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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27 02:10
[중국]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여러 근거들
 글쓴이 : 건빵
조회 : 5,111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여러 근거들

[출처] 역사복원신문 2011-05-12 14:49 성훈 컬럼니스트

식민사학에 의해 왜곡된 대륙백제의 진실은?


본 글은 ‘일제에 의해 조작된 백제의 왕도 부여’의 마지막 4부입니다. 지금까지 1부 ~ 3부에서 백제의 패망전쟁과 부흥운동 기록을 통해 분석한 백제의 왕도는 어디인가를 알아보았습니다. 본 4부에서는 전쟁 기록 이외의 나머지 기록을 통하여 백제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를 밝히기로 하겠습니다.


백제가 대륙(산동성)에 있었다는 여러 근거가 많으나, 가장 확실한 근거로는 <삼국사기 신라국본기>로 문무왕 하편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함형 원년(670년) 7월에 이르러 입조사 김흠순 등이 와서 경계선을 그으려 하는데 지도를 검사하여, 백제의 옛 땅은 전부 돌려주라 하니 황하가 아직 띠와 같이 되지 않고 태산이 아직 숫돌과 같이 되지 아니하여 (百濟舊地 摠令割還 黃河未帶 太山未礪) 3.4년간에 한번 주고 한번 빼앗으니 신라 백성은 다 실망하고 모두 말하기를 (이하생략)”

(주 太山 = 泰山)


여기서 황하와 태산이라 함은 산동성에 있는 그 유명한 황하와 태산으로 이곳이 바로 백제의 옛 땅이라고 <삼국사기>는 밝히고 있다. 이 기록 하나만 봐도 백제는 확실히 산동성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백제가 중국 대륙의 산동성에 있었다는 다른 근거로는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 백제의 옛 영토는 황하와 태산이라고 <삼국사기>에 엄연히 씌어있다.

황하와 태산이 한반도에 있는 강과 산인가?

(위 지도의 지명이 옛날과 같은지 여부는 추후 연구후 보강할 예정임. 여하튼 백제는 황하와 태산 근방에 있었다)


백제의 8대 성씨로 본 백제의 위치?

<북사(北史)> 권94 열전82 백제 편과 <수서(隋書)> 권81 열전46 동이편의 백제 조에 "나라 안에 8대 성씨가 있는데, 사(沙)씨, 연(燕)씨, 리(칼刀가 셋인 글자, 또는 협 協)씨, 해(解)씨, 진(眞)씨, 국(國)씨, 목(木)씨, 묘(苗)씨 이다."라고 되어 있으며, 백제의 왕족의 성은 부여(夫餘)씨라 했다.


중국의 성씨사전에는 부여(夫餘)씨와 복(福)씨 골(骨)씨 등도 백제의 8대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백제는 분명한 우리의 조상이기 때문에 이들 8대 성씨가 백제 멸망과 함께 모두 죽지 않은 다음에야 현재에도 그 후손이 남아 있어야만 한다. 2000년도에 발간된 대한민국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국(國)씨가 2,182명으로 성씨 순위 154위이며, 연(燕)씨는 3,549명으로 138위, 진(眞)씨는 1,579명으로 성씨 순위 164위, 묘(苗)씨는 61명으로 성씨 순위 258위 등이며, 나머지 사(沙)씨나 리(또는 협)씨, 그리고 해(解)씨나 목(木)씨는 단 한 명도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백제는 멸망 당시 200여개의 성(城)이 있었고 호수(戶數)는 76만호로 되어 있다. 옛날은 지금과 같은 핵가족제가 아니고 대가족제도이므로 백제의 인구는 450만 ~ 550만 명 정도로 추산이 된다. 이중에 8대 성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을 것이다. (참고로 구당서에는 호당 인구가 5.7명 ~ 7명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천삼백여 년이 지난 지금 남한에 살고 있는 백제 8대 성씨의 후손이 7,300명 정도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반면에 백제의 주 강역이었던 산동성, 하북성, 강소성, 하남성 일대에는 백제의 8대 성씨가 득실득실 엄청나게 살고 있다. 이는 백제의 주 강역이 한반도가 아니라 중국대륙 황하이남~양자강 이북 사이의 동부였음을 말해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인구로 본 백제는 대륙인가? 한반도인가?

<삼국사기> 및 모든 중국의 기록에 백제국은 본래 5부 37군 200성 76만호(戶)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76만호면 대충 4~5백만 정도 되는 인구였다. 이런 인구가 과연 한반도에서 가능했을까? 2가지 방법으로 알아보기로 하자.


첫째는 단순비교이다. 통계청이 1992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조선 중종(1519년) 때와 현종(1660년) 때 조선 전체의 인구가 약 76만호이다. 백제 멸망 900~1000년이 지난 조선 전체의 인구와 백제 멸망 시의 인구가 같았다면 백제는 조선 땅보다 훨씬 넓은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는 천재지변이 없는 한 줄어들 수가 없다. 특히 인구=노동력이었던 옛날과 같은 대가족제도 하에서는 말이다. 아래는 두 번째로 분석비교이다.


(1) 사서에 나오는 백제 인구의 변화

신 라 : 18만호 (수도만) (삼국유사)

백 제 : 76만호 (구당서, 신당서,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 려 : 210만명 (송사 : 백제멸망 600여년 후 약 35만호)

조 선 : (통계청 발행 한국통계발전사)

- 태조 6년 (1406년 : 백제패망 740년 후) : 153,404호 (370,365명 : 한성제외)

- 중종14년 (1519년 : 백제패망 860년 후) : 754,146호 (3,745,481명)

- 영조 8년 (1732년 : 백제패망 1,100년 후) : 1,713,849호 (7,273,446명)

* 백제 패망 730 여년 후 지방별 인구 (태조 및 태종실록)

- 경기 + 충청 + 전라도 : 56,003호

- 경상도 : 48,993호


(2) 분석

- 백제(4~5백만) > 고려(210만) > 조선 초(37만-한양제외) : 백제가 조선의 약 10배

- 백제(76만호) > 경기 + 충청 + 전라도 (700여년 후 5.6만호) : 백제가 13.5배

- 신라 수도 > 경상도 (700여년 후) : 신라 수도가 경상도 전체의 약4배


(3) 결론

- 백제와 신라는 한반도에만 존재하지 않고 더 큰 강역을 가지고 있었다.

- 백제의 강역이 경기, 충청, 경상도로 국한되었다는 것은 오류이다.

- 신라의 강역이 경상도로 국한되었다는 것은 오류이다.

- 백제의 영역 > 고려의 영역, 고려는 한반도보다 더 큰 강역을 가지고 있었다.


일식기록으로 본 백제의 위치

그리고 백제가 대륙에 있었다는 결정적인 과학의 근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서울대 박창범교수의 삼국사기 일식기록 분석으로 삼국의 위치를 찾아보니 백제는 발해만 일대가 일식의 최적관측지로 측정되었다. 이 결과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식민사학자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도, 과학은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상대 신라의 최적관측지는 양자강 중류이고, 백제는 발해만 일대로 북경이 최적관측지로 나와 있다.


일식분석도 2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최적관측지를 찾는 것과 둘째는 일식을 볼 수 없는 네가티브(negative) 방식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가 있는데 묘한 결과가 나타난다. 최적관측지는 개기일식을 볼 수 있는 위치인데, 삼국사기에는 개기일식인지 부분일식인지 구분이 없어 부분일식까지 볼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넓어진다. 여하튼 고구려의 최적관측지는 바이칼호 동쪽 내몽고지역, 백제는 북경지역, 신라는 양자강 중류, 왜는 남지나해상으로 나타난다.


박창범교수의 네가티브 방식이란 단 한번이라도 일식을 볼 수 없는 지역을 지워나감으로서 그 위치를 찾아내는 방법인데, 여기서도 삼국의 위치는 한반도가 아니라는 것이 나타난다. 여기에 반박자료를 낼 학자는 전 세계에 아무도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과학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희한한 것은 사학계에서 고구려의 수도로 비정한 압록강변 집안과 대동강 평양은 고구려의 일식을 단 한 번도 볼 수 없는 지역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식민사학계가 집안을 고구려의 수도로 조작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광개토태왕비가 중국에 의해 집안으로 옮겨졌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비가 옮겨진 후에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과 환도성이 중국ㆍ일제에 의해 집안으로 비정된다.


▲ 대동강 평양과 압록강변 집안은 고구려의 일식을 한번도 볼 수 없는 지역으로 나타난다.

한반도에서 백제의 부분 일식을 볼 수는 있으나, 신라의 2개의 일식은 한반도에서 전혀 볼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는 초기 신라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한반도는 백제의 영역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후대 신라의 일식은 한반도가 최적관측지로 나타난다.


기상으로 본 백제와 신라의 위치는?

다음은 기상청에서 21년간 근무했던 정용석씨가 쓴 책 “고구려.백제.신라가 중국대륙을 지배했다.”라는 책에 보면 삼국시대 기이한 기상 기록이 나온다.


백제 동성왕 4년(a.d 482) “겨울 10월에 큰 눈이 한 길(丈)이 넘도록 내렸다.”라는 기사가 있는데, 같은 해 신라에는 큰 눈이 왔다는 기록이 없다. 이렇듯 한쪽은 홍수와 가뭄과 폭설이 있었는데, 다른 쪽은 그런 것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이것이 한반도에서 가능한 일인가?


백제 기루왕 32년(ad 108) “봄.여름이 가물어 흉년이 드니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었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같은 해 신라의 기록에는 “여름 5월 큰 물이 져서 백성이 굶주리므로 사자를 10도에 파송하여 구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제는 극심한 가뭄인데, 신라는 홍수가 났다니 이게 한반도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삼국사기>에 보면 황충(蝗蟲 메뚜기데) 기록이 유난히 많다. 이 황충은 우리나라 논에 있는 낭만적인 메뚜기가 아니라, 펄벅의 <대지>라는 소설에 나오듯 태양을 가리는 공포의 메뚜기떼를 말하는 것이다. 이 메뚜기떼가 지난 곳에는 풀잎 하나 남지 않고 오로지 적토(赤土)만이 남는다. 즉 엄청난 자연 재앙인 것이다.


그런데 이 메뚜기떼는 한반도에 나타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메뚜기의 날개 특성상 황해 바다를 건널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삼국의 기록에 황충이 있다는 것은 삼국이 대륙에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삼국의 기록을 보면 이 황충이 나타난 기록이 같은 해에 기록된 것이 거의 없다. 그 말은 삼국이 서로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중국의 기록으로 본 백제의 위치는?

<신당서(新唐書) 동이열전 백제전>을 보면, “백제는 수도(장안)에서 동쪽으로 6천리 영, 빈, 해의 남쪽에 위치하며 서쪽 경계는 월주이고 남쪽으로 왜가 있다. (直京師東六千里 而瀛濱海之陽 西界越州 南倭 北高麗 皆踰海乃至 其東新羅也)”로 기록되어 있으며, 신당서에는 발해만 연안에 백제가 있었다. 즉 하남성, 산동성 유역에 백제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신당서 동이열전 백제전에 나오는 지명들. 영과 빈은 발해만에 위치한 지명들이다.

위 지도도 지명조작으로 하북성에 영ㆍ빈이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하남성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사(北史)> 권94 열전82 백제편과 <주서(周書)>권49 열전 제41 이맥상편 백제조에서 "백제는 진(晉), 송(宋), 제(齊), 량(粱)때부터 강좌(江左, 산동성 강소성 등의 양자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또한 사신을 보내 번(藩)이라 칭하며 봉직을 받았다."고 되어 있고,


<송서(宋書)> 권97 열전57 이만(夷蠻)편 백제조에, "백제는 본래 고구려와 더불어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있었는데 그후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였다. 백제가 다스린 지역은 진평군(晉平郡) 진평현이라 한다."라고 되어 있고,


<남사(南史)> 권79 열전 제69 이맥 하편에서도 "진(晉)나라 시기에 고구려가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도 요서 진평 2군을 경략하고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고 되어 있다.

<남제서(南齊書)> 에는 백제의 동성대왕이 북조의 최강자 북위의 수십만 대군을 5차례나 승리하고 동부 평야지대에 7명의 태수를 임명한 기록이 있다.


▲ 근초고왕 때 진출한 요서군은 산서성 남부의 서부일대. 진평군은 아직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백제가 수나라 요동정벌의 향도가 된다?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백제왕 창(위덕왕)이 문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군도를 하겠다고 청하니, 수제는 조서를 내려 “고구려가 죄를 자복하므로 이미 용서해 주었으니 다시 칠 수는 없다.”하고 그 사신을 후대하고 돌려보냈다. 왕(영양왕)은 그 사실을 알고 백제의 경계를 침략하였다.”


<한단고기 고구려국본기>와 <삼국사기 백제국본기>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백제가 수나라에 청하여 군의 향도(鄕導)가 되려하다가 고구려의 타이름을 받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군대의 선도란 군대가 행군 시에 길 안내 및 첨병 역할을 말하는 것으로, 그곳의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맡는 중요한 역할이다. 향도가 본대를 계획한 행군로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여 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 25사인 <수서>에도 같은 내용이 나온다.

개황(開皇) 18년(a.d.598년)에 창(위덕왕)이 그의 장사 왕변나를 보내와 방물을 바쳤다. 마침 요동정벌을 일으키자, 사신을 보내어 표문을 올려 수군(隋軍)의 선도(先導)가 될 것을 청하였다. 문제는 조서를 내려 “(내용 생략)”라고 하고, 그 사신을 후대하여 보냈다. 고구려가 대략 이 사실을 알고, 병사를 내어 백제의 국경을 침략하였다. (開皇十八年,昌使其長史王辯那來獻方物,屬興遼東之役,遣使奉表,請?軍導.帝下詔曰:往歲?高麗不供職貢,無人臣禮,故命將討之.高元君臣恐懼,畏服歸罪,朕已赦之,不可致伐. 厚其使而遣之.高麗頗知其事,以兵侵掠其境.)


섬서성에 있는 수나라가 하북성과 요동에 있는 고구려를 침략하는데 한반도에 있던 백제가 어떻게 수나라 군대의 향도를 맡겠다고 자청하고 나서겠는가? 수나라 군대보다 하북성과 요동지리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은 바로 백제가 그 지역부근에 있으면서 고구려와 이곳에서 자주 전투를 벌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삼국사기> 기록으로 본 백제의 위치?

<삼국사기 최치원열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최치원(857 ~ ?)은 신라 말기 대문장가이다. "고구려와 백제의 전성시대에는 강병 100만을 보유하고 남으로 오.월(吳.越)을 침략하고 북으로 유.연.제.노(幽.燕.齊.魯)를 흔들어 중국의 큰 두통거리가 되었다" 즉 백제는 한반도의 충청도와 전라도가 아니라, 중국 대륙 중동부 일대에 넓게 퍼져있었던 대제국이었던 것이다.


그 위치를 <사기>에서 찾아보면, 유(幽)는 유주로 산서성 남부이고, 제(齊)ㆍ노(魯)ㆍ연(燕)은 황하 남쪽 하남성 일대이다. 오는 그 동남쪽이고, 월은 그 남쪽으로 보인다. 오와 월의 정확한 위치는 현재 추적중이다. (유ㆍ연ㆍ제ㆍ노ㆍ오ㆍ월의 위치는 지도 참조)


▲ 중국은 춘추전국시대의 나라들인 유ㆍ연ㆍ제ㆍ노의 위치를 조작함으로서 역사왜곡을 자행한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와 말갈(靺鞨)의 전쟁 기록이 많다. 그리고 말갈과 신라와의 전투 기록도 있다. 백제와 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더라면 어떻게 말갈과 전투를 치룰 수 있단 말인가? 말갈이 한반도 중부에 있었단 말인가? 교과서에는 백제와 신라 위에는 고구려가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말갈은 허위 기록이란 말인가?


<삼국사기 김유신열전>에 보면 “문무왕이 백제의 옛 땅을 점령하여 차지하니 당 고종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보내어 토벌케 하였다. 그리하여 당군은 말갈병과 함께 석문(石門)의 들에 진영을 만들고, 신라왕(문무)은 장군 의복. 춘장 등을 보내어 방어케 하였는데 대방(帶方)의 들에 군영을 설치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대목은 신라가 당나라 세력을 백제 땅에서 몰아내는 광경이다. 여기서 석문(石門)이라 함은 현 황하 북쪽 하남성이고, 대방은 석문 아래로 접한 곳으로 황하 북쪽으로 초기 백제의 도읍지로 낙랑군에 속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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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12-02-28 19:43
   
역사 조작이 너무 심해서 어디가 진실인지 모르겠넹 ㅋㅋㅋ
이것도 맞는거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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