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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07 00:07
[기타] 차이나의 동북 공정
 글쓴이 : 레드토미
조회 : 5,341  




http://www.youtube.com/watch?v=V5kCNTnEhvc



마침 이런 영상이 올라왔네요.

세계 역사학자들 중에
가장 무능력하고 소심한(쪼잔한?) 역사학자들이 많은 곳이 남한이 아닐까 합니다만 ㅋㅋ
솔직히 진왕 영정처럼 할 수 있다면 분서갱유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교육해야한다고들 하는데 저도 일견 그렇게 생각했었으나
차라리 이런 조선조를 통한 오백년의 사대주의 사관이나
근대 일제의 식민사관으로 형성된 역사 내용이라면 안 배우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어느 역사학자가 그렇더군요.
중국과 일본은 자존적(스스로를 높이는) 사관이 기본인데 반해
한국인은 유독 자비적(스스로를 낮추는) 사관이 기본이다. 

서양학자들? 전 토인비가 대단한 줄 알았는데 그 토인비부터가 우리 역사를 세계인에게 몰지각의 상태로 빠뜨린 주인공이더군요. 서양학자들에게 있어 아시아 역사의 법칙은 "경제가 부강하면 역사도 풍부해집니다" 정도의 조건 밖에 없어 보입니다. 하버드 역사학자가 그의 저서 동양문화사에 써 놓은 것을 보면 일본 문화가 참 독립적이고 독특하다고 ㅋㅋ 참 대단하죠...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 "위대한 누구누구(원하는 사람)"

제가 보기에는 위대한 사기군 기질을 가진 소심한 인간 

어느 역사학자의 책을 보더라도 마치 독극물을 대하듯이 읽는 자세를 가져야 할 듯...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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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11-12-07 01:41
   
맞습니다. 스스로 비하하는 한국의 역사관에서 벗어나야합니다.  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사로 복원해야합니다.

조선-청나라는 중국을 정복한 한민족의 남북조시대: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26450&page=2
     
croc 11-12-07 14:42
   
왜 금나라 청나라가 한국사지요? 설마 금태조와 청태조가 고려인의 후손이여서 한국사에 편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기를 빕니다.
          
a 11-12-08 08:27
   
금청의 시조가 고려인(신라인)이었을 뿐 아니라 그 인구 구성도 발해/고구려와 똑같습니다.

왕족은 고려(신라)계, 왕비족은 발해계로 지도층이 모두 한민족계일 뿐 아니라 백성들 구성도 발해/고구려와 똑같은 나라를 무슨 근거로 한국사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쳤습니다. 우리역사인 금나라 청나라를  원래대로 복구시켜야합니다.

KBS역사스페셜  주요방송내용입니다:

"신라인  김함보의 후손들이 만주를 통일하고 한족의 본거지인 중국대륙을 장악했다..."
http://www.youtube.com/watch?v=e0Hm-SRD9CQ
"(고려와 여진은)  동일한  언어,  동일한  지역,  동일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0Hm-SRD9CQ&feature=player_detailpage#t=271s
"여진인과 신라인(나중의 고려인)은 민족공동체가 되었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0Hm-SRD9CQ&feature=player_detailpage#t=305s
"송의 사신  홍오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다  -  여진의 추장은 신라인"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alMUUZ15Vuk#t=78s
"(금의 태조)  함보는 고려(혹은 고려전 신라)에서 왔다.. 한 사람만 왔을리 없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alMUUZ15Vuk#t=14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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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시조를 신라인(혹은 고려인)이라고 말하고 있는 역사기록들입니다:
女真酋長乃新羅人 (송막기문,  중국 남송기록)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則本我國平州之人, 稱我爲父母之國。" (고려사)
(금나라의 근본은  우리나라 평주사람이다. 나(고려)를  일컬어 부모의 나라라했다.)
"其初酋長本新羅人" (몽골  금지(金志))
(여진의  초기지도자는 신라인이다.)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年已六十餘矣" (금사 (金史))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에서왔을 때  60세였다.)

아래 청나라의 공식역사서 만주원류고의 내용입니다.

  "만주족은 신라로부터 나와..."
  因滿族自新羅、
  "신라성씨 김이 금나라의 원류이다."
  新羅王金姓則金之遠派
  "금의 시조 함보는 처음에 고려로부터 왔다."
  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初從髙麗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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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사입니다.  김구임시정부때 금청사를 한국사로  가르쳤습니다.
우리역사인 금나라 청나라를  원래대로 복구시켜야합니다.

제1장 려요시대
제2장 고려와 금나라 때
제3장 고려시대
제4장 종교
제5장 제도
제6장 문학과 기예
제7장 풍속

제4편 근세(近世)
제1장 조선시대
제2장 조선과 청나라 시대
http://www.yes24.com/24/goods/1978304

오랜식민지배 끝에 중국인  외모가 한국인과 비슷하게 바뀌어:
http://www.gasengi.co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427&page=4
금·청사 한국사 편입 주장 서길수 교수:
http://kr.blog.yahoo.com/straysheep931/81
금 청사 한국사에 편입시켜야: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Delc&articleno=2996071&categoryId=543508®dt=20070227183207#ajax_history_home
444 11-12-07 16:40
   
저도 몇가지 사람들 주장을 살펴보다가는 정말 화가 치밀더군요.
너무 자존적인 역사관 흔히 환단고기파라고 불리는 사람들 역사관도 문제지만
그걸 환빠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더욱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왜그런지 모화주의자라고 해야하나? 이상하리민치
지나에 매몰된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대표적인게 도울이라고 생각되는데.
옷까지 쭝국옷을 입고 다닌 사람이니...
물론 그게 만주전통의상이니 설명하기 그렇지만 ^^
초록불인가 하는 사람은 더 과관이더군요
지나사서를 예로 들면서 이른바 환빠를 까는데
아주 웃기는게 너무 지나 사서를 맹신하다 보니
가령 삼국유사에 나온 갈석산에 왕검성이 있다는 문구에서
식민사관이라고 해야 하나요?
갈석산 평양설을 주장하려다 보니 말이 안되니까
지나 사서에서 나온 2개의 갈석산설을 주장하면서
결국은 중공의 동북공정상 나온 만리장성을 평양까지 연결해 놓더군요^^
그러고 문제가 생길 것 같으니까 그 잘나가던 설명을 흐지부지 해놓던데
문제는 갈석산이 2개라는 설은 첫번째 갈석산이
지나 내륙 깊숙한 즉 진나라장성이 시작된 곳에서 고조선이
요서로 이동하면서 제2의 갈석산이 바로
현 지도상 산해관 너머 홍산문명이 시작된 적봉의 아래
존재한다는 건 언급을 안하더군요.
이 사람은 아마 진나라장성이 지금 산해관인 줄 아나봅니다.
설마 사학과 출신이라니 그걸 믿지는 않겟지만..
결국 내린 결론은 그저 우리나라 역사를 지나사 밑에 놓고 싶은 겁니다.
그 사고방식이 도대체 어떻게 생성이 되는지 궁금하기만 하고.
그런 썰로 책까지 내서 환단고기파를 까는 걸 봤습니다.
물론 환단고기파도 사실 검증이란 측면에서는
좀 더 노력해야 하지만 솔직히 재야사학가라고
그저 열정만 가진 노친네들이
더구나 요즘은 그 원서 해독 능력을 가진 노친네들이 줄어드는 마당에
무슨 힘이나 학문적인 완성도를 높일 수 있을까요?
이건 국가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전문적인 사학계가 다뤄야 할 문젠데 무조건 위서니 뭐니... 위서는 맞네요
그 내용이 거의 위서에도 언급이 되어있으니...
^^
크록님
지금 지나의 동북공정 논리대로라면 금나라나 청나라사는 한국사로 놓는 것이
맞습니다^^
특히 고구려를 지나의 지방정권으로 놓는다는 가설은
다시 말하면 지나사 자체가
요동사의 아류라는 설도 성립하는 겁니다.
1945년 8월 15일까지
지나를 200년 가까이 지배하던 청나라의 후신인
만주제국이 역사상 실존했으니까요.
그 만주제국인 일제의 패앙과 함께 승전국인 장개석의 중화민국에
점령 흡수되지만 어쨌거나 분명한 건 만주제국은 존재했고
앞으로 다시 만주에 성립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나인들은 만주제국을 제대로 부르지 않고
위만주국 이렇게 부르죠.
진짜 국가가 아닌 가짜라고 주장하는데
만주국이 일제가 지나땅에 만들었던 위성국가라고 보는 견해지만
엄밀히 따지면 청제국의 정통을 이은 나라였다는 건 분명합니다.
정통성은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청제국은 그 태조인 누르하치가
조선이 자기들 본국이라고 인정한 편지가 남아있습니다.
^^
     
croc 11-12-07 17:48
   
저는 역사학과 출신도 아니고 역사에 통달한 사람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한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저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금과 청이 우리나라와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역사라고 말하기에는 비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미국이라는 나라는 지금의 영국인들이 넘어와 세운 나라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영국사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한 후 많은 귀족들과 기술자들이 일본으로 망명하여 고위급 관료로 대거등용되었고 일본천황도 백제무령왕과 관련있다고 시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사가 아닙니다. 또한 유럽의 여러나라들이 자신의 나라가 로마의 뒤를 이은 국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면 유럽사는 로마사입니까? 그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단순히 그 국가를 세운 사람의 조상의 국적에 따라 역사가 편입된다면 후에 중국인들이 박혁거세는 중국인이라고 억지주장을 했을 때 어떻게 막으실 겁니까? 또한 문화적으로도 만주족들의 언어와 문자가 지금 한국어와 한글과 다른점이 있고 또한 복장도 변발을 해서 우리나라와 이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444 11-12-07 18:01
   
크록님 오해하셨군요^^
제 글을 잘 읽어 보시면 금청사가 한국사다라고 단정한 적 없다는 걸 아실 겁니다.
이 부분은 역사적으로 민감한 부분인데 정확하게는 요동사라고 해야 맞습니다.
아니면 동북사라던가.
지금 중공당국이 추진하고 또 그 결과물로 나온 사관 관점이라면
당연히 금 청사도 한국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물론 일본사도 포함 될 수도 있겠습니다.

현재 역사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나대륙에 자리잡은 중공이라는
기형적인 국가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무슨 대단한 노력도 없이 그저 서방국가들의 침략전쟁의 와중에
어부지리를 챙기고 서방의 무관심 속에서 주변 유목민들의 땅을 침략해
지금의 영토를 챙기고는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 말도 안돼는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는데 그게 충돌하는 유일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영토인 간도의 영유권을 놓고 겨루기에 들어가야 하는데
우리가 미리 한계선을 그어 놓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우리끼리 미리 금과 청이 우리역사가 아니다라고 단정지을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따라서 크록님의 논리는 개인적인 양심의 소리일지는 모르지만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문화적으로 만주족들이 다양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거의가 고려인들입니다.
그들이 몽고지배하에 살면서 몽고식의 언어와 헤어스타일 복장이 갖춰졌고
조선왕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죠.
그리고 요하주변과 길림성 주변의 만주족은 그 형성도 다르죠.
우리가 금 그리고 후금 청이라고 부르는 만주족은 지금의 함경도와 길림성에서 발흥한 종족이며
이들이 자신들이 신라인이라고 역사에 기록한 민족입니다. 정확하게 마의태자이야기와 합치하는
민족이라고 보는거죠.^^
444 11-12-07 18:07
   
부연하자면
우리가 고구려 신라 백제의 삼국사가 우리 역사가 아니라고 하지 않지않습니까?
즉 역사적인 정통성의 문제인 겁니다.
발해를 우리 역사의 정통성에 놓는 것이 남북조 시대고
고려에서 나왔다고 스스로 기록하며 남들도 인정하는 금청사가
한국사에 그 맥이 있다는 것이 정통성인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거란사 즉 요사도 한국사에서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거란민족의 마지막 황제와 그 민족군이
역사에서 소멸 된 것이
바로 고려의 강역 안에서 였기 때문입니다.
강동성이죠.
^^
그 흔적이 바로 거란장 우리 말에 거러지 혹은 거지라고 남아있습니다. ^^
croc 11-12-07 19:03
   
저는 444님의 말이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말하자면 부분적인 부분을 확대해석하여 주장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역효과로 우리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님이 말씀하신 것은 정설이라기 보다는 일부 재야학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거란족과 여진족의 문화와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문화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제시하신다면 어느정도 정통성을 주장하는데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고구려와 발해의 경우 우리나라 독자적인 온돌문화가 고고학적 유물로 발견되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를 우리나라 역사로 편입하고 있고 고려조선이 직접 그 나라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인정하여 사서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밀접한 관련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나 금, 요, 청의 경우에는 우리나라가 그 나라 역사를 사서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진족이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한 것은 금나라가 세워지기전 우리나라에 조공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고 444님께서 누르하치 편지를 말씀하셨는데 설마 임진왜란 때의 편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는 구라로 알고 있습니다. 구라가 아니라면 증거를 제시해주세요. 그리고 청나라 공식역사서인 만주원류고도 금과 신라의 연관성을 말하고 있으나 청과의 신라와의 연관성은 언급된 바가 없고 또한 누르하치는 신라인의 후손이라고 하는 아골타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정치적으로 여진족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후금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여진족들의 반응은 그렇게 조선을 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은 선조실록에 나오는 여진족과 명나라 조정의 편지에서도 나타납니다.
----------------------
요약 및 추가
말하자면 "애신각라 이런걸로 우리나라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런 걸로는 외국의 역사학계에서 비웃음만 살것이고 만약 주장할 수 있다면 도리어 우리가 큰 화를 입게 된다. (고려의 역대왕들은 중국 당나라 황제 후손임을 자처함.) 중국의 동북공정에는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지만 그것을 이용하여 거기에 대항하여 우리도 만주사의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444 11-12-08 09:17
   
ㅎㅎㅎ
크록님 누르하치 편지가 구라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유성룡의 서애집에도 나와있는 역사적인 사실이고 조선실록에도 나와있습니다.
다만 윤두수가 극력반대해서 누르하치기병이 들어오지 못한 걸로 압니다.
그리고 만주족들도 온돌 문화가 있고요.
지금 주장하시는 것이 마치 중국인이나 조선족들 주장하는 논리를
펼치시는데 안 좋게 보입니다.
당연 누르하치가 아골타와 직접 후손은 아닐 수도 있지요.
그렇다고 신라계가 아니란 주장은 무조건 한국사와 만주사를 분리 만주사를
지나에 편입시키려는 지나의 주장에 동조하는 것일 뿐입니다.
마지막 선조실록에 나오는 편지내용도 당연한 거지요.
사실 누르하치가 장담은 했을지 몰라도 그 야망에
그가 가진 주력군을 조선에 투입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결국 투입을 안하고 요서에 있던 명군 이여송. 이자도 그 근본은
고려인입니다. 명의 녹을 먹고 잇었을 뿐이지 사실 투입된 명군이란 것이
요서지방의 전 고려인출신부대였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그 명군이 임진왜란에서 거의 소모되고 명나라 국력도 소모되고
그리고 누르하치는 그 자랑하는 5만 기병을 이끌고 명을 정벌하게 되는 겁니다.

요약및 추가란에서 주장하신 부분은 정확하게 지나인들이 내가 하더라도
넌 하면 안돼 하는 심뽀를 요약하셨군요^^
전 매우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에는 이로, 되에는 말로
안그러면 이 국제사회에서 병,신취급 받습니다.
그래서 왜놈에게 당한 지난 세기를 기억해야 하는 겁니다.
croc 11-12-08 15:43
   
444님 저는 분명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반대한다고 앞에서 밝혔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우리도 금청사가 우리나라가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도 동북공정과 같이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저는 님의 의견을 무시하고 배척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누르하치 편지가 구라라고 한 것은 누르하치가 조선을 본국으로 생각했다는 내용의 편지가 구라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누르하치가 임진왜란 때 편지인 단순히 조선을 구원하겠다는 편지는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누르하치가 무슨 본심으로 조선을 구원하려 하였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만주족들도 온돌문화가 있었다는 것은 제가 알기로는 오히려 중국의 동북공정학자들의 주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족들도 온돌문화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와는 다른 온돌문화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만주족들의 온돌문화가 우리와는 다르다고 부정하려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금, 청이 신라계와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로 이야기한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금이 이렇듯 청도 이럴것이다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으로 한 말입니다.

또한 역사학계에서 자국의 역사를 구분할 때에는 국가를 세운 왕의 혈통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게 구분한다면 지구의 세계사를 다시 재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유럽사(특히 영국사)의 경우에는 엄청난 대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민족의 원류가 무엇인가도 역사를 구분하는데 영향을 주지만 그러나 그렇게 생긴 후계민족들이 재각기 문화와 언어가 다르다면 서로 독자적인 역사로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444님께서는 고려, 조선시대에 많은 여진족들을 포섭하였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고려, 조선보다는 금, 청이 훨씬 더 여진족의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것에는 아무런 이견이 없습니다. 또한 고려, 조선의 인식으로 보면 여진족은 우리와 피를 나눈 혈맹이라는 인식보다는 오랑캐라는 인식(소중화??)이 강하였습니다.

그리고 444님이 오해하실까봐 말하는 거지만 저는 만주사는 중국사라고 생각하지않습니다!!!! 그러나 만주사는 한국사라고 하기에도 문제가 있고 단순히 혈통으로 따지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혈통으로 자국의 역사에 편입한다면 우리나라역사의 근본은 중국이 됩니다.) 제 주장은 전혀 짱개들의 동북공정스러운 주장이 아닙니다. 한가지 여쭙는다면 만약 제 주장이 정론과 다른 주장이라면 왜 국사에는 금청사가 있지 않을까요? 단순히 식민사관의 잔재일까요?
-------------------------
요약
동북공정 -> 사기
동북공정을 대항하기 위한 금청사 우리나라 정통성 주장 -> 위험한 생각
동북공정을 대항하기 위해 금청사를 자주적인 역사로 인정 -> 그나마 덜 위험
444 11-12-08 16:14
   
크록님
말씀하시는게 무슨 의민줄은 알지만 솔직히는 제 주장과 뭐가 다른지 의문입니다.
그저 반대외에는 없지 않나요?
누르하치가 무슨 뜻으로 조선에 구원병을 보내겠다고 했는지 누가 알겠습니까?
문제는 보내겠다는 편지가 있다는 것이고
그 내용이 유일하게 언급된 것이 조선을 모국으로 생각한다는 내용인데
그게 구라라고 하면서 결국은 만청사를 조선사와 분리하려는 본심을
주장하고 픈 외에는 별 뜻이 없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온돌도 만주족온돌과 지금 현재 우리의 온돌은 다릅니다.
고구려 온돌과 지금 우리 온돌도 다르죠.

금청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반대하고 픈 마음은 이해하는데
만주사를 중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또 동북공정에 반대한다고 하면서
혹은 온돌은 지나인들이 주장한다고 하면서
결론은 뭡니까?
결국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것 아닙니까?

여진족 포섭이란 건 말씀 그대로 고려 조선 소중화 운운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솔직히 여진족이란 종족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청나라 만주원류고에 보면 고구려란 나라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청나라인들이 보는 고구려인은 그저 말갈입니다.
우리는 말갈과 고구려가 다른 민족으로 보죠?
여진족이 만든 후금 청나라는 고구려를 말갈이라고 부릅니다.

혹자는 말갈이 여진아니냐고 하지만 여진족은 말갈족과 조금 다르다고 자신들도
생각한 것 같습니다.

복잡하죠.
동시에 혈통으로 따지면 안된다는 것도 의미없는 말입니다.
솔직히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그리고 프랑스 영국
혈통적으로 큰 차이가 있습니까?
차라리 같은 혈통끼리 제대로 전쟁을 하죠
물론 프랑스야 골족이 주류였기에 독일과는 전통적인 적대관계였다지만
영국은 그래도 앵글로 색슨이란 게르만입니다.
그 두 비슷한 혈통이 머리가 깨져라 양차대전을 치룹니다.

한국 만주사도 그렇게 보면 됩니다.
비슷한 혈통의 다른 두국가.
그래서 동북사로 본다고 분명히 말씀을 드렸는데
뭐가 문제인지?

그리고 국사에 금청사가 없는게 식민사관의 잔재이냐고 물으시는데
솔직히는 맞죠.

요 위에 다른 분들 퍼 온 부분을 보면 분명히
임시정부 국사책에는 금청사 포함됐다고 주장들 하시잖습니까?
임시정부의 국사학자들은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아닌 대한제국의 조선의 역사학자드리었고
해방후
국사편찬위원회에는
조선사편수회 이병도를 비롯한 이른바 식민사관학자들이
아직가지 있기에
금청사가 포함이 안된거라는 주장이 일리가 있겠죠^^
님의 주장이 솔직히 공허합니다.
그냥 만주사를 한국사에서 떼어 놓고 싶은 주장만 지속할 뿐입니다.
그게 지나나 왜의 역사관이죠.

그걸 인정하지 못합니까?
444 11-12-08 16:23
   
그리고 개인적으로 ^^
솔까말

금나라와 후금 청나라 역사는 솔직히
한국사 영역에서 다루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동북아시아에서 그 논리를 포기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게 중화사관에 맞서는 유일한 대책일 겁니다.
croc 11-12-08 18:26
   
이렇게 토론하면서 저도 많이 공부하게 되네요.
고구려 온돌이 우리나라 온돌이랑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네요.
저의 무식함이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고구려가 우리역사인 이유로 온돌은 언급하면 안되겠군요.

제가 이때까지 444님의 발언을 잘못 이해한건가요?
제가 이해하기론 금청역사를 우리나라 역사로 편입하여하고 우리나라가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그러면 현재 중국에 살고있는 만주족들은 무시한다는 말이군요.
아니면 금청역사와 우리나라 역사를 동북사로 묶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만약 이러한 의견이시라면 저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한쪽이 예속된 존재는 아니라 서로 독자적인 존재입니다.)

저는 거기에 대하여 단순히 국가를 세운 왕의 혈통으로는 자국역사구분에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만....
그러나 님은 거기에 대한 반박으로 유럽은 서로 혈통이 차이가 없다라는 걸로 반박하셨는데 그러면 님의 의견대로 혈통으로 하나의 단일역사로 묶는다면 유럽사의 경우 개개인의 자국사는 없고 하나의 유럽사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의견인가요? 그리고 이때 어느 유럽국가가 정통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요?

중국의 사서에도 고구려사를 고려조선사로 인정하고(즉 계승한 나라로 인정) 있지만 금청사를 고려조선사로 인정한다기 보다는 금나라와 신라와의 관계가 남다른 관계라는 건만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말했듯이 이런걸로는 충분한 근거는 안된다고 봅니다만.(이것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설명함) 제가 그전에 말했듯이 고려조선은 여진, 금, 청을 단순히 오랑캐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속국이 되지만)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의 만주족과 한국인은 전혀다른 복장의 전혀 다른 언어 전혀 다른 글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만주사는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하지는 못하지만 어느정도 관련성이 있다는 데에는 찬성합니다.

또한 제가 누차 말했지만 님의 의견대로라면 일본도 우리나라역사 영역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편지가 구라다"라는 말을 오해하신것 같으신데요
"누르하치가 구라쳤다"는 말이 아니라, "그 편지가 실제로 있느냐 구라로 들었다"는 말입니다.

후금 청이 고구려를 말갈이라 불렀다던가 하는 것은 이 이야기의 논점에 벗어난 듯 합니다.
(그리고 고구려는 다민족국가이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동북공정에 제가 동조한다고요? 어떻게 그렇게 해석을 하셨죠???

또한 금청역사를 우리나라역사로 편입하지 않은 것을 식민사관이라고 말하는 것은 환단고기학자들과 심한 민족사관학자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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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및 추가

금청과 우리나라가 일정연관성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
허나 나중에 독자적인 문화로 나누어짐
또한 지금 만주족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1940년대까지 존재하였음.
그렇기 때문에 한국사에 만주사를 편입한다는 말은 모순이 있음.
만약 혈통으로 나눈다면 많은 문제점이 발생.(이것은 앞에서 제기했음)
그러한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반박이 없음.
서로 독자적인 역사임을 인정하되 동북사로 묶는 것에는 저도 동의
<<그리고 저도 이제 댓글 다는거 지칩니다.>>
444 11-12-08 20:11
   
크록님이 참 질기네요^^
기어코 만청사를 한국사와 떨구고 싶은 모양입니다.

일단 요약하면

누르하치 편지는 실재했다고 조선실록에 기록되어있다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 내용도 구체적으로 유성용이라던가 혹은 다른 분들의 임란관계책에 나와있습니다.
그걸 구라라고 하는 자들은 솔직히는 한국사 축소론자들뿐입니다.
즉 식민사관에 쩐 인간들 뿐이란 것

온돌은 당연 천몇백년전 온돌과 지금 우리의 구둘장과는 차이가 있죠.
다만 동북아에서 한민족외에는 온돌을 사용하는 인종은 없습니다.
따라서 만주족의 온돌이란 것도 부분온돌을 말하는데 그게 바로 고구려 온돌입니다.
입식 온돌이란 얘기죠.

다음 만주원류고에서 고구려를 말갈이라고 한 것은
그걸 쓴 청의 역사인식이 자신들이 바로 신라의 직계란 점을 밝힌 것과 같습니다.
고구려 영토에서 일어났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은 신라고 적대관계였던 고구려는
말갈로 격하해 부른 것입니다.  즉 고구려의 후예가 아니란 점을 밝혔다는 것이지요.

다음 님의 댓글 몇개 보니까 동북공정이나 혹은 지나인 같은 생각이 듭니다.
상대방을 높이고 우리를 비하하는 건 우리중 하나는 아니란 거죠^^
언더스탠?

유럽은 게르만의 대 이동으로 생긴 국가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 유로연합이라고 하죠?
게르만을 주로 주변민족을 합쳐서 통합한 겁니다.
즉 혈통의 차이도 없을 뿐더러
왕가의 혈통도 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즉 1차대전에 서로 싸운 왕국들은 전부 사촌들끼리
싸운 겁니다.

그리고 엄밀하게 만청사는 독자적인 역사는 아닙니다.^^
솔까말 한국사의 영역에 들어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사실 맞습니다.
제 개인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지만

19세기 동북아에 존재하던 3개의 제국이 있습니다.
일단 대한제국 대청제국 대일제국

이 3대 제국이 솔직히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백제의 전통을 이은 대일제국
신라의 전통을 이은 대청제국
고구려의 전통(고려의 대를 이은 조선왕조로 봐서^^)을 이은 대한제국

이게 삼국시대와 뭐가 다를까요?

모든 건 관점의 차입니다.
croc 11-12-08 22:27
   
질긴 쪽은 오히려 당신이라고 생각하시는 군요.. 이제 포기하시는 게 좋으실 듯합니다.

님과 토론하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운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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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원류고>
444님과 저와는 전혀 다른 만주원류고로 알고 계시는 군요. 물론 444님 말이 맞습니다. 만주원류고에는 고구려역사가 일부 없습니다. 여기서부터 만주원류고의 신빙성이 의심되지요. 또한 님이 잘못 알고계신것 같은데 고구려를 말갈이라고 불렀다고요? 그런 사실은 또 처음들어봅니다.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보지요.
먼저 님이 저보고 식민사관에 쩔은 지나인이라 하셨는데 그러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지나인이군요.
물론 제가 적는 말도 역사학계의 정론입니다. (오히려 님의 주장이 일부 재야학자들의 억지지요.)

역사학계에서는 만주원류고를 무엇이라고 보시는 줄 아십니까? 바로 일본서기와 마찬가지로 황당한 사서라고 봅니다. 먼저 만주원류고를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만주원류고는 만주족들이 명을 지배한 후 만주족이 한족보다 나은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위안용 사서입니다. 이 사서는 청 건륭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1771년 아계라는 사람이 편찬한 책입니다. 이 책은 청나라판 동북공정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 역사까지 청의 역사로 둔갑시키는 요술같은 책입니다. 일부 재야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청나라는 우리나라역사다라는 주객전도를 부린다고 합니다. 이 책이 황당한 사서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고구려 역사가 일부 사라졌다.
-> 이유는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져서 만주에 한족들이 안동도호부(2번째)를 세웠기 때문에 만주족에게 부끄러운 역사였고, 또한 고구려가 말갈(여진족들이 말갈이랑 다르게 생각했다고요??)를 복속하였으나 곧 당나라(한족)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말갈을 복속시킨 역사가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2) 고구려 역사 일부를 없애기 위해 신라가 만주를 지배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사실이 기록되어있다.
-> 고구려 역사 일부를 숨기기 위해서였지 신라가 진짜 만주를 점령한게 아닙니다. 아계 자신도 얼마나 속이는 게 부끄러웠으면 謹案이라고 앞에 붙였습니다. 이것은 청나라 학자들의 생각이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3) 땅이 자꾸 왔다갔다한다.
-> 만주원류고 권 9 신라편 신라9주 조에 보면 신라가 만주를 점령했는 땅에 대한 설명으로 "西北"直至今吉林烏拉이라고 하다가 나중에는 "東"至吉林이라고 합니다. 서북쪽과 동쪽이 같은쪽입니까?? 더 재미있는 것은 만주원류고를 제외한 나머지 사서에서는 이러한 오류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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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하치편지>
제가 분명 몇번을 말했지만!!!! 조선을 구원한다는 편지였지 조선을 모국으로 삼는다는 편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또한 제가 제시했던 선조실록 30권 25년 9월 17일 (갑술) 004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참조)를 보면 조선을 모국으로 삼는다는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또한 정설입니다. 그리고 모국으로 삼는다는 말을 언젠가 사료로 찾는다 할지라도 모국이라는 말은 같은 혈통 같은 나라라는 말이 아니라 단순히 힘이 약한나라 강한나라에게 부모-형제 관계를 맺는 말을 의미합니다. 동아시아의 국가관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면 그런 주장은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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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연합>
유로연합은 단순히 유럽혈통이 같아서이지 자국의 역사없이 공동의 역사를 함께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말하자면 넌센스. 유로연합은 단지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연합체입니다. 영국사가 프랑스사여서 유럽사가 로마사여서 유로연합을 하는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아세안연합, NAFTA도 그러면 하나의 공동의 역사를 가졌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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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은 독자적인 역사가 아니다>
만주문화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중국하면 떠오르는 치파오, 교자만두, 만한전석들은 만주족의 독자적인 문화였습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틀린 말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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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이야기>
아니? 온돌이 한(韓)민족만 사용한다고?? 미안하지만 온돌은 일부 한족과 만주족들도 사용하였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온돌을 전공으로 연구하는 사학자들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주장은 한족과 만주족의 온돌(쪽구들, 반구들)과 우리나라(고려, 조선)의 온돌(통구들)과는 서로 다른 독자적인 문화라는 주장이 다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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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3제국은 삼국시대의 연장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이 안나온다... 그런 주장하면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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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c의 주장은 지나인의 주장이고 동북공정스럽다.>
전혀 아닙니다!!!! 제가 왜 지나인의 주장을 가생이닷컴에 버젓이 올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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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분명 말했지만 금청사와 우리나라 역사와의 관련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금청사를 우리나라 역사로는 편입할 수 없고 만약 편입하게 된다면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게 막대한 공격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중국은 고려, 조선시대 소중화를 제창한 것을 이용하여 (특히 고려왕의 경우 당나라 황제의 후손이라 자처하고 다님) 중국이 이걸 가지고 고려는 중국사에 편입하여야 한다고 하거나 만주원류고를 자기멋대로 해석하는 식의 방식을 그대로 일본이 답습하여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할 말이 없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에서 말했듯이 금청사는 중국사도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라기에도 애매하므로 자주적인 역사로 인정하는 것이 더 동북공정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 역사학자 랑케는 역사학의 정의를 "과거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기록"이라 주장하였습니다. 또한 랑케는 역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웁니다. 랑케는 이런말도 했습니다. "어느 민족이든 자기의 역사(만주원류고)를 과장하는 습성이 있는데 그 과장된 기록을 역사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고 고증이 없는 기록은 역사라 할 수 없다."
444 11-12-09 09:19
   
ㅎㅎㅎ

크록님 왜그러십니까?

역사 사서를 자기 입맛대로 분석한다고 토론이 될까요?

만주원류고는 만주원류고일 뿐입니다. 즉 역사사서중 청나라인의 정체성이 가장 잘
나타난 사료입니다. 물론 청이 자존적인 방향으로 서술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면 지나 사서란 건 전부 삼국지류의 소설책이 되겠죠.

역사학계 정론이란 건 없습니다. 특히 만주원류고에 대해서는 국내의 강단 사학이
사료로 채택하기에는 너무나 지난 세월 식민사관에 물든 축소역사관과 배치되기에
쉬쉬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곡중인 것이죠.
님이 주장하는 것 역시 축소 역사관이니 사실 일맥상통하긴 하지만
그저 일부에서 무시하고 싶어하는 수준이고 다른 쪽 재야학계 측에서는
대제국의 대학자들이 모여서 황제의 명으로 쓴 스스로의 역사책이
바로 재야 사학이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하니 좋은 것일 뿐이죠^^
님이 만주원류고가 소설같다고 만주원류고가 소설입니까?

가령 만주족이 고구려가 나당연합군에 패해서 안동도호부가 두번이나?
이런 주장들도 님 댓글 보면 참 한심한데
마치 당군이 고구려를 정벌했다는 식의 인식들이 참 한심스러운 인식이란 겁니다.
정확히는 당군이 침공했다. 뭐 이런  식이 되야 하는데 한국사관의 문제가
아와 비아가 뒤바뀌었다. 뭐 이런 거지요. ^^

만주원류고에 고구려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고구려 역사가 일부 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냥 아는 걸 썼을 뿐이고  고구려란 국명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꾸 궤변으로 사실을 호도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 이유는 만주족의 정체성 문제 즉 고구려에 대한 인식이 신라계인 만주족들에게는
좋지 않았기에 의도적으로 고구려 국명을 뺀 겁니다.
동시에 족명으로 말갈이라고 기록한 거죠.
만주 원류고에는 고구려= 말갈 입니다.

두번째 신라가 만주 길림을 정복한 부분은 해석이 분분합니다.
강단사학계는 님과 같은 주장을 지속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기사를
인정한다면 한국사 다 바꿔야죠.
그래서 썰만 분분한 부분입니다. 님처럼 만주족인 거짓말로 썼다부터 시작해서
근데 그걸 님이 판단합니까? 누가 판단 합니까?
만주족이 그랬다는데^^ 그것도 바로 길림에서 발흥한 건주여진 만주족이 말입니다.
전부 헛소립니다. 그냥 사료로서 믿으면 되고 왜 만주족이 그렇게 썼나를 봐야죠.

그들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자신들이 신라인이고 길림이 근거진데.
당연히 신라가 만주를 정복한 게 되죠.

그게 삼국통일 직전인지 아니면 후삼국시 신라의 양위 이훈지...
그게 중요할 뿐이죠.
만약 만주원류고에서 삼국통일 직후 신라군이 당군을 밀어내고 길림을 수복했다고
나온다면 그게 정사인겁니다.
춘추필법에 의존한 소설 25사같은 것과는 비교해서는 안되겠죠.
지나 사서야 말로 지들이 불리한 건 전부 삭제해 버리거나 곡필한 대표적인 거라고
세계 역사하가자가 주장하는 겁니다^^
랑케?  랑케가 비난할 대표적인 것이 지나 사서란 것이죠.
만주원류고는 아닙니다.

다음 조선을 모국으로 삼는다는 의미는 뭐 님처럼 만주족과 한민족의 관계를 떼어놓을 려는
사람들은 당연 그냥 국가간 상하라던가....
의례적인 표현이라던가....
이것도 말할 필요도 없는 부분이겠죠?
중요한 건 누루하지가 편지를 보낸 것은 분명하고 그 내용이랍시고
그런 내용이 발표되었고 뉴스에도 나왔는데
그게 자신의 입맛에 안 맞는 님같은 사람들은
구라다 라고 주장하는 것 뿐인 겁니다.
그라다 라는 것도 그 썰이란 것이라는 거죠^^

하긴 만주원류고를 비판하기 위해서 일본서기가지 끌어들이는데는 정말 황당의 극치입니다.^^

이게 다 한국사를 축소시키고 가기 위한 자비사관에 물든 부류들이 가진
황당함이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들은 참 한심한 일이 되겠습니다.

중요한 건 왜 님이 지나스럽냐고 했냐는 것은 도대체가 한국사에 대한 존중이 없군요.
한국사 한국인 한국연계사에 대한 애정이 없이 그저 여기저기 떠도는
이른바 환빠 사냥용 찌라시들 몇줄을 가지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고 있습니다.
가령 고려왕... 이 표현도 그렇네요.  어디서 보는 고려왕인지... ㅎㅎ
정확하게는 고려 몇대 무슨 임금이 내 조상은 당나라황실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
이것도 사실 한국인들은 이런 주장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왕건무덤이 지금의 사천성지역에서 발견되었니 뭐니 하는 마당에...
이거 화교들이 주장하는 거에요^^
한국사를 조롱하기 위해서.
조선왕조가 한족의 정통이라는 화교가 쓴 썰 글도 떠돕니다.
그래서 한성이라고....

^^
그리고 유로연합.
입맛에 맞게 그 생겨난 원인을 분석하는 것도 맘이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과 연합을 할 정도로 친연성이 있기에 생겨난 겁니다.
그리고아세안?  당근이죠. 비슷한 근처 나라들 즉 동남아 나라들끼리 하는 거 아닙니까?
역사적으로도 당연 유사하고...
한국이 아세안에 소속되어있습니까?
문제는 이런 비유 자체가 솔직히 걸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유로연합을 예로 든 것은
동북사의 정통과 연계를 설명하뎐서 예를 들어서
한민족계통이 여러 나라를 만들고... 즉 한민족(정확하게 는 고조선족)이
많은 나라들을 만들면서.... 님이 썼다시피 요나라도 고구려의 후예라고
분명히 자기들 입으로 밝혔습니다.
우리는 사돈 남보듯 하지만...^^
이런 민족적인 친연성을 설명하면서 유로연합을 예로 든 겁니다.
정확하게 한다면 뭐 신성로마제국이라던가...
뭐...
그 근간이 바로 게르만족입니다.
그리고 그 게르만족 사이의 부족이 다른 경우는 그 말이 글이야 알파벳이지만
그 언어가 한국어와 만주어 혹은 일본어정도의 거리감은 존재합니다.

물론 한만일 보다야 더 자주 부대끼고 교류가 된 유럽이니 우리보다야 낫겠지만

그 다음 만주족의 독자문화...
치파오는 만주족 정통이 아니라 몽골족의 영향을 받고 거기에 고려양식이 결합된
만주족의 독자적인 의상입니다.
교자만두 만한전석...
음식쪽은 잼병이지만 만한전석은 그 이름만 들어도 대장금 스럽군요^^
바로 청이 지나를 정복한 후 생겨난 음식입니다.
좀 후에 만들어진 독자성이죠^^

동북아 3제국 연장선

어디 님이 설명해 보시죠^^

그 3제국이 따지면 그런 정통성이 나온다는 겁니다.

즉 동북아시아 역사에서 고대 한국사가 가지는 위치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를
설명하는 충분한 근거도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랑케니 뭐니.... 궤변을 끌어들이지 마세요^^
더구나 그 주장이 왜 만주원류고의 사료가치를 훼손하는데 사용합니까?
croc 11-12-09 20:41
   
음..... 오늘은 조금 늦게 보게 됐네요. 제가 오늘은 할일이 있어서 바빴습니다.
점점 동북공정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제 주장을 다시 역설한다면
"동북공정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조선, 고구려사가 우리나라 역사이고,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지 금청사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한다는 것은 불난 집을 끄는 대신 집을 부셔버린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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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
저의 마지막 말이 궤변이라고요??? 저는 독일의 유명한 역사가의 말을 그대로 인용한건데 랑케를 그대로 궤변가로 만들어버리는 센스가 대단하시군요. 랑케의 말이 왜 궤변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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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계에 정론이란 없다.>
무조건 없는건 아니지만 님 말이 맞습니다. 솔직히 정론 아니라고 하는 순간 이것은 정론이 아니게 되지요. 근데 왜 제가 정론이라고 자꾸 말했을까요? 그것은 단순히 당신의 말을 비꼬는 용도로 사용했습니다. 당신의 말을 보시죠.
<<그리고 문화적으로 만주족들이 다양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거의가 고려인들입니다.
그들이 몽고지배하에 살면서 몽고식의 언어와 헤어스타일 복장이 갖춰졌고
조선왕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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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원류고의 사료가치를 인정해라!>
음... 저는 황당한 사서여서 사료가치 없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환단고기(詐書) 이런거가 사료가치가 거의 드물지요. 만주원류고가 황당한 사서라는 데에는 아무런 반박이 없군요. 또한 중국의 사서에서 고구려 역사가 일부가 없거나 신라가 만주를 차지하는 등 말도 안되는 궤변을 적어놓은 사서는 거의 없습니다.(아무리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적은 사서이더라도) 황당한 사서일 수록 사료가치를 찾는데에는 더 많은 사료비판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의 주장에는 사료비판이 없고 무조건적인 수용만을 가지고 있네요. 물론 무조건적인 수용을 할지라도 금청사는 우리나라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앞서 이야기했지만요. 청이 자존적인 방향으로 서술을 했다손 치더라도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라고 물으셨죠? 대표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일본서기 아십니까? 당연히 일본서기도 만주원류고와 같이 일본이 자존적인 방향으로 서술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서기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만날 정기행사처럼 조공을 바치고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전한 문물을 단순히 조공이라는 식의 어투로 서술하였죠. 그리고 일본이 역사를 늘리기 위해 가상의 천황을 여러 명으로 만들고 이주갑인상하는 등 여러가지로 황당한 점들도 있지요. 그렇다고 일본서기가 사료가치가 없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서기에는 삼국사기에 없는 백제와 왜의 특별한 관계가 적혀있지요. (완전히 만주원류고와 비슷하지 않습니까? 신라와 금) 이러한 경우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사서나 우리나라 삼국사기를 비교하여 일본서기의 허구적인 부분을 제거하고 고증된 부분만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일본서기에서 고증된 부분인 "백제와 왜의 특별한 관계이다"를 취사선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서기를 제외하고 외국의 사서인 중국의 사서라든가 고고학적 유물에서 고증되었기 때문에 "백제과 왜는 특별한 관계다"라는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관점으로 만주원류고처럼 일본서기를 해석한다면 고증없이 일본서기내용의 단편적인 백제와 왜가 특별한 관계다만을 취사선택하여 심지어는 그것을 과장하여 일본사는 백제사에 편입된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만주원류고의 황당성을 주장한 이상에는 사실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수 있고 만주원류고를 제외한 다른 사서와 유물들을 논거로 제시하셔야 됩니다. 어차피 우수한 고증논거를 제시할 지라도 만주원류고의 내용은 여진이 신라를 계승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제가 앞에서 말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상관없습니다만 ㅋ.  물론 거기에 대한 고증이 되는 것도 있긴 있는데 그것은 오직 한가지!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밖에 없습니다.이걸로 어떻게 금청사를 우리나라 역사를 편입할수가 있겠습니까? 재야학자들의 극심한 주장들은 되도록이면 정신건강에 안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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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말은 축소역사관!!, 당이 고구려를 정벌했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니 ㅡㅡ!!>
도대체 그런 추측은 어디에서 기인된 것입니까? 제가 고구려를 정벌했다는 인식을 갖고있다고요? 제대로 말할께요. 아닙니다. 착각하셨는 듯하네요. "안동도호부가 두번이나"이라는 말을 제가 언제했지요? 저는 단순히 두번째 안동도호부라는 의미에서 한 말인데요. 제가 분명 앞에서 말했죠. 제가 축소역사관을 갖고 있으면 역사학자들의 대부분이 축소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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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족들 고구려사 아는 거만 썼음. 고구려 국명 등장안함. 고구려=말갈>
(1) (만주족들 고구려사 아는 거만 썼음.) 중국의 사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십니까? 우리나라 삼국사기도 그렇고 일본서기도 그렇듯이 사관이 지멋대로 아는거만 쓰지 않습니다. 항상 사관이 역사적 사실을 적으면 그것의 출처를 밝히고 자신이 지은 책이 어느 책을 참고하여 지었는지 다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사서는 근본이 되는 사서가 있기 마련이고 특히 중국황제들의 사서는 수많은 양의 사서들을 참조하여 만듭니다. 만약에 만주원류고가 개인적인 사서라면 444님말도 어느정도 인정하나 만주원류고는 황제의 명을 받아 지은 사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틀을 역대 중국왕조의 사서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제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또한 황제의 사관이 왜 이렇게 다른 민족의 역사에 대해 무지합니까? 이것의 이유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숨긴것입니다.
(2) 고구려 국명 등장안한다고 하셨지요? 기본적인 상식부터 알아봅시다. 고구려의 옛국명이 고려였던 것은 알고 있죠? ㅋㅋㅋㅋㅋㅋㅋ 444님 그럼 이것은 무엇입니까?
만주원류고 권 9 신라편 신라9주 조
又得百濟故地及"高麗"南境
만주원류고 권 6 (무슨편인지는 잘 모름)
滅"高麗" 徙其人散處中國
(3) "고구려=말갈" 어느정도 당신의 말이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단지 착각하였을 뿐. 실은 "발해=말갈"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괜히 오바해석하지 마세요. "고구려=말갈"이라는 것을 논거로 제시해 주세요.
(4) 여진은 고구려를 미워하고 신라를 계승하려 함. (<만주원류고의 사료가치를 인정해라!>를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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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가>
(만약 만주원류고에서 삼국통일 직후 신라군이 당군을 밀어내고 길림을 수복했다고
나온다면 그게 정사인겁니다.)  -> 길림수복 내용은 만주원류고와 극히 일부의 책을 제외하고 그런 내용 일체 없습니다. 소수의 책을 보고 어떻게 정사라고 말합니까 ㅡㅡ; 대륙신라설을 주창하는 군요.

(지나 사서야 말로 지들이 불리한 건 전부 삭제해 버리거나 곡필한 대표적인 거라고
세계 역사하가자가 주장하는 겁니다^^)->저는 지나 사서가 왜곡하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그러나 전부 왜곡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다 고증해서 취사선택한 것이라고요. 세계 역사학자들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스크랩하여 논거로 올리세요. (단 재야학자들과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제외한다. 물론 세계 역사학자라면 인지도있고 영향력있는 인물일수록 좋겠지요? 단 랑케는 만주원류고같은 사서만을 유일한 예외로 비난하지 않았다는 데에 근거를 제시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만주원류고와 지나 사서의 차이점을 대조적으로 설명하면서 말이예요.)

제가 말했습니다. 일본서기와 만주원류고 별로 크게 다른게 없다고.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일본서기가 더 믿음직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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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c은 지나스럽다.>
저는 분명 이야기 했습니다. 만주사와 한반도사는 연관성이 없는 역사는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다. 동북사로 묶을 수는 있지만 거기서 끝이라는 겁니다. 또 고려왕이라는 말이 문제가 있습니까? (설마? 대고려제국설을 주장하시는 겁니까? 반박거리 충분히 많습니다.)

또한 제가 정말 강조하면서까지 말하겠습니다. "중국 동북공정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좀더 신빙성있게 만든 것이 금청=신라설입니다!!" 금청을 중국사로 편입하면서 동시에 신라까지 동북공정하려는 야욕으로 만든 설입니다. 그 설을 지금 444님이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정말로 화가났습니다. 제가 언제 고려왕이 당나라황실에서 나왔다고 주장했습니까? 정말 화를 주체할 수 없습니다. 지금 444님의 행동은 좌익좀비와 다를게 없다고 봅니다. 다시한번 제 글을 읽어보십시오. 단순히 고려사서에 나오는 그러한 말을 중국인이 오바해석하여 그렇게 주장함과 동시에 고려사를 중국사라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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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연합>
도대체 제 말을 이해하셨는지 의문이 들정도입니다. 저는 분명 동북사로 한국, 만주, 일본을 넣는다면 넣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만주, 일본이 하나의 공통조상이였어도 나중에 분열되어 서로 다른 양식의 문화를 가진 후계민족이 된다면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예속하는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유럽국가들도 자국사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만주, 일본도 자국사가 있습니다. 님이 아무리 그렇게 주장하더라도 만주와 일본은 님의 의견에 한눈금의 동의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주족들의 반한유튜브를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다 재야학자들의 주장으로 인해 생긴 혐한감정입니다.) 유로연합은 유럽민족만의 공통된 부분이 있고, 한중일도 서로 공통된 부분이 있고 아세안도 서로 공통된 부분이 있습니다. 님말대로 공통조상으로 따진다면 한중일끼리도 연합 만들 수 있고 한중, 한일, 중일끼리도 연합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같은 민족이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럽연합은 경제적인 협력기구의 성향이 강합니다.(유럽발 경제위기에서의 유럽연합의 역할을 보시면 알 수 있고, 스위스가 유럽연합에 가입하지 않은 것도 알 수 있지요.. 그럼 스위스는 유럽혈통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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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성>
제가 분명히 말했습니다만 제가 주장했던 것은 만주족은 독자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통(원조)라고 말한적 없습니다. 단순히 치파오가 고려양식의 영향을 받아 편입하여야 한다면 고려청자의 경우에도 중국의 청자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고려는 중국에 편입되어야 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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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
당신말대로 청은 신라를 계승하고 일본은 백제를 계승했다면 앞으로 말할때는 신라는 한국만이 아닌 만주족의 역사, 백제는 한국만이 아닌 일본의 역사, 고구려는 한국만이 아닌 말갈(복속됨)의 역사라고 말하세요. 그러면서 동시에 고대 한국사에는 우리나라만의 것이 없다고 주장하시면 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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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oc 11-12-09 21:35
   
<추가>
빠트렸네요 ..

그냥 사료로서 믿으면 되고 왜 만주족이 그렇게 썼나를 봐야죠.  -> 내가 이야기했지 않았습니까? 한족의 지배라는 부끄러운 역사를 없애기 위하여 라고요!!

자신들이 신라인이고 길림이 근거진데. -> 앞에서 말했죠. 아직은 비약이라고(그 이유가 앞에 있으니깐 쫌 읽으세요)  제 말뜻을 이해해주세요 제발!!!

그런 내용이 발표되었고 뉴스에도 나왔는데 -> 그런내용에 대해서 한국사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여 알려주십시오. (분명 님이 조선실록에 있다고했습니다. 잘찾으실거라고 믿을께요^^)
444 11-12-09 23:36
   
ㅎㅎㅎ
크록님 난독증이 있으신 것 같네요^^

랑케가 궤변가라는 말이 아니라. 그 랑케를 끌어들여서 하필이면 만주원류고를 황당한
기서로 만드는 님이 글이 궤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님의 주장중에서 "동북공정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고조선, 고구려사가 우리나라 역사이고,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지 금청사를 우리나라 역사에 편입한다는 것은 불난 집을 끄는 대신 집을 부셔버린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노력을 왜 우리가 해야 합니까?
고조선 고구려사는 당연히 한민족사이지 한족사는 아니지요. 당연 니들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지나인이 이 주장을 편 것 조차도 일천한 짧은 기간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님이 동북공정을 옹호한다고 언급한 건데 님은 아니라고 하고...ㅎㅎㅎ 뉴앙스를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역사학계 정론은 당연 없습니다.  보는 관점이 어느 쪽을 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뿐
제 경우는 자국사관이니 님과 배치된다는 건 님의 사관과 차이가 나는 것이겠습니다.
이 문제는 객관성의 확보가 중요한데. 참 복잡한 문제죠^^
님이 인용한 내 글 
그리고 문화적으로 만주족들이 다양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거의가 고려인들입니다.
그들이 몽고지배하에 살면서 몽고식의 언어와 헤어스타일 복장이 갖춰졌고
조선왕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죠. >>

이걸 비꼬고 싶은 것 같아서 인용한 것 같은데 이게 객관적인 설명입니다.
고구려 벽화에는 변발이나 치파오가 안나오잖습니까?
만주족 1천년 전 벽화에 안나오고 1천 년 후 나오니
제가 주장한 것이 객관적인 겁니다.
사실이란 거죠.
그 천년 사이 대표적으로 몽고족의 지배시기 그 문화가 그 지역에 녹아든 겁니다.

비꼴 걸 비꽈야죠^^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가설과 추론이 역사입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처럼 철저하게 문자화된 사서가 있는 경우는 물론 그 토대로
좀 더 쉽겠습니다.

만주원류고는 당연히 당대 최고의 만주출신 사가들이 본 만주의 전래입니다.
지나인들의 일천한 지리지식같은 걸로 혹은 유람기같은 풍으로 씌어진
무슨 무슨 열전과는 비교할 필요가 없죠.
우리는 만주원류고를 우선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지나사서 조선열전 동이 열전 뭐 이런 것들로 우리 역사를 분석해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솔직히 사마천이 쓴 사기란 것 조차도
지나에서 스스로 유람기 소설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님이야 말로 지나의 사료비판이란 전혀 없네요. 
문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나가 사서를 쓰면서 인용하는 사실이란 것들 조차도 사실
신빙성이 문제가 된다는 건데 이게 아니라고 무조건 맹신한다면 뭐...
맨날 수십년 수백년 서로 챗바퀴는 흔한 일이겠습니다^^

일본서기... 고사기... 이런 일본의 역사책들 문제는 이미 오래 전 분석들이 끝난 겁니다.
님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리고 왜 그런 관점으로 나오는지도 이미 일본인도 한국학자도 대충은 나와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그냥 그 일본역사를 쓴 사가들이 백체출신이기에
백제사가 일본사인 것 처럼 써졌다는 설도 있고 님이 말한 일본서기의 문제점들이
다 그렇게 설명됩니다.
그 일본의 인용사료들 조차 의심스러운 그냥 전래 입으로 구술한 걸 받아쓴 역사책이라죠?
일본서기나 고사기가?
그 천년 전 신화록과 왜 철저한 사료를 특히 당대 최고의 사료를 접할 수 있었던
제국의 학자들이 황제의 명을 받아 저술한 만주원류고를 사료가치 운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입맛에 맞지 않아서....
이게 황당한 거죠^^  안 그런가요?

쓰여진 경향이 자존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님이 만주원류고를 폄하하며
같은 경향을 가진 부류들의 견해만을 맹신하는 가장 진실한 이유는
그 내용이 님이 추구하는 혹은 믿고 싶어하는 것과 배치되는 것 그 이유 하납니다.
그게 님과 이 댓글 내용이 겉도는 이유죠^^
난독증까지는 좀 심하다고 해도 겉도는 건 확실하네요^^

님과 내가 주장한 내용들은 사실은 내용적으로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금청사는 동북사의 영역으로 다루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생기는 가?
전 한민족사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고
님은 지나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죠.

바로 고 부분입니다.  동북공정이란 것이 바로 그거죠.
그리고 지나인들이 신라와 금청을 묶내 마네하는 동북공정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구려가 지나의 지방 정권인데 대한민국은 신라의 정통을 이은 국가니
만주와는 관계가 없다 이게 지나 동북공정의 핵심입니다.

즉  그냥 만주와 간도의 영유권을 대한민국이 주장할 것에 대비한
작업이란 점입니다.

이 주장을 불행하게도 국내의 역사계가 동조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 황당한 사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지나인들의 동북공정의 핵심을
무너트리는 겁니다.
금청사를 한국사의 영역으로 포함시키면서
지나의 중화사관을 무너트리는 거죠.

^^

님이 헷갈려 하는 부분도 같은 내용일 것이라고 보는데
간단합니다.

한민족사의 영역에 만주가 포함되느냐 마느냐...
님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냐 없냐의 문제일 뿐.  복잡할 필요도 없습니다.
님은 한민족사가 특히 지나의 속국이었다는 걸 강조하는 댓글들을 남기던데
물론 자국사관을 주장하는 유저들의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그런 댓글들을 달고 다니는 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런 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입니다.

^^
지나가라~ 11-12-10 04:23
   
444님과 같은 분들이 계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croc 11-12-10 12:50
   
444님? 저랑 장난치시는 겁니까? 똑같은 말만 주구장창 말하고 거기에 반박을 하면 거기에 대한 반격이나 반응이 전혀 없는 거 같습니다. 말하자면 벽과 이야기 나누는 느낌이랄까요? 제발 부탁이니 한번만으로 알아들읍시다.
그리고 꼭 필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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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다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노력을 왜 우리가 해야 합니까?
고조선 고구려사는 당연히 한민족사이지 한족사는 아니지요. 당연 니들만의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지나인이 이 주장을 편 것 조차도 일천한 짧은 기간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님이 동북공정을 옹호한다고 언급한 건데 님은 아니라고 하고...ㅎㅎㅎ 뉴앙스를 나만
그렇게 느낀 걸까요? ]

-> 도대체 제가 동북공정을 옹호하고 있다는 당신의 생각의 근원지가 어딘지 궁금해 죽겠습니다. 어디 제가 동북공정 찬성한다고 세뇌당하시고 오셨나요? 물론 님이 오해할 소지인 만을 넣어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님의 오해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란 만주족을 한족화 시키는데 생긴 문제입니다. 만주족을 한족과 동일한 민족이라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이 고구려는 한족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에 반박하기 위해 한족(만)의 역사가 아니라는 증거를 마련하자는 의미입니다. 한족의 역사라고 단정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리고 고구려 한족사 주장 반박에 대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님의 하나의 방심입니다. 세계 역사학계에서는 당연시하다는 건 없습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만 통하겠지요. 세계 역사학계가 항상 대한민국의 편만 들어주는줄 아십니까? 이런 변변찮은 저도 님의 의견에 반박글을 쏟아내는데 동북공정학자들이야 말안해도 알겠죠?

[랑케가 궤변가라는 말이 아니라. 그 랑케를 끌어들여서 하필이면 만주원류고를 황당한
기서로 만드는 님이 글이 궤변이라는 뜻이었습니다.^^ ]

->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당신의 말을 인용합니다. <랑케가 비난할 대표적인 것이 지나 사서란 것이죠. 만주원류고는 아닙니다.>라고 하셨지요? 그리고 위의 말에 <만주원류고를 황당한 기서로 만드는 님>이라고 하셨지요? 그러면 증거(만주원류고와 지나 사서의 차이점을 대조적으로 설명하라고 그전 댓글에도 올렸죠? 둘다 자국중심사관으로 서술되어 있는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 이거 때문에 저랑 일주일째 논쟁하고 있는겁니다.)를 대야죠. 증거없는 가설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역사학계 정론은 당연 없습니다.  보는 관점이 어느 쪽을 주로 보느냐에 따라 다를 뿐
제 경우는 자국사관이니 님과 배치된다는 건 님의 사관과 차이가 나는 것이겠습니다.
이 문제는 객관성의 확보가 중요한데. 참 복잡한 문제죠^^
님이 인용한 내 글 
그리고 문화적으로 만주족들이 다양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거의가 고려인들입니다.
그들이 몽고지배하에 살면서 몽고식의 언어와 헤어스타일 복장이 갖춰졌고
조선왕조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으면서 조금씩 달라졌다는 것이 ""정설""이죠. >>
이걸 비꼬고 싶은 것 같아서 인용한 것 같은데 이게 객관적인 설명입니다.]

-> 정론에 관한 부분은 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니깐 pass
객관적인 설명이라고 하셨지요? 당신은 만주족이 거의 대부분 고려인이란 증거를 이때까지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만. 기껏해야 여진족의 지도자는 신라인. 444님이 이제 어떤 증거를 내세울지 한번 볼까요?


[고구려 벽화에는 변발이나 치파오가 안나오잖습니까?
만주족 1천년 전 벽화에 안나오고 1천 년 후 나오니
제가 주장한 것이 객관적인 겁니다.
사실이란 거죠.
그 천년 사이 대표적으로 몽고족의 지배시기 그 문화가 그 지역에 녹아든 겁니다. ]

-> 이것이 만주족이 거의 고려인인 이유라고는 못 말할 것 같은데요? 저는 만주족이 몽고풍 복장을 갖쳤다는데에는 이견이 없었습니다만.. 아쉽게 됐네요. 그리고 제가 누차 이야기했죠. 뿌리가 같다고 무조건 같은 역사로 포함할 수 없다고. 유럽이 대표적인 이유라고 했지요? 유럽혈통 비슷비슷하지요. 그러나 각자 자국사를 갖고 있습니다. 어느하나가 정통성을 주장할 수 없고 또한 뿌리가 같더라도 서로 독립적인 생활을 하여 분리되어버린다면 다른 민족으로 취급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당신 말을 비꼬아 말한다면 우리 모든 지구촌의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유래되어왔으므로 아프리카사라고 해야한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고요. 제 이야기를 하나도 안들은거 같은데 미국사랑 영국사(심지어 미국은 영국에서 독립된지 340년 정도 밖에 안됐지만 미국인이 자국사를 배울 때 미국사랑 영국사를 하나로 뭉쳐 배우지는 않지 않습니까?), 게르만족으로 이루어진 여러개의 국가의 역사는 어느 게르만족 나라가 자국사로 게르만족 국가들의 역사를 모조리 포함시켜 가르치는 경우도 있습니까? 사례를 들어주세요. 미국과 영국도 이런 처지인데 1000년 전부터 서서히 문화가 독자적으로 발전해나가는 만주족과 한민족은 같은 역사로 취급해야합니까? (님이 말하는 객관적 사실도 이미 독자적으로 발전되어버렸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상식적으로 다른나라와 비교해 보세요. 또한 생물학적으로 따져볼까요? 인류는 어디에서 분리되었지요? 침팬지? 지렁이? 단세포? 기준마다 다 다르지요. 침팬지에서 분리되어 왔다고 하면 침팬지와 인류는 공통조상. 지렁이에서 분리되어 왔다고 하면 지렁이와 인류는 공통조상. 단세포에서 분리되어 왔다고 하면 단세포와 인류는 공통조상. 그러면 어느 생물부터 비슷한 생물이라고 해야하나요? 바로 지금의 생태계에서의 생물의 외형과 DNA 유사성이겠지요? 마찬가지로 민족의 경우에도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면 현재의 만주족과 한민족의 문화, 언어, 음식, 말의 밀접한 연관성을 제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금청사를 우리나라역사로 편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님은 한번도 그런것을 제시한적이 있나요? 단순히 "옛날"에 고려양식의 영향을 받았다고만 말했지요.(전 분명 "현재"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로는 약하다는 겁니다. 문화는 항상 고립되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어딘가에 영향을 받았고, 다른 곳에 영향을 끼칩니다. 님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외형상으로도 현재의 두민족의 정신적 문화에서도 뚜렷한 공통적인 특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게 있습니까? 지나친 민족사관은 자기를 상대화하거나 객관화시키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요. (민족사관을 비난하는 목적은 아닙니다.)

[비꼴 걸 비꽈야죠^^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한 가설과 추론이 역사입니다.
물론 조선왕조실록처럼 철저하게 문자화된 사서가 있는 경우는 물론 그 토대로
좀 더 쉽겠습니다.]

-> 객관적인 사실이면 머합니까? 추론자체가 망상인데.. 그리고 아무리 맞다고 해도 그것은 가설을 확증한다고 하지 참이라고 안합니다. 또한 가설을 확증하려는 사례도 전혀 엉터리고 (위를 참고하여 왜 위의 사실로는 금청사가 한국사가 될수 없는지 설명했음.)

[만주원류고는 당연히 당대 최고의 만주출신 사가들이 본 만주의 전래입니다.
지나인들의 일천한 지리지식같은 걸로 혹은 유람기같은 풍으로 씌어진
무슨 무슨 열전과는 비교할 필요가 없죠.
우리는 만주원류고를 우선으로 보는 것이 당연한 겁니다.
지나사서 조선열전 동이 열전 뭐 이런 것들로 우리 역사를 분석해야 하는
아픔이 있지만 솔직히 사마천이 쓴 사기란 것 조차도
지나에서 스스로 유람기 소설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님이야 말로 지나의 사료비판이란 전혀 없네요. 
문제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나가 사서를 쓰면서 인용하는 사실이란 것들 조차도 사실
신빙성이 문제가 된다는 건데 이게 아니라고 무조건 맹신한다면 뭐...
맨날 수십년 수백년 서로 챗바퀴는 흔한 일이겠습니다^^ ]

-> 처음부터 말하자면 제가 언제 지나사서를 맹신한다고 했지요? 저는 분명 사료비판을 통해 수용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나사서 "인용"한 적 없습니다. 님 말은 결국 신라가 만주지배하지 않았다는 대부분의 지나사서들을 전부 부정해 버리기 위해서 꺼낸 치트키일 뿐이죠. 또한 만주원류고 내용의 출처는 님이 그토록 의심하는 지나사서인데 어쩌죠? 그리고 만주족이나 한족이나 거기서 거기라니깐 그러네.. 만주족에 환상 가지고 계신듯. 만주족 다른 민족에 비해 우리한테 속국타령이 심했지요? (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속국사관은 사실 만주족에서 기인된 거랍니다. 만주족의 허영심에서.. 그러나 실은 속국이라기 보다는 고쳐 말하면 조공국이라고 해야겠지요. 인조가 삼배구고두했을 때가 누구(淸)때고 어느민족(滿洲族), 누가(淸太宗) 시켰을까요? 그리고 그 누가(淸太宗)가 삼배구고두전에 인조에게 보낸 편지를 보시면 444님은 만주족의 실체를 깨닫게 되고 충격먹으실듯 하네요 ㅋ 물론 지나사서가 아닌 우리와 가까운 민족 만주족의 편지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만주족이 한족도 많이 탄압하였지요? 변발 강조하고 완전 개무시했지요. 한족탄압에 대해 아무런 이견이 없는데에 동의 하시죠? 그런데 쪽수로 한족에게 안되니깐 한족탄압(만주족의 우월성 강조)의 또다른 방책으로 만주원류고를 만들게 된겁니다. 아시겠지요 ^^ 저는 이러한 청나라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해서 만주원류고(정치적인 사서)를 판단했지만 님은 단순히 여진족의 조상은 신라인이다를 이용하여 온갖 비약을 넣어 결국에는 청이 신라를 계승하기 위해 고구려 역사를 없앴다고 했지요?? 그러면 청나라는 조선을 같은 신라를 계승한 나라 혹은 모국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군요. 조공국으로 삼는걸 보니. 자.. 또한 님의 비약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존재합니까? (고구려벽화이야기 꺼내지도 마세요. 금청시대보다 훨씬 전이니까 ㅡㅡ) 또한 만주원류고에 버젓이 올라있는 신라만주지배설을 입증하는 문화재적 발견이 있었나요? 쉽게 말하면 어떤 소수의 사서에만 A(신라대륙지배)가 있다고 한다면 님이 오히려 A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지 제가 A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기독교신자들이 잘 쓰느 수법이죠.) 또한 만약 님말이 사실이라한다하면 고구려 역사의 일부는 사라지게 되겠군요. 이를 볼때 누구의 가설이 더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제 가설도 확실하다고 장담은 못하나 님보다는 확실하다고 장담합니다.^^ 이제 그 비약(망상)이 잘못됐다는 것을 재역설하는 의미에 또다른 논거를 여러가지 제시해 드릴께요. (당신의 주장에 대한 저의 반박을 반박할 생각을 해야지 "지나사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논쟁이 1년지나도 계속 갈 것이라 예상합니다. 말하자면 유치한 반격이란 뜻이죠.)

(1) 말갈족은 고구려에 복속된 후 의외로 고구려의 말을 잘들었지요. 만약 님말처럼 처음부터 신라를 계승하려 했다는 말도 모순이겠지요? (중간에 마음이 바껴서 신라를 계승 ->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입증)
님의 의견대로 지나사서 빼고 삼국사기를 봐도 고구려, 말갈, 거란, 백제 - 수, 돌궐, 신라 형태라는 것이 대략 유추가능하니깐요.
말갈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고구려편에 붙었네요^^

(2) 님의 말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지나사서와 만주원류고에서 나타나는 다른점들은 지나사서가 왜곡하였고 만주원류고는 진실을 적었기 때문이다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쩌죠? 지나사서의 경우에는 님이 그토록 주장하는 왜곡에 대해서 상당히 자신감있는 어조(??)로 출처를 밝히면서 적었지만 만주원류고의 경우에는 제가 아까전에도 말했듯이 근안, 按(살피건대)라고 객관적인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라는 어조로 적었지요. 이러한 어조로 적은 부분이 바로 환단고기학자가 주장하는 대륙신라설, 금이라는 국호가 신라에서 왔다는설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또한 지나사서를 그렇게 까시면 그것을 출처로 하여 적은 만주원류고도 당연히 까셔야죠? 만주원류고는 단순히 청나라 사관의 말만 적는게 아니라고 분명말했지요? 황제들의 명으로 만든 모든 사서의 경우 역대 중국왕조의 사서를 많이 인용한다고 말했습니다만 ㅡㅡ. 청나라 사관들도 객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부분을 그대로 인용하여 적은 님이 저를 지나사서맹신자라 비난할 자격은 전혀 없다고 봅니다만^^ 님이야말로 오히려 사료비판이 없는 필터 없는 정수기 아닙니까?(그리고 이뿐만이 아니죠. 청나라 사관이 얼마나 반박할 거리가 없었으면 아무런 이유없이 금나라 초기기록인 금사지리지를 견강부회라고 주장하지요. 아무런 이유없이!!!)

(3) 그리고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 이런데에 뇌내망상을 하시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했지요. 왕의 혈통과 유래는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히 있다는 것을.. 왜 왕의 혈통이 정치적인 목적이 다분히 있다는 것을 증명해볼께요. 우리나라 건국영웅들을 봅시다. "우리나라 건국영웅들의 공통적인 특징인 전부 외부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조선의 단군은 외부에서 온 환웅의 아들, 위만은 연나라 망명인이죠, 부여를 건국한 동명왕은 북방 고리국에서 왔고, 동부여를 건국한 해부루도 서방에서 왔지요, 백제를 건국한 온조도 고구려에서 남하한 인물이고,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도 양산 기슭에서 말과 함께 나타난 사람이며, 그 부인 알영도 용이 낳은 사람이죠, 신라 김씨왕조도 계림 숲속 금궤안에서 나타난 사람이고, 기자 또한 은나라에서 왔고, 마한을 세운 준왕도 기자조선에서 쫓겨난 사람이고, 북부여 건국한 해모수도 하늘에서 내려왔죠, 고구려 시조 주몽도 동부여에서 졸본부여로 내려와 나라를 새우고, 사로국의 6촌장들도 하늘에서 내려왔죠, 신라 석씨 왕조도 왜의 동북쪽 다파니국 출신이고, 가야를 세운 수로왕도 하늘로부터 내려왔고 그의 부인도 아유타국 공주이며, 대가야의 건국시조 뇌질주일도 가야산신과 천신 사이의 아들이죠, 고려왕조도 당나라 후손이라 하였지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나라의 시조들도 다 외부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이라고해서 여진족=신라인 혹은 고려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위의 기록에도 적용해보십시오. 님의 생각하셔도 웃기지요?

(4) (3)번을 심화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왕이 당나라 후손임을 자처했다는 것은 어느 기록에 있을까요? 바로 고려사에 있지요. 이 고려사에서 이 내용은 어디를 출처로 하고 있냐면 편년통록입니다. [편년통록]에 기록된 왕건 조상에 얽힌 이야기를 읽어보면 왕건의 아버지는 왕용건이며,할아버지는 작제건,그리고 증조부는 당나라의 숙종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사실일까요? 당연히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지요 ㅋㅋ. 물론 당나라와 고려와의 연관성을 말할 수 있지만 고려가 당나라를 계승한 것은 아니지요.(금이 신라를 계승했다고 주장하는 님처럼) 그러면 님은 이렇게 반박하실거지요. 이것만으로는 고려왕이 당나라 후손임을 자처한 적이 없었다!!!! ㅋㅋㅋ 그런데 어쩌죠 다음 기록을 봅시다. 이해하기 쉽게 대화로 구성하겠습니다.

충선왕이 원나라에 끌려갔음.

원나라 한림학사曰 : 충선왕님! 님 조상이 고려사에서 당나라 숙종이라고 들었음. 근데 실제로 당나라 숙종은 대궐 밖에 나간적 없음.
충선왕曰 : 헐.... 어떡하지... 나 당나라 황제 후손 맞는데.. 반박할 거리가 없네...
민지(편년강목의 저자)曰 : 충선왕 버프해줌. 사실은 숙종이 아니고 선종이었음. 잘못 기재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음.
원나라 한림학사曰 : 그러면 맞을 수도 있네염..

위의 대화를 봐서도 고려왕이 당나라 후손임을 자처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실은 고려왕은 당나라 후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중에 공민왕대에 이제현이 쓴 [국사]를 통해 혈연조작임이 밝혀집니다. 후의 사학자들은 고려 왕실과 당 왕실을 혈연적으로 연결시킨 것은 외교적 측면으로 유리하게 이용해 먹기 위함이였고 원의 팽창을 막기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고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고려왕이 혈통은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다는 것이죠. 자.. 어떻습니까? 왕의 혈통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망하고 정치적이지 않습니까? 모든 나라의 왕이 혈통도 다 그렇습니다. "여진의 지도자는 신라인" 이것도 정치적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그렇게 허망하지 않습니다. 이걸로 오히려 여진=신라인, 금청=신라라는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일본서기... 고사기... 이런 일본의 역사책들 문제는 이미 오래 전 분석들이 끝난 겁니다.
님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리고 왜 그런 관점으로 나오는지도 이미 일본인도 한국학자도 대충은 나와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그냥 그 일본역사를 쓴 사가들이 백체출신이기에
백제사가 일본사인 것 처럼 써졌다는 설도 있고 님이 말한 일본서기의 문제점들이
다 그렇게 설명됩니다.
그 일본의 인용사료들 조차 의심스러운 그냥 전래 입으로 구술한 걸 받아쓴 역사책이라죠?
일본서기나 고사기가?
그 천년 전 신화록과 왜 철저한 사료를 특히 당대 최고의 사료를 접할 수 있었던
제국의 학자들이 황제의 명을 받아 저술한 만주원류고를 사료가치 운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입맛에 맞지 않아서....
이게 황당한 거죠^^  안 그런가요? ]

-> 님이 오히려 난독증이시네요. 제가 일본서기를 꺼낸 이유는 만주원류고도 그대로 수용해서는 안되고 사료비판을 하자는 이야기 였습니다. 일본서기를 찬양한 적 없습니다. 그리고 만주원류고 사료가치 운운한적 없습니다. 제가 말했듯이 만주원류고 사료가치 없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입맛이 맞지 않다니요?  먼 개소리십니까? 사료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드리는 당신이 말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하네요.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당신이 오히려 지나사서나 한국사서, 일본사서가 입맛이 안 맞겠지요. (일본서기도 만주원류고와 같이 덴무천황의 명으로 만든 사서입니다만 ^^)

[쓰여진 경향이 자존적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님이 만주원류고를 폄하하며
같은 경향을 가진 부류들의 견해만을 맹신하는 가장 진실한 이유는
그 내용이 님이 추구하는 혹은 믿고 싶어하는 것과 배치되는 것 그 이유 하납니다.
그게 님과 이 댓글 내용이 겉도는 이유죠^^
난독증까지는 좀 심하다고 해도 겉도는 건 확실하네요^^]

-> 만주원류고를 폄하한 이유가 있으니깐 그렇지요. 거기에 대해서 당신은 반박한 적이 있습니까? 반박할 거리도 없는 주제에 말하는 말이라는 것이 웃기군요. 님이 오히려 그렇게 믿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이죠.당신같은 재야학자들은 만주원류고를 신이 내린 사서로 생각하시나 보네요. 그리고 폄하하기 보다는 황당하다고 말했습니다만^^ 사료를 취사선택할 때는 사서가 황당하면 황당할 수록 사료비판에 철저해야지요. 일본서기도 그런 의미에서 꺼낸 내용이지요. 님의 주장에서 만주원류고 말고 다른 고고학적 유물을 근거로 내세운게 있습니까? 없지요? (금청사를 한국사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금청과 고려조선이 "똑같은" 독자적인 문화양식이 존재해야합니다. 단순히 고려양식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위에서 반박했드시 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했지요.) 자. 누가 사료비판 없이 맹신하고 있나요?
 
[님과 내가 주장한 내용들은 사실은 내용적으로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도 금청사는 동북사의 영역으로 다루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라는 겁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생기는 가?
전 한민족사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고
님은 지나사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이죠. ]

-> 지나사적 관점이 도대체 뭡니까? 좌익좀비처럼 저가 하지도 않았던 관점을 했다고 주장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제가 동북사라고 했던것은 단순히 "영토"적인 면에서 동북에 치우쳐서 그렇게 주장했을 뿐이죠. 만주와 한민족의 양식이나 문화의 공유점이 전혀 없는데 민족사관을 억지로 금청에 대입하려는 것을 반박한 것 뿐이지요. 제가 말했지요? 제가 지나사적 관점이라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도 지나사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는 것을.

[바로 고 부분입니다.  동북공정이란 것이 바로 그거죠.
그리고 지나인들이 신라와 금청을 묶내 마네하는 동북공정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고구려가 지나의 지방 정권인데 대한민국은 신라의 정통을 이은 국가니
만주와는 관계가 없다 이게 지나 동북공정의 핵심입니다.

즉  그냥 만주와 간도의 영유권을 대한민국이 주장할 것에 대비한
작업이란 점입니다. ]

-> 중국의 동북공정이 어디까지가 범위인지 확실히 알고 오세요^^ 동북공정은 신라까지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주와 간도 영유권?? 그거 주장하려면 민족주의 관점으로는 무리일텐데?? 말도안되는 소리하지 마시죠. (영토분쟁은 민족관점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ㅡㅡ) 제가 말했지요? 님이 금청이 신라를 계승했다고 하면 중국은 더 쉽게 신라는 중국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다고요. (님이 동북공정을 옹호시는 꼴이 되지요.)

[이 주장을 불행하게도 국내의 역사계가 동조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 황당한 사태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지나인들의 동북공정의 핵심을
무너트리는 겁니다.
금청사를 한국사의 영역으로 포함시키면서
지나의 중화사관을 무너트리는 거죠.

^^

님이 헷갈려 하는 부분도 같은 내용일 것이라고 보는데
간단합니다.

한민족사의 영역에 만주가 포함되느냐 마느냐...
님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냐 없냐의 문제일 뿐.  복잡할 필요도 없습니다.
님은 한민족사가 특히 지나의 속국이었다는 걸 강조하는 댓글들을 남기던데
물론 자국사관을 주장하는 유저들의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그런 댓글들을 달고 다니는 지는
모르겠지만 문제는 그런 님의 정체성은 과연 무엇인가입니다.]

-> 금청이 자주적인 역사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중화주의를 무너트릴 수 있는데 억지를 부리고 있지요. 님의 말은 단순히 헛소리입니다. 재야학자들의 탐욕으로 금청사를 한국사에 편입하여 한국사의 관점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재야학자들이 잘도 포장을 해서(말하자면 겉치레죠.) 중국의 중화주의를 무너트리자고 하는 것이죠. 겉치레에 속지 마시죠. <한민족사가 특히 지나의 속국이었다는 걸 강조하는 댓글> 먼 개소리신지? 지나속국이라고 한적 없습니다만 ㅡㅡ;;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네요. 청의 속국이 지나속국?? 저의 정체성은 한민족의 정체성이지요. 제대로된 한민족의 정체성이죠. 님의 정체성은 재야학자들에게 세뇌당한 불쌍한 사람들의 정체성이고요. 재야학자들의 의견이 얼마나 허망한지 제가 누차 이야기했는데도 세뇌에 벗어나지 못하시면 그것은 큰 문제입니다.



<하고 싶은 말>
님과 토론을 하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역시나 인터넷과 오프라인은 서로 다른 세상이더군요. 오프라인에서는 금청사를 한국사에 편입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역시 인터넷이란 소수의 억지가 다수를 세뇌시키는 아주 비참한 공간이라는 것도 알게 됬구요. (특히 지나가라~님의 의견을 보고 크게 느낍니다.) 소수의 억지가 억지임을 주장하는 것을 지나사관이라고 밟히는 것도 참으로 인터넷이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생이닷컴 유저분들이 10~20대들이 많아서 님의 주장에 대해 상당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인 면도 충분히 있으니깐 속게 되는 것이지요.^^

누르하치편지 기대하겠습니다. 누르하치편지조차 거짓말이라는 것이 탄로나면 가생이닷컴 유저분들에게 신뢰성을 잃게 되겟지요? (고구려=말갈도 기대합니다^^)
오늘도 할일이 많아서 한참 뒤에 다시 오겠습니다^^ 제 말에 반박하기나 하세요. 물타기 하지 마시고요.
11-12-11 06:21
   
만주원류고에서 고구려는 발해족으로 이미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구려가 제외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쪽은 중국인들이나 식민사학자들 뿐입니다.

여진족들에게 고구려=발해였습니다.
     
croc 11-12-11 16:14
   
고구려가 제외되었다고 말한적이 없구요. "고구려=발해 아니다" 이런이야기 꺼낸적도 없구요. 아시겠지요?
11-12-11 06:22
   
그리고 금나라 청나라가 신라에서 나왔다는 것은 만주 황실을 비롯한 만주족의 주장이었습니다. 청나라 공식역사이기도 했죠. 한국에서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croc 11-12-11 16:13
   
금나라 청나라가 신라에서 나왔다  -> 이 말하시는 순간부터 제 글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제글을 쭉 한번 읽어보세요. 다시 쓰기 귀찮으니까. 한국에서 주장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러면 재야학자들은 외국인이군요. 일본서기도 일본 공식역사서니까 고구려백제신라는 왜의 속국이군요^^ 역사스페셜이 항상 옳은 역사관을 가진 프로그램이 아니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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