에서 꾸준히 북상했다. 더불어 만주 지역에서 생성과 성장‧소멸을 거듭했던 종족의 역사 중 부여와 고구려, 발해는 한국사에 편제됐다”고 지적하며 “그런데 동일하게 만주 지역에서 활동했던 여진족의 역사는 애매한 상황”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산해관(山海關) 이남으로 진격해 중원대륙을 제패하고, 청이 됐을 때는 중국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전의 여진사는 한국사에 편입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는 여진족의 한국사 귀속 이유로 “12세기 금나라의 기원이 한국과 관련을 맺고 있다”고
밝혔다.

‘고려사’를 비롯해 ‘이역지(異域志)’ ‘신록기(神麓記)’ 등 그가 제시한 문헌에는 금나라의 시조를 신라인 혹은 고려인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한 ‘만주원류고’에서도 마찬가지로 금나라 시조를 신라로 기록하고 있으며, 국호 또한 그 시조 성씨인 신라 왕 김씨에서 유래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그는 “‘만주원류고’에서는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 뿌리를 두고 있는 금조와 그 후신인 청나라 역시 자국의 연원을 신라에서 찾고 있음을 내세웠다.

더불어 이 교수는 “민족주의 사학자 백암 박은식의 역사인식을 계승한 손진태는 한국사를 구성하는 족속으로 남북 9족을 말했고, 이 중 청나라의 원류인 숙신(肅愼)이 포함돼 있다”고 거론했다.

금나라 이전에 존재했던 숙신을 고구려의 부용 세력으로 간주하며 금사(金史)를 한국사에 편제시켰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한국전쟁 때 손진태가 납북된 후 여진의 역사를 한국사에 편입시켰던 역사의식을 계승하지 못하고 묵과한 당시 서울대 관련학과 교수들을 꼬집기도 했다.

그는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과 ‘장백산 문화론’을 앞세워 고구려‧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는 이때, 여진사의 한국사 편입은 역사왜곡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방안이 된다”고 말했다
     
서라벌 13-06-07 22:59
   
고구려 계승 의식 얘기를 꺼낸건 발해와 연관지으려고 하니까 그 차이점을 설명하려 한 겁니다.
금나라 시조 아골타가 신라인 김함보 후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걔들이 우리에게 동족 의식을 갖고 있었냐는 거지요. 시조가 신라인 내지는 고려인 이면 뭐 합니까. 역사적인 인식이 우리가 동족이라는 사실이 없는데. 고려나 조선이나 여진족은 어디까지나 오랑캐 취급하고 동족이라는 의식이 전혀 없었는데 수백년의 그러한 인식을 뒤로하고 오늘날 갑자기 한국사에 편입시키자니 우습죠.
          
덕배 13-06-07 23:21
   
금나라는 신라인,여진족, 발해유민이 연합하여 세운 나라였으며 황실은 물론이고 지배계층이
우리 한민족이였다는 사실이 속속 들어나고 있다. 그 근거들로서는
1."금 태조 아골타는 우리나라 평주인이다."(마니산 개천각 비문)
2."여진 추장은 신라사람이다."(송막기문)
3."형 아고내는 고려에 남고,둘째인 金의 시조와 동활리는 여진으로 왔다.
  이 금 시조의 8대 손이 태조 아골타다. 고려에서 온 금나라 시조의 이름은 함보였다."(金史, 황실의 뿌리)
4."金은 신라왕 김씨에서 유래했고, 국호 金도 이를 딴 것이며 그외의 주장은 근거가 없다."
  (흠정만주원류고,여진족이 세운 또 하나의 나라 후금( 청)의 공식 역사서)
5."아골타의 시조 함보는 고려에서 왔다고 말하거나, 신라에서 왔다고 말해도 무관한 것 같다.
  한반도에서 온 것은 틀림없다."(현 중국 요녕성 다렌대 왕우량 교수)
6."평주의 승려인 금준이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 금나라의 선조가 되었다."(고려사)
7."경순왕 김부가 려(고려)왕에 항복한 후 그 외손 완안 아골타, 즉 권행(김행)의 후손..."(해사록)
8.고려 윤관장군이 여진을 정벌하고 고려에 귀속한 두만강 북방 여진족의 근거지 9성을 돌려달라는 글(고려사)
  "일찍이 저희 여진의 선조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으니..이 오아속(아골타 이전의 여진족 추장) 역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나이다...
9. "여진인과 발해인은 같은 뿌리, 한 집안이다."(金史)
10."아버지는 김계종이고, 우리는 그걸 따랐습니다. 저는 金씨입니다." (청 건륭제 7대손 김괄교수 인터뷰)
    청 황실의 姓 아이신줘러는 만주어이고, 한자어로는 金씨들, 김씨 집안을 뜻한다.
    청 태조의 이름 '아이신줘러 누르하치'의 한자어 이름은 김누르하치이고,   
    청나라  마지막 황제 '아이신줘러 푸이'의 한자어 이름은 김부의가 된다.
    청 황실의 姓씨는 신라인의 후예 신라 김씨다.
11. 여진인,신라인, 고려인은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본다.( 중국인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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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식이 있었지유.
               
서라벌 13-06-07 23:35
   
민족의식이 그렇게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있는 거였습니까? 위에 말한 것들 저도 전부 아는 내용입니다. 다만 위에서 말한건 어디까지나 '뿌리'에 관한 거지요. 금태조의 선조가 신라에서 나왔다는 건 알겠는데, 그 후에 걔네들 태도가 어떠했느냐 말입니다. 고려는 발해가 고구려의 후손이라 하여 발해 왕족을 우대해주기라도 했지, 금과 고려 간에 그런 정책이 있었습니까? 우리에서 갈라져 나갔을 지언정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데요. 고려의 태도도 그렇고 그 후의 조선도 그렇고 어디까지나 상종 못할 오랑캐 놈들이라고 봤지 동족의식이 느껴지는 기록은 못 봤습니다. 우리에게서 갈라져 나간건 나간건데 그 이후로 뚜렷한 민족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게 민족의식이 투철했으면 고려 조선에서 여진족을 오랑캐 취급할리가 없죠.
                    
덕배 13-06-08 00:10
   
금은 황후를 대부분 발해인으로 들였쥬.
고구려 신라 백제는 다른 민족이라 서로 죽일 듯 경쟁하고 싸웠을까유??
위 사료들을 덮어놓고 다른민족이다. 떨어져서 남이 되었다라고 보기 힘들쥬.
                         
서라벌 13-06-08 00:16
   
단순히 죽일듯이 싸웠다고 이민족이라 하는 게 아닙니다. 삼국시대 삼국은 서로 싸웠을 지언정 분명한 동질 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삼한이란 이름이 나오고 삼한일통이란 말이 나온거구요. 삼국은 서로 싸웠을 지언정 서로를 오랑캐라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금이 황후를 대부분 발해인으로 돌렸다는 것은 충분한 근거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네요. 일단 발해인의 구성원들은 고구려 직계만이 아니라 말갈인들도 상당수이고 외척지간을 내세운다면 원 황실도 고려왕실과 외척을 맺고 서로 교류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원나라와 고려가 같은 민족이란 의식이 있어서 그런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덕배 13-06-08 00:24
   
아골타의 선조는 신라부흥을 하다 만주로 넘어갔쥬.  물론 고려를 부모의 나라다라고 창하긴 하지만 신라를 무너뜨린 고려에 대한 원망과 민족적 동질의식은 공존했다고 봐야쥬.
금의 경우 황족은 신라계통에 황후는 발해계로 민족적 연속성을 이어오쥬. 고려가 원나라에게 굴복하긴 하지만 왕족은 바뀌지 않쥬. 반대로 원나라 황실도 황후가 고려인이 많은데 그렇다고 원나라가 고려의 역사는 아니듯이유.
                         
서라벌 13-06-08 00:29
   
아골타의 선조는 신라인 김함보니까 당연히 신라부흥을 하던 뭘하던 민족의식이 있었겠죠.
근데 아골타가 김함보의 아들도 아니고 몇대나 후손인데 아골타가 신라인이란 의식이 있었겠습니까? 그리고 고려에 대한 원망과 동질의식이 공존했다? 이건 어느 사료에서 나오는 겁니까?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아닙니까? 동질의식이 있었으면 그런 기록이 나와야 하는데 고려야 여진족은 믿을 만한 놈들이 아니니 아주 상종을 하지 말라고 했고 금나라도 동질의식은커녕 오히려 고려를 침략하기나 했죠. 동질의식을 가졌다고 하려면 발해-신라나 발해-고려 정도는 되어야 하죠. 발해가 초기에 고구려를 무너뜨린 나라라 하여 신라를 배척했지만 금나라처럼 침략한게 아니고 잘 지낸데다가 고려는 발해 멸망후 발해 왕족을 귀하게 대접했고요. 그런 식으로 보이는 사실이 금과 고려 사이엔 없다는 말입니다. 대체 무슨 대단한 동질의식이 있어서 고려가 오랑캐 취급을 한단 말입니까?
                         
서라벌 13-06-08 00:32
   
그리고 대체 어느 부분에서 민족적 연속성 운운하시는지 이해가 안가네요. 금의 경우 황족의 신라계통이라는 건 어느 사서에 나옵니까? 제가 알기로 김함보 제외하면 신라계와 관련된 인물은 없습니다만? 아골타의 선조 중에 신라인 김함보를 제외하면 다 여진족입니다. 아골타 까지 내려오면서 신라계가 없는데 무슨 민족적 연속성?? 그렇게 훌륭한 민족적 연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면 고려가 발해왕족 대우하듯이 여진족을 그런식으로 대우헀겠지 뭐 때문에 여진족을 오랑캐 취급을 합니까?
                         
덕배 13-06-08 00:49
   
"여진인과 발해인은 같은 뿌리, 한 집안이다."(金史)
아골타는 금제국을 건국하자 도성인 상경임황부에 단군묘를 세우고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다.
여진족, 만주족은 19세기까지만 해도 조선인들과 대화를 할 때 통역없이도 대화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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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민족으로 보기가 더 어렵지 않나유?

금, 청이 한족의 나라가 아닌 건 확실하지만 동이족의 역사인 건 확실하고 우리의 역사로 포함할 것인지는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고 봐유.
                         
서라벌 13-06-08 01:00
   
님아, 단군에 제사 지냈다는 부분이랑 19세기까지 말이 통했다는 그 부분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출처 좀 알려 주시죠. 제가 알기로 만주어와 한국어는 상당 부분 달라 유사점을 찾기 힘들다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신뢰할 만한 출처라면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부디 인터넷에서 떠도는 근거없는 뻘소리는 아니길 비네요.
                         
덕배 13-06-08 01:18
   
아골타는 금제국을 건국하자 도성인 상경임황부에 단군묘를 세우고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다.
금사(金史), 조선상고사(신채호), 몽배금태조(박은식), 규원사화(북애자)

육진 방언(六鎭方言)이나 동북방언을 사용한 조선인들 중에는 여진족하고도 19세기 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했다라고 하는데 내용은 더 찾아봐야 겠네유.

그리고 '님아'라는 표현은 우리말에 없는 표현인 거 아시쥬? 거두어 주시고유.
'뻘소리' 이런 표현도 토론에 임하는 상대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생각해유.
어쨌든 토론해 볼 가치는 있는 주제인 건 맞다고 보고유.
                         
서라벌 13-06-08 01:26
   
조선상고사는 신채호 선생이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사관으로 쓴 거라 좀 생각해야 될 부분이 있는 거 같구요, 규원사화는 제가 알기로 아직 정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몽배금태조는 처음 듣기에 검색해보니 역사서가 아니고 문학으로 분류가 되네요. 문제는 금사인데, 과연 금사에 정말 저렇게 기술되어 있는지 솔직히 저는 좀 믿기지 않네요. 그리고 실제로 단군에 제사 지낸것이 사실이라 해도 민족적 동질의식이랑은 거리가 멀죠. 그저 조상이 같을 뿐.. 단군이 조상이나 신라인 김함보가 조상이나 어쨌든 김함보만으로도 우리와의 관계성은 이미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는 문제니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고려와 조선의 태도입니다. 대체 왜 그 부분에서는 아무 말이 없으시고 자기 할말만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고려와 조선에서 보여준 태도는 어떻게 설명하시려는 지요? 그리고 쓸데없이 인터넷 통신 용어로 시비 좀 걸지 마십쇼. 저도 님 사투리 쓰는 거 상당히 거슬리거든요. 뻘소리 운운한 건 님을 지칭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근거없이 올라오는 글 전체를 총칭해서 한 말입니다. 괜히 발끈하시네.
                         
덕배 13-06-08 01:32
   
잘 정리된 내용이 있어서 좀 퍼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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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섯 달 전(서기 2009년 11월 23일), 이 게시판에 올린 글(「▩고려 조정이 발해의 역사를 편찬하지 않은 까닭」. 카테고리는 [기타])에서 “고려 조정은 자신들의 나라를 고구려를 이어받은 ‘진짜 정통성 있는 왕조’로 선전하고 싶어했고, 그래서 엄연히 존재했던 나라인 발해의 역사를 일부러 다루지 않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논지를 전개하다 보니, ‘그렇다면『금사』는 왜 펴내지 않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고려는 서기 1392년까지 있었던 나라고, 금나라는 서기 1234년에 망했으므로, - 고려가 159년 더 오래 지속됨 - 고려가 마음만 먹었다면 금나라가 망했을 때『금사』를 쓸 수도 있었다(동아시아에서, 한 나라의 역사서는 그 나라가 망한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 관행이었다. 한 예로『삼국지』는 삼국을 통일한 서진시대에 쓰여진 역사책이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왜일까? 나는 정치적인 상황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알다시피 고려는 서기 1145년에 ‘국정 교과서’인『삼국사기』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그 책에 ‘신라는 고려에게 항복할 때 크게 반발하지 않았고, 태자는 산에 숨어들어가 살다가 죽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만약『금사』를 적기 위해 사료(예컨대 송나라의 책인『송막기문』이나 완안 아골타의 형 오아속이 고려에 보낸 편지, 강원도 설악산에 내려오는 마의태자 관련 전설, 평주의 소문, 금나라의 실록)를 모으면 신라 유민들이 고려에 얌전하게 무릎 꿇지 않고 북쪽으로 간 뒤 여진족의 지도층이 되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그러면『삼국사기』가 주장하는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지닌 정당성’이 의심받게 되며, 결과적으로 “국정 교과서가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물론 고려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 고려는『삼국사기』가 쓰여진 지 58년 뒤인 서기 1202년, 경상도에서 일어난 농민봉기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이 봉기의 지도자는 경주 사람인 ‘이비(利備)’와 초적(草賊) 출신인 ‘패좌’였는데, 그들은 ‘신라 부흥’이라는 구호를 내걸었고 서기 1204년까지 온 경상도(경주 포함)를 뒤흔들었다. 당연히 고려 무신정권과 고려 황실은 이런 봉기가 또 다시 일어날까봐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봉기가 진압된 뒤 고려 무신정권이 동경(경주) 안의 주/부/군현과 향/부곡에 살던 사람들을 안동과 상주에 나누어 예속시킨 것은 고려 정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판국에 고려 백성들(특히 옛 신라의 백성들인 경상도 사람들)이 ‘신라의 유민들이 북쪽으로 달아나 금나라를 세웠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 고려에 실망하는 마음은 곧장 신라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을 것이고(일본에서도 에도 막부 말기에 막부의 실정에 실망한 사람들이 덕천가강德川家康이 멸망시킨 풍신수길豊臣秀吉을 찬양하는 소설이나 평론을 쓴 사례가 있다), 금나라의 힘을 빌려 고려 조정에 맞서 싸운다는 전략을 세울 가능성이 높았다. 이는 고려 조정에는 악몽 그 자체인 상황이다(참고로 이 무렵에는 아직 금나라가 고려의 머리 위에서 버티고 있었다).
 
따라서 고려 조정은 엄연히 존재했던 금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다룰 수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발해 역사와 마찬가지로 금나라의 역사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고려인이 아닌 몽골인의 손을 거쳐서 나왔다. 우리는 여기서 역사책. 특히 국정 교과서는 정치적인 상황과 시대를 비껴 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덕배 13-06-08 01:35
   
지금까지 제시된 사료들만 해도 토론할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봐유.
서라벌님이 틀렸다는 말씀이 아니라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단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거에유.
적어도 금청사가 한족의 역사가 될 수는 없잖아유.
서로 존중하면서 토론해유.
                         
서라벌 13-06-08 01:43
   
음.. 새로운 해석이긴 하군요. 다만 글에서는 마치 고려가 금사를 편찬하는 것을 당연하다는 식으로 기술해 놨는데, 대체 왜 그런지 모르겠군요. 금사를 편찬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기 이전에 고려가 금사를 서술해야 했던 이유가 먼저 나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금나라는 엄연히 다른 나라인데 고려가 왜 금사를 기술합니까? 그리고 금나라의 풍속 자체가 신라를 계승했다고 보기가 어렵죠. 발해의 문화나 유적 등을 보면 말 그대로 이건 고구려를 계승했다, 알수 있는데 금나라의 경우는요? 제가 알기로는 그러한 유사성을 보인다는 말은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서라벌 13-06-08 01:49
   
그리고 저도 금청사에 관해서 우리와의 관계를 아주 전면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청나라는 좀 아니다 싶긴 하지만 금나라 정도는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덕배님께서 달아주신 여러 정황들을 보았을 때. 그러나 그러기엔 수백 년의 역사가 너무 깁니다. 오랜 기간동안 우리는 금사를 우리 역사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랑캐 취급을 했을지언정. 그러다 보니 그 오랫동안 내려져 오던 역사관을 바꾸기 위해선 정말 혁신적인 학설, 증거가 나와야 하죠.
그리고 동북공정에 대응할 만한 수단이란 부분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동북공정은 엄연한 중국의 사기인데, 사기엔 사기로 대응하자는 겁니까? 그런 논리라면 정말 실망인데요? 동북공정은 굳이 금사를 한국사로 편입시키지 않아도 그 논리적 부당함을 역설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통적 역사인식 자체를 완전부정해 버리는 것이 동북공정이니까요. 다만 금청사가 한족사가 될 수는 없을지언정, 중국사가 될 수는 있다고 봅니다. 현재로써는요. 제가 이전 글에도 썼다시피, 금,청을 계승할 만한 독립적인 국가나 민족이 없으니까요. 현재 우리가 고구려를 우리 역사라 주장할 수 있는것은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독립된 나라를 가지고 한민족이라는 독립된 민족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죠. 하지만 금청사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만주족이 실질적으로 지금 중국에 먹혀 중국에 완전 속한 상태에서는 싫어도 중국사로 분류할 수밖에 없죠.
                         
덕배 13-06-08 01:56
   
윗글 본문에 "동아시아에서, 한 나라의 역사서는 그 나라가 망한 뒤에 만들어지는 것이 관행이었다"라고 하네유.

금나라의 지배층 여진족들은 온돌을 사용했지유. 그리고 진흙과 짚으로 만든 초가집에서 살았고, 씨름과 매우 유사한 겨루기도 했지유. 말도 매우 비슷했고유. 이는 한족과 매우 이질적이라고 볼 수 있고유.

http://cfile207.uf.daum.net/image/186F47414E87295D0C7643
(만주족의 초가집 사진, 샅바를 매고 씨름과 유사한 겨루기를 하는 장면)

중국 요녕성 대연(다렌) 대학 왕우량 교수가 KBS 취재당시 이렇게 인터뷰 했었쥬
"동일한 언어, 동일한 지역, 동일한 문화가 있습니다.
이 각도에서 보면 고려와 여진 사이의 전쟁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을 겁니다.
물론 전쟁이 아주 없었다고는 말 할 수 없습니다만 그들은 거란이나 몽고와 다릅니다.
거란과 몽고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민족 공동체입니다.
그들에게는 혈연상, 역사상의 유대관계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여진인과 조선반도의 신라인 나중의 고려인은 민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
                         
덕배 13-06-08 02:00
   
금,청을 계승할 만한 독립적인 국가나 민족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래 글을 한번 참고 하시면 될 거 같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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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영국여왕이 독일핏줄이라고 영국사가 독일사가 되나?

영국여왕이 독일 핏줄이기 때문에 앵글로섹슨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범게르만의 역사를 쓰면 당연히 영국은 독일-게르만의 역사에 포함됩니다.  영국사가 독일사와 분리되어 있는 이유는 그 역사의 주체인 영국과 독일이 독립국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이라는 나라가 이민족에 점령되어 사라지면 영국사는 당연히 독일사로 편입됩니다.  영국이 아프리카에 점령되면 영국역사가 아프리카 역사가 됩니까? 이런 황당한 생각이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죠. 

지금의 만주는 이민족인 중국인과 러시아인들이 찢어서 나눠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주의 주체가 사라져버려 역사편입문제가 대두된 것입니다.  만주는 중국에 완전히 점령된 것도 아닙니다. 겨우 서만주지역만을 중국이 차지하고 있을 뿐 동부지역은 러시아땅이 됐습니다.  만주가 중국땅이 되었으니까 고구려를 포함한 만주의 역사가 중국사라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입니다.  실제로는 러시아도 나눠서 가지고 있는데 그 논리로는 만주역사가 러시아역사도 됩니다. 

미국서부 알라스카는 원래 소련땅이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고 알라스카가 미국땅이 되었다고 해서 소련의 역사가 미국역사가 됩니까?? 알라스카에 살던 소련인들은 다 사라지고 이제 러시아에만 그 원류가 남아있으니 과거 알라스카지역 소련의 역사는 당연히 러시아의 역사가 됩니다.  만주의 역사도 이와 똑같습니다.  신라의 왕족과 발해족이 결합한 만주족의 역사 금나라-청나라는 이제 망하고 그 주체가 사라졌으니까 만주의 역사는 그 원류인 신라-한국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http://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62706
seharu77777 13-06-08 00:04
   
저도 서라벌 님 의견에 동조하는 부분이 왕가만 한국인었다고 해서 그 나라가 한민족이다라는 논리는 안맞구요. 민족 공동체 의식이 국가 전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예로 원나라를 중국의 역사로 삼는 중국인의 입장은 지배층이 몽골족이었지만 대다수의 인구는 한족이었고 그 문화 기뱐 역시 중원의 것이아라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단지 다민족의 일부가 잠시 중원의 지배세력이었을 뿐 그 이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진족의 역사도 고려 조선의 입장에서만 보면 배타적인 국가이지만 그 이전 삼국시대 역시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 또한 동일하게 배타적인 입쟝이었을 수 있다고 한다면 관점이 비슷하게.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삼국을 하나로 묶는 것은 글쓴이가 말한것처럼 동일 혈통 계열이고 같은 고조선의 문화를 공유한 측면에서 동일 역사권으로 접근하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서라벌 13-06-08 00:13
   
잘 알겠는데요, 여기서 중국이 원나라를 자기 역사로 한다는 것이랑은 문제가 좀 다르다고 봅니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오랫동안 내려온 역사 인식입니다. 중국이 원나라를 자국의 역사로 생각한다? 이건 현대에 들어와서 동북공정처럼 지들 유리하게 생각하는 방식이죠. 그 당시에는 몽고라는 이민족에 지배당했다고 생각했지 다민족의 일부가 잠시 지배세력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애초에 청말기에 멸만흥한이란 구호가 나온것 부터가 그때까지만 해도 걔네들 역사인식이 정상적이었다는 겁니다.
그리고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는 동일하게 배타적 입장이 아니었는데요. 삼국 모두 고조선에서 갈려나온 계파이구요 삼한의 하나라고 보았습니다. 치열하게 싸우기는 했지만 서로 동질 의식이 있었구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후대에 삼국이 하나로 통합되어 역사가 합쳐졌다는 것이죠. 금이나 청이 우리나라와 합쳐진 것은 아니잖습니까? 동일혈통이고 같은 고조선의 문화를 공유했다?? 만약 진짜 그렇다면 사서에 금이나 청에 대해 배타적으로 기술되어 있지 않겠죠.
도밍구 13-06-08 00:41
   
궁금한 질문이 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삼국은 그 당시에 서로에 대해 언어만 조금 비슷한 그냥 서로 다른 나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나요? 2013년 현재의 여러가지 갈등들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따로 현존 한다고 가정한다면 보다 수월하게 설명되지 않습니까? 전 역사에 대해 깊이 공부해 보지 않았지만 오늘날 들려오는 여러 불협화음들로 부터 우문을 드려봅니다.
     
눈틩 13-06-08 00:53
   
위에 서라벌님이 말씀하셨던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의 동질성에 대해서요.
글쎄요. 고구려와 백제는 같은 계열에서 파생된 국가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동질성이나 유사성은 발견됩니다. 문화양식을 봐도 그렇고요. 그러나 백제와 신라의 관계는 꽤나 이질적입니다. 일단 백제와 신라는 견원지간처럼 거의 앙숙관계였고요. 백제가 신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고 신라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당나라에게까지 가서 동맹을 맺자고 한 것이죠. 또한 당시 신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아우르는 삼국 통일을 원했다기 보단 백제를 멸망시키는게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요즘 드라마 대왕의 꿈을 보면 마치 신라가 '삼한일통'의 꿈을 위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다소 미화된 부분이고요. 고구려는 다소 배제하고 신라는 백제와 엄청난 앙숙간이었습니다. (드라마만 봐도 거진 백제와 신라 이야기만 주류로 나옵니다)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의 대다수의 유민과 지배층이 일본열도로 건너간 점만 봐도 신라와 백제가 동족감 내지는 동질감이 강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백제는 한반도 백제땅을 포기한 대신 열도에 건설한 분국으로 모조리 건너간 것이고요.

다만, 신라가 이렇게라도 통일을 한 것을 역사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어쨌든 통일이 되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영국을 보면 영국이라는 한 국가의 이름에 4개의 왕국이 포함된 꼴이고,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민족성도 다를 뿐더러 각각 자기민족에 대한 이기심도 존재합니다. 또한 중세유럽의 프랑크왕국이 동프랑크, 서프랑크, 중프랑크 왕국으로 나뉜 후 수백년 간 지내다가 결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라는 완전히 다른 국가로 현재 나뉘어버렸죠.
만약 당시 계속 삼국이 수백년간 더 대치상태가 지속되었고, 각각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더 뚜렷한 독자성을 지녔다면 지금 한반도는 완벽한 민족성을 가진 국가로 탄생되지 못했을 수도 있죠.
          
도밍구 13-06-08 01:11
   
늦은시간 답변 감사드립니다. 사실 올라오는 글들에 대한 저의 흥미는 큰것에 반하여 지식은 그렇지 못하여 답답한 질문일지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최근 5000년 동안에 백제, 신라와 비슷한 역사적 배경과 그로인한 갈등이 오늘날 까지 지속되고 있거나 아니면 그러한 갈등이 해소 또는 잊혀진 사례들을 알고 계신 것이 있나요? 제가 잘 모르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 라든지 머 이러한 식으로요. 다시 답변을 읽어보니 프랑크의 경우가 흥미를 끄네요. 즉 제 질문은 만약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같이 완전 독립이 되지 않고 갈등이 소멸된 예가 있나요? 이것입니다.
               
눈틩 13-06-08 01:19
   
글쎄요...
신라삼국통일후 대다수의 고구려, 백제 지배층들은 빠져나갔기 때문에 신라사회에 큰 마찰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는 발해로 다시 모이고, 백제는 일본열도로 대거 이주했으니까요. 또한 신라의 포용정책도 민족융합에 큰 몫을 했구요.
지금의 경상도, 전라도 지역갈등을 예시로 제시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지역갈등이 백제와 신라 때부터 내려왔다고 보기엔 좀 무리가 있는 것 같고, 정치적 이유로 인해 역사적 문제까지 거론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님께서 궁금해하시는 예시사례는 잘 모르겠네요. ^^..
                    
도밍구 13-06-08 01:26
   
답변 감사합니다.
서라벌 13-06-08 02:07
   
덕배님아, 댓글 너무 길어져서 아래에다 쓰는데요. 동아시아에서 한 나라의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그 나라가 망한 뒤에 한다는 구절.. 맞는 말이긴 한데 그게 왜 고려냐 이거죠. 역사를 계승한 나라가 그 이전 왕조의 역사를 기술하는 거지 아무 나라나 다 기술하는 게 아닙니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전부 조선왕조가 기술한 역사서인데 이는 조선이 고려에서 나왔으니까 기술한거죠. 금이랑 고려랑은 아주 다른 나라인데 고려가 연관도 없는 금사를 왜 편찬하냐 이겁니다.
서라벌 13-06-08 02:10
   
그리고 아랫글에서 금, 청의 역사적 주체가 사라졌으니 그 원류인 우리가 역사를 흡수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글 자체가 오류네요. 애초에 저 글이 성립되려면 금청사가 한국사라는 증명 자체가 선행되어야 할 문제죠. 아무 연관이 없는 나라 역사를 그 주체가 사라졌다고 해서 흡수한다?? 그것이야말로 동북공정이 아닙니까? 앞뒤가 뒤바뀌어 버린 경우죠. 먼저 금청사가 우리 역사에 편입될 만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어야 그 논리가 성립하는 거죠. 그리고 만주족은 사라진 게 아닙니다. 여전히 중국에 있습니다. 다만 중국에 흡수, 동화 되었을 뿐. 만주족 역사를 우리가 흡수하려면 우리가 적어도 중국처럼 말 그대로 흡수시켜 버리거나 아니면 우리가 금청사를 우리 역사로 흡수할 만한 정당성을 먼저 성립시켜야 될 겁니다.
서라벌 13-06-08 02:15
   
특히 영국여왕에 빗대어 서술한 글은 정말이지 어처구니가 없군요. 말 그대로 현재 만주족이 자신들의 주체를 잃어버렸으니 금태조의 먼 조상이 신라인이란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 역사를 먹어도 된다는 의미인데.. 역사가 어느 누구의 소유물입니까? 마치 침략국이 정복 전쟁으로 땅따먹기 하는 식으로 역사를 비유하는군요.
역사란 기록이요, 전해져 내려오는 하나의 전통이 아닙니까? 전통적으로 우리는 여진족을 별개의 민족으로 보고 금, 청도 별개의 나라로 보아왔는데 신라인이 한명 끼어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 역사를 먹어야 한다니.
역사라는 것이 때에따라 그렇게 맘대로 입장 바꿀 수 있을 만큼 가벼운거라고 저는 생각지 않습니다.
덕배 13-06-08 02:23
   
'님아'라는 표현 자제 부탁드리고유.

신라왕족 한명의 얘기는 아니고유. 금나라를 운영한 주체인 신라왕족과 여진인 그리고 발해인에 대한 문제라고 봐야된다고 생각해유.
금을 건설할 때 발해라는 대제국을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발해인을 대거 등용했었쥬. 즉 스스로 고구려 사람이라고 칭하고 있는 발해인이 금의 국정운영에 대거 투입되유.

여진인과 조선반도의 신라인 나중의 고려인은 민족공동체라는 중국교수의 말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해유.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으니까유. 고려가 금사를 편찬해도 이상할 것이 없쥬.

서라벌님 말대로 만주족은 여전히 중국에 있쥬. 그리고 러시아에도 있고유. 중국에 있는 만주족은 중국에 흡수 동화되었쥬.
그럼 그 사람들은 껍질만 만주족인 거쥬. 미국 백인계통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사람들이 독일계통이에유. 원래는 독일말을 쓰는 독일사람.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 동화되어서 영어를 쓰고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하지유. 이 사람들을 독일인으로 볼 수 있을까유? 만주족도 본인을 중국인이라고 하고 자신의 말도 잃어 버리고 동화되어 버렸쥬.
그리고 러시아에도 만주족이 있어유. 중국이 만주를 다 차지한 것도 아닌데 만주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 한다는 거쥬. 러시아는 만주가 자신의 역사라고 주장하지 않아유.
따라서 신라의 왕족과 발해족이 결합한 만주족의 역사 금나라-청나라는 이제 망하고 그 주체가 사라졌으니까 만주의 역사는 그 원류인 신라-한국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거쥬.
     
서라벌 13-06-08 02:35
   
저기요, 계속 같은 말이 반복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건 고려가 금나라를 자국 역사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오랑캐로 인식한 여진족인데 고려가 금사를 편찬할 이유가 없죠. 신라왕족이니 발해인이니 하는 건 어디까지나 현재 우리의 새로운 해석이고, 당시 고려는 그런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리고 금청사가 중국사인 것은 현재로서 방법이 없으니까 그렇다는 거지 저도 거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금청사는 만주사라고 따로 분류해서 보는 게 옳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그 역사를 편입시킨다는 주장도 아니고 그저 잃어버린 옛 만주의 역사 정도로 보자는 거죠. 다만 현재 만주족이 아무 힘도 없으니 중국의 깡패짓을 누가 막습니까? 더럽고 부당한 처사이나 어쩔 수 없죠. 어쨌든 현재로서는 중국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도 금청사는 중국사로 가르치니 말이죠.
그리고 님아 가지고 지적하기 전에 본인 사투리나 신경 쓰시죠? 거 진짜 거슬리거든요.
누가 글을 쓰는데 사투리 씁니까? 내 인터넷 하면서 사투리 쓰는 사람은 처음 봅니다.
남 지적 하기 전에 본인 사투리나 신경 쓰세유.
          
덕배 13-06-08 02:44
   
님아는 상대를 낮춰 부를 수도 있는 말이고 한국어 사전에도 안나오는 말이에유.
사투리는 한 지역의 언어습관과 관련된 일이지유. 적어도 저는 서라벌님을 낮추어 대하거나 낮추어 부르지 않았으니까유.

같은 이야기가 반복 되는 거 같으니 토론은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유.
만주의 역사는 고조선부터 적어도 원나라 전까지는 우리 민족의 역사로 편입해도 문제가 없다고 봐유. 지금 굿잡스님이 글 올린 거 한번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유.
               
서라벌 13-06-08 02:54
   
님아가 왜 상대를 낮춰 부르는 말인지요? 님이라는 말 자체가 상대를 높여 부르는 말 아닙니까? 덕배님은 높임말이고 줄여서 쓰는 님아는 낮춤 말입니까? 잘못된 인터넷 용어를 바로잡으려 하신다면 따르겠으나 사투리 쓰는 것도 옳은 것은 아니죠. 사투리는 실제 언어생활에서나 쓰는거고.. 누가 글을 쓰는데 사투리를 씁니까? 어디 교과서나 논문이나 사투리로 쓰는 거 봤나요? 원래 글은 표준어로 쓰는 게 원칙입니다. 사투리 부터 바로잡고 남의 말투 지적하시기 바랍니다.
                    
덕배 13-06-08 03:02
   
여기서 '님'은 인터넷상에서 '○○○ 님'처럼 대상을 높여 이르는 것을 앞의 이름을 생략하고 쓴 것으로 보이며, '아'는 '손아랫사람'이나 '짐승'을 부를 때 쓰는 호격 조사입니다. 이에 따르면 '님아'는 높임말과 낮춤말이 기형적으로 어울린 경우라, 적절한 표현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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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쓸 때 사투리를 쓰지 말라는 것은 비표준어권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고 생각해유.
사투리는 언어표현의 다른 예이고 '님아'라는 표현은 언어표현의 잘못된 예이기 때문에 비교상대가 될 수 없어유. 제가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안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쥬.
                         
서라벌 13-06-08 03:10
   
아 진짜 짜증나게 꼬치꼬치 따지시네요. 네 더러워서라도 님아라는 표현 자제하겠습니다.
내가 살다살다 인터넷상에서 님아라는 표현 썼다고 손아랫사람 운운하는 건 처음 봅니다.
그리고 사투리가 언어표현의 다른 예인 건 맞는데 글을 쓰는데 있어서 사투리를 쓰라는 건 듣도보도 못한 말입니다만? 원래 글은 표준어로 쓰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특수한 상황이 아닌다음에야. 인터넷을 특정 지방의 사람만 사용합니까? 모두가 사용하는 곳이 인터넷이란 환경 아닙니까? 그렇다면 표준어를 쓰는 것이 옳지요.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왜 표준어 씁니까? 모두가 보는 방송이기에 표준어를 쓰는 것이죠. 인터넷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방송에서 토론을 하는데 사회자나 토론자가 사투리 쓰는 거 본 적 있습니까? 따지고 보면 현재 우리도 토론을 하고 있는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사투리 쓰는 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씹어먹는게 아니고 뭡니까? 인터넷도 방송처럼 공적인 장소로 구별을 해야죠. 이 사투리 저 사투리 남발하면 혼잡해서 어쩝니까? 글을 쓰는 데 있어서는 비표준어권 사람에 대한 배려 운운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시정해 주시죠.
                         
덕배 13-06-08 03:16
   
서라벌님.
지금 제가 사투리를 쓴다고 해서 제 말이 이해가 안되는 건 아니쥬?
인터넷토론은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지유.
지역이나 나이, 성별, 소득수준에 구애받지 않고 말이쥬.
그런 자율성을 '표준화'라는 미명하에 구속할 수 없는 거에유.
적어도 제가 토론중에 서라벌님에 대한 존중은 지켜왔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유.
좋은 밤 보내시고 다음 토론도 기대할게유.
                         
서라벌 13-06-08 03:24
   
저도 님아라는 표현을 썼지만 결코 당신에 대한 존중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당신 혼자서만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 인터넷 토론은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고, 사투리 써도 상관은 없습니다. 다만 표준어를 쓰는 게 '예의' 라는 거죠. 어쨌거나 인터넷 공간은 어떤 특정 지역이 아니고 어찌보면 공적인 공간 아닙니까? 이건 뭐 전라도 사람은 전라도 사투리 쓰고, 경상도 사람은 경상도 사투리 쓰고 그래야 됩니까? 자유로운 공간이니까? 당신이 사투리 쓴다고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닌데 심히 거슬립니다. 그리고 자율성을 아무대나 갖다 붙이지 마세요. 제가 아까 방송에다 비유를 들었다시피 인터넷이라고 사투리 남발하는 건 예의라고 보십니까? 당신은 나를 존중해 왔다고 하지만 짜증나는 사투리 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전혀 존중이 아니네요. 겉으로 말은 참 곱게 하는 것 처럼 보이는데 가만 보면 당신도 끝까지 자기 잘났다는 식이지 남의 의견 수용할 생각은 눈꼽 만큼도 없는듯요. 다시 말합니다만 인터넷상에서 사투리 쓰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다만 예의상 표준어 써주셨으면 좋겠네요. 실질적인 언어생활이 아닌 다음에야 원래 글을 쓸 때는 표준어 쓰는 게 올바른 겁니다.
                         
덕배 13-06-08 03:29
   
표준어 강제사용의 폭력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네유.
국가든 개인이든 언어 생활에 대해서 누구도 강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유.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유.
좋은 밤 보내시고유.
                         
서라벌 13-06-08 03:36
   
강제하자는 게 아니고 표준어 쓰는 게 예의라는 말입니다. 이해력이 심히 부족하신듯 하네요.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왜 표준어 씁니까? 그거나 좀 얘기해 보시죠. 방송이나 인터넷이나 모두가 쓰는 공간 아닙니까? 사투리 쓰는 것을 강제적으로 제한하지는 않는다 하나 그게 예의 아닙니까?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글을 쓰는데 사투리로 표현하는 별난 인간은 당신이 처음인데요? 사투리 쓰는 사람들도 거의 인터넷상에서는 표준말 쓰는데 고집 참 질기십니다. 무슨 컨셉이신가?
언어생활에 대해서 강제할 수 없다면 님아는 왜 쓰지 말라고 하는 겁니까? '-아'가지고 되도 안되는 헛소리 하려면 집어 치우시고요. 그럼 아 뺴고 님이라 하면 되겠군요.
나한테는 별별 언어학자나 내세울 접근법으로 음소단위까지 분석해 가면서 따져놓고서는 내 눈에 거슬린다는 사투리는 표현의 자율성 운운하면서 똥고집이시네. 당신 같은 사람이랑은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하고 싶지 않습니다. 끝까지 저 잘났다는 데에야..
                         
덕배 13-06-08 03:40
   
"이해력 부족, 똥고집,  저 잘났다는 데"
이런 표현 기분 나쁘다는 뜻으로 알아 들을게유.
저는 아는 것도 부족하고 잘난 것도 없어유. 다만 제가 아는 사실을 가지고 가능한 충실히 토론에 임했을 뿐이고유.
사투리와 하댓말은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것만 말씀드릴게유.
다름과 틀림의 차이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네유.
                         
서라벌 13-06-08 03:43
   
진짜 이해력 개후달리네. 사투리나 하댓말이나 예의라는 측면에서는 같은 말 아닌가?
내가 당신에게 예의를 지키면 당신도 예의 좀 지키쇼. 끝까지 사투리 고수하고, 자율성이니 이런거로 정당화 시키지 말고.
                         
덕배 13-06-08 03:55
   
사투리와 예의는 별개의 문제에유.

말이 짧아지시는 거 보니 더 이상 토론은 힘들 것 같네유.
                         
서라벌 13-06-08 04:20
   
사투리와 예의가 왜 별개인데유? 공적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표준어 쓰셔야 하는 거 아님유? 우리가 공인도 아니고 여기 이 자리도 공적인 자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인터넷이라는 공간이 만인이 쓰는 공간인데 표준어 정도 써주는 예의는 어따가 팔아먹은규? 표준어 쓰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유? 끝까지 똥꼬집 부리면서 굽히지 않는 당신 말버릇에 기가 다 차는구먼유.
서라벌 13-06-08 02:42
   
덕배님 주장대로라면 영국인들이 미국사를 자국 역사로 인식해도 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금나라가 우리 민족이랑 연관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나 김함보가 만주로 나간 그 후부터는 우리 역사에서 이탈한거죠. 미국이 독립선언을 하고 별개의 국가가 된것처럼. 그리고 역사는 영토처럼 물질적인 것도 아닌데 금청사를 계승할 나라가 없어서 무턱대고 한국사에 편입해도 된다는 주장은, 나중에 어떠한 사건으로 미국이 멸망했을 때 영국이 미국사를 먹어도 된다는 말이랑 같은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지요? 미국이 미래에 모종의 사건으로 멸망한다 칩시다. 더 이상 미국이란 나라의 역사를 이어갈 주체가 없어요. 그럼 그 뒤에 갑자기 영국이 나서서 미국은 오래전에 우리에서 갈라져 나갔으니 미국사를 이어나갈 주체가 없는 이때 미국사는 영국사에 편입시켜야 옳다, 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으십니까?
     
덕배 13-06-08 02:48
   
제 글을 잘못 이해하신 듯 해유.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를 예를 들어 생각해봐유.
미국은 영국으로 부터 독립했쥬. 그리고 그 독립성을 이어가유. 그러니까 미국이 망하더라도 영국은 독립이후의 미국에 대해서 자신의 역사라고 말할 수 없어유.
그러나 캐나다와 호주는 사실상 독립국가이지만 영연방을 지키고 있쥬. 그래서 영국이 포괄적으로 호주나 캐나다에 대해서 자신의 역사로 포함시킬 수 있쥬.
영국이 망한다면 같은 연방인 호주나 캐나다가 자신의 역사로 편입해도 큰 문제는 없는 것 처럼유.
만주는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져 오는 우리 민족의 땅이쥬. 신라왕족 혼자서 세운 금나라가 아니라 발해세력과 여진족 신라왕족이 함께 세운 나라쥬.
만주에서 전혀다른 민족이 갑자기 생겨나서 만주를 통일하고 송나라를 치지는 않았다는 거에유.
          
서라벌 13-06-08 02:59
   
제가 계속 같은 말 하게 만드는데요, 금나라를 세울 때 어딜 신라 왕족이 개입했습니까. 그저 아골타 조상 중에 한명인 김함보 한 사람이 신라인일 뿐이지. 이미 김함보 이후로 수대가 지나서 아골타가 나왔고 그런 아골타가 금을 세웠는데 신라의 영향력이랄 것이 무에 있습니까?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현대의 새로운 해석이며,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은 해석이죠. 당대에 고려는 금을 완전 별개로 보고 여진족 역시 오랑캐로 보았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 금나라에 집착이신지 모르겠습니다. 송나라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고려는 오히려 친송이었지 금나라와는 가까이 하려고 하지도 않았죠. 근데 단지 금태조의 조상중에 신라인 한명 끼어 있었다고 우리 역사라? 금이 고구려나 신라를 계승했다고 천명한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근거가 너무 부족합니다.
               
덕배 13-06-08 03:06
   
지금까지 제시했던 근거에 대한 반박부터 제대로 하시고 주장을 해 주세유.
금의 건국은 신라인 한명의 건국이 아니라 신라왕족과 여진족 발해인이라는 민족공동체가 주체적으로 구성되어서 이루어 졌으니까유.
금사에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인정하지 않으시면 더 이상 토론은 진행하기 힘들겠쥬.
                    
서라벌 13-06-08 03:12
   
그니까 신라인 왕족 누구요. 나는 김함보 이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게다가 김함보가 직접 금을 세운것도 아니고 아골타의 몇대조 씩이나 되는 조상이죠. 근데 무슨 신라왕족이 나옵니까? 신라왕족 누구가 개입했는지 갖다 대 보시죠. 그리고 발해 유민이라고 하셨는데 발해 멸망시기와 금의 건국 시기를 보면 이미 발해 유민이라고 할 사람들이 있기나 한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발해 유민이라고 할 사람들은 요나라에 흡수되었을 텐데 말이죠. 차라리 요나라 유민이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금이 고구려 계승의지를 내비친것도 아니고. 당신이나 제대로 된 반박을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몇번이나 같은 말 되풀이 하게 하지 말고.
                         
덕배 13-06-08 03:26
   
금나라 시조가 왜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을까유?
발해 멸망 후 발해 유민들은 모두 사라졌을까유?
금은 정치체제등 발해(즉 고구려의 후예)를 많이 계승하지유.
같은 말 반복하게 하시는 건 서라벌님 같으시네유.
                         
서라벌 13-06-08 03:31
   
단순히 정치체제를 계승하는 것으로 발해의 후신이 됩니까? 정치체제를 어떤식으로 어떻게 계승했습니까? 그런식으로 따지면 고려의 정치체계는 당의 체계를 받아들였으니 고려는 당나라 후손인가요? 그건 근거로 갖다댈 만한 것이 아니라고 보는데요. 그리고 단군에게 제사지낸 것은 뭐 그리 자꾸 내세우는지. 조상이 같다고 그 후손까지 같은 역사의식을 가진답니까? 당신 말대로 단군에 제사지내고 발해유민이니 뭐니 많았는데 왜 고려는 그들을 철저히 이민족으로 치부했는데요. 그게 가장 큰 문제 아닙니까? 제 주장의 뼈대이고요.
                         
덕배 13-06-08 03:36
   
그건 맞지유. 조상이 같다고 후손까지 같은 역사의식을 안가질 수도 있지유. 지금의 조선족처럼.
그런데 말이에유. 금은 금사에 자신이 신라계통의 후예라고 밝히면서 단군에게 제를 올려유.
후궁으로 발해인을 들이고 정치제도를 발해식으로 많이 도입하고유. 지배층인 여진인들은 온돌과 씨름, 초가집에서 살고유. 말도 어느정도 통하고유.
완전히 이민족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유?
                         
서라벌 13-06-08 03:41
   
자, 이제 정리가 되는군요. 조선족 얘기 잘 꺼내셨네요. 조선족은 분명 같은 민족이지요. 하지만 다른 엄연히 외국인입니다. 앞으로 조선족이 만들어가는 역사는 그들 만의 역사이지 우리의 역사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예전에 역사를 공유했던 적이 있을 뿐 별개의 역사적 존재가 된 겁니다. 금과 우리가 같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으나 같은 역사 인식을 가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신라계통의 후예이고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고 나발이고 걔네들은 걔들이고 우리는 우리라는 겁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으되 결국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 겁니다. 미국이 영국에서 나왔으나 독자적인 길을 가는 것처럼. 이해가 되십니까? 게다가 금나라에 신라 후예만 있나? 아골타만이 신라인 김함보 한 사람만 끼어 있을 뿐이고 그 후에 다른 여진족이랑 섞이면서 어찌 되었을 지 모르는 데 계속 혈통만 운운하니 무슨 혈통 만능주의 이신가? 결국 고려나 금이나 서로 동질의식을 갖지는 못했는데 족보 아무리 따져서 뭐합니까? 어찌됐던 고구려, 발해의 정통성을 계승한 건 고려인데. 지금 하는 말은 고려의 정통성을 거부하시는 발언인가? 금나라 역사 좀 먹어보겠다고 별 짓을 다하십니다그려.
                         
덕배 13-06-08 03:52
   
국가는 혈연만 가지고 정통성을 이어가진 않지유.
민족적 동질성과 연속성을 이어가야 되는데, 조선족의 경우에는 혈연적 동질성은 인정되나 이미 중국에 동화됨으로서 연속성은 끊기게 되쥬.
하지만 금은 달라유.
민족적 동질성도 가지면서 발해를 어느정도 계승하며 단군을 모심으로서 한족과 차별성을 가지고 민족적 연속성을 이어가유.
단군에게 제사 지낸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쥬. 이민족이라면 절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낼 이유가 없겠쥬.

고려와 금은 형제국 혹은 금이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 칭하며 연대의식을 가지쥬.
후에 금이 송을 쳐서 수도를 빼앗고 악비가 겨우 방어해내면서 동북아 강자가 되자 고려가 정통성과 자존심 때문에 금을 배척하게 되고유.
그리고 금이 동이족의 역사이다라고 인정하는 게 고려의 정통성을 빼앗는 지는 이해가 안되네유. 둘 다 발해를 계승할 수 있지유. 고구려와 백제가 부여를 계승한 것 처럼.
서라벌 13-06-08 03:58
   
도대체가 싸이클이 변화되지를 않는구먼. 그놈의 민족적 동질성은 금나라 혼자만 일방적으로 가진겁니까? 짝사랑 하듯이? 고려는 그런 적이 없는데.. 단군에 제사지냈다? 그것으로 동일민족이다? 고조선 시기에는 여러 민족들이 고조선이라는 하나의 나라에 묶여 있었으니 그 후손들이 제사 지내는 거야 당연하죠. 다만 고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그리고 발해를 어느정도 계승했다라.. 금이 발해를 계승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습니까? 다만 정치체제를 정비하는 데 있어 어느 정도 참고하고 구성원 중에 발해인이 조금 있었을 뿐이지. 고려와 금이 형제국 내지는 부모의 나라라고 하는데 이건 금이 일방적으로 그런 태도를 취한것이죠. 특히 부모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아부성 발언이고.. 고려가 금이 강성해지자 자존심 때문에 배척했다고 하는데, 금나라 등장하기 이전에 여진족 시절부터 고려는 여진을 배척했습니다. 태조 왕건이 여진족은 믿을 만한 놈들이 못되니까 상종을 하지 말라는 말을 남겼는데 무슨 얼어죽을 부모의 나라고 형제의 나라입니까.
     
덕배 13-06-08 04:02
   
지금 본인이 쓰신 글의 모순점을 잘 살펴 보세유.
좋은 밤 되시고유^^
          
서라벌 13-06-08 04:03
   
당신이 쓴 글의 모순점이나 잘 살펴 보세유. 좋은 밤 되시고유 같은 개헛소리나 하지 마시고유.
입 바른 선비태도 하면서 사람 비꼬는데 아주 능숙하시네유.
               
덕배 13-06-08 04:08
   
그래도 몇 시간동안 토론한 상대에게 '개헛소리' 이런 말은 자제해주시고유.
서라벌님께서 워낙 강고하게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나
차후 사학계에서 받아들여지리라 생각해유.
물론 이건 제 생각이고유.
서라벌님과 토론하면서 제가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네유.

다 우리나라 잘 되자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생각이 다를 뿐이니께유.
진심으로 드리는 말이니 좋은 밤 보내세유.
                    
서라벌 13-06-08 04:14
   
진심같은 소리 하시네유. 좋은 말로 나가다가 좋은 밤 되라는 말이 나왔다면 모를까 당신 같으면 본인이 쓴 글의 모순점이나 잘 살펴보라는 글 밑에 쓰여진 그 문구를 보고 참 진심으로 받아들이겠네유. 난 당신같이 아닌 척 하면서 사람 비꼬는 사람이 제일 혐오스러워유. 그러니까 되도 않는 친절 코스프레는 자제해 줬으면 좋겠네유. 그리고 차후 사학계에서 받아들여지리라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당신의 생각일 뿐이에유. 당신 말 그대로. 다만 내가 한 가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이따위 빈약한 증거와 논리로는 어불성설이란 말이쥬. 나 같은 사람도 납득시키지 못할 논리를 가지고 제대로 된 역사학자들을 어떻게 납득시킬라고?
서라벌 13-06-08 04:03
   
아까부터 당신이 주장하는 바는 전부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합니다. 사서에 금이 고구려 내지는 발해를 계승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고 그저 정황상 그런 해석이 나올 뿐.. 발해나 고려처럼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겁니다.
신라계가 개입하고 발해계가 끼어들고 좋다 이겁니다. 근데 그래서 금나라가 공식적으로 우리가 신라를 계승했다, 발해를 계승했다 한 적이 있습니까? 또한 고려가 그것을 인정했고요?
어찌됐건 간에 전부 그저 그럴듯한 해석일 뿐 증거는 턱없이 빈약하며, 아직 학계에서 금청사를 한국사에 편입시킨다는 것은 씨알도 안 먹힐 소리입니다. 헌데 글 쓰는 것만 보면 무슨 절대의 진리인양 말씀하시네요.
서라벌 13-06-08 04:11
   
애초에 여기 당신이 주장한대로 금나라가 한국사에 편입될 정도로 연관이 있었다면 수백 년 동안 철저히 이민족 역사로 치부할 리가 없지. 유득공이 발해고를 왜 저술했나. 발해에 대한 연구를 하다보니 우리가 간과했던 발해사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로 인정이 된 것이지. 당신 말대로 금나라가 신라나 발해와 연관이 깊었다면 유득공이 발해고를 저술한 것처럼 왜 금나라를 우리 역사로 보는 시각이 수백 년 동안 한 번도 없었을까? 그리고 현 학계에서는 왜 인정받지 못할까? 어디까지나 금청사를 한국사로 편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역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시각이고 해석일 뿐임. 그리고 종래의 내려오던 역사적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려면 그것을 뛰어넘는 확실한 증거와 논리가 필요하고. 헌데 아직까지는 그것을 인정할 만한 연구 성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여기 글 써지는 걸 보면 단순히 조심스럽게 어떤 가능성을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서 마치 우리가 찾아야 하는 당연한 역사인양 글을 쓰고 있으니..
     
덕배 13-06-08 04:19
   
마지막으로 간략하게 말씀드리고 갈게유.

금나라를  왜 우리 '직계' 역사로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바로 '청나라' 때문이라고 생각해유.
동이족이자 만주계인 청나라라는 적통자가 존재함으로 조선이 굳이 금나라를 직계역사로 인식하지 않아도 됐다고 생각해유. 고려의 경우는 정통성과 자존심 때문에 인정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유.
하지만 그 금과 청나라가 사라지고 중국에서 문화혁명 때 멸만흥한(滅滿興漢)이라고 하며 청나라나 이민족의 역사를 지웠었쥬. 만주족들은 중국에 동화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고유.
결정적으로 동북공정으로 니꺼내꺼 전부 내꺼라는 주장을 중국이 하기 시작하기에
우리는 같은 동이족이면서 민족공동체였던 만주지역을 우리 역사로 편입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된 거 같아유.
서라벌님 말대로 좀 더 충분한 근거들이 필요하지유. 그러기 위해서 가능성을 열어놓고 좀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된다고 생각해유.

오늘의 마지막 댓글이네유.
많이 배우는 토론이었어유.
          
서라벌 13-06-08 04:27
   
끝까지 자기 주관이시네. 청나라 없었어도 우리 민족 역사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인데.
청나라 이전엔 여진족 없었습니까? 청 이전에 중국에 명이 존재할 때도 조선은 여진족을 오랑캐 취급을 했는데 얼어죽을 청 때문이라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 그리고 자꾸 고려가 정통성과 자존심 때문에 그랬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가져 오시는데, 두 가지 이유에서 말이 안 됩니다. 첫째는 금나라 이전에 일개 여진족 시절이었을 때도 고려는 그들을 우리 역사의 한 갈래로 인정하지 않았고 둘째는 정통성과 자존심 따져서 인정하지 않았으면 발해는 왜 인정한 것인지? 따지고 보면 발해야 말로 고려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나라인데? 당시 발해의 국명은 고려였는데. 따지고 보면 고려가 둘 씩이나 존재하는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고려는 발해를 인정하고 발해 왕족을 대우해 줬는데 금나라는 왜 그렇게 안 해줬는지요? 완벽한 모순 아닙니까? 그리고 제발 동북공정 얘기는 꺼내지 좀 마시죠. 이거랑 관련 없는 얘기니까. 금청사가 한국사가 아니어도 동북공정은 엄연히 잘못된 사관입니다. 결국 동북공정 때문에 같은 식으로 맞짱 뜨자는 말 밖에는 안 돼는 거임. 그리고 같은 동이족이라 하는데.. 동이족에 민족 구성원이 한 둘입니까? 애초에 동이족이라는 구분 자체가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중원이라 하여 장성을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애들은 전부 뭉뚱그려서 동이족이라 한 건데 철저히 중화사상에서 나온 동이족 개념을 우리 민족 전체와 결부시키려는지? 우리는 우리 민족일 뿐 동이족이 아닙니다. 중국이 규정한 동이족의 한 구성원일 뿐.
독산 13-06-08 11:10
   
서라벌/ 저는 덕배님과 서라벌님의 금청사 문제를 한국사로 끌어들이는 문제에 대한 토론을 흥미있게 보았습니다.
어느 쪽 견해에 설지는 유보하되 '님아'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한 마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라벌님의 말대로 '님'이라는 표현은 존칭어가 맞습니다. 하지만 '-아'라는 호격조사가 붙음으로 인하여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르는 말로 변질되었습니다.
애써 '님'이라는 존칭을 사용하고도 '-아'라는 호격조사를 붙여 사용함으로써 덕배님이 듣기 거북해 하는 호칭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철수야' '영희야''길동아'에서 보듯 '아/야'는 아랫 사람을 부르는데 사용하는 호칭이기 때문입니다.
선행하는 음절의 받침 유무에 따라 아/야로 달리 사용될 뿐입니다.
     
패닉러브 14-02-06 12:16
   
언어학자 갑툭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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