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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01 16:10
[중국] 한사군은 허구다 (펌) -계속
 글쓴이 : sssangi94
조회 : 2,891  

길어서 한번에 안올라가네요. 계속입니다

한나라는 서기 8년에 망합니다.

그러면 종주국인 한나라가 망해 버린 때부터 305년동안 종주국이 없는 식민지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겠습니까?

도저히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낙랑군이 평양에 실존했었다는 것은 실사(實史)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건 동화 같은 얘기입니다.

아니 국민학교 학생한테 물어보아도 알 수 있는 얘기를 대학생한테 얘기해야 하는 저도 참 바보 같군요.

여기서 저는 학문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상식을 말하는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종주국가가 서기 8년에 망했는데,
그 식민지는 313년까지 존속했다는 것이
동화입니까, 역사입니까 ?

역사도 동화도 모두 아닙니다.
동화는 논리가 없어도 되는 겁니까?

오히려 동화야말로 어린애들이 알아듣기 쉽게 논리가 정연해야 됩니다.
김철준은 이런 논리가 없는 얘기를 실사라 했고, 또 한사군이 있어서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그런 논리를 평생 펴다가 어제 죽었습니다.
한국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하할 일입니다.
고인이 된 사람한테는 인간적으로는 안되었지만,
한국사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측면으로 봐서는 아주 축하할 일입니다.

어찌되었건 한사군 얘기는 이제 끝난 얘기입니다.

금년부터 중학교 국사책에서 한사군을 없애겠다고 정부에서 공언을 했습니다.
내년(1983년 국정교과서 개편시)부터는 고등학교 국사에서도 없애기로 방침이 정해졌습니다.

앞서 강의하신 박시인 박사도 한사군을 위해 참으로 많이 애썼습니다.
도대체 학문이 되지 않는 사안을 가지고 해방 후 40년동안 떠들어 온 것입니다.

사기(史記)라는 사서는 한무제(漢武帝)의 신하였던 사마천이 쓴 목격기입니다.
사기가 완성된 때가 서기전 100년입니다.
사마천의 그 때 나이 27살이었습니다.
약관의 27세 때 한사군 전쟁을 직접 보고 적은 기록이 조선열전(朝鮮列傳)입니다.

사기 조선열전에는 낙랑, 현도, 진번, 임둔이라는 4군이 없습니다.
사학에서는 이런 자료를 1차사료라고 합니다.
1차사료인 목격담 속에 낙랑현도진번임둔이 없는데,
우리는 뭐가 아쉬워서 자꾸 그 이름들을 외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기 다음에 쓰여진 중국정사가 한서(漢書)입니다.
한서는 서기 80년 경에 쓰여졌는데,
한사군 사건으로부터 말하면 200년이 채 안되는 180년 이후에 쓰여진 기록입니다.

그런데 한서는 사기의 조선열전을 복사기로 복사를 해 놓은듯 똑같이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한서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사기 조선열전의 '수정조선위사군(遂定朝鮮爲四群)'이라는 기록을
'수멸조선위낙랑현도진번임둔(遂滅朝鮮爲樂浪玄兎眞番臨屯)'으로 바꾸어놓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사람(반고)이 8글자를 가필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한서에서부터 '낙랑현도진번임둔'이라는 8글자가 나온 것입니다.

남대문을 구경한 사람이 서울얘기를 하는 것과
남대문 구경도 못한 사람이 서울 얘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정확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한사군 전쟁이 일어난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반고(班固)가 적은 한서(漢書)가 정확하겠어요,
아니면 한사군 전쟁이 났을 때 한무제의 신하였던 약관 27세의 사마천이 적은 기록이 정확하겠습니까?

게다가 사기 조선열전의 기록을 볼 것 같으면, 우리가 상상하는 한사군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기록이 나옵니다.

한국사람의 마음 속에는
'한국은 외국과 싸우면 의례히 진다'라는 패배의식이 한국사관에 의해 알게모르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중고등학교나 대학에 와서 배운 역사라는 것이 전부 싸움에서 지는 것이었습니다.
한무제의 육해양군(兩軍)과 위만조선의 군대가 싸웠으니까,
보나마나 또 졌겠지 하는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에 진 결과로 이긴 자가 설치한 것이 낙랑현도진번임둔이라는 식민지였다는 것입니다.

저 김철준은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무제의 군대와 위만조선의 군대가 싸웠는데,
우리의 예상을 뒤엎고 한무제의 군대가 졌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에는 '조선이 이겼다'는 얘기는 없습니다.
전쟁이 일년동안 지속되다가 끝나고 난 뒤, 한무제는 논공행상을 합니다.

육군사령관 순체,
해군사령관 양복(楊僕),
천자의 사신인 공손수(公孫遂)와 위산(衛山) 등 네사람을 앞에 대령시켰습니다.

만약 이들이 전쟁에 이긴 개선장군이라면 계급을 높여주거나 황금으로 상을 주었을 겁니다.

그런데 상은 커녕 벌을 내립니다.
벌 가운데에서도 최고의 벌인 사형을 내립니다.
사형 중에서도 최고의 사형을 내립니다.

제일 악랄한 사형,
조선조 같으면 능지처참에 해당되는,
사람을 죽여 사지를 찢어서 중국의 장안 사대문에 걸어놓는 사형[棄市]을 내려 죽입니다.

네사람 중 천운(天運)이 기시(其時)한 사람도 살아남질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논공행상 하나만 보더라도 한나라가 전쟁에 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마천은 이렇게 자기 한나라가 졌다고 했는데,
우리 한국인은 오히려 우리가 졌다라고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통터질 일입니다.

그리고 한사군이 아니라 조선사군이 생겼습니다.
평주·날양·추저·홰청이라는 네군의 책임자(최, 참, 음, 협)가 전부 조선사람입니다.
우리는 역사를 거꾸로만 알고 세상을 살아왔습니다.

'한사군 사건'이야말로 우스꽝스런 사건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제일 마지막에 가서 '태사공 왈(太史公 曰)'이라고 한 부분이 있는데,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뭐라고 했는가 하면, '한나라의 육해양군은 모두 졌다'라고 했습니다.
사마천이 자기의 한나라가 싸움에 졌다고 했는데,

김철준이 나와서 '아니다, 우리가 졌다'라고 하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진 걸로 생각해 왔던 것입니다.

전쟁에 직접 참여한 사마천 자신이 '육해양군이 모두 졌다(兩軍俱辱 將率莫侯矣)'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세상만사 본은 무상하다라고 탄식하며 조선열전의 붓 끝을 놓았습니다.

이런 기록을 보면서도 한사군얘기를 하는 사람은 도저히 정상인으로 볼 수 없는,
장님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서울대학에서 한사군을 얘기하는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
아직 사십도 안된 젊은 사람인데,
젊은 놈을 두드려 팰 수도 없고 해서 분통이 터집니다.
(운영자 주 : 아마도 최근 말썽 부리는 송OO교수 아닌지 ?)


발해연안에서 산동반도에 걸쳐 평주, 추저, 날양, 홰청이라는 사군이 설치되었는데,
바로 이땅이야말로 위만조선의 땅입니다.

위만조선이 무너지면서 그 땅이 조선사람 네사람이 통치하는 조선사군으로 바뀐 것입니다.

위만조선 이전에는 그 곳이 기자조선의 땅이었습니다.

한국사를 논하면서 한반도는 언급하지 않고 왜 만주쪽을 가리키느냐 할 지 모르겠지만,
한국사의 본질은 반도사관이 아니라 이처럼 대륙사관입니다.

일본사람들이 반도사관에 역점을 두어 반도라는 것이 우리의 운명적인 강역인 것처럼 강의했습니다.

지금 국회의원들도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헌법개정하면서 반도 얘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강의했는데,
지금의 헌법3조를 보면 우리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되어있습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이것이 우리의 숙명적인 강역인 것처럼 알고있는 것입니다.
한반도는 왜인들이 우리의 머리 속에 심어놓은 강역일 뿐입니다.
한반도라는 것은 우리 민족사의 가호적입니다.

고려 이전에는 모두가 대륙에서 생겨난 역사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가호적이 본호적으로 둔갑되어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사는 반도사관이 아닌 대륙사관으로 보아야 합니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도 그 건국의 땅이 모두 대륙입니다.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백제사는 더우기 대륙의 역사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사학자들이 사기연표에 실려있는 조선사군의 이름이나 강역 등을 연구해서,
지금까지 한사군이 점하고 있던 그 블랭크를 메워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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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군은 1981년 국회청문회에서 사라진 식민사학의 잔재입니다. 아직까지 한사군 타령을 하는 분이 계시니... 어휴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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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도 12-11-01 16:29
   
이 글 쓴 자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많이 무식하네요. 서기8년경에 한나라가 망해 종주국없는 식민지가 유지될 수 없니 운운하는데 그때는 왕망의 반역으로 신나라가 잠깐 세워진 시기죠. 25년정도 신나라가 존재하다가 광무제에 의해 후한이 다시 세워지고 긴 역사로 보면 한나라는 400년 이상 존재한 나라이며 신나라도 한나라 역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신나라때도 낙랑군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낙랑유물중엔 왕망의 명에 의해 지명이 바뀐 흔적이 있는 유물도 존재합니다. 다만 이때 한나라의 사정이 복잡해 낙랑군에 대한 지배권이 약해진 것은 분명하죠. 그래서 광무제가 즉위한 후 30년경쯤에야 사군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죠.

뭐 한사군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자유겠지만 적어도 그 근거는 제대로 제시해야지 엉터리 근거를 내세우며 악을 써봤자 그건 어거지일 뿐이죠.

한사군을 부정하려면 사서 나부랑이 가지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당장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낙랑 유물과 아직도 평양근교에서 출토되고 있는 수많은 낙랑유적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걸 못하면 아무리 사서 글귀가지고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낙랑유물은 전부 일제의 조작이다라는 말로 넘어가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ㅎㅎㅎ
     
스티브잡덕 12-11-01 21:27
   
사서에 근거해서 전후한, 신 나라 다 합쳐 488년으로 AD220년에 망합니다.
그런데 식민지 낙랑은 AD318에 망한다는게 말이 됩니까?
평양 근교에서 출토퇴고 있는 낙랑 유물이라는게 실상 제대로 연구가 되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대부분 일본의 이론을 가져와 연구는 제대로 안하고 일본 설만 따른다는 거지요.
평양에서 출토된 낙랑유물에 금석문 전문가와 묘제 전문가 등 여러 전문가가 나와서 연구한 것을 다큐로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낙랑유물이라는 토기의 글자는 낙랑 당시에 존재하던 글자체(글자 자체가 전부 틀린게 아니고 삐치는 거든가? 굽어쓰던 거든가가? 시기에 따라 미세한 그런 점이 금석문 전문가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차이라고 합니다.)가 아니고 후대의 글자라는 겁니다. 낙랑시대 묘 또한 한나라 묘가 아니라 고구려 묘라고 합니다. 그 외 여러가지가 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금석문과 묘제 등의 역사 속의 특정분야만을 연구한 분들은 낙랑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 사학자들은 낙랑이 맞다고만 한다는 겁니다.
별개로 상나라 때의 가죽갑옷 조각에 대해서 우리의 복식 및 갑옷 연구가들은 상나라 때의 가죽갑옷 조각은 갑옷에 새겨진 문양에 근거해 상나라 것이 아니고 우리의 것이거나 상나라 사람들 자체가 우리와 동족이었을 거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가들은 상나라게 맞다고 우리와 별개라고 지금까지도 설전을 한다는 겁니다.
저 전문가들 또한 고대 분야 연구를 위해 역사서는 기본으로 삼고,
각나라의 문화 또한 같이 공부를 합니다.
헌데 역사사학자와 특정분야 전문가의 의견이 틀린게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잠원 12-11-01 23:38
   
[왕망의 반역으로 신나라가 잠깐 세워진 시기죠. 25년정도 신나라가 존재하다가 광무제에 의해 후한이 다시 세워지고 긴 역사로 보면 한나라는 400년 이상 존재한 나라이며 신나라도 한나라 역사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

>
한나라가 400년 이상 존속한 나라여?
신나라도 한나라 역사의 일부?
니꼴리는데로?

니 논리데로라면.. 고려왕조도 1000년간 지속된 왕국이 되것지...  ㅎ



[신나라때도 낙랑군은 그대로 유지되었고 낙랑유물중엔 왕망의 명에 의해 지명이 바뀐 흔적이 있는 유물도 존재합니다. 다만 이때 한나라의 사정이 복잡해 낙랑군에 대한 지배권이 약해진 것은 분명하죠. 그래서 광무제가 즉위한 후 30년경쯤에야 사군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할 수 있었죠.]

>
출토 유물 가운데 낙랑군의 존재를 증명할 유물이 있던가?
그냥 그 땅에서 나왔으니 낙랑유물이다?

지명이 바꿨다는걸 니가 어찌 알어?
생소한 지명 하나가 나오니 바뀐 지명이다? ...니꼴리는데로 소설 쓰니?

광무제 즉위 이후 영향력이 회복되었다?
넌 그걸 어찌 아는데?.. 어디 기록에 그런 내용이 나와 있지? 
그걸 뒷바침 할 유물이라도 있니?


니가 환빠들을 손꾸락질 하지만...
너 역시 니가 손꾸락질하기  좋아하는 환빠들과 완존 닮은꼴이구만...ㅎ



[당장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낙랑 유물과 아직도 평양근교에서 출토되고 있는 수많은 낙랑유적들을 설명해야 합니다. 그걸 못하면 아무리 사서 글귀가지고 떠들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낙랑유물은 전부 일제의 조작이다라는 말로 넘어가면 뭐 할 말은 없습니다만...ㅎㅎㅎ ]

>
근대 이전 왕조시절엔... 왕조의 역사만 중요시했거든..
당시 나라의 주인은 왕족과 귀족들인데... 이들이 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 백정이거나 마당쇠출신일텐데..  이들이 그런 역사를 굳이 알려고 안한 것도 이해할 만 하지..

근대 이후 비로서 일반 민중이 나라의 주인이 되며.. 민족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것는데..

문제는 근대를 식민지로 시작하며 ..
식민지하에서 우리역사가  남의 손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비극이지..

일제의 3류 학자가 만들 썰이나 공상소설이 역사가 되었는데..
무엇보다 한민족을 일제보다 열등한 존재로 만들기를 원한 통감부의 의지 하에서 만들어진 썰이나 공상이라는 것이지..

물론 이들이 학자니깐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안하지...
99%의 진실과 1%의 진실을 섞어서 작품을 만드는데.. (더 많나? 암튼..)
그 1%가 핵심적인 내용이거든?

예를 들어서 한4군, 낙랑이라는 기반 자체를 거짓으로 꾸몄지만... 유물 자체는 학문적으로 열심히 연구하는 식이지.. 그리고 나온 유물은 낙랑의 유물로 만드는 식이지


##
고대사에서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사람들과 문물이 이동하면서 발전하던 나라인데..
이걸 뒤바꾸려다보니.. 특히 고대사가 조작이 많았을거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가 있지

고조선시대는... 1%진실과 99%의 사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라는 생각이야..
다다다다다 12-11-01 16:55
   
한사군 한반도내 존재론은 식민사관이라더군요. 유물조차 조작된거라던.
     
소를하라 12-11-01 18:28
   
왜 모든지 다 조작으로 몰고가나요? 증거가 나오잖아요 ㅡㅡ;;
          
다다다다다 12-11-01 19:00
   
증거가 조작됬다는 얘기입니다. 이해가 안 가나요?
sssangi94 12-11-01 17:27
   
역대 국립중앙박물관장:
이병도 손자 이건무
http://ko.wikipedia.org/wiki/건무
신석호 3대 제자 최광식
http://ko.wikipedia.org/wiki/광식
현재 김영나 관장 애비(초대 관장)는 친일파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1103/h2011030221180686330.htm

중앙박물관 낙랑 유물은 모조리 일제시대때 발굴
소를하라 12-11-01 18:28
   
글쓴이는 전한,후한도 모르는 사람같군요 삼국지부터 보셈
한사군은 역사적으로 존재했습니다만 문제가 되는게 위치죠 어느위치에 있었느냐 이게 문제죠 역사학계주류는 한반도 평안도,황해도쪽까지 한사군이 설치됐다고 하고 다른쪽에서는 압록강 넘어서 요하지역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평안도,황해도 쪽에서 한나라시대 무덤하고,유물이 출토가 되니깐........이게 문제죠
     
스티브잡덕 12-11-01 22:26
   
저 학자가 소를하라님 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것 겉은데요.
삼국지 보다 먼저인 사기에 한사군이 없습니다.
또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낙랑이 망한 시기가 AD 313입니다.
허나 한나라는 전후한, 신 다 합쳐 AD 220년에 망합니다.
한나라가 망하고 식민지인 낙랑은 93년 더 존재했다는게 말이 됩니까?
낙랑이 조조가 등장하는 삼국시대를 지나 5호 16국시대에 망했다는 말이 말입니다.
후대에 가필되었다는 거지요.
북에서 나오는 유물도 전부 일본의 주장을 가져다 쓴거지 우리가 연구해서 주장한게 아니라는 거죠.
특정분야 전문가들은 낙랑 유물은 낙랑게 아니라고 합니다.
          
소를하라 12-11-02 02:11
   
잘 생각해보시오 고조선하고 주몽의 고구려가 건국되는 시기에 시간적 공백이 있잖소.. 고조선이 한나라에 망하지 않았다면 고구려가 건국되기위해선 고조선내부든,외부든 고조선세력하고 다툼이 있어야 되는데, 주몽이 졸본에 자리잡고부터는 대부분 중국세력아니면 기타부족단위세력하고 전투를 치렀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오?........조선사군이랑 싸웠다라고 말한다면................그냥 이쯤에서 접을께요
               
스티브잡덕 12-11-02 06:08
   
목욕탕 갈려고 일찍일어나 또 가생이에 접속했네요. 이것도 은근 중독인 것 같습니다.

조선사군이라는 것도 사기에는 자기들이 졌다고 했으면서도 조선사후라는 후를 제수한 것 같이 글을 썼기에 임승국 박사가 임의로 조선사군이라 붙인 겁니다.
일단 조선사군은 우리가 말하는 한사군하고 틀립니다.
1편의 내용을 보시면 조선사군의 위치는 발해만 연안에서 부터 산동반도에 걸치는 곳에 있다고 했으니 한사군과 별개로 일단 치겠습니다.
한사군이라는 글이 나온게 후한 때 <반고의 전한서>에서 나오기 시작하는데 전한서에 실린 조선의 내용은 전부 사기 조선열전을 그대로 복사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딱 하나 <사기 조선열전>에서 [수정조선위사군]이라는 글을 <반고의 전한서>에서는 [수정조선위낙랑현도진번임둔사군]이라고 8글자를 더하면서 부터 한사군이 나오기 시작했다겁니다. 그런데 이 한사군 또한 낙랑군 수성현은 하북성 산해관 유역으로 알 수 있듯이 한반도가 아니라는거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임승국 박사는 이 한사군이 반고가 가필을 한게 아니라 원래 있던 사군 명칭을 당나라  때 가필한게 아닌가 의심을 합니다. 일종에 필사를 하면서 가필을 하지 않았을까 한다는 거겠죠.
여기까지는 한사군과 조선사군에 대해 위글 읽어보시면 임승국 박사 내용으로 한사군과 조선사군에 대해 다시 한번 기억해 주십사하고 쓴 겁니다.

한사군이 고조선을 이겨 한사군을 한반도에 두었다면 이런 의문이 듭니다.
일단 고조선과 고구려를 별개로 보시는 것 같은데 제왕운기 및 단군고기를 빌려 쓴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고조선에 부여, 옥저 등등의 열국이 지배를 받는 것으로 나옵니다.
고조선이 망하고 열국이 생긴게 아니라 고조선 속에 열국이 있었다는 겁니다.
한에 의해 고조선이 망했다면 고조선 전역이 한의 일개 행정구역으로 개편이 되어야 하던가 한사군의 영향력이 고조선 전지역에 미처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의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한두나라가 아닌 여러나라가 생긴다는 건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또한 한은 부여인가 북부여인가에 옥갑을 바칠 정도로 고조선 전역에 영향력를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한이 전쟁에서 진 고조선의 지배를 받는 일개 부여에 옥갑을 받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또한 이런 가정을 세울수 있지 않을까요?
1. 고구려가 고조선 세력인 다른 열국과의 전쟁 -  고조선과 고구려 사이에 시간적 공백이 북부여와 졸본부여가 이어 준다는 겁니다. 위에서 고조선 속에 열국이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고조선의 지배를 열국이 받고 있던 중에 조선의 지배력이 약해지면서 열국이 서로 싸우는 경우 입니다. 그중에 부여를 중심으로 보면 부여는 부여(동명성왕), 북부여(해모수), 동부여(해부루), 졸본부여, 요동부여, 열도부여 등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 북부여를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 졸본부여에서 고구려가 나옵니다. 실제로 고구려는 동부여 및 옥저, 동예 등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르고 통합니다.

2. 중국세력과의 전쟁 - 고구려의 국시가 다물로 옛 영토회복입니다. 그러면서 요동을 차지하기 위해 죽어라 중국과 전쟁을 합니다.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면 국시인 다물로 요동을 회복하려 하지 않았겠죠. 그 당시에 요동이란 현 산서성 요지역이라고 박지원과 북한학자 이지린의 글을 빌어 말하고 있습니다. 요동에 패수가 있고 패수가 고조선 강역에 속합니다. 그러니 고구려가 한 이후로 중국세력과 국시인 다물을 위해 싸울수 밖에 없는 겁니다.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사군을 몰아낸 그때 부터 국시가 변경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이쿠 6시가 넘었네요. 빨리 목욕 같다와서 아침은 굶고 출근 해야겠습니다.
                    
소를하라 12-11-02 17:56
   
글 잘읽었습니다 참고할 부분이 많네요..제 국사수준은 고등학교국사책 두깨정도인데 님은 폭넓은 부분까지 아우르고 계시군요..저도 한반도북부까지 한나라세력아래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사군까지는 아니더라도 고조선,한나라 전쟁이후에 고조선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내부분열 돼서 여러세력단위로 나누어졌을꺼라 추측하긴 했습니다. 이렇듯 분열됐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통제.통치가 느슨한 틈을타서 중국세력이 고조선영토에 많이 들어왔을꺼란 느낌이 들구요(한나라시대 유물,무덤 많이 발견되는 이유)중국 한나라 입장에서 보면 고조선을 실질적으로 통치하지는 못했지만 작은세력들로 분열시켰고 더해서 중국세력도 침투시켜서 친중국성향으로 바꿔놨으니 구지 한사군이란걸 설치 하지 않아도 한나라에 위협적인 존재로 성장하는걸 어느정도 방지 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되네요
고구려가 건립되는 역사는 한마디로 분열된 고조선세력에 침투해있던 중국세력을 몰아내고 나뉘어있던 고조선세력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통합의역사로 볼수도 있겠군요.
칼리 12-11-01 18:39
   
이러한 논쟁들이 일어나는게 우리 역사학계가 일제시대에 일본놈들한테 역사를 배운 식민사학자들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겠죠.

이병도로 대표되는 실증사학(말만 실증이지 사실상 친일사학)이 주류(친일하니깐 주류가 될 수밖에)를 이루면서 해방후에 이에대한 단절이 이루어지지 못한것이 화근이죠.

일단 한4군 설치이전에 한무제의 위만조선 정벌 자체가 실패했다는 겁니다. 위에서 보듯이 한무제의 동방공략은 완패했습니다. 어떤 역사에서도 승리한 장군들을 한무제처럼 처벌을 하지는 않죠.

그리고 군현제라는 건 중앙정부의 강력한 통치가 뒷받침되어야만 잘 이루어지는 건데, 한무제 이후로 쭉 중국의 역사는 혼란스럽죠.

한무제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한족의 정복군주라고 칭송하지만 실상은 전한을 말아먹은 장본인이죠. 흉노와의 전쟁자체도 과대평가 그 자체임.

그리고 한가지더 중국애들의 역사책에 씌여진 것들은 그대로 인정하면 엄청난 문제가 발생합니다. 지금도 날조질에 열중하는게 지금만 그런게 아니라 중국역사사관 자체가 원래부터 이렇습니다. 공자의 춘추만 봐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평가하는게 옳다고 주장하는 게 중국사관입니다.
소를하라 12-11-01 19:09
   
낙랑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연구는 정치거점설과 교역거점설로 나누어 파악되고 있다. 정치거점설은 중국사의 관점에서 낙랑군을 한왕조의 정치적 식민지로 파악하는 입장이다. 즉 고대 중국적 세계질서 속에서 낙랑군을 한의 군현지배의 한 유형으로 파악한 연구이다. 일본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 견해는 다수 한인(漢人)들이 낙랑군 설치 이전부터 존재하다가 낙랑군 지배에 의해 한인관리와 토착 한인에 의한 종족적 지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낙랑군은 한인을 지배층으로 하고 토착민을 피지배층으로 하는 이원적 종족구성을 갖는 한의 식민지라는 견해이다. 이 같은 견해는 동아시아세계론에 입각하여 낙랑군의 설치는 중국 동북지방에서 한반도에 걸친 민족의 발전을 저해했지만 동아시아 제민족이 고도의 중국문명에 접촉하여 문명화로 가게 되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교역거점설은 낙랑군의 성격을 단순한 한의 식민지가 아닌 경제적 성격을 중심으로 검토한 논의이다. 낙랑군의 식민지적 의미를 축소하여 대동강변의 교역거점인 한인방(漢人坊)으로 보거나 조계지(租界地)로 보는 견해가 제시되었고 낙랑과 삼한 사이의 교역 및 조공무역 등을 강조한 입장이 제시되었다. 이는 평양지역의 중국식 문화유물 유적에 대한 설명을 한반도에 존재한 중국인의 상업중심지라는 논리로서 설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견해이다.
스티브잡덕 12-11-01 21:41
   
이 글에서 중점은 한사군의 유무 아닌가요?
한사군 자체가 존재 하지 않았다는데 왜 아직도 한사군이 존재했네, 저 역사학자 무식했네 하는지 모르겠네요.
한사군이 쓰여졌어야할 시기에 쓰여진 사기에 의하면 일단 한나라는 조선과의 전쟁에 져 한사군은 존재 하지 않았으며, 한사군은 180년이나 지나 갑자기 나왔다는 겁니다. 후대에 가필 즉 조작되었다는 겁니다
여기에 댓글을 다시는 분들은 조선사군에 대해서는 말도 안하고 한사군이 존재 했다는 바탕에 댓글을 다시네요.
그리고 말도 안되는 한나라가 망하고 5호 16국시대에 망했다는 얼토당토않는 한나라 식민지 낙랑은 실존했다고 하는 겁니까?
이스탄벌 12-11-01 22:52
   
호동왕자 낙랑공주에 나오는 최씨 낙랑국을 짱깨로 만드는 놈 하나가 눈에 띄네.
     
소를하라 12-11-02 01:40
   
낙랑군하고 낙랑국이 동일한지는 아직까지 역사학계쪽에서도 확답을 못하는 부분인데 당신은 그당시 사람이었소? 위에 낙랑은 낙랑군이요
제로타겟 12-11-01 23:30
   
란사군이 아니라 조선사군 아닌가요 한나라는 난하이북의 지리는 잘 몰랐답니다 난해한 산해경 저두 잘 이해는 못하지만 개넨 황하 이북 산의 지명도 표기가 안되어 있어요 무슨 요동을 넘어 평안도까지 가요 개넨 그 당시 장안 낙양에 있고 흉노하고도 치고 박기 바쁜데.조선이 한나라에 망하진 않았어요
잠원 12-11-02 09:04
   
단군신화의 무대는 지금 홍산문화가 발굴되는 요서지역이라는 생각인데..
고조선이 발전하면서 중기 이후엔 요하 개주지역이 정치중심이었다는 주장이 요즘 설득력을 얻는 썰로 알고 있지요.

그후 전국7웅 중 연나라의 침략을 받고.. 한때 평양으로 밀려났고...
그래서 후기고조선은 평양이 중심이라는 썰이 그동안 상식처럼 알려졌지요.


헌데 아랫글을 읽어보니...
위만의 정권찬탈 이후에 ... 한무제의 침략 당시에 내분이 일어서 4개로 분열됐고 .. 활동무대가 요동이라는 글을 보니.. 아마도 다시 세력을 회복한 듯한 생각이 들지요.
한무제와 전쟁에서 이길 정도면...  비록 분열상태로 일시적일지 모르지만 ... 요서까지 회복하지 않았을까?

.......................


그 동안 인터넷을 통해 알게된 지식을 조합하면... 이런 소설인지 썰인지를 쓸 수도 있것구만...

이런 내용이 ... 
단군은 신화고...  한4군이 평양과 황해주지역을 식민지배했다고..
그러다보니 고구려가 등장하기까지  그 많은 시간이 청동기, 철기시대로...  공백으로  말하고..
이걸 교과서로 배웠으니 ..  쩝,,

.
제로타겟 12-11-02 10:00
   
조선도 번조선이 있고 진조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번은 동맹국가란 뜻에 가깝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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