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삼국 중에서 제일 약소국임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 통일을 천명하였으며(여기서 실제로 얻은 영토에 대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삼국 통일을 천명했다는 것이다. 즉, 당시 시대의 사람들은 비록 나라는 달라도 ~(예시: 역사, 문화)는 같아. 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992년의 역사라는 삼국중에서 제일 오래 국가를 유지해갔다. 더구나 그 멸망도 매우 신사적으로, 타국의 침략과 왕위 찬탈이라는 멸망이 아니라 나라의 주권을 다른 나라에 이양하는 매우 신사적인 멸망이었다(일본의 강점과는 다르다&(1)). 그들은 그럼으로써 비록 자기네 나라는 멸망했지만 그들의 혈통과 권력은 유지하여 고려라는 나라에서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그들은 매우 기민함을 발휘하여 유럽의 게르만족 대이동 때의 프랑크족처럼 현명하게 새로운 사회를 맞이하였다. 고려 말기의 고지식한 선비들의 대부분이 고려장을 당한 것과는 매우 비교된다. 또한 그들이 그런 것을 한 것에도, 비록 자기네 나라는 망했지만 같은 민족이 세운 나라였다라는 생각이 있었다(왕건과 궁예(궁예는 신라 왕족)는 고구려의 계승을 자칭, 신라는 삼국 통일을 천명하였다는 점에 유의).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고려에 흡수되길 자진하였다.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이 되기도 하였고 외교적으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그 나라를 이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우습게 아는데, 당시 힘이 모든 것을 주도하던 시대에 있어서 신라같은 나라는 명을 오래 지속하기 힘든 법(약한데다가 영토도 극소하였다)이다(이 부분만으로도 신라가 얼마나 외교정치를 잘했는지 알수 있지 않은가). 만약 오래 명을 잇더라도 토욕혼국이나 제국이나 동단국처럼 기껏해야 괴뢰국으로 존재하는 것이 다였다. 신라처럼 약하고 작은 나라가 주변의 강국들의 아귀다툼에서 국가를 유지하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자국의 주권을 수호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세계의 그 어떤 역사를 보더라도 이런 나라가 없다.
땅덩어리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치켜세우는 것은 우스운 짓이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비교할 때, 누가 더 인지도가 높고 치켜세우는가.땅을 넓히는 것도 업적이지만 제일 중요하게 치는 업적은 바로 치정이다. 만약 한국인의 다수의 사람들을 놓고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중 한 분을 뽑으라 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세종대왕 님을 뽑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광개토대왕 님은 비록 우리의 울분을 풀어주고 땅을 크게 넓히는 통쾌함을 보이시며 나름 치정에서도 업적이 존재했다고 하나 그것은 결코 알렉산드로스 대왕 동급 초과로 취급받기 어렵다. 땅은 언제라도 다시 빼앗길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민족의 주체와 문화와 글이다. 그것은 결코 쉽게 땅처럼 이양하고 뺏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땅은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 문화는 창조하기 어렵다.땅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만약 당신이 신라를 땅의 크기를 두고 저울질한다면 그것은 매우 무지한 행위이다.
나는 한 번 더 강조한다. 신라는 내분(내가 이 글을 다른 곳에 올렸는데 일부 사람이 신라는 내분으로 망했다고 하더라. 그렇다면 후삼국 시대는 열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후삼국시대라는 말이 등장한 것 자체가 신라는 내분(신라는 그 내분이 발생하고나서도 70년이나 더 존재했으며 후삼국 시대가 열리고나서도 40년 뒤에 망했다. 내분때문에 후삼국시대가 열린 것이지 내분때문에 신라가 망한게 아니다. 내분때문에 망했다면 후삼국시대라는 용어가 따로 만들어질리가 없지 않은가(딴지를 걸고 싶은 사람은 후한말의 중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때문에 망한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으로 망한 것도 아니올씨요,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에 침입을 받아 멸망한 것도 아니올씨요, 그렇다고 해서 남의 나라에게서 주권을 이양하라고 강요받은 것도 아니올씨요, 왕위를 찬탈당해서 왕조의 대가 끊긴 것도 아니올씨요, 나라가 멸망해서 그 나라의 백성들이 핍박을 받거나 탄압을 받은 것도 아니올씨오다(오히려 새로운 사회를 환영하였다).
신라처럼 망한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조건에 대부분 속하지 않더라도 그중 하나, 남의 나라에게서 주권을 이양하라고 강요받은 것에 속할 것이기 때문이다(이 부분에서 별첨을 붙이자면 당시 신라와 고려는 매우 친밀한 관계에 놓여 있었으며 고려는 후백제의 신라 침입으로 부터 보호해주었지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비록 고려에게 나라의 주권을 이양하지 않으면 자멸할 것이 자명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당시의 신라왕이었던 경순왕이 쉽게 왕위를 포기했을까라는 점(결단력)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다&(2).
패권과 문화를 향유하였고 한국사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고 신사답게 역사속으로 사라진 나라는 바로 신라였다. 백제는 당나라와 신라에게 망하였고, 고구려도 당나라에게 망하였고, 발해도 거란에게 망하고, 고려는 왕위찬탈으로(이성계의 경우가 왕위찬탈과 비슷하여 그렇게 말했을 뿐, 정말로 그런 것은 아니다.) 왕씨가 대거 죽어나가 나라가 망하고, 조선은 일제의 강압과 제국주의에 의해 나라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겼고, 기껏하여 다시 나라를 세웠더니 고대와 같이 분열된 상태로 한만이 남았다.
고조선을 우리 역사에서 뺀다면 우리 역사의 절반은 모두 신라로 이루어져 있다.
신라를 자랑스러워 하라. 신라의 기적을 부정하지 마라. 신라를 무시하지 말아라.
신라는 고대의 슈퍼 파워(힘이 아니라 생존의 의미)였다.
내 말의 논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꼭 딴지를 거는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내 논점은 어디까지나 신라를 무시하지 말아라.이지 고구려나 백제를 폄하하거나 신라를 찬양하거나한 것이 아니다. 또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그것보다 밑으로 평가한 것도 아니다(내가 왜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예(땅)로 들었는지 생각해보길.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나는 표트르 대제를 예로 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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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심초사해서 말하는 것이다: 로마 제국의 예를 들지도 모르지만 로마 제국은 두 개의 왕조로 분열한 예가 있다. 그 외의 예가 있더라도 신라는 두 개의 왕조로 분열된 예가 없다.
나의 글을 곡해하지 말아라.
내가 말하는 것은 오직 신라를 무시하지 말아라.라는 것 뿐이다.
이 글을 쓰게된 이유는 토론방에서 신라에 대한 아쉬움 등을 들어내는 사람들을 보고 쓴 글이다.
마지막으로, 신라에 대해 나쁘게 왈가왈부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특히 땅크기에 대해서).
신라만큼 현명한 나라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그들은 비굴(비자주성)하더라도 민족의 혼을 사수하고 식민 영토가 아닌 그들 고유영토(지금의 경상도)의 대부분을(심지어 멸망 전까지도; 상대신라시대의 지도와 후삼국시대의 지도를 비교해 보자) 잃지 않았다. 이점은 실로 매우 놀라운 것이다. 그 어떤 나라가 있겠느냔 말이다. 이 말이 이해가 안되는가? 그럼 간단히 이렇게 이해하라. [신라는 그 도읍(금성, 지금의 경주)이 다른 나라에게 점령당한 예는 단 한 번도 없다. 992년의 역사동안. 그들의 뿌리가 담겨있는 금성이&(3).]
&(1)일제는 고종에게 국권 이양을 강요하였지만 &(2)와 같이 경순왕은 자의였다.
&(2)경순왕은 민심을 파악하고 스스로 회의를 소집하여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하였다.
&(3)그렇지만 금성은 한 번 후백제의 견훤에게 약탈당한 예(포석정에서 제사올리다 살해당한 불쌍한 신라왕)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