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시기는 민족운동, 민족자주, 민족계몽 노선이 활발하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한반도로 갖힌 사관이 아니라, 대륙-특히, 고토 만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던 시기이죠.
더불어, 일본도 만선사관 연구도 활발하던 시기입니다- 현재도, 한국보다 일본의 고구려, 발해, 금청, 거란 연구가 더 활발해요. 다 이때 싹이 튼겁니다.
아울러, 식민지배하의 학자들은, 민족정신을 일깨우려 위대한 고구려에 이상향을 가졌고
그때, 광개토대왕 전기물, 이순신 장군전, 을지문덕전,, 이런 위인전이 시중에 많이 인기를 끌었음..
신채호는 꿈에서, 누르하치를 만났다느니, 이런 글도 써요..
난세-어지러운 시기때, 학문은 더 번창한다고.. 춘추전국시대때 공자니 노자니 다양한 학문업적이 나왔고
위진남북조때 청담사상이 유행하며, 현실 도피적인 학파가 더 유행했던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일제치하 어두운 시대에
일종의 희망이라면 희망이고, 현실도피이자 이상향에 대한 향수로
북방사 학문영역이 개척된 거라고 보면 됨..
더구나, 당시 일본에 대항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햇기에,
중국쪽과 연관성이 있는 금청사도 손댄것임.
북한이 중국보고 혈맹국가니 어쩌니 하면서 아부질인 것처럼.
우리도 니들과 관련이 있단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