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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24 12:40
[베트남] 화산이씨 정선이씨 시조는 베트남인이 아닙니다
 글쓴이 : 내셔널헬쓰
조회 : 8,590  

글쓴이 - ㅡㅓㅜ

아직도 화산이씨 정선이씨 시조가 베트남인이라고 말하는데 

베트남에 세워진 이씨왕조의 시조는 이공온 李公蘊이라는 인물로 베트남인이 아니라 베트남에 이민 온 당태종 이세민(선비족)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중국인의 한국 귀화설을 믿는 분들이 있습니다
극히 일부는 있겠으나 대부분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余씨는 중국인의 후손이 아니라 백제왕족 부여풍의 후손입니다
당나라로 끌려갔다가 후손이 송나라시절 고려로 다시 귀국했습니다
여씨 문중에서는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자신들이 백제왕족의 후손이라고 말하는데 일부 한국인들은 송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인 취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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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르룽 12-10-24 12:49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95884928

책좀 읽고 자료도 좀 확인하고 그러고 삽시다.
     
내셔널헬쓰 12-10-24 12:51
   
http://media.daum.net/v/20120927152105502

 
기사에 의하면 고려 시대에는 족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가족 구성원 기록부 정도가 있었고, 그나마 실물로 전해져오는 것이 없답니다.
진정한 족보는 끼나의 족보문화가 도입된 조선 초기에 와서야 간행됬다고 합니다.
끼나 성씨의 유입은 이 때 이루었졌을겁니다. 모화 사대 사상과 함께 조상을 끼나인으로 만드는 일도  성행했을 거고...그러다가 18세기 족보 대량 위조와 함께 우리민족이 끼나의 후손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가끔 동아게에 출현하시는 투후라는 분은 천만명이 끼나인 후손이라고 주장!! ㅋㅋ
오늘날 망국의 오스트로네시안화 다무놔에도 이 짝퉁 개족보들이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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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족보 연구 학자 - 끼나 귀화 성씨는 가짜 투성이

이수건씨 한국의 성씨와 족보
 
혈연과 지연을 강조하는 우리의 뿌리 의식은 `족보로 대표되는 성씨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족보나 성씨가 상당부분 왜곡돼 있다면(?).
30여년동안 한국 성씨 연구에 매달려온 이수건 박사(69·영남대 사학과 명예교수·사진)는 최근 펴낸 신간 `한국의 성씨와 족보를 통해 이같은 가정을 구체적 물증을 통해 사실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서울대 출판부가 펴내고 있는 `한국의 탐구 25번째 기획물.성씨 연구에 있어 탁월한 업적을 인정받는 이 박사는 책을 통해 일반화된 성씨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강하게 거부한다.
그는 "한국의 성은 대부분 중국과 관계도 없으며 발생 과정도 판이하게 다르지만 중국과 동일시 하는 것이 잘못된 출발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 박사는 신라시대 박·김·최·정·손씨 등 9개성과 왕실성을 제외하면 대다수 성은 고려 초기에 만들어졌으며 몇몇 특수성을 제외하면 동성의 이본(異本)은 다른성과 같다고 강조한다.
그는 "조선초인 16세기 인구의 40%가 무성층이고 17세기까지 양반층은 10%에 그쳤다"며 "일부다처제 하에서 배출된 수많은 서얼들의 향방을 고려할때 문벌과 반상을 거론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양반의식에서 나왔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한국의 성씨와 족보를 통해 200여개를 넘는 성씨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또 그 왜곡 과정을 세종실록지리지의 `실지 등 문헌 연구를 통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한국 성씨가 거친 왜곡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조선조 뿌리를 내린 `유교의 영향을 우선 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조선시대 역성혁명을 이룬 양반사대부의 대다수는 고려때 향리출신들이며 이들은 문벌의식과 신분적 특권을 강조하기 위해 족보 편찬때마다 향리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조상과 본을 바꾸는 행위를 거듭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후손 또는 신흥세력들이 족보편찬에서 본관을 바꾸거나 가계를 조작하는 일이 심해졌다는 것.이 박사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성리학에 경도되어 선조때 만들어진 족보에 대해 진위 문제를 따지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 비판의식도 이러한 성씨 왜곡에 한몫을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조사된 우리의 성씨는 274개에 본관은 3천435개 정도.
한자성의 종주국인 중국의 2천568성과 10만여개가 넘는 일본에 비해서는 적은 수다.
최초의 전국적인 성씨 자료인 조선초 `실지와 `여지에 나타난 성씨가 250여개 안팎인 것을 보면 조선조를 거치면서 성씨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박사는 "1909년 민적법이 생기면서 비로소 전 국민이 성을 갖게 되었으며 당시 호적담당 서기가 한자의 획을 잘못 그으면서 생긴 희성과 본관도 있을 정도"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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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 - 짱개들을 섬기던 소중화 와 사대주의가 한민족을 짱개의 후손으로 전락시켜 버렸네요
자신의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온 짱개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애들보면 넘 한심 합니다
          
부르르룽 12-10-24 12:52
   
하일 허참도 족보가 개구라라고 할 사람들이군요.
한민족 같은 소리 하고 있습니다. 
민족주의도 좋지만 명백히 역사서에 기록된 사실조차 인정치 않는 저렴한 행동이
바람직하진 않군요.
     
내셔널헬쓰 12-10-24 12:52
   
당신이 읽으라는 책의 저자는 보학자도 아니고 역사학자도 아닌 비전문가로군요~
제가 첨부한 자료는 보학자가 30년 연구를 한 거고, 사학자가 연구를 한 사실입니다.

저 책 저자는 전공이 니뽕어, 신문방송학..한 일도 엉뚱한 일
30년 보학 연구자와 사학자의 전문지식 앞에 아마추어
          
부르르룽 12-10-24 12:55
   
저 사학자 하나가 개구라라고 하면 그게 다 거짓이 되는겁니까?
정선이씨만 해도 자신들의 뿌리를 찾아서 베트남으로 도로 귀화한 사람도 있습니다.
               
내셔널헬쓰 12-10-24 12:59
   
저 사학자 하나뿐이 아닙니다. 많은 학자가 그렇게 말합니다. 물론 몇몇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비전문가인 제가 봐도 대부분 뻥같은데..
족보 도서관같은 곳에 가서 족보를 좀 보세요!
가관입니다. 끼나 황제가 시조인 집이 많아요~
                    
부르르룽 12-10-24 13:00
   
많은 학자? 그 많은 학자가 누굽니까?

99%가 아니라고 하는데 1%가 맞다고 하면 그게 정당한겁니까?

묘지에 무덤에 묘비에 그림에 증거들 넘쳐나는데도 말이죠.
               
내셔널헬쓰 12-10-24 13:03
   
1명 귀화했다 칩시다. 그 후손 피에 그 조상 피는 완전히 없어질 정도일겁니다. 조선시대 인구만 500백만이니...500만분의 1
베트남 조상 피는 온데간데 없는데 베트남으로 귀화? ㅎㅎㅎ, 뭐..그겅댜 그 사람 맘이지만,
위조가 대부분인 사실을 개잡종화의 구실로 삼으니 문제!!
          
부르르룽 12-10-24 12:57
   
http://www.ktv.go.kr/program/program_detail.jsp?cid=406683
박기현(대중역사학자, 작가)
          
부르르룽 12-10-24 12:59
   
신라귀화중국인 묘지명 발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2614245
신라 귀화 중국인 후손 묘지명 (서울=연합뉴스) 당 제국 해체기인 880-890년대 무렵 당나라를 떠나 신라로 귀화한 중국인의 후손인 `송고석인왕씨묘지명'(宋故碩人王氏墓誌銘)이 2005년 5월 중국 허난성 뤄양시(洛陽市) 남쪽 룽먼(龍門)에서 출토됐다. 사진은 그 덮개. 현재 뤄양대학이 소장한 이 묘지명 주인공은 고려사와 송사에 각각 왕림(王琳)과 왕빈(王彬)이라는 표기로 보이는 인물의 손녀다. 2009.4.17 << 문화부 기사참조, 백석대 민경삼 교수 제공 >>
               
야옹왕자 12-10-24 18:30
   
당신이 지셨습니다. 내셔널헬쓰님은 28레벨이므로 무조건 항복하십시요. ㅎㅎㅎ
농담입니다. 이런 건전한 두분의 토론 멋지네요
소를하라 12-10-24 13:50
   
그럼 화산이씨는 시조가 누구야?

베트남인,중국인,선비족?......................선비족도 동이족의 일파라고 보는사람도 있는데 그럼 화산이씨는

한국인이네?
mymiky 12-10-24 15:21
   
한국 성씨는 거의 다 신라말-고려초쯤에 정립되어서, 족보는 본격적으로 조선에 들어서야 성행함..
족보에 조상이 중국에서 왔다고 해서, 진짜라고 생각하든 말든 그건 본인 사정이지만,

엄연히 모화사상의 영향도 있었다는걸 부정하면 안됨.
우리집 이렇게 오래된 가문이다. 대국에서 건너온 명문가다~ 일종의 허세질이자, 선전질인데..

솔직히, 중국에서 잘 먹고, 잘 사시던 분들이 왜 말다르고 풍습다른 외국까지 기어들어왔겠음? -.-
외국에 정착하는게 그리 쉬운줄 아나? 지금도, 이민가서 성공하려면, 뼈빠지게 고생해서
겨우 1세대들은 세탁이다, 닭공장이다. 일하다가 2-3세대나 되어서야 겨우 전문직으로 성공하는데..

물론, 전란을 피해 도망쳐오기도 하고, 무역하다가 정착하기도 하고, 귀화인들이야 있었겠지만.

왜, 하나같이 중국에서 왔다는 가문들보면, 지네 조상들 관직이 높고, 잘 살던 명문가들밖에 없어? ㅋㅋㅋㅋㅋ

솔직히 이건,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자기 조상이 내시- 내시도 엄연히 양자들여 가문이어옴..) 백정이 없는것과 비슷한 예라고 봄..
죄다 양반후손이래 ㅋㅋㅋㅋㅋㅋ 양반들만 씨뿌리고 살았냐?
스프링거 12-10-24 16:05
   
여씨성을 쓰는 사람중 유명한 사람이 있지...여불위라고....ㅎㅎㅎㅎ
고프다 12-10-24 18:20
   
30년동안 한국 성씨 연구를 해온 영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이수건 박사의 `한국의 성씨와 족보'에 따르면

"조선초인 16세기 인구의 40%가 무성층이고 17세기까지 양반층은 10%에 그쳤다"라고 합니다.

흔히 부일배들이 지껄이는 양반 10%제외하고 나머지 90%는 조선왕조 끝날때까지 무성층이란 것도 거짓이죠.

어쨌던 16세기 즉 임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신분제에 엄청난 혼란이 오기 전까지 안정적인 상태의 조선시대 전기에도

10%양반을 제외한 백성들도 상당수 성씨가 있었고 무성층은 40%정도에 불과했다는 이야깁니다.

실제로 임란 호란 이전의 조선전기에는 양반임에도 족보를 발행하지 않은 가문도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전기에 족보는 굉장히 소수의 가문에서만 발행했다고 하네요..

족보가 대중화된건 확실히 17세기 이후 조선시대 후기입니다

 즉.. 그 동안 족보 없이 살던 양반가들 그리고 임란 호란 혼란기 이후에 이러저러하게 양반행세를 하게 된

신양반층까지도 그 무렵에 족보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그 이전의 족보를 깨끗한 족보 = 청보    이후의 족보를 완전히 믿기 힘든 족보 = 탁보

이렇게 분류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청보에 해당하는 족보를 가진 가문 정말 몇가문 안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초기에 실제 벼슬한 기록이 있는 엄연한 양반 가문중에도 위에서도 말했지만

그 당시 족보를 안 쓰던 집안도 많아서 청보가 없는 집안도 많습니다.

어쨌던 족보가 대중화되는 시기인 17세기~18세기에 소중화사상이 극심했던게 사실이고..

새로 족보쓰는 사람들 대다수가 유행처럼 시조를 그냥 중국인으로 만들어서 시작하는 예가 많았음.

흔히들 짱깨들이 한국인은 전부 중국인들이 건너간거라고 우기는 근거가 되기도 하죠.

곧이 곧대로 믿으면 바보임..  저런 분들이 30년동안 헛연구한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귀화성씨가 아예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유래가 확실한 귀화 성씨도 상당수 있습니다.
칼리 12-10-24 19:37
   
부르르룽인지 정말 답없는 인간이네.

족보에 나오는 시조를 진심으로 쳐 믿다니.

족보는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면 되는거다. 특히나 시조가 삼국이나 고려조 때 사람이면 거의 100퍼 창조된거임.
남자는심벌 12-10-24 23:21
   
부르릉의 소스대로 찾아가 보니.. 한가지 웃긴점이 있네?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 성씨]의 작가는 대중역사서 작가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사료와 추적 고증을 통한 역사학자가 아닌 타인의 논문등을 참고자료삼아 논문을 쓴것이 아닌 자료정리정도라 할 수 있겠군... 즉, 저 작가의 주장이 자신이 옳다고 추정할 만한 근거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근거가 확실하다고 할 수도 없군. 전문가라 할 수도 없는 그냥 글쟁이.. 그렇다면 이 책이 자신의 주장의 근거라고 말하긴 쪽팔리지 않나?
shonny 12-10-25 15:00
   
100% 창조됐다는것도 웃긴건데요..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초기나 고려시대 묘비들 보면.. 자신의 직계조상들이 누군지정도 적어놓은 묘문도 있는데..
당시엔 더 많이 있었을거고여..
만약 지금 족보를 만든다면. 당연히 집안의 어른들에게 물어봐서 전해내려오는 집안의 이야기부터.. 선산에 가면 있는 조상들 묘비보면 거기에 조상들 이름 적혀있어서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정도는 직접 알아볼수있고.. 그위는 묘비들보거나 기록보고 추적가능한데여..
     
내셔널헬쓰 12-10-25 20:25
   
당나라 있던 시대 살았던 조상님 묘도 있나요? 고조선은?
     
김시누크 14-09-30 17:46
   
문제는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후손 또는 신흥세력들이 족보편찬에서 본관을 바꾸거나 가계를 조작하는 일이 심해졌다는 것이죠
빈라덴 12-10-26 21:33
   
우리 조상이 베트남인이면 어떻습니까
내가 지금 한국인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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