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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2-17 16:55
[기타] 일본이 숨긴 신라의 실체.jpg
 글쓴이 : 낙엽
조회 : 9,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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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이웃하면서 한 문명권에서 살아온 중국이나 일본말고 이 세상에서 우리를 가장 먼저 알고 찾아와서 교제한 사람들은 과연 누구들일까?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1254년 경 프랑스 루이 9세가 원나라 헌종 황제에게 파견한 사신 루브루크가 돌아가 쓴 여행기에서 ‘섬의 나라 까우레’라고 한마디 한 것이 유럽에 알려진 첫 한국 소식이고,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스페인 선교사 더 세스페데스가 1593년 12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따라 남해안 웅천항(熊川港)에 도착한 것이 유럽인으로서는 최초의 한국행이며, 1627년 일본 나가사키로 항행하다가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우연히 표착한 네덜란드 상선 오우베르케르크호가 한국 해안에 나타난 최초의 서양 배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루브루크보다 4~5백년, 더 세스페데스보다는 무려 7~8백년 앞서 신라에 많은 아랍인들이 오갔을 뿐만 아니라, 정착까지 했다는 기술과 더불어 신라에 관한 귀중한 사료들이 중세의 여러 아랍문헌에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 요컨대, 한문명권 밖에서 처음으로 한국(신라)을 알고 그 존재를 세계만방에 알린 사람들은 다름아닌 아랍인들로서 그 역사는 자그만치 1천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면 그들의 눈에 비친 신라의 모습은 과연 어떠하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신라를 세계에 알리고 있었던 것일까 ? 그 모습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자화상이기도 하고, 세계 속에서 일찍이 우리 겨레가 누리던 드높은 위상이기도 하여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아랍인들에게 신라는 한마디로 ‘동방의 이상향’이었다. 그들의 기록에 의하면, 세상에는 ‘행운의 섬’이나 ‘불멸의 섬’으로 알려진 이상향이 두 곳에 있는데, 그 하나는 서방의 그리스 전설에 나오는 대서양 상의 신비의 섬 아틀란티스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동방의 신라다. 그러나 같은 이상향이라도 아틀란티스는 무인도인데 반해, 신라는 사람이 사는 유인도로서 경작지와 과수원이 있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아틀란티스는 전설 속의 한낱 이상향에 불과하지면, 신라는 속세의 살아숨쉬는 이상향이라는 것이다. 물론, 문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는 신라가 동경과 선망의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이러한 동경과 선망은 신라에 대한 그들 나름의 지견이나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 쇠사슬도 금붙이인 나라”

아랍인들은 지구상에서 신라가 어디에 있는가를 일찌감치 제대로 알아냈다. 섬과 산이 많은 신라가 중국의 동편, 지구의 동단에 있으며 바다(태평양)로 에워싸여 있다고 한 지리서가 지적한다. 이것은 중국보다 더 동쪽에 신라가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육지의 동단을 오로지 중국으로만 보아 오던 종래의 그리스-로마의 지리관을 타파하고 동방에 관한 새로운 지리지식을 첨가한 엄청난 발견으로 평가된다.

신라의 지리와 관련한 아랍 학자들의 기술에서 특별히 주목을 끄는 것은 중세 아랍 지리학의 거장인 이드리시가 그린 세계지도에 신라가 자리한 사실이다. 그는 전래의 지리지식을 집대성하여 지은 <천애횡단 갈망자의 산책>(1154년)이란 책 속에 한 장의 세계지도와 70장의 지역세분도를 그려넣었다. 그는 아랍의 전통적 ‘7기후대설’에 따라 지구를 7개 지역으로 나누고, 매 지역을 서에서 동으로 다시 10등분하여 각기 지도 한 장씩을 제작함으로써 총 70장의 지역세분도를 완성하였다. 그 제1지역도 제10세분도에 5개 섬으로 구성된 신라를 명기하고 있다.



아랍인들은 이렇게 신라의 위치나 지형뿐만 아니라, 신라의 자연환경에 관해서도 놀라운 기록들을 남겨놓고 있다. 열사에 찌들고 풍랑에 지친 그들에게 자연경관과 풍부한 지하자원을 가지고 있는 신라는 소기의 안주처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신라는 “공기가 맑고 부가 많으며 땅이 기름지고 물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성격 또한 양순”하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떠나지 않고 정착하고야 만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그들의 눈에 비친 신라는 황금이 지천에 깔려 있는, 말 그대로의 ‘황금의 나라’다. 금이 너무나 흔해서 가옥은 금으로 수놓은 천으로 단장하고 금제 식기를 쓰며, 심지어 개의 쇠사슬도 금으로 만든다는 것이 그들이 믿고있는 신라의 황금상이다.

 

비단·담비가죽·계피등 풍부

이와 더불어 그들은 이상향으로 선망하는 심정에서 신라인들의 유족한 생활상과 쾌적한 환경을 세심한 필치로 이모저모 묘사하고 있다. 지리학자 까즈위니는 이렇게 쓰고 있다. “신라는 중국의 맨 끝에 있는 절호의 나라이다. 그곳에서는 공기가 깨끗하며 물이 맑고 토질이 비옥해서 불구자를 볼 수 없다. 만약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이 풍긴다고 한다. 전염병이나 질병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질병에 걸린 사람이 이곳에 오면 곧 완치된다. .... 알라만이 시혜자이다.” 그 환경이 얼마나 정갈했으면 물 뿌린 집에서 용연향이 풍기고, 불구자도 없으며, 외지에서 온 환자는 금새 치유되겠는가 하는 극찬의 표현이다. 그러면서 이슬람적 세계관에 훈육된 사람답게 그는 신라의 이와 같은 윤택한 생활환경을 유일신 알라의 시혜로 돌린다.

그런가 하면 신라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찬사도 아끼지 않는다. 인종학적으로 인간 외모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또한 무모한 일이지만, 그들이 지적한 ‘가장 아름다운 외모’란 무구무병한 환경에서 사는 신라인들이야말로 그 외모가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하나의 은유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신라인들의 성격이 양순하다고 한 것은 대인관계에서의 친절성이나 유화성, 신뢰성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라인들의 외모가 아름답다거나 성격이 양순하다고 한 것은 그들의 높은 문화수준과 윤리도덕성에 대해 아랍인들이 품고있는 일종의 선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해 바닷길 통해 물산 교류

그밖에 신라인들의 종족적 기원이나 신라의 대외관계, 특히 중국과의 관계에 관한 기술에서도 눈길을 끄는 여러 대목이 있다. 예컨대, 신라인들은 “중국 황제와 서로 선물을 주고 받고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늘은 그들에게 비를 내려주지 않는다”는 기록이 몇 군데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신라인들이 중국 황제와 서로 선물을 교환한다는 내용이다. 신라와 중국(당나라)간의 관계는 모화사상이나 사대주의에 바탕한 조공관계가 기본이었다는 통념에 반해, 양국간에는 상호성에 입각한 선물교환 관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기술은 양국관계의 다른 한 측면을 음미해 보게 한다. 서로가 선물을 교환하지 않으면 천벌로 가믐이 들게 한다는 것은 천리를 빌어 양국간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방의 이상향으로 선망하는 신라에서 나는 물산이 아랍인들의 호기심을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9세기 후반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은 신라에서 비단(하리르), 검(피린드), 사향(미스크), 말안장(수루즈), 흑담비(삿무르)가죽, 오지그릇(가돠르), 계피(다루쉰) 등 물품(그밖에 몇 가지는 확인 안됨)을 수입해 갔다. 그 통로는 주로 중세 아랍 상인들의 활동 무대였던 남해의 바닷길로서, 여기에는 아랍 특유의 돛배가 이용되었다. 비단이나 검, 오지그릇이 국제무역품으로 등장했다는 것은 신라의 대외교류사에서 자못 의미있는 일이다.


‘은둔의 나라’는 왜곡된 시각

… 일본사람들은 엉뚱하게도 신라에 관한 중세 아랍문헌의 기술은 신라가 아닌 일본에 관한 기술이라고 아전인수하는 이른바 ‘신라일본비정설’을 들고 나와 반세기 동안이나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그 여파는 우리네 학계까지 던져졌다. 
나라가 힘이 약하고 학문이 뒤쳐지면 참 역사가 난도질 당한다는 뼈저린 교훈이다.

정수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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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서라벌에는 약 17만호의 가구가 있었다. 이는 대략 90만-100만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훗날 조선의 한양보다 4-5배나 더 많은 인구가 살았던 것으로, 혹자는 콘스탄티노플, 바그다드, 장안과 함께 서라벌을 당시 세계 4대 도시로 꼽는다.

 

인구가 많다고 세계적 도시로 꼽는 것이 아니다. 신라, 특히 서라벌에는 초가집이 없이 모두가 기왓집이었다. 온통 금으로 뒤덮은 집도 수십채나 되었다. 그들의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신라는 차도와 인도가 나란히 잘 정비된 도로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인도 옆에 마차가 수월하게 다닐 수 있도록 바퀴 자국에 맞춘 도로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뚜렷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도로 옆으로는 배수구의 흔적도 함께 남아 있다.

 

우선 서민층 거주 지의 경우, 집집마다 우물 하나씩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굴을 통해 밝혀졌다. 이처럼 서민층에서도 각 집마다 우물을 하나씩 갖고 있을 정도면, 당시의 서라벌이 얼마나 위생이 청결한 곳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온돌을 사용하지 않고 숯으로 난방을 했는데 이를 뒷받침 해주기라도 하듯, 대규모의 숯 가마가 발견되기도 했다. 숯으로 난방을 할 경우, 매캐한 냄새가 나지 않고 그을음도 생기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의 주거환경은 상당히 쾌적했을 것이다. 상류층 거주 지역의 경우에는 본채 건물 외에도 별채와 화장실까지 구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계획적으로 잘 정비된 도시였던 서라벌은 마치 바둑판과도 같은 형태로 도시 주거지를 이루고 있었는데, '방'으로 나뉘어지는 이러한 거주 구역은 한 방당 약 8천평 규모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골목마다 출입문이 있어 치안상태도 좋았다. 그래서 '몇번째 골목, 몇번째 집' 하는 식으로 주소만 알면 집을 찾는 일도 매우 쉬웠다. 따라서 인구조사 또한 치밀하고 완벽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가구당 가축의 수까지 세세히 기록해 놓았다.

 

천년 전의 도시가 오히려 지금의 대도시보다 더욱 계획적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KBS 역사 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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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들은 그 여유로운 상태에 만족했고, … '삶의 질'이나 높일 것이지 왜 피 흘려가며 전쟁을 해야하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신라인들은 정복이나 전쟁에 대한 야욕이 적은 편이었다. … 자기들의 피해를 감내하면서 까지 정복 국가가 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좋은 땅과 좋은 기후, 부유함 … 자연스레 신라는 고도의 문명과 문화 수준이 장점이 된다. 반대의 상황이었던 고구려는 신라와 달리 많은 정복전을 거치며 영토가 넓어지고, 군사력이 장점이 된다. 그렇게 신라와 백제, 고구려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특징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 우리 역사의 찬란한 문화는 신라의 문명을 기반으로 하여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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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로마와도 교역하였다)



21세기를 관통하는 치장술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신라인들의 서역문물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하였다. 귀족 사대부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앞을 다투어 서역에서 들어온 호화품들을 장만하고 남용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무분별한 사치 풍조 까지 일고 있었다. … 진골은 타고 다니는 수레에, 육두품에서 백성까지는 가마와 침상에 향료인 동남아시아산 자단과 서아시아산 침향 … 아랍산 유향도 있다.

 

진골녀의 빗과 관을, 육두품녀의 빗을 슬슬로 꾸미는 것 … 슬슬은 투명하고 푸른색의 진귀한 보석이다. … 보석에 대한 신라인들의 소유욕과 애착심이 얼마나 강했는가를 말해준다. … 서역산 고급모직 옷감인 ‘계’는 여인들의 바지나 버선, 신, 목수건, 옷고름에 장식 … 인도를 비롯한 서남아시아에서 나는 공작새 꼬리 … 비취새 털을 목수건 같은 장신구에 … 신라인들의 사치성이 엿보인다.

 

신라의 남자들은 나이와 신분에 상관없이 향낭(향기 주머니)을 차고 다녔다. 종교행사나 제사 때 향료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기도나 맹세를 할 때, 그리고 부부가 함께 침실에 들 때도 향료를 사용했다. … 향료는 향기가 진한 식물을 그늘에서 말린 후 가루로 만들거나, 향나무 조각, 사향노루 같은 동물의 향료 주머니 등으로 만들었다. 신라 사람들은 이 향료를 옷고름이나 허리춤에 차고 다녔다.







이 쪽바리 샹것들 훔쳐간 신라 관련 서적들 좀 내놔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싸그리 다 털어갔니 이 천하의 때려죽일 호로자식들아 (다 돌려받고 침몰 기원)

그리고 니들 덕분에 우리가 우리 역사를 비난하면서 자라왔어 ^ㅜ^

역사왜곡에 식민사관ㅋ 좋은 가르침이다 凸⊙▽⊙凸

 

우리가 하나로 똘똘 뭉쳐 역사를 자랑스러워 하는걸 참을 수가 없었겠죠. 더욱이 역사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던 일본이니까. 옘병ㅗ

 

 

일본과 나치를 자주 비교하지만 일본에 비하면 나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욕을 먹는건 독일 나치 뿐입니다. 일본은 욕을 먹기는 커녕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우익이 정치를 하네요 ㅅㅣ벌?)

많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를 거느렸지만 일본처럼 한 나라를 갈기갈기 찢어놓은 경우는 없었거든요.

일본은 무슨 이유에선지 한이 맺힌듯이 우리나라를 짓밟았죠.

우리가 일본에게 뭔 짓을 했다고 그랬을까요? 한 것이라곤 팬티도 안 입고 돌아다닐때 문명을 전해준 것 뿐인데?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답니다.

물리적인 피해(학살, 고문, 생체실험 등)는 기본이고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나라의 기를 끊어 놓으려 애를 썼습니다. 지랄 발악을 했죠.

남의 나라 말을 못쓰게 하질 않나, 이름을 바꾸라질 않나, 지네 ㅂㅅ왕을 찬양하라질 않나 (물론 역사 왜곡은 기본)

결국엔 참으로 미개하게도 일본 무당까지 불러들여 한반도에 수백개의 말뚝을 꽂고 저주를 내리는 의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게 다 열등감의 산물인가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죠.

 

자 이제 니들이 침몰할 차례다 이 개ㅅㅐ끼들아

 






-




퍼온건데 마지막에 글쓴이님의 분노가 느껴진다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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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네임 13-02-17 17:04
   
억울하도다
너꼼수 13-02-17 17:48
   
신라부터해서 고려때에도 교역이 활발하고 문화유산이 남부럽지 않게 찬란했던건 알고 있었는데..  다시 보니 참 안타깝네요.  쪽바리들..  일제시대때 잃어버린 우리의 역사와 문화..  고서적이 수천 수만권이 일본 도서관에 잠들어 있다고 하는데 언제쯤 되찾을수 있을지..  고조선 관련 식민사관만해도 쪽바리들의 업적입죠.. 친일파 이병도 와 그 패거리들이 일조했고..  쪽바리가  우리나라 통치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하게 집요하게 더러운 짓거리를 해왔는지...  창씨개명에 단발령 부터 해서..  고서적을 일본으로 가져간거뿐 아니라 많이 태우기도 했죠.  우리가 아직도 우리네 상고사에 대해 모르는게 많은 이유..  쪽바리가 주입한 식민사관 잔재가 여전한데 언제쯤 벗어날수 있을까?  그리고  짱개들이 오래동안 벌이고 있는 동북공정과  조선때부터 이어져온 사대주의 역사관 역시 마찬가지..
통일하고파 13-02-17 18:45
   
뭐 아랍인들이 보기에는 이상향이었나보죠. 일단 집집 마다 우물이있는건 아랍인으로써는 상상도 못할테니;ㅎㅎ 식기가 금이라는건 놋그릇이여서그러나? ㅋㅋ
불체자몰살 13-02-17 20:20
   
한국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한국의 역사를 날조하는 것에 국가적 명운 건 왜구들...이제 그 끝이 보이는구나^^
진이 13-02-17 21:19
   
마지막 너무 통쾌하네요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의상이 뭔가가...
고려후기 이전에는 옷에는 고름이 없고 하의 위에 상의를 입었는데....
약간 중국의 영향을 받은 듯...
저는 한국 고유의 옷을 원했는데 말이죠;;
     
양앵민이 13-02-17 21:37
   
신라때 당나라 풍 옷이 유행이였습니다.
          
굿잡스 13-02-17 22:04
   
신라 김춘추가 친당 외교로 돌아서면서 당풍이 일부 정치권에 한정되어

정치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도리어 민간인들의 의복은 더욱 엄격한 고유풍이 유지

되었습니다.
ultrakoo 13-02-17 21:35
   
왜놈들 사신이란 자가 입은 옷 꼬라지가....

키작고 맨발에 털많은 것이 역사사에 저리 남아있으니.
굿잡스 13-02-17 22:34
   
경주 일대 신라 서라벌의 도시 인프라 관련 유적을 보면

이미 이때 사람이 단니는 인도와 마차가 단니는 구간이 조성, 구분되어 있고

하수로 시설부터 각 가정집마다 개인 우물들이 존재해서 식수 사용등

8세기 당시 이미 100만에 달하는 국제적 대도시의 위용과

가히 선진 도시 인프라를 구축했다고 할 수 있죠.(그외 보면 개 목줄에 금붙이 어쩌고 부터

슟으로 밥해먹고 금기와에 비오는 날에도 기와 처마 따라 걸어 옷이 젖지 않았다는 기록등

가히 화려함과 호사로움을 구가함ㅋ)

흔히들 세계 4대의 국제적 대도시(서라벌,콘스탄티노플,장안, 바그다드)중 하나이며

실드로드의 종착역이였던 서라벌을 뽑지만 저는 여기에

8세기 남북국시대에는 세계 5대 도시의 위용을 뽐낸 또다른 우리의 해동성국 대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도 추가합니다.
굿잡스 13-02-17 22:39
   
이미 우리의 고대 도시 역량은

유럽의 최대도시라는 로마에 견주거나 그 이상의 대도시가

삼국시대 이미 고구려 3경(국내성 한성 평양성)과 백제 사비성 신라 서라벌을 중심으로 하는

5개나 존재했고 그외 중소도시들을 거느린 문명 역량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후 남북국시대 발해는 5경을(고구려 5부 체재에서 나온것으로 파악됨) 신라는 서라벌을

그리고 중세 고려는 기존 동경인 서라벌과 수도인 개경과 서경 그리고 남경(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로마에 견주거나 그 이상의  4경 체재를 구축했고 신라계 아골타와 고구려인 연합의 금나라

는 동북아 패자로서 군림하며 북경에 중도라는 대도시가 고구려인 장호에 의해 주도되어 건

설되었습니다.
자기자신 13-02-18 00:47
   
한반도고대삼국은 이렇게 찬란한문화와선진기술과문명을 가졌죠 그에 비해 일본은 ㅋㅋㅋㅋㅋㅋ 벌거숭이에 훈도시하나 그리고 열등감 ㅋㅋㅋㅋㅋ
일본침몰 13-02-18 11:20
   
우리가 잃어버린역사가 많죠 중국의 수,당과 맞짱떳던 대고구려...동남아일대에서 조공을 받던
해상대국백제...신라는 모 별로 좋아하질않아서 패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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