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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02 02:45
[일본] 태평양전쟁과 원저폭탄
 글쓴이 : 한시우
조회 : 4,607  

태평양 전쟁과 원자폭탄

1. 일왕 히로히토가 연합국에 대해 무조건 항복을 결정할 당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당연한 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폭격기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폭탄의 비를 퍼붓고 지나가던 무렵이었으니 당시 히로히토나 그 측근들에게 있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커다란 폭발이 있었다고 해도 꽤 강력한 폭탄을 떨어졌구나 하는 수준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더구나 폭격의 규모로만 따지면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보다는 그보다 몇 달 전 도쿄에 가해졌던 대대적인 공습 - 도쿄대공습 - 이 더 컸다. 그 넓은 도쿄가 아예 평지가 되어 버리고 10만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나갔으니. 도쿄 자체를 소이탄으로 불태웠다는 점에서 어어어 하는 순간 폭탄 한 발 떨어져 수많은 건물과 사람들이 소멸된 히로시마나 나가사키보다 시현효과도 컸다 할 수 있었다. 

정작 원자폭탄을 직접 맞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시민들조차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상황에, 역시나 뭐가 떨어지기는 했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대본영이, 히로히토가, 그나마 남은 개념이란 개념은 모조리 소나무 뿌리와 섞어 잘 고아 가미가제용 항공유로 써버린 그들이 고작 원자폭탄 몇 발에 항복씩이나 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미국이 일본인을 원숭이취급하며 멸시했다면, 일본의 수뇌부들은 자신들의 국민을 그야말로 소모품취급하고 있었으니까. 일본 국민 몇 십만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했던 거다.

그렇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도 히로히토와 그 측근들이 1억 총옥쇄니 결사항전이니 본토결전을 준비하는 것을 막은 것은 그무렵 들려온 소련의 참전소식이었다. 당시 소련과 일본은 노몽한 사건 이후로 불가침조약을 맺고 있었는데 미국의 끈질긴 설득과 일본에게 절대 불리하게 돌아가던 전황으로 인해 결국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파기하고 일본에 선전포고하기에 이른 것이다.

원래 일본은 공산주의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전제군국주의의 일본과 공산주의와는 상극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지어 적백내전 당시 백러시아를 지원하겠다며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었다. - 이때 현지에서 강간을 일삼다가 전력의 1할을 성병으로 잃었던 교훈 때문에 종군위안부를 설치하게 된 것이라 하니 아주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 - 더구나 본토결전을 대비해 전력의 거의 대부분이 서쪽 지역에 배치된 상황에 양면전선을 감당할 여력이 일본에게는 없었으니, 차라리 미국에 항복해 자비를 구하는 것만이 야만스런 소련군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던 것이다.

결국 일본은 소련의 선전포고가 있고 얼마 안 있어, 소련이 본격적으로 상륙작전을 실시하기 전에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을 하기에 이른다. 한 마디로 공산주의 소련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가 원자폭탄에 대한 공포를 능가하고 있었다고할 수 있다. 하기야 앞서 말했든 원자폭탄이 뭔지에 대한 개념조차 갖지 못한 상태였으니.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물건에 대해 일본이 알게 된 건 항복을 하고 나서였다. 아마 미리 알았다 해도 수백 만 정도 죽는 건 그들에게 일도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2. 정작 원자폭탄을 사용한 미국도 원자폭탄이 갖는 무서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원자폭탄을 직접 개발한 과학자들조차 그것을 단순히 위력이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센 폭탄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오죽하면 원자폭탄을 소형화시켜 다이너마이트 대신 광산개발이나 터널공사등에 쓰겠다는 계획까지 나왔을까.

아니 아주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그 지식수준이라는 게 지금처럼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정보가 아닌 막연한 위험성에 불과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핵실험을 하면서도 구경하겠다고 몰려드는 사람에 대해 특별히 제제하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아니 아예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병사들을 핵실험이 있던 장소에 보내 이런저런 작업을 시키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덜덜한 일이지만 핵무기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이 다행인게, 방사능의 위험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직접 폭격의 피해를 입지 않고서도 죽거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나오면서부터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비롯해서 핵실험 현장에 있던 병사들이 픽픽 쓰러질 당시에도 미국 정부는 그것이 방사능에 의한 것이라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가서야 역학조사를 통해 비로소 방사능의 위험성이 세상에 알려지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본인들은 미국의 원자폭탄 사용을 두고 일본을 상대로 방사능에 대한 실험을 한 것이라 주장을 하기도 하는데, 물론 당연히 헛소리다.

아무튼 결국 이러한 방사능의 위험이 한국전쟁이 끝나고도 몇 년이 지난 1950년대 후반이었으니, 만일 방사능의 위험이 조금이라도 늦게 알려졌다면 애초 계획했던대로 원자폭탄을 사용해서 터널공사를 하고, 광산을 개발한다고 원자폭탄을 터뜨리는 일이 실제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기겠다. 

참고로 히로시마에 떨어진 꼬마LittleBoy는 우라늄 폭탄으로 13.4kt, 나가사키에 떨어진 뚱보FatMan은 21kt수준으로 대략 20%정도의 폭발효율을 보였다고 한다. 당기 기술로는 사실 이 정도가 한계였다는데, 특히 우라늄 폭탄인 꼬마의 경우는 플루토늄 폭탄과는 달리 그 성공을 확신하고 있어 실험조차 않고 떨구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미국식 똥배짱이라고나 할까? 어찌되었거나 과학자들의 예측대로 기폭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한 순간에 7만 명을 즉사시켰다. 한 마디로 핵무기가 막 개발되어 나온 초기의 이야기다. 지금은 효율 20%면 불발탄 취급한다.

다시 말하지만 원자폭탄이 처음 개발되어 최초로 실전에 쓰인 것이었다. 거기에 대해서는 정작 개발하고 사용을 승인한 미국 정부나 군부, 과학자들도 모든 것을 명확히 아는 것이 아니었고, 개발 당사자도 아닌 일본은 더더욱 아니었다. 결국 이러한 수많은 오류와 오해들이 실험과 실제 사례들을 통해 하나둘 해결되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일관된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때는 아직 모든 것이 미숙하고 혼란스럽던 때였다.


3. 사실 미국은 일본에 원자폭탄씩이나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원래 원자폭탄이라는 게 어떠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어떻게 쓰겠다는 분명한 목표 아래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독일이 먼저 개발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방어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라, 당시 미국의 정치권이든 군부든 과학자들 사이에서든 그것을 어떻게 써야겠다는 계획 자체가 없었다.

하기야 이렇다할 요격기도 없는 일본의 상공은 미국의 안마당이나 다름없었고, 매일같이 수백 대의 폭격기를 동원해 폭탄의 비를 퍼부어대고 있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소련마저 미국의 설득에 응해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깨고 참전을 결정한 무렵이었으니 어디에 쓸지조차 결정되지 않은 원자폭탄따위가 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하던대로 B-29로 폭탄이나 떨구며 일본 본토에 상륙해 일본인들을 가볍게 밟아주면 그만을 뿐.

그러나 정치라는 게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라서, 그렇게 막대한 돈을 들여 원자폭탄을 만들어 놓고는 쓰지도 않고 방치한다는 건 자칫 정부로 하여금 의회로부터 공격받을 빌미를 줄 수 있었다. 군부나 과학자들 입장에서 책임추궁과 더불어 예산의 삭감이라는 달갑지 않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자신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정부든 군부든 과학자든 자신들이 이루어낸 결과물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더구나 소련이라는 나라도 문제였다. 아다시피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다. 러시아 혁명 이후 적군에 대항하던 백군을 지원하기도 했던 미국으로서는 전쟁 이후도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베를린을 점령하고 당장 소련으로 쳐들어가자며 방방뛰던 열혈노친네 패튼이 아니더라도 전쟁이 끝나고 난 뒤 소련과의 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어느 정도 소련에게 무력시위를 해 보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결전략적인 목적에서가 아니라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가 결정되게 된다. 원래 고쿠라, 니가타, 나가사키, 히로시마 네 곳을 후보로 두었는데, 기상문제등 여러 필연과 우연이 겹친 끝에 결국 인류역사상 유일하게 핵무기를 맛보는 영광을 차지한 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그 다음은 모두가 아는 바 대로다.


4.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그러는 것처럼 미국의 원자폭탄 사용 자체만을 놓고 비난할 수는 없다. 당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일본이었고, 전쟁을 끝내야 할 책임도 일본에게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그러한 연합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고, 도리어 무모한 본토결전을 결정한다. 미국으로서는 그렇게 철저항전을 준비중인 일본과 상륙전을 할 경우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쟁 이후 소련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했다. 미국을 제외한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전쟁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소련의 팽창을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무력시위가 필요했다. 소련의 태평양 전선 참전이 더없이 절실한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다시 말해 당시 미국으로서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모든 가용한 수단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장차 전쟁이 끝난 뒤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책임이 있다면 전쟁을 일으키고, 더 이상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아가며 자신의 권력을 지키고자 했던 대본영과 덴노 히로히토에게 있지 전쟁을 어떻게든 단기간에 끝내야만 했던 미국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일본은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 히로히토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일찍 항복선언을 하도록 함으로써 미군이 상륙하여 본토결전이 벌어질 경우 발생할 끔찍한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소련에 의해 훗카이도를 비롯한 동북부를 점령당하는 상황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더구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핑계로 열심히 피해자놀이나 하며 자신들의 책임을 싹 물타기하고 있으니 이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책임은 어디까지나 전쟁을 일으키고, 패배가 결정된 상황에서도 자국민의 목숨을 인질삼아 끝까지 버티고 있던 일본 정부에 있다. 대본영과 히로히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그 끔찍한 비극의 책임을 묻자면 그들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하긴 그럴 주제가 되었다면 이제 와서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들에 대해 눈 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도리도리나 하는 하등생물이 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전범들이 죄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와 앉아 지금까지 전쟁 전과 전혀 다름 없는 부와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던 나라에 상식을 바라는 건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거겠지.



아무튼 가끔 역사를 보면 너무나도 끔찍한 비극들이 너무나도 어이없는 이유로 결정되는 것을 심심치 않게 찾아보게 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도 어찌 보면 그런 경우의 하나라 할 수 있다. 핵무기 보유를 제한해야 - 아지 궁극적으로는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 하는 이유가 역시 언제 또 어떻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유들로 그 무기들이 쓰일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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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우 11-12-02 02:45
   
출처 돈미니블로그
한중우호 11-12-02 09:42
   
일본에서 유학한 국내 학자들은 핵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인류의 파멸을 가저올것이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은 일본에 핵무기를 투하한 미국은 인류의 커다란 재앙의 불씨를 남겼다말하고 있다 또한 일본이 패망이 기정사실화된 상태에서 핵을 투하한 것은 일본 민족의 대한 범죄 행위라 규탄하고 있다 - 이 이야기는 일본 극우가 아닌, 한국내 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다...나는 이 말에 일부분은 동의 한다 우선은 핵무기는 인류의 파멸의 씨앗이다 - 그러나 동의 못하는 것은 일본이 패망이 짙던 그렇지 안던 미국의 젊은이 들이 일본 본토에서 죽어야 하며 그래야 미국이 윤리적으로 해석될수 있는가 - 우리는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피를 뿌리지 않고 핵을 투하한 손쉬운 방법의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한 처지가 못된다 생각한다 일본이 패망하던 안하던 핵의 투하했단 것의 인류애를 따지기 이전의 일본 원폭의 대한 결과보다 원인을 따저야 한다고 본다. 덧 붙여서 말하는것은 국내 학자가 일본 나가사키에서 보존된 건물잔해에 기대어 사진을 찍으면서 미국은 일본에게 사과해야 한다그것은 인류대한 의무이다.보고 기가차서 쓴글이다..
월하낭인 11-12-02 12:37
   
- ..그 때 100발쯤 떨어뜨렸으면,
    오히려 지금 방사능 오염이 덜했을 지도.
Assa 11-12-02 16:38
   
아우  길어
꼴랑간지 11-12-02 22:15
   
일단 원자폭탄이 떨어지게 된 주된 원인이 서술되지 않았군요. 연합군이  일본에게 무조건 항복과 완전한 파멸중 택일하라고 요구했을 때 일본이 "협상 하겠다. 무조건 항복요구의 답변을 보류한다(모쿠사츠)"라는 성명을 묵살한다고 잘못 쳐서 보내는 바람에 원폭이 떨어졌던 것입니다. (물론 실험적인 문제도 있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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