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 일제 강점기, 우리 사회의 달라진 것들 - 서울, 교통, 여성 생활
일제 강점기 우리 사회는 많은 부분이 변해갔습니다.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외국 문물이 소개되고,
수용되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하여 도시들의 외형적인 모습도 달라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었으며, 우리 나라 여러 지역에서 동시에 진행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식민지 백성의 슬픔과 억압, 그리고 분노가 스며 있었습니다.
● 변해가는 서울
1930년대 찍은 서울 남대문통 조선은행 앞 광장.
4대문과 궁궐로 대표되는 한성은 모든 것의 중심이요, 희망이기도 하였습니다.
최고 통치자인 왕과 그를 보필하는 신하들이 기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개항 이후 한성은 달라졌습니다. 외국인들이 들어오고, 새로운 물품들이 들어왔습니다.
거리에는 그런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해지고, 도로에는 전차가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점 건물을은 점차로 높아져 가고 '쇼윈도' 라는 진열장도 생겼습니다.
종로 네거리의 모습
1920년대 말에 전기가 보급되자 서울의 밤거리도 달라졌습니다. 네온사인이 등장하여 거리를 밝히고
사람들을 유혹하였습니다. 네온으로 치장한 도시의 상점 진열장은 새로운 유행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경 뒤에는 일제하 서민들의 고통스런 생활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 교통의 변화
전통 시대 우리 나라 사람들은 걸어다니거나, 말이나 소가 끄는 수레, 배 등을 이용하였습니다.
19세기 말 경인선 철도의 개통으로 우리의 교통은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철도는 제국주의 침략의 첫 신호였지만, 우리의 생활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조선지광> 1929년 1월호 삽화.
구호품에 의지하는 가난한 일상과 새로운 자동차의 물결에 밀려 직업을 잃어버린
인력거꾼, 부르주아 지의 사치와 허영을 풍자하고 있다.
일제 시기, 택시 등의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도심에서는 점차 인력거에 매달려 살던 서민들은
자동차의 등장으로 생존권의 위협을 받고, 열차는 꿈과 희망과 동경보다는
식민지 백성의 상처로 남아서 우리들에게 서러움을 심어주었습니다.
● 여성의 생활 변화
조선 사회에서는 유교 윤리 탓으로 여자와 남자가 각각 하는 역할과 일이 따로 있었습니다.
여자는 집안에서 가정 교육과 집안일에 열중하였고, 남자는 주로 바깥일을 하였습니다.
물론 서민들의 가정은 달랐습니다. 부부가 생계를 위해 하루도 쉴 새 없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1930년대 여성 사회적 활동
그러나 문호가 열리고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여자들을 위한 학교가 세워지고,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서양인이나 남교사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신여성의 모습과 몸빼
일제 강점기 여성의 생활은 더욱 달라졌습니다.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단발을 하거나
외출을 위한 치장이 늘어났습니다. 여성들의 사회적 활동도 활발해져 갔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언론과 매스컴을 통해서 더욱 확산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모든 여성들에게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발전을 하고 여성의 영향이 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