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무사도 논쟁이 나와서
설왕설래 말이 많네요
일본의 사무라이의 원조는 악당이라는 집단에서 나왔다고 하죠
정권의 말기적 혼란을 틈탄 무장폭력집단이 조직화되어서 만들어져서 내려오는게 무사의 전형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물론 헤이지나 켄지와 같이 천황가에서 갈라져 나온게 무사의 원형이라 여기기도 하지만
이부분은 상당히 신빙성이 없어보이긴 합니다.
어차피 이름있는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거나 해서 적당한 명분을 쌓으면 가능했기 때문이죠
물론 도요토미 히테요시처럼 그 전에 너무 커버려서 양자로 못들어가서
쇼군이 못되고 관백이 되는 상황이었지만요.
당시 사무라이들의 정신상태가 어땠는지는
미시마 유키오가 애독한 하가쿠레를 보면 알수 있을것입니다
니토베 이나조의 부시도가 근데 서양 기사도에 맞춰 나온것에 비해
하가쿠레는 날것 그대로의 사무라이상을 보여주니까요.
무술하시는 분들은 하가쿠레가 생명을 초개같이 버리는 무사상으로 갖은 미화를 하지만
실상 내용을 보면 좀 어이없기도 합니다.
도둑을 잡아서 갖가지 고문을 했는데 이 도둑이 잘참고 신음소리도 안낸다. 아 훌륭하다
무사가 자식이 도둑질한 의혹이 있는데 아이 배를 갈라서 결백을 증명했다. 아 훌륭하다.
이게 하가쿠레의 내용입니다.
하가쿠레 자체가 나베시마번에서 내려온 역사를 편집해서 사무라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가르침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졌고 미시마 유키오는 야마토 다마시의 정수로 꼽는 이책을 보면 사무라이의 존재가 어떻 생각을 가진 존재였는지 알 수 있겠죠.
그냥 무식하게 허세 쩐 칼잡이들이 딱 사무라이의 실상입니다.
중세 기사들을 보면서 사무라이들도 그냥그런 살인귀집단이냐고 하면 맞는 소립니다
중세 사회는 삼위계로 만들어져 있는데
폭력집단인 기사들의 막무가내적인 수탈을 농민이 참게 하기 위해 성직자를 이용했다는게 정설입니다.
그렇다고 성직자가 기사를 컨트롤했다고 보지도 않죠. 농민들에게 천국을 기다리면서 사회에 순응하게 한게
중세사회의 실체죠. 영화나 소설에서 멋지게 나오는 기사들도 실상을 보면 처참하죠
첫째는 그나마 유산을 받지만 그 믿에는 제대로 살기 힘들어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면서
토너먼트를 통해 실력을 확인 받고 일자리 얻으로 돌아다니는 막장생활의 연속이었죠
이와중에 사고로 다치거나 죽거나 하는 끔찍한 생활에서 해어나지 못하는게 실상이죠.
대다수의 기사들은 자기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하니
임진왜란때 일본에 잡혀갔던 강항이 일본의 최고권력자라는 쇼군이 자기이름도 제대로 못쓴다고 비웃었던
일본과 중세 유럽상황이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죠.
더불어 상인들이 돈벌면서 이런 집단을 줘락펴락해진것도 비슷하달까요.
더불어 일본이 좋아하는 충신장의 내용도 많이 왜곡되어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사도의 귀감이된다는 기라가 습격사건은 원래의 내용과도 많이 틀린 듣고싶은 내용대로 만들어졌죠
무방비의 저택에 몰래기습해서 죽이고 관직받을 꿈에 찌든 얼치기 칼잡이들이라는게 실상이라고 하죠
더군다나 이들은 활복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추태를 보여줬다고 하는데
그냥 당시 막부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망상으로 부풀려진게 충신장의 실체라고 하더군요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는 그냥 니토베의 개인적인 바램이었지 당시의 일본의 상황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줬죠. 일본사람들은 그의 무사도를 지킬생각도 없었고 현실도 맞지 않아서 별 파급력도 없었다는게 중론입니다. 니토베 자체도 서양여자랑 결혼한 인물이고 기독교적 사상의 감화를 받았다고 하니 기존의 일본인의 생각과는 많은 부분 맞지 않았겠죠.
더불어 니토베는 일본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캐나다에서 쓸쓸히 죽었다고 합니다.
그냥 무사도는 일본의 미화질의 절정이라고 보는게 맞을거같습니다.
마치 금각사나 오사카성과 같이 현대에 일본이 재가공해낸 문화상품이라고 이해하는게 옳을거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