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조선왕족과 일본인을 결혼시키는 동시에 이것을 전례삼아 똑같은 일을 만주국에서도 벌이죠
실제 청황제 부의의 동생 부걸은 일본 사가히로와 결혼했습니다
순종과 부의 모두 자식이 없었기에 혼혈조카에게 왕위를 물려줘야한다는 계산이였겠죠ㅡㅡ
결혼동맹으로 이득을 봤던 몽골의 정책과도 비슷함
진지하게 생각해 봅시다.
조선왕족중에 반일 항쟁하신분이 과연 몇 분이셨는지?
아마 극소수(1~2명정도?)에 활동도 정말 부끄러울 정도밖에 안되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대도 다르고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우리가 일제 탓에 이리 흥분하고
이름없는 민초들이 동학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고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무수히 죽어갔습니까?
그런데 조선왕족이라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목숨을 걸고 싸웠는지?..
정말 개인적 견해입니다만 부끄럽습니다.
그래서, 과거 왕족들에게 돌이라도 던지란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못미더웠다해도 저들은 우리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왕과 왕족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동물원의 침팬지 마냥 끌려가서 억압받다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글을 보고 울분을 토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는 커녕 같이 매도를 하고 계시다뇨..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라 했습니다.
님의 말은 다른 글의 댓글로는 쓰일 수 있을 진 몰라도 적어도 여기서 적을 수 있는 댓글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불쌍하신 분이지만, 원래 왕조의 말기는 늘 암울합니다
불쌍하지 않은 사람이 없죠ㅡㅡ
덕혜옹주님은 불쌍하나 비참하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진짜로 비참한건 조선의 백성들과 위안부로 끌려가 쌩고생하거나 하신분들이죠
옹주님은 교육 받을꺼 다 받고 조용한 결혼생활, 조기치매로 인한 긴 투병생활이 인생의 전부였는데
외로웠겠지만,,, 그보다 더한 분들에 비해서는 그래도 왕녀라고 경제적으로나 의식주나 병원비나 별로 고생은 없었습니다. 일본에 나라를 뺏긴 아버자를 둔 죄라면 죄겠지만, 담담하게 흘러간 인생이였죠 결국에는 고향으로 돌어와 궁에서 사시기도 했구요
댓글들 보니 참... 하기사 명성황후도 잘죽었다 죽을만 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고 고종황제가 독살 당했다고 해도 울분하나 터지지 않는 세상이니... 예전엔 일본의 식민지사관에 의한 지독한 교육과 왜곡 탓이라 여겼는데.. 그것만이 아닌것 같다.... ㅋ 가만 보면 일제가 멍청한 짓한거지... 뭐할려고 오물뒤집어 써가며 그런짓 했는지... 가만 나두면 지들끼리 알아서 버리고 죽이고 난도짓할것을... ㅋ 그리고 왕족중 독립운동??? 그들중 전주이씨 한번 찾아나 봤는지... 아 이승만도 왕족이다만.. 명목만 독립운동자라고.. 독재자라고...ㅋ 덕혜옹주가 물질적으로 고생없이 살았다고... ㅋ 하기사 굶어 죽진 않았고 얼어 죽지는 않았으니 고생없이 살았지... ㅋㅋㅋㅋㅋㅋ 이건 욕을 해도 욕인줄 모르고 비아냥 거려고 뭔줄도 모르고 치욕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민족이 되었으니... 그리고 어느 왕실이던 역사에 문제없던 왕실있었으면 한번 헤아려 보시지...
이승만이라....세종대왕의 형인 양녕대군 16손이더군요.
정말 오래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유감입니다.
일본이 한일합방 정당성을 이야기 할 때 항상 이야기 하는게
조선왕족의 일본국에대한 협력 부분입니다.
국가와 민족이 소멸되는 상황에 그 한 목숨 그리도 두려웠습니까?
그리고 치욕을 모른다고 했습니까?...
나라가 넘어가는날에도 일제에 협력하여 스스로가 앞장서서 백성과
민중의 저항정신을 없애버리고 그 행적을 부끄러워해야 할 겁니다.
일본방송인 혼다세쓰코 저서 <비련의 황태자비 이방자 1988>
일본 왕실은 몰락한 조선황실에 매년 120만엔의 교제비를 지급하였다.
당시 총무대신 연봉이 1만엔이었으며, 120만엔은 천황가 다음가는 가장
큰 지출이었기 때문에 많은 일본 왕족들은 부러워하였다.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은 정신적으론 말 못할 수모를 격었겠지만
물질적으론 풍요로운 삶을 누려온것은 사실이다.
치욕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이 누구 입니까?
앞으로 이런 스레는 올리지 안았으면 합니다. 전혀 동정이 안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