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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11 19:53
[기타] 고려말과 조선초의 군사비교
 글쓴이 : 위대한도약
조회 : 7,747  

원래 발제글과는 다르게 고려와 조선의 군사비교가 되어서 제목을 수정합니다.
 
 
고려말과 조선건국당시의 강성했던 힘은 임진왜란 때 상쇄 된건가요?
아님 조선의 중앙집권적인 통치행태가 먹혀서 군사력에 필요한 자원을 다른 곳으로 돌린 건가요?
 
군벌을 운영하는 호족들을 해체시겼으면 일반백성들은 조금 살기 좋아지지 않을 까 합니다.
단지 유교만으로 해석 하기에는 물질적인 것을 포함한 사회전체역량은 고려와 조선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껴짐 고려가 우위에 있다고 느껴짐
 
잘못된 생각인가요?
 
뭔가 물질에서 정신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이 이해가 안 감
고려에서 물질적인 부분이 빠지고 정신만 남은 것이 조선
 
역사를 잘 몰라 그러니 아시는 분들은 짧게나마 자신의 지식을 나누어 주세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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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콩 12-09-11 20:13
   
국가라는 개념보다 왕조라는 개념을 더 중시해서 그리된건 아닐까요.
이성개가 군권을 거머쥐고 왕권을 뒤집어 엎어서 탄생한게 조선이니, 다시 같은일이 발생 하는게 두려웠겠죠.
감시가능하고 통제가능한 선을 유지하다보니 저절로 군사력이 약해지는 결과로....
     
위대한도약 12-09-11 20:18
   
군사력이 줄어 들었다면 그 군사력을 유지하던 자금이나 토지가
다른 용도로 발전 되어야 하지 않나 해서 하는 말이죠
근데 딱히 조선이 화려한 면이 없어서 그러는 것입니다.
개인의 구체적 증거없는 생각입니다.
고려말과 조선 중기의 물질적 문화의 차이 어느 것이 더 우수한가인데
전문적으로 알아볼려고 하니 자신이 없음
잘 아시는 분들에게 거저 얻어 먹을려는 꼼수임
greaf 12-09-11 20:40
   
조선 중기의 문제는 정도전 이후로 딱히 중군주의자들도 딱히 나오지 않았고, 국토방어 전술과 전법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하는데 세종대왕때의 제승방략제도를 100년 넘게 답습한 문제도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사회역량은 조선 시대가 나중인 만큼 더욱 컸죠. 세종대왕때 사회전반적인 면에서 일대 혁신이 있었으니까요.  고려말의 사회는 몽골에 의해 거의 반멸망하다시피한 상태라서 오히려 조선보다 비참한 국력이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충렬왕 이후로 막장왕이 많았고, 충혜왕 때는 일국의 왕이 짐승같은 이라서 원나라에서 귀양보내서 중국에서 죽었다죠.
     
위대한도약 12-09-11 20:57
   
고인 물은 섞는다 이 말씀이네요
가끔 중국 다큐에서 천년전 고대성들을 보면 대단하더군요
특별한 지역의 집단촌의 거주문화를 봐도 대단하고

현재 중국인의 국민성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지만 물질적 문화가
그 나라의 모든 역량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문화들을 보면 솔직히 배가 아픈 것은 사실입니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당나라가서 벼슬한 것만 보더라도
그 시대가 더 열려있는 세상 같아서

근데 명과 조선의 쇄국정책(해외무역 같은 부분 왜구세력퇴치때문에)이후
물질적인 부분에서 뒤 떨어진 것이 아쉬운 마음입니다.

대신 정신문화에서 더 높은 수준이었다면 이런 것도 대놓고 자랑할 만하지 않은 가요?
우기기가 아니라 학술적으로 뒷받침해서
잠원 12-09-11 20:46
   
새 왕조가 들어서면.. 
군사력이 강해지고..  백성들은 풍족해지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그래서 50년 ~ 100년 쯤 지나면 왕조의 전성기가 되는데..
이후 점점 쇠퇴하는...

대다수 왕조들이 이런 패턴을 반복하지요.


왕조시대 경제력은 토지로부터 나오는데..
새 왕조가 들어서면 토지가 새로 생기는 것도 아닐텐데
왜 개국초에는 흥성했다가 ...  이후 점차로 힘을 잃어버리는걸까?
왜 그럴까?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그럼 과거 왕조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권문세족.. 기득권세력들은 토지와 기득권이 사라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기존 기득권으로부터 압수된 토지와 기득권은..
새로운 왕조의  차지가 되고..  공신과 관료들에게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지요.
헌데 그래도 왕창 남거든요.
과거 기득권세력이 숫자가 많고..  숨겨논 재산이 많다는 야그지요.

그래서 초기 왕조는 땅과 많은 재산을 보유하는 것인데..
이를 바탕으로 군사력도 정비하고..
충성을 보인 쫄따구에게 쩐과 권력을 하사하면서 왕조를 굳게 다져가는 것이지요.


백성들도 그렇거든요.
오랜동안 상납의 상납하던 부패고리가 새 왕조의 등장과 함께 깨졌다는 것인데..
부패가 없어지지는 않지만..
과거 5단계까지 올라가던 상납, 부패고리가.. 1,2 단계로 그치니.. 아무래도 적거든요.
또 상납하던 대상도 대부분 물갈이 됐을테고..


아무튼 이런 식으로 ..
임금님 주머니가 두둑하던 시절이 100년 쯤 지나면 .. 빈털털이가 된다는 것인데..
이제 나눠 줄 권력도 별로 없게 되는거지요.

그러다보니 ..  갈수록 세수가 줄것고..  또 지방에서는 임금님보다 영향력이 센 토호들이 나올 정도가 되는 것이지요.


왕조가 오래갈수록..  권문세가 토호들이 힘이 세지고...  또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개혁이 어렵게 되는데..

돈이 없고 힘이 없는 것이지요.

.
     
굿잡스 12-09-11 20:53
   
님의 말이 핵심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울 나라가 기본 500년에서 천년을 간걸 보면 민본 정치가 유지되다 보니 완전 막장급으로 권문세족들이 치닫지 않는 나름의 균형감이 있던 나라였다고 보이네요.
     
위대한도약 12-09-11 21:14
   
결국 조선왕조 아니 일반왕조의 한계가 거기 까지였다 하는 거죠

어떤 새로운 정신이나 개념이나 발명이 생기전 까지

어떤 집단이 민생을 책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거고

중국이 백년마다 했던 지랄들은 리셋버튼이고

조선은 리셋버튼을 누르려고 하기엔 중앙집권적이고 외부의 세력이 없음 리셋을 못누름

하지만 왕조설명으로는 물질문명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저의 생각은 그렇네요

제가 장황한 질문을 했는데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진모리 12-09-11 22:10
   
고려시대때는 10만~40만의 병력을 보유했었지요.

고려 초창기 요나라와 치고박고 싸울 때가 10만이었고,
그 후 꾸준히 병력을 확충, 무신정변 당시에는 40만이 넘었습니다.

당시 고려인구가 450~500만이었으니까,
비정상적인 군사국가였던 셈이죠.
(국민의 10% 가까이가 군인... 5000만인 지금도 60만인걸 생각하면, ㅎㄷㄷ하죠.)

그 덕분에,
중화권의 영향력 없이 독자적인 국호도 사용할 수 있었겠지요.
(요, 금 등도 고려를 무시하지 못 했죠. 세계를 제패했던 원나라와 100년 가까이 싸울 수 있었고...)


반면,
조선건국 초기에는 약 10만(세종 때까지 10만 병력을 유지합니다)으로 병력을 줄입니다.
(세종만 해도 2만~3만 병력을 동원, 토벌전쟁을 벌일 정도였으니까요. 대마도, 북진 토벌을 하죠. 이 때만 해도 나름 군사적 힘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명나라와는 실리적인 사대외교를 하며 국방을 안정화 시키고, 모든 군사력은 북방의 여진, 거란을 막는대만 사용하고, 나머지 병력은 점차 줄여갑니다.

임진란이 발생할 때는 총 군사가 4~5만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고려 때에 비하면, 군사력이 10%로 줄어 든 것이죠.

그리고 그나마 4~5만 정도의 병력도,
북방에 포진해 있었고,
남방(전라, 춘천, 경기도)에 포진한 병력을 다 털어서 8천명 정도였습니다.
(경기도에 4300명 정도, 전라도에 3000명 정도 입니다)

그런 경기도로,
10만이 넘는 왜구들이 몰려왔으니... 순신간에 개털릴 수 밖에 없었지요.
     
위대한도약 12-09-11 22:31
   
제 글의 요지는 줄어든 군사력만큼 아랫쪽으로 분배가 되고
그러면 물질문화에서도 고려와는 다른 발전이 있었어야 한게 아닌가 이런 질문인데
제가 질문을 잘 못 한것 같네요. 저의 능력 부족이네요

하여튼 긴시간 고려말과 조선초의 군사력에 관한 부분 적어주셔서 감사하고
다음에 필요할 때 잘 써먹겠습니다.
          
자진모리 12-09-11 22:33
   
아뇨, 이해했는데,
고려 때랑 조선 때 군사력 차이를 모르는 분이 계실까봐, 사설로 덧붙인거에요
               
위대한도약 12-09-11 22:50
   
근데 웃긴 것은 고려는 북한이다 이런 점도 포함되어 있네요 ㅋㅋ

제 질문이 고약해서 그렇지요
역사는 잘 모르고 궁금한 점은 있고
좋은 자료 고맙게 생각합니다.
     
잠원 12-09-12 00:51
   
[고려시대때는 10만~40만의 병력을 보유했었지요.

고려 초창기 요나라와 치고박고 싸울 때가 10만이었고,
그 후 꾸준히 병력을 확충, 무신정변 당시에는 40만이 넘었습니다.

당시 고려인구가 450~500만이었으니까,
비정상적인 군사국가였던 셈이죠.
(국민의 10% 가까이가 군인... 5000만인 지금도 60만인걸 생각하면, ㅎㄷㄷ하죠.)  ]

>
무신들이 주름잡던 시절이라고 정규군.. 군사가 많았던 것은 아니걸랑요.
사병이 많았고.. 이들이 주름잡던 세상이었던 것이지요.


고려왕국은 개국 초기부터 북방의 거란족의 위세가 대단했는데..
고려왕국에서는 군사가 많았다?
너무 당연하지요.

중국 역사에서.. 북방유목민과 한족간의 전쟁을 보면..
보통 한족들이 쪽수에서 5배는 더 많지요.
물론 그러고도 대부분 싸움에서 지거든요.

헌데 고려왕조시절 ...
강성한 거란족이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데.. 대비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고려왕조는 북쪽 변경지역에 북계, 동계라는 특별 군사행정구역을 둬서 거란족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인데...

그러니깐 이 지역 사람들은 평소엔 농사를 지어서 군량미를 조달하고..
농한기에는 군사 훈련하고..  적이 쳐들어오는 비상시에는 야비군으로 출동을 하였던 것인데.

조선왕조 시절에는 북방에 누가 있었나?
그냥 도적떼가 조금 있었을 뿐...  만주는 임자 없는 땅이었던 거지요.
만약 조선왕조시절 북방 국경이 위험했더라면.. 조선왕조 역시 고려왕조와같은 특단의 조처를 취했었겠죠.
그런 차이...

도데체 무슨 고려왕조가 비정상군사국가라느니... ㅎ 



[그 덕분에, 중화권의 영향력 없이 독자적인 국호도 사용할 수 있었겠지요.
(요, 금 등도 고려를 무시하지 못 했죠. 세계를 제패했던 원나라와 100년 가까이 싸울 수 있었고...) ]

>
당시 한족은 만리장성 아래로... 이후 장강 이남으로  찌그러지던 시절로
패자는 거란족이고..  고려왕국은 거란족과 겨룰 운명이기에 독자 연호를 하였던 것인데..
여기서 중화라는 단어가 왜 나왔을까?


아래에서도...
[.... 명나라와는 실리적인 사대외교...]
사대외교라는 단어는 부끄러운 단어인데... 앞에다 실리적인 외교라는 말로 치장하면 말이 되는가? 

어찌 이런 단어를 .. 쪽팔리는 줄도 모르고 거리낌없이 쓰는지들..

.
          
자진모리 12-09-12 05:08
   
이 님 좀 웃기시네 ㅋ
'실리적 사대외교'라는 말은 역사학계에서도 '공식적'으로 쓰는 말임.

역사학자들이 쓰는 말이,
외국인이 보면 내가 꾸며낸 말인 줄 알겠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자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중국의 연호를 쓴 것도 사실이고, 중국과는 사대적 관계로 외교, 교역을 했음.
그리고 이게 부끄럽다고요? ㅋ
왜요?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미군의 군사지원을 받는게 부끄럽나요?? 아니죠? 북한의 위험을 생각하면 실리적 선택이죠.
조선시대에도 이런 정책은 전혀 부끄러운게 아니었습니다. 실리였을 뿐

사대외교는 일본, 몽골, 여진, 거란, 동남아국가들도 모두 똑같이 했었지요.
그 당시에는 그게 당연한 '국제관례'였습니다.


그럼 왜 '실리적'이냐,
일단 외교형식으로는 중국에게 '허락'을 받는 형식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보고'만 하는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태자 책봉? 중국에 사신 보냅니다. 형식은 '허락'을 구하는 문서지만, 반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통보'였죠.
(중국은 한국의 세자, 왕비 간택에 일절 관여할 수 없었습니다. 문서만 허락이지, 사실상 통보였죠.)
조선과 중국 사이에는 '상하 관계'를 정한 후 '관섭하지 않음'을 기본으로 한 것이지요.

왜 이런 외교를 했느냐,
고대부터 중세까지, 아시아에서는 국가간의 상하관계 성립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두 국가가 있으면, 반드시 한 국가가 상전, 다른 하나는 아래가 되어야 됩니다.
그 시절에는 동등한 국가라는 개념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일본도 한국의 아래로 정의한 것이고, 절대 동등한 국가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중국과 조선의 상하관계를 정립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군사, 정치, 견제의 관섭을 원천 배제한 관계로 정의했지요.
원 나라나 청 나라가 온갖 요구를 했던 것과 달리, 명 나라 때는 조선에 어떤 요구도 없이 외교상의 관례로만 상하관계를 정리했지요.
그래서 실리적 사대라는겁니다.

중국의 자존심만 챙겨주고,
조선은 안보와 독자성을 보장받은 것이죠.
이게 정답입니다.


중국의 연호 같이 써주고, 매년 사신 보내서 안부 묻고 한 것은 사실입니다. 교역도 조공 형식으로 일시 했었지요.
그러나 정치, 군사, 경제에서 중국의 관섭은 일절 거부하지요.
중국의 알량한 존심 세워주고, 이득을 챙긴 것이라,
당시 외교를 실리적 사대외교라고 부르는 겁니다.

학자들이 다 그렇게 부르는 것을,
혼자 쪽팔린다, 이상하다 뭔 개솔을 하는지 ㅋㅋㅋㅋㅋㅋ
               
잠원 12-09-12 17:56
   
사대외교가 공식적인 단어니?

사대외교란 단어는.. 오늘날로 치면 빙신외교라는 말이란다.
인터넷에서 '글로벌호구'라고 하는 말 .. 들어 봤지?
그런 류의 ..같은 말이거든..

헌데 어찌 빙신외교니 글로벌 호구외교라는 단어가 공식단어가 될 수가 있것니..

학자들이 조선왕조의 대중국외교가 굴욕적인 외교였다는.. 그래서 비판적인 사대외교란 단어를 비공식 자리에서 하는 말을 들었나본데..
사대외교는 학계의 공식단어가 아니란다. 아니 될수가 없는 것이지

당시 조선왕조가 이러저러해서..  그런 빙신외교를 하였지만...
조선왕조 초기...  위협이 될만한 나라는 명나라 정도 였는데..
비위를 맞춤으로 .. 외세로부터 침략당할 위험이 없는.. 국방에 정력을 낭비안해도 되는 그런 이득이 있었던 것이지..

대외침략의 위험성을 줄였지만...  주체성에서 심각한 타격이 있었던 것인데..
 
물론 당시 상황에서 국익에 도움이 되는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다 하더라도..  사대외교라는 단어는 없다는 것이지..
좋게 말해서 굴욕외교라는 말인데..
말 끝마다 굴욕외교가 어쩌구.. 말이 되남?  미친 소리인 거지...


사대외교라는 단어를 쓸 때는..
조선왕조의 외교를 비판적으로 말할때 쓰는 단어란 것이지



헌데 사대라는 단어의 뜻과 개념도 모르는 알라가..
이것 저것 주워듯고 다니면서..
쪽 팔리는 줄도 모르고....  사대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고 있으니.. 쩝..


개념을 호떡하고 바꿔 먹고서.. 많이 알면.. 너처럼 똥을 싸는 것이지..
알면 알수록.. 아는 만큼 똥이 되는 것이거든..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넌 너무 많이 알려고 하지 말고 ... 쪼꼼만 알아라..

.
          
자진모리 12-09-12 05:16
   
고려의 군사제도와 똑같이,
조선도 징병제였고, 농번기에 동원하는 제도였음.

조선은 무슨 상비군이었는 줄 아나 ㅋㅋㅋㅋ
조선 인구가 오히려 600만으로 늘었음에도,
군사는 4만으로 줄임,



게다가 ㅋㅋㅋ
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려는 위험이 항상 있어서 전쟁 준비를 해야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또 오랜만에 웃겨주는 개그시네요 ㅋㅋㅋㅋ

고려도,
요나라와 전쟁 후, 원나라가 쳐들어 올 때까지는 전쟁 다운 전쟁은 없었습니다.
고려는 장차 '220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ㅋㅋㅋ 자잘한 민란이나 국경분쟁만 있었지 ㅋㅋ
다시 말하지요,
고려도 '220년' 간 전쟁이 없었다고요 ㅋㅋㅋ

그럼에도 군사력은 40만으로 키웠습니다 ㅋㅋㅋㅋ



조선도 세종의 북진토벌이 끝난 이후,
임진왜란, 병자호란 반발까지 '150년 정도' 전쟁이 없었지요.

헌데,
북방에서 여진 족들이 20여년에 걸쳐 통합되고 세력을 키워가고,
남방에서 일본도 호족들이 하나로 통합되며 군사력이 커지는데,

조선은 그냥 '방치'하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위협은 사실 임진란 20년 년 전에 이미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조선은 그저 눈감고 모름쇠~ 했던 것 뿐이지.
전쟁의 위험이 '없어서' 줄인게 아니라,
전쟁의 위험을 '몰라서' 줄인 겁니다.
               
잠원 12-09-12 18:25
   
조선왕조의 인구가 600만?
위에서도 고려왕조가 450~500만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던데..


대충 고려시대는 500~ 1000만...
조선시대는 1000~ 2000만 정도로 알고 있지..

인구의 증가는..
사회가 안정되며 도적들로부터 안전해지면서 해안이나 외진 지역까지 개간이 이루어지며 농지가 확대된 것이고..
또 농업기술이 발전하면서 토지부양력이 높아진 결과지..

당시는 오늘날처럼 컴퓨터로 집계가 불가능한 상황이니 정확한 집계도 어렵지만..
질병등의 영향이 많거든..
돌림병이 돌면 ... 과장 좀 하면 인구가 반토막이 나던 시절이었지..

또 전쟁이나 사회혼란.. 왕조 후기로 가면.. 조세를 피하기 위한 누락된 인구가 많았는데..
그래서 시대마다.. 심지어는 해마다 인구통계가 들쑥날쑥 한 것이지..

.
               
잠원 12-09-12 18:26
   
거란의 침입 후... 전쟁다운 전쟁이 없다는 말은...
지금으로 치면... 625동란 후.. 60년간 대한민국은 평화의시대였다는 소리것지..
그 사이 대포 몇 방 쏴 본게 전부일텐데...
야그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아주 평화스런 나라지..



고려왕조는 머리 위에 ... 한족들도 쪼그라들게 만든 엄청 강력한 잠재적 적이 살고 있었는데..
그래서 항상 비상경계하에서 살던 나라였지..
그러니 군사력이 강할 수밖에..

그런 대비태세를 갖춘 나라이니.. 적이 분열이나 힘이 약해졌을 시에는..
맘만 먹으면 쳐들어갈수도 있는 실력이라는 말이지..


하지만 초기조선왕조는 어떠했는가..
조선왕조를 위협할 나라는 명나라가 유일했는데..
알아서 기는 사대외교를 하며 ... 명나라와는 사이가 좋았다자나?

적이라고 하기 민망한 ..
 많아야 수천명 정도의 여진족들이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약탈하는 정도인데...
그런 여진족이 국경인근 민간인 상대로 약탈 사고가 있었던거지.


이런 조선왕조와 고려왕조를 비교하는거니?

개념을 호떡사먹고 다니면서... 이것 저것 아니..  똥만 싸는 거자나..

.
쏴로도라쏘… 12-09-12 00:57
   
위대한도약// 제 글의 요지는 줄어든 군사력만큼 아랫쪽으로 분배가 되고
그러면 물질문화에서도 고려와는 다른 발전이 있었어야 한게 아닌가 이런 질문인데 라고 하셧는데 조선때도 군사비 엄청나게 썻습니다. 조선초기때만해도 국가예산중 70프로를 국방비에 썻습니다. 근데 고려랑 조선이랑 뭐가 차이가 날까요? 고려랑 조선이랑 근본 체제부터 다릅니다. 고려는 한마디로 무사계급사회입니다. 혼란스러운 신라말 나라가 작살이 나고나서 도적떼가 성행하며 이를 방비하기위해 각 지역마다 자체적으로 방어하게 됩니다. 이때 주도적인 놈들은 주현에 속하거나 호족층이 되며 밑에사람들이 속현이나 피지배층으로 됩니다. 그래서 고려는 다시 첨부터 중앙집권을 하나하나 밟아나가게되죠. 중요한건 중간층에 정남들이 직업군인들도 많아서 나중에 농사짓다가 전쟁터지면 노비나 밑에서 일하던 평민들 다 이끌고 나가는 분대장이나 소대장급 역할을 하기에 군사도 한순간에 모을수가 있죠. 그래서 거란족쳐들어올때도 20만 순식간에 모았거나 여진정벌할떄 총동원령 내리고 몽고 항쟁도 농민주도로 싸웠던게 다 아다리가 맞죠. 근데 조선은 고려를 이어받은 나란데 왜 차이가 나냐? 사자 계급이 선비 사자 라서 그렇죠. 조선초때는 성리학이 심화되지 않아 세종이랑 세조때 몽고가 다시 설치기 시작할떄 정군만 30만에다가 예비군이랑 노동부대까지 합하면 백만까지 동원했었습니다그리고 상관들도 고려말을 거친 사람들이기때문에 병법이도 능숙했습니다. 그러나 문치주의가 심화되면 사단장급들은 다 이론으로만 전쟁 마스터한 문관이 차지하게 되고 성종인가 이렇게 이쯤가기 시작하면 문신고관들이 변방 문제 토론할때 변방군사 전문가를 고문으로 하여 참석시키게 됩니다 즉 고관들이 국방문제 의논한다면서 병법같은건 전혀 모른다는뜻이죠. 즉 승무정신이 사라지게 되지요. 그리고 고려떄와 비교하여 순식간에 군사동원이 어렵기도 하고. 제일 중요한게  병역비리문제.. 분명 예산중 70프로를 병조가 썻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때 병력이 없었다는건 비리 폐단이 극심했다는걸 의미합니다. 조선초때는 의무병제가 잘지켜졌으나 점점 농민들 농삿일에 바쁘게 되어 대립제(예비군땜빵같은거)가 성행하게 되고. 나라에서 결국 공식적으로 군적수포제로 용병제를 실시합니다. 그런데 임진왜란때 병력이 500? 도 안됐다는건 벌써 나라 망했다는 뜻이죠. 신립이 병슨같아서 진줄 아는데 지나가는 농민들 잡아다가 군기도 없는놈들 델고가서 진을 치니까 다 밤에 도망쳐서 어쩔수없이 배수진을 치게 된겁니다. 고려때도 무는 문보다 한수아래였지만 조선때는 무를 너무차별하고 비리도 심했고 형식적으론 문무 동등이니 양인개병이니 해놓고 다 차별하고 양반들은 군대 안가고 하니까 성리학이 나라 말아먹었다고 하는겁니다.
     
위대한도약 12-09-12 01:34
   
헉 쓴 글이 다 날라가 버렸네요
고려귀족문화는 소수특정계층만 누릴 수 있는 문화였다
그래서 고려청자나 불교미술 인쇄기술같은 문화들은 아주 소수계층만 누릴 수 있는 문화였고

조선때가 되어서는 고려귀족보다는 폭 넓은 사대부계층이 먹고 술 마사는 데 소비해서
물질문화가 없었다 아님 고려때 보다 화려하진 않지만 시,책,그림같은 사대부만의 문화가 발전했다

근데 비리 폐단이 극심했다 하면 사치문화도 있었어야 하는데
정신만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비리폐단이 심했다 사실 이건 모순이지요

고려귀족보다 폭 넓은 사대부계층에서 여유가 있었지만 이를 소비할 물질문화가 별로 없었다
따라서 기득권에 줄서기 위해 토지나 재산을 모으는 축적에만 서로 열을 올렸다
이런 내용을 기대한 것임돠

저 또한 이상하게 고려청자에 꽃혀 아무리 봐도 조선의 물질문화는 뭔가 맘에 안듬
저의 이런 주관때문에 이상한 발제글을 올려서 님들을 피곤하게 한 것 같네요

하여튼 이상한 발제글이라도 신경 써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모래곰 12-09-12 02:14
   
군사력을 말하자면 고려는 현종부터 정성기를 누려 요나라를 물리쳐 대등외교를 폈고 전성기를 이뤄 예종은 완안부족을 정벌할 정도로 강성했지만 이자겸, 무신정변을 겪고 하락기에 들어서죠. 오히려 무신정변으로 고려 군사력은 약화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극 무인시대에서 고려군사가 40만이라는 말은 나왔지만 역사책에 언급된 것은 제가 알기론 정종 30만, 강조의 30만이 최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별무반도 17만에서 20만 정도였죠. 그래서 저는 고려의 총 병력이 20만에서 30만이라고 생각됩니다. 조선과 달리 여기엔 노비, 양반도 포합됐다고 들었습니다. 고려는 중앙에 병사를 집중했고 지방에는 소규모였습니다. 북방은 달랐겠지만. 중앙엔 2군 6위가 4만5천이였다고 들었는데 이게 고려의 정예군이고 나머지는 예비군이겠죠. 예비군은 둔전병에서부터 농민징집병이니 인구에 비해 과잉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군 6위가 정예니까요. 별무반이 출정할 때 모든 군사들을 1년간 훈련을 시키고 2군 6위와 출진했다고 합니다. 훈련시키지 않은 징집병은 군사라고 부르기 힘들죠. 조선은 태조, 태종 때는 30만이 넘었는데 세종때는 숫자를 줄여 정규군 육군 16, 수군 5만정도를 유지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예비군 1만 정도. 임진왜란에 들어서면 군인들의 숫자가 현저히 떨어집니다. 징비록을 보면 류성룡이 노비들을 해방시켜 군사로 삼으려고 하지만 위급상황임에도 양반들이 도로 찾아간다고 한탄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조선이 임진왜란에 약한 이유 중 하나가 노비의 증가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은 노비를 군사로 부릴 수 없었고 고려는 노비도 전쟁에 참가했으니까요. 조선도 그랬다면 임진왜란도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려도 후기에 가면 군사로 동원할 수 있는 숫자가 현저히 줄어드는데 이성계가 조선을 개창하고 군사, 경제가 현저히 상승합니다. 예를 들면 태종이 한거지만 조선 초기에 불교의 노비를 해방시켰는데 8만명, 호수인지 모르겠는데 엄청났다고 하더군요. 많이 썼지만 위에 분들의 말과 별 차이가 없네요. 그리고 예전에 고려유물을 사진으로 봤는데 굉장합니다. 조선보다는 부의 분배가 잘 안된 것은 분명합니다. 조선시대 기술자를 멸시해서 수준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엔 뭐 신라의 안압지같은게 아닐까요. 명나라도 송나라보다 제가 보기엔 덜 화려한데 어쩌면 시대의 힘이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대한도약 12-09-12 02:22
   
군사이야기로 시작해서 군사이야기로 끝나네 ㅠ.ㅠ

위의 글들과 중복되는 부분은 없네요 노비관련해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고
제목과 다르지만 고려와 조선의 군사비교로 바꿀께요
담에 토론할 일이 생기면 이 제목을 찾아서 필요한 부분들을 찾아서 나누면 좋겠네요
          
모래곰 12-09-12 02:42
   
어쩌면 고려시대의 민중의 삶이 몰라서 그렇지 더 힘들었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와 달리 우리는 고려민중의 삶에 대해 아는게 없잖아요. 사극도 조선과 달리 고려민중을 중심으로 그린 것은 없고 아무래도 인식이 그렇겠죠. 일반적인 학자들이 말하길 조선이 개국하고 백성들의 삶은 확실히 수준이 모두 향상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려도 유학자들이 있었지만 조선은 건국부터 유학의 나라잖아요. 화려한 것을 버리고 검소한게 미덕이니까 더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도자기도 청자보단 백자가 훨씬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하네요. 수준이 떨어진게 아니라는 말이겠죠. 그리고 조선의 물건들도 찾아보면 화려한게 많아요. 예로 저는 고려의 궁궐 만월대를 좋아합니다. 층을 지게 만들고 언덕에 따라 지어서 위엄이 있었다고 합니다. 색채도 화려하고요. 하지만 주 이유가 공간이 협소해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네요. 제가 생각한 것과 달리 경복궁이 떨어지는게 아니라는 말이죠. 조선시대 건물이 2층구조가 적었던 것도 2층에는 온돌을 깔 수가 었어서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개성을 감싸고 있는 성벽을 봐도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토성이였는는 말도 있고 아예 없었다는 주장도 있고요. 그리고 조선시대가 환경적으로 소빙하기???? 어쩌구 해서 농사가 잘 안된 시기라고 하네요. 그리고 교류의 문제도 있어요. 고려는 송나라와 친했는데 송나라는 화려하죠. 그에 영향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조선의 경우 명나라는 쇄국정책도 폈고 아무래도 그렇겠죠.
               
위대한도약 12-09-12 03:19
   
검소한 것을 더 높이 쳐 주는 유교문화였다 이건 학자들의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주된 이유는 기후문제도 있을 것이고 쇄국정책도 있겠지요

뭐 조선을 일부려 깔려고 쓴 글은 아닙니다. 고려보다 풍부한 기록문화가 있고

그런 걸로 봐선 완전히 수준없는 나라는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땅이 좁아서 서로 눈치보고 견제하느라고 그런데 에너지를 소비한 것도
크겠지요

고려와 조선사이로 넘어갈 때 이성계 위주로의 기록만 많이 남아서
그 중간에 기록된 것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것 같습니다.

아마 조선에서 일부러 없애버린 책들도 꽤나 있을것 같구요

친절한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모래곰 12-09-12 15:25
   
조선에서 일부러 없앤 책은 없을겁니다. 고려의 역사서가 부실한 이유는 임진왜란이 원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고려도 조선왕조실록같은 역사서가 있었지만 왜란 때 불탔다고 들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 고려왕조실록을 따라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아마 있었으면 조선왕조실록에 못지 않게 세세한 기록이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없습니다 12-09-12 03:30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조선 성립이후 임진왜란까지 2백년동안 전쟁이 없었다는 점이죠.(왜구나 여진족 부락과 투닥거리는 수준이 다였음).

이 세상 어느시대 어느나라에서라도 2백년동안 전쟁없으면서 군사력 유지할 나라는 없습니다.
말이 2백년이지 조선 순조때부터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자진모리 12-09-12 05:28
   
ㄴㄴ
그렇게 말하면,
고려도 요나라와 전쟁 이후, 몽골전쟁까지
'220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군사정변'과 '민란' 정도가 고작이었죠.
그럼에도 군사력을 줄이기는 커녕 더 키웠지요.

조선이 군사를 줄인 것은,
그냥 외부의 위험을 모름쇠로 일괄했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이 통합되고,
일본의 지방영주들이 통합되는데, 근 20년이 걸립니다.

즉,
임진왜란, 병자호란 20년 전에,
군사적 위험은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이죠.

헌데, 몰라서 모름쇠 한건지, 알고도 모름쇠 한건지,
조선은 무사태평으로 군사력을 줄이기만 했죠
          
없습니다 12-09-12 10:43
   
길주전투에서 패배하고 동북9성을 반환한게 1109년이고 몽골침입이 1231년입니다.
중간은 금나라에게 굴복해서 군신관계를 맺을정도로 국방이 위태로움과 동시에 사실상의 내전인 무신정권기였죠. 비교가 안됩니다.
               
모래곰 12-09-12 15:31
   
조선이 고려같이 대규모 병력의 운용이 없었지만(임진왜란을 제외하고) 전투가 아예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의외로 여진족 토벌이 자주 있었던 것 같던데요. 병력도 1만5천에서 2만입니다. 고려도 실질적으로 중앙의 2군6위를 제외하고는 강력한 병력이 아닙니다. 조선과 별 차이가 없어요. 고려가 힘의 집중은 조선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반란을 두려워해서 중앙에 모은거지만요. 송나라가 당나라의 절도사들의 난을 교훈삼아 병력은 경성에 모으고 지방에는 소수만 주둔시킨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산골대왕 12-09-12 06:30
   
고려시대 초기에 광군사를 30만 조직한걸로 압니다.
당시로선 어마어마한 규모인샘이죠.
냐옵니 12-09-12 08:18
   
드라마 무신보면 알겠지만 고려때는 사병이 있었음. 중앙군도 있었음. 귀족은 각기 사병을 거느리고 백명에서 천명정도까지 사병을 거느리고 이들을 먹여살렸음. 그러다보니 서로의 전력을 올리려고 무예를 계속 갈고 딱았고 그것이 중앙군도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거둬서 군사들부터 먹여살렸음.
하지만 조선은 쿠테타로 바꾼 이성계가 가장 먼저한일이 후속 쿠테타가 일어날까바 사병을 해채시키는일
거기다 군사력은 악이라고 규정한 유학을 신봉하면서
조선건국기에는 혼란기라 명나라에 신속하면 조선에 쳐들어올만한 국력을 가진 나라가 없었음.주변국은 다 망했음...즉 명나라 다음이 조선...
그래서 조선은 군축을 강행.. 사병도 없애고 군축도 하니 군사력은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짐. 북방군빼면 훈련도 잘 안했다고 하고. 대포도 안 만들고
하여튼 조선들어서고 군사력은 임진왜란 때문이 아니라 그냥 국책으로 군사력 줄이기가 대세였음. 유학자들은 군사를 기르는것 자체를 반대하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그냥 군사력은 없애야할 악
그러다가 왜군에 한방 쳐 막고 사병이라고 볼수 있는 의병들로 겨우 위기를 넘긴것일 뿐
임진왜란때도 군사력은 좃망이였고 임진왜란 후에도 좃망
아직도 12-09-12 13:39
   
다른건 모두 차지하더라도,,,
조선은 세조라는 사람이후,,
개막장,,
전쟁때 단한번도 상대를 제대로 재압해본적없는 한심한 왕조,,
고려때의 거란, 몽고, 송나라 다루던걸보면,,
조선은 후대 백성들의능욕을보면,,,진작에 없어져야했을 왕조,,
     
mymiky 12-09-12 14:42
   
님, 윗분들이 설명을 잘 해놓으셨는데, 좀 읽으세요.
고려시대는 중원이 다 갈라져 있었습니다. 송만 있었던게 아니라, 송, 서하, 거란, 금, 몽골
등등, 조선은 단지, 통일제국인 명, 기타 약탈좀 하던 여진, 전국시대로 지들끼리 복잡복잡하던 왜만 있었죠-.-
조선시대에 전쟁이라고 해봤자, 왜란, 호란인데, 그것빼고는 조선은 전쟁이랄것도 없었습니다.
520년중에, 왜란 7년-이것도 횟수만 7년이지, 싸운건 3년정도인가? 호란- 정묘, 병자년 이것도 거의 1년도 안되었고, 두 호란 합쳐도 몇달간 싸운게 다임.
왜란때, 초기만 일본이 승전을 올리고, 나머지 전투는 조선군에 다 밟히고 다녔구요--
조선이 이래나 저래나, 백성 살기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평화스러웠던 왕조임--
현대인들 머리속엔 워낙 왜란, 호란, 식민지 강점기 이미지가 있으니 욕을 많이 듣는데,
조선시대때는 백성 말아먹는 개막장 임금도 없었음- 연산군 정도? 이분도 뭐 권력투쟁에서 진거지, 폭군소리 듣기엔 양반이실정도...
조선의 문제점은 그냥, 이전시대와 달리 평화기간이 길어서 배떼지에 기름낀것이라고 생각하면 됨.
          
mymiky 12-09-12 15:04
   
또한, 세조이후 개막장이라는데-.-;; 그런 개막장 국가에서 각종 기록 문화재가 나오고,
고유의 문화가 꽃피고 못하죠. 그만큼 행정력과 안정이 뒤받침 해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있는거구요.
요즘 사람들이 고구려 뛰우고 고려 뛰우는거, 싸움을 잘해서?란 이미지가 있어서
막 찬양질하는데,,-- 솔직히, 한 국가를 평가하는 것은 영토가 얼마나 크냐? 잘싸우냐?
관점에서 보는건 무리가 따르죠. 그건 일부의 요인은 될지언정, 그게 한 국가를 평가하는
절대기준은 아닙니다.
님이 세조이후 개막장이라는 것도 근거는 없죠. 조선은 그 개막장이 안되려고 무지 노력한 국가입니다. 뿌리깊은 나무 보셨죠? 거기서 왕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했나요?
조선만큼 국가는 무엇이며, 왕의 의무와 신하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에 대한 정치철학이 곤고하던 왕조 세계적으로 보기 힘듭니다. 그냥 쎈놈이 앉아서 정치하는건 많이 있죠.
중국의 황제정치도 그렇고, 일본 쇼군정치도 그렇고,,
아마, 님은 누가 왕이 되든 쎈놈이 되어서, 군사력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이런 게 한심한게 아니라 칭찬할수 있는 왕조일꺼라 여기시면, 간단합니다.
옆에 있는 일본 빠시면 되요. ㅋㅋㅋ 거긴 강한게 -선이라서, 강한자 숭배하고, 그가 하는 말이면 무작정 믿고 따르면 되고, 죽으라면 죽으면 되고, 식민지배에 한없는 우월감 느낄 요량이면 그래도 됨. 강자에겐 나머지 인간들은 부속품이라서, 내가 죽으라면 반자이 돌격해서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음.
중국의 진시황의 예도 있네요. 국가가 빡세서 주변을 다 삼킬정도의 힘은 가졌지만, 그 백성들은 전혀-- 네버 행복하지 않았던 진왕조.. 하지만, 군사력만 빠신다면, 진왕조가 최고겠죠 ㅋㅋ 님같은 분에겐..
               
냐옵니 12-09-12 19:02
   
바로 그겁니다. 유교문화가 꽃피웠죠
자 강대국의 조건이 무엇이죠.. 군사 경제 문화 입니다.
즉 유교를 받아 들임으로서 .사농공상..
농촌 경제력이 늘어나도 그것을 상인들로 교역으로 국부를 이룩하는게 아니라 자급자족을 미덕으로 삼았습니다. 즉 유교를 받아들임으로서
수백년의 평화기간 동안 국부를 늘일 생각을 하지 않고 국력을 기르지 않고 군사력을 늘이지 않고 .. 그냥 유교문화에 온갖 혜택을 퍼부은 겁니다.
 즉 유교를 신봉하면서 그냥 명나라에 충성하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생각해버린겁니다.
강대국이 먼지 군사력이 먼지 나라가 먼지 현대에서 보면 완전 개막장짓을 한거죠. 세금 받아서 수백년동안 4대강 같은 뻘짓만 한거라고 보면 됩니다. 강국이 되기위해서 경제 재투자나 군사력 확충 교역선 확대같은 그런거 안하고 말이죠.
세종은 그래도 군사력이 중요한지 알았어요. 그래서 세종은 그래도 군사무기를 개량하려고 애섰죠. 하지만 개인의 의지일뿐 양반의 유교문화 자체가 그것을 지속가능하게 만들지 않았어요. 한면만 보지 말고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문화를 보세요
모래곰 12-09-12 15:21
   
고구려조차 멸망의 위기가 수없이 많았죠. 늘 최강자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배짱이 두둑했죠. 일제가 있어 조선이 무시를 당하지만 백성들이 가장 평화로운 시대는 확실히 맞죠. 문물도 훌륭하고 군사력도 사실 따지만 전 왕조들에 비해 약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알기로 광개토태왕이 백제, 신라, 가야, 왜, 후연을 휩쓸 때도 5만명으로 출전했죠. 수십만이 아니였어요. 당태종과 전투에서 결국 이겼지만 15만명이 와해될 위기도 있었죠. 거의 망할 수도 있는 상황이였죠. 고려시대는 말기를 제외하고 왜구의 위협도 없었고 송나라는 군사력이 약한데다 바다 건너에 있고 고려와 우호를 먼저 바랬죠. 고려의 적은 요동, 만주, 연해주, 북중국을 소유한 요(금)만이 위협이였죠. 그것도 그들은 송나라를 주적으로 삼았고 또 대하도 세력이 만만치 않았기에 고려의 경제, 군사력도 탁월했지만 균형이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려, 요(금), 대하, 송 이들이 4명의 군주죠. 고려가 배짱은 조선보다 낫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생각해보자면 조선은 남쪽에서의 위협과 북쪽에서의 위협에 균형을 잘 잡을 필요가 있었죠. 최영장군이 요동정벌을 위해 5만명을 파병했을 때 병력이 빈 틈을 타 왜구의 침탈이 더욱 심했다고 합니다.
zzag 12-09-12 15:48
   
태조가 개국하고 세종때 피크찍고 그 이후론 안주,답습에 따른 자연 쇠퇴. 조선만의 싸이클이 아닌듯합니다.
해방후 군정 지나 개국해서 지금 피크찍는중 그러나 제눈엔 이후의 쇠락이 보이네요. 조선보다는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후손들이 그때 그 사람들은 조선의 반 만큼도 유지 못했으면서 조선 욕은 달고 살았다란 얘기 듣고 싶지 않네요.
     
mymiky 12-09-12 15:51
   
실제론 세종때는 피크기간 아님, 개국 30년에 피크면 코메디죠..
정확하게 조선의 전성기는- 조선 성종때임.
조선의 부흥기-영조-정조

한국의 전성기가 지금이라면 ㅋㅋ 부흥기는 북한과 통일하고 난뒤가 되겠군요.
통일 ㅜㅜ
          
zzag 12-09-20 00:21
   
제가 세종때를 전성기라 보는 이유는
영토적으로 가장 크게 성장한 시기고, 정치적 암투가 없었으며,
재정상으로, 기술적으로, 학예적으로, 국방력까지 제일 우수할때라고 보기때문입니다.
말씀하신 영정조 시기는 전성기라기보다 재도약의 기회였으나 뒷심없이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죠. 이견이 있을수 있다는것은 인정합니다만 제가 보는 관점이니까요..

제가 보기에 우리나라의 재도약의 기회는 북한과 통일했을때보다..
국가 유력계층이 개심하고 민족과 나라가 곧 자신과 후손의 존재기반임을 깨달아
자신들이 가진힘을 바르고 정의롭고 강한 나라 건설에 모두 쏟아붇는 그날.. 혹은
그런사람들이 유력계층이 될때 올것이라고 봅니다.
세라푸 12-09-13 05:50
   
성리학국가인 송나라와 조선의 공통점.. 역대 왕조들보다 군사력이 약했습니다. 조선을 세운 세력은 신흥무인세력과 신흥사대부(성리학자)인데, 이들은 역성혁명파와 온건개혁파로 나누어 집니다.. 아무래도 역성혁명파는 무인세력 중심에 현실주의적 성리학자들의 연합이었고, 온건개혁파는 근본주의 성리학자에 가까웠죠.. 역성혁명파가 조선을 개국하며 훈구파가 되었고, 온건개혁파는 고려 멸망후 시골로 내려갔는데 성종때 컴백하면서 사림파가 됩니다. 조선 개국부터 세조 쿠데타까지 훈구파가 주역이었습니다. 훈구파가 세조쿠데타로 세력이 커지자 성종이 훈구파를 부담스러워해 성리학 근본주의자인 사림파를 중용하고, 이후 사림파가 정권을 잡으면서 군사력이 약해진듯..
대빵이 12-10-28 11:09
   
내용들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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