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일본에서는 수도 이전을 자주 하였는데 이는 당시 수도라는 도성에 대한 개념이 희박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일본에서 천도라고 함은 도성의 이전이라기보다는 왕궁의 이전을 뜻하는 것이었고 사실상의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수도는 694년 후지와라경으로 천도했을 때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694년, 그때 와서 처음으로 일본 궁전의 지붕에 기와가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그 천도 이전의 수도였던 기요미하라의 궁전의 지붕은 기와가 아닌 아래 사진과 같이 판자 또는 노송나무지붕으로 건축되었던 겁니다.
7세기말
일본의 수도 기요미하라(672-694)의 왕궁복원 모형입니다.
그런데 672년에 세워진 위의 소박한 지붕의 궁전보다 이른 시점인 607년에 세워진 아래 사진과 같은 호류사의 우아하고 세련된 기와지붕은 어디로 사라진거냐고 의아해하실 분이 만에 하나 있을지도 모릅니다.
위 사진의 호류사는 백제의 목공, 고구려의 화공 등 삼국의 장인들에 의해 세워진 건축물로서 수준으로는 당시 일본의 왕궁을 완전히 압도하였습니다.
일제시대 조선에 세워진 조선총독부와 같이 호류사는 일본 아스카 시대 당시 매우 이질적고 이국적인 건축물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조선건축술의 진보를 의미한게 아니었고 마찬가지로 일본의 호류사도 당시 일본 아스카 문화 수준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나라시대인 8세기 중반에는 도다이사라는 당시 세계 최대의 목조 사찰이 건축되었습니다.
이 사찰의 건축에는 백제계 및 신라계의 기술 집단이 참여하였습니다.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라고 불리는 대불전 전당을 건립에는 신라인의 후예인 저명부백세라는 건축가가 그 책임자였습니다.
당시 일본은 이처럼 삼국시대 도래인의 도움으로 자체적으로 거대 사찰을 건축할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불상의 제작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무리였기에 신라에서 장인 집단을 초빙합니다. 백제의 후예인 조불사 국중마려의 책임 하에 신라의 장인들은 높이가 16m에 이르는 거대한 대불상 조성에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의 도다이사를 재현한 복원 모형입니다. 현존 건물 중 본전에 해당하는 대불전은 18세기에 재건된 것으로 원래 규모의 3분의 2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19세기 일본의 복식은 물론이고 민가들도 보여주는 사진집 동영상입니다, 우리의 중요한 이웃 일본의 옛 전통문화를 흥미롭게 감상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