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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19 23:02
[통일] 금나라 황실과 조정 내의 막강한 고구려(발해)계 영향력
 글쓴이 : 굿잡스
조회 : 3,682  

금나라 황실과 조정 내의 막강한 고구려(발해)계 영향력

 

 

 금나라 황실과 조정내의 역사를 살펴보면  금나라가 기존에 우리가 추상적이고 단편적으로 알던

단순한 여진족의 나라가 아님을 느끼게 됩니다. 그 속에는 우리 고조선 토착세력의 기반으로 천년을 이어온 고구려 사직의 문명과 정치적 파워가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음이 새삼 선명히 확인됩니다.

 

 실제 4대 해릉왕의 옹립에 발해인이 관여했고 그의 몰락과 다시 5대 세종의 옹립에도 고구려계가 뒷받침 했으며 이후 8대 선종에까지 고구려계가 금나라 황실 계보에 상당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했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물론 초기 금나라 1대 아골타는 발해와 여진을 일가로 표현하면서 적극적으로 고구려계를 포섭했던 이유는 앞서 말한 김광석씨의 논문내용처럼 발해라는 국호가 비록 멸망했지만 여전히 동단국으로 이름만 바뀐 채 거의 200여 만명의 발해인들이 생활하고 있었고 이런 가운데 이들의 협력과 포섭은 아골타에게는 당시의 시대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현안이었다고 보입니다. 그렇게  금나라 건국의 중추 세력으로 이후 금나라 황실의 중심 외척 및 황위 옹립에 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정도였다는 점이죠.

 

 더 재미난 것은 7대 위소왕이 시해를 당하자  도단명이라는  여진관료까지 중심이 되어 고구려계 선종을 8대 금나라 황제로 올립시킨다는 사실입니다.(위소왕 당시 몽골의 침입에 금나라내의 거란 장수들이 반금세력으로 돌변하며 몽골에 붙어 금나라가  궁지에 몰림. 이런 과정을 보면 고구려계는 금나라 건국에 중추 세력이였고 금나라의 전성기와 위기시에도 중심세력으로 함께하면서  고구려 발해로 이어지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국가관으로 금나라에서 생활하고 활동하며  운명을 함께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살펴보면 금나라의 전성기라는 해릉, 세종 시기로 이어지는 기간 조정내의 고구려계의 활동은 더욱 두드려집니다.

 

"張浩字浩然,遼陽渤海人.本姓高,東明王之後.....

장호는 자가 호연이며, 요양발해인이다. 본성은 고로서, 동명왕의 후손이다..."

 

4대 해릉왕 시기 북경의 중도라는 수도건립의 최고 책임자가 다름 아닌 고구려계로 금사에 열전으로 따로 둘 만큼 중요 인물로 기록되어 있고 그외의 열전항목으로 독립해서 소개되는 발해의 후손들이 적지 않은데 예를 들어 보면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낸 고 간, 행어사대부(行御史大夫)였던 고 정(高 楨), 호부상서(戶部尙書) 고덕기(高德基), 행대병부상서(行臺兵部尙書)와 추밀부사를 지낸 고 표(高 彪)가 있고,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국무총리를 지낸 장 호(張 浩)와 그의 아들 장여림(張汝霖), 장 호와 항렬이 같은 집안인 장현소(張玄素), 현소의 조카인 장여필(張汝弼)이 있었습니다. 군사적 면에서도 송을 정벌함에 발해인 대호나 곽약사의 활약도 두드러졌습니다.

 

금나라 황실의 당당한 중심 외척 세력으로 활동했던게 고구려계(발해인)였고 조정의 행정이나 도시 문명, 군사 부분등 다방면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며 금나라 황위 계승에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보였던 게 고구려계 입니다.

 

이외 아골타의 부계 역시도 단순히 흑수말갈 세력이 아니라 신라에서 고려로 국호가 바뀌자 북으로 올라간 신라인으로 이 세력을 단순히 한명으로 보는 것보다 일단의 신라계 무리로 여진족 부락을 통합했다고 보는 게 좀 더 현실적이지 않나 봅니다.

 

금나라 황실의 추이 변화를 보면 마치 고려 황실의 변화를 보는 듯합니다.

 

고구려 멸망 후 남북국 시대 신라가 백제와 한강 이북의 고구려 세력을 통합한 이후 경주 서라벌의 힘이 약화되자 50여년간의 후삼국 시대로 다시 각지역적 정치색으로 대립하다 고구려 정치색을 등에 업은 왕건이 마침내 후삼국을  통일(936년)하고 수도인 개경과 함께 북진 일환으로 평양의 서경과 서경파 역시 중요하게 대우합니다. 이후 고려 조정은  천여년을 이어오던 신라계 정치 세력의 영향력이 고려 황실을 장악해 가는 형태처럼 금나라는 부계가 신라계로 만주 원류고에서 보이듯 국호 역시 신라 김씨성의 계승의식을 이어 신라계적 색채로 세워졌지만 앞선 고조선과 고구려 천년의 뿌리를 이어받은 고구려계의 영향력이 금나라 황실을 장악해가는 형태와 흡사 크로스되는 느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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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ame 12-06-20 09:27
 
고구려, 발해, 요, 금은 북동아시아 기마민족의 역사라고 봐야할 겁니다. 요즘 세계사는 민족사보다는 문화교류사적 측면에서 연구되고 있죠.
기마민족의 역사를 부정하기 시작한 건 고려 초기부터입니다.
대략난감 12-06-20 12:11
 
이성계 집안이 여진족 귀화인설이 있던데??...요즘 학계에서선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급 궁금해지네요...
6시내고환 12-12-29 01:01
 
맞는말이네요 금을 새운것이 말갈족인데 말갈족중 백산말갈(동예-옥저계,즉 부여와 고조선의 후예)이고,속말말갈(동이족갈래)이죠 그 두개의 새력과 토착되어있던 발해유민들이 금정권에 막강한 영향을 끼친것은 사실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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