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결론 : 고종 비(妃) 민씨에 대한 호칭으로 가장 올바른 것은 명성왕후이다.
고종의 비(妃)였던 민씨에 대한 호칭은 우리 사회에서 여러 가지가 섞여서 사용되고 있다.그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호칭은 명성황후이다.그러나 나는 이와 같은 명성황후 호칭의 사용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중국은 자신을 종주국으로 삼는 세계 질서를 완성하였고 그것은 큰 탈 없이 이어져왔다. 황제는 중국의 최고 지배자로서 중국 본토 뿐만 아니라 인근 제국(諸國)의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주변 국가의 지배자는 왕의 지위를 인정받았다.이 때 황제의 정처에 대한 호칭이 황후이고, 왕의 정처에 대한 호칭이 왕비였다.
조선은 제후국가로서 왕과 왕비의 호칭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다.하지만 1897년 고종은 황제의 지위에 오르고 국호 역시 대한제국으로 바꾼다. 원래대로라면 왕비 민씨 또한 이때 황후의 자리에 올랐어야 하지만 이때 그녀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1895년 을미사변).
조선에서 왕비가 사망하게 되면 시호를 따로 정하기까지 당사자를 대행왕후로 호칭했다. 왕비 민씨는 명성왕후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시호는 받았지만 불안정한 조선의 정치 상황 때문에 장례를 치르지 못했고,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뀌게 된다. 황제가 된 고종은 즉각 대행왕후를 대행황후로 추존했고, 시호는 그대로 이어져서 명성황후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
※ 장례식은 1897년 11월 21일에 치러진다.
즉,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고종의 황제 즉위가 있었기에 가능한 호칭이다. 또한 그녀는 살아서 황후의 자리에 오른 적이 없다.
※ 필자는 고종의 비 민씨에 대한 호칭으로 명성왕후를 지지하며, 이후로는 그녀를 지칭할 때 명성왕후의 호칭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서 명성황후라는 호칭의 사용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번째 문제점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호칭은 해당 인물의 역사적 성격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하는데 명성황후의 호칭은 이와 같은 점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중학 교과서에는 "…일본 공사는 일본군과 일본인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궁궐에 침입하고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와 같은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은 기술은 조선이 당시 황제의 국가였으며 명성왕후가 살아서 황후의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잘못 이해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 만약 명성왕후가 살아서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고종의 황제 즉위 이전과 이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할 때 각각 명성왕후와 명성황후로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문제점은 현재 사용되는 명성황후 호칭은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고종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연호를 광무로 제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종을 광무제로 호칭하지 않는다. 그런데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명성황후라는 호칭은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데도, 정작 고종은 황제의 호칭을 사용하지 않고 그 아내만 황후의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일관성이 없는 용법이다.
※ 역사 서술에 있어서 일관성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 고종은 자신의 아내만 황후로 추존한 것은 아니다. 개국자인 태조와 태조비와 함께 정조로부터 철종에 이르는 조선의 왕과 왕비를 모두 황제와 황후로 추존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을 모두 황제와 황후로 부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왜 유독 명성황후만 황후인가?
더군다나 현재 명성황후의 사용법도 매우 몰지각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세번째 문제점이다.
이것은 뮤지컬 명성황후의 포스터이다. 영문 제목이 The Last Empress"이다. 마지막 황후라는 뜻이다. 이러한 표현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고종의 뒤를 이은 순종도 황제였기 때문이다.오히려 순종의 아내야말로 살아서 황후에 오른 사람이다. 그런에 마지막 황후라니? 이 뮤지컬을 우리는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명성황후의 사용이 얼마나 빈약한 역사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례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종의 비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가장 올바른 것은 명성왕후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적 상황에 가장 올바른 호칭이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한국인들이 얼마나 역사에 대해 무지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대로 믿어 버리는 민족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