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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12-02 02:41
[몽골] 징기스칸이 학살자가 될수 밖에 없던이유?
 글쓴이 : 한시우
조회 : 5,952  

칭기스칸이 학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몽골

2011/10/24 03:54

복사 http://blog.naver.com/donmany0203/30121645408

칭기스칸이 학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1. 학살자, 파괴자로 기억되는 칭기즈 칸
최근에 다음의 웹툰에서 허영만 화백이 그린 칭기즈 칸 일대기,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를 즐겨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댓글 서비스가 허용이 되어 많은 네티즌들이 만화에 대한 댓글을 달았는데 상당히 재미있는 댓글들이 많았다. 칭기즈 칸의 아버지 이름인 예수게이를 두고 왜 예수 그리스도를 모욕하냐는 열혈 기독교인들의 분노 어린 댓글도 눈에 띄었다. 만화를 본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 일으킨 주제 중 하나가 학살자 칭기즈 칸을 영웅으로 미화하는가?였다. 
칭기즈 칸은 세계 역사 상 유래 없는 대제국을 건설한 장본인이었다. 2000년 <타임지>에서 지난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은 것이 바로 칭기즈 칸이다. 하지만 이러한 칭기즈 칸의 명성 뒤에는 항상 꼬리 표같이 붙어 다니는 수식어가 붙는다. 바로 학살자, 도시파괴자란 악명높은 수식어이다.
칭기즈 칸과 그의 계승자들이 수행한 세계적 전쟁은 근대 이전 수행된 전쟁 중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전쟁으로 꼽힌다. 반달리즘의 극치라고 할까? 몽골군이 다녀간 자리에는 시체와 건물 잔해만 남았을 뿐이고 칭기즈 칸의 몽골군은 유럽인들에게 신이 보낸 징벌의 채찍이라고 인식되었다.  몽골군대의 학살로 인해, 칭기즈 칸과 몽골군대는 세계사에서 학살자, 살인마라는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럼 칭기즈 칸과 몽골군이 학살자로 기억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2. 학살의 표면적인 이유
최근 들어 몽골군의 학살에 대해서 중국사가나 이슬람 사가, 기독교 사가들에 의해서 부풀려진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잭 웨더포드는 그의 저서 <칭기즈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 흥미로운 계산을 내놓았다. 
이슬람 사가들의 기록으로 계산했을 경우, 칭기즈 칸의 중앙아시아 원정 기간 5년 동안 학살된 인구가 1500 만 명 정도인데 이 정도 숫자를 죽이기 위해서는 몽골군 1명당 100명에서 350명 정도를 죽였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웨더포드는 중앙아시아 도시에 과연 그 정도의 인구가 거주했을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또한 몽골군의 정복으로 파괴된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을 발굴했을 때 몽골군에게 학살당한 유골(중앙아시아 경우 건조한 기후로 인해 미라나 유골이 그대로 보존되는 경우가 많다.)들의 수가 사서 기록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또한 같은 시기 몽골군 뿐만 아니라 십자군이나 유럽의 군주들도 잔인한 학살을 벌였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학살이 비단 몽골군의 특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몽골군의 학살과 도시 파괴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인식되었을 정도로 잔혹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시 번영했던 헤라트나 부하라 등의 중앙아시아의 도시들을 발굴한 결과를 봐도 몽골군의 파괴가 얼마나 철저했는 지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사서들에 등장하는 기록들은 몽골군이 얼마나 잔혹하게 사람들을 다루었는지를 암시한다. 예를 들면, 니사푸르 지역에서는 도시인들의 목들을 가지고 세 개의 탑을 쌓았다는 기록도 있고 1223년 칼카 강 전투 후에 수부데이 군대가 러시아 군 포로들을 열을지어 눕힌 후 그 위에 나무판을 올려 놓은 다음 연회를 벌여 압사시킨 기록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 본론으로 넘어가서 몽골군은 그 전과의 양상과는 달리 유례없는 학살을 자행했는가? 거기에는 표면적인 이유와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우선 표면적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⑴ 보복과 복수의 차원 ⑵ 군사들의 사기진작  ⑶ 공포 효과

 
⑴ 보복과 복수의 차원: 
우선은 칭기즈 칸의 복수심, 응징 차원에서 나오는 학살이었다. 이것은 몽골군이 종종 내건 슬로건이다. 호라즘 제국에 대한 대대적인 원정의 경우 상업적, 경제적 동기도 있었지만 그 직접적 발단이 호라즘의 오트라르 태수가 몽골의 사신단과 상인들을 제거한 데 있었고, 칭기즈 칸은 이를 명분으로 쿠릴타이를 소집하여 호라즘 원정을 결의한다. 또한 몽골군이 저지른 학살들은 보복의 명분으로 이뤄진 경우가 많았다. 니샤푸르 전투에서 칭기즈칸의 사위 토쿠차르가 전사하였다. 몽골군의 니사푸르 함락 이후 칭기즈 칸은 그의 딸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었고, 그의 딸은 니사푸르의 모든 주민들에게 사형을 명령하고 주민들의 목을 이용해 탑을 쌓았다. 

 
 ⑵ 군사들의 사기진작:
유목민들에게는 약탈이 필수적인 생계수단이었다. 몽골군은 군사들의 사기 진작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약탈을 허용해야만 했다. 약탈과 파괴를 중지하는 경우, 유목군대의 사기는 급속도로 낮아지고 불만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몽골군은 몽골초원에서 먼 곳까지 원정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심적으로도 사기가 저하된 상태이다. 따라서 약탈과 학살을 통해서 군사들은 전투력을 증가 시키를 수 있었을 것이다.

  
⑶ 공포효과:
몽골군들이 살육을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성과는 무엇보다도 공포 효과였다. 위 사진은 몽골군이 금나라의 성을 공략할 때의 모습을 사료를 토대로 복원해 본 모습이다. 투석기로 포로들의 목을 성 안으로 던지는 것이다. 이런 잔혹한 행위는 농성하는 적군의 사기를 꺾는 심리전이었다. 몽골군의 경우 대학살을 심리전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일단 본보기로 삼아 성 하나를 대대적으로 도륙하면 인근의 성들이 충격을 받고 항복해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도시가 많은 중앙아시아에서 몽골군의 살육은 작전상 필수적인 것이었다. 공성전에 취약한 몽골로써는 성을 빼앗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보다 본보기 학살을 통해서 인근 도시를 항복하게 하는 것이 효율적인 전략이었다.

3. 학살의 근본적인 이유

그렇다고 하더라도 칭기즈 칸은 왜 중국과 중앙아시아들의 도시문명을 대대적으로 파괴하고 정주민을 학살했을까? 그들에게서 공물을 수취하면 희생도 줄이고 국가의 부도 증대시킬 수 밖에 없을텐데 말이다.
몽골제국의 대학살의 근본적인 원인은 몽골 지역의 유목민들과 정주지역의 사회 경제적인 체제와 관념이 매우 상이했기 때문이다. 초원지역의 유목민들은 말 그대로 목초지를 이동하면서 가축을 키우는 유목 경제에 기초를 두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유목 경제가 부족한 면이 있다면, 정주지역에 대한 약탈과 상인들의 교역을 통해서 부를 취득하면 되었다. 흉노의 경우도 서역 지역의 오아시스 도시들을 직접지배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조공을 통해서 오아시스 도시들의 부를 흡수하였고, 유목 경제와 약탈 경제를 그대로 유지하였다.
몽골의 경우 기존의 흉노나 돌궐 등의 유목국가와는 달랐다.

정주지역을 약탈하거나 공물을 통해 그들의 부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정주지역의 공간을 완벽히 지배 한 것이다.

몽골의 학살극도 유목국가가 정주지역의 공간을 지배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극으로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다. 칭기즈 칸 초기 몽골제국은 유목민들만의 국가였다. 따라서 국가의 경제나 사회 기반도 유목민들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몽골이 보기에 정주지역의 도시와 수많은 인구는 유목민의 사회와 경제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들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몽골의 학살과정을 보면 일단 자신들에게 필요한 기술자, 상인은 배제되고 군사들의 경우 보병들이 주로 학살된다.

이렇게 보면 대규모 학살은 몽골제국이 자신들의 유목 경제에서 불필요한 요소들을 배제시키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혹자는 반문할 수도 있다. 몽골이전에 중원을 지배한 선비, 요, 금이나 후의 청은 중국의 정주민들을 효율적으로 지배하지 않았나?

그러나 요와 금 선비, 청은 몽골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들이 지금 만주, 혹은 중국 동북이라 불리는 요동지역에서 발흥한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이 지역은 몽골 초원 지대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우선 농경이 일부 가능했고 중원의 영향을 어느 정도 꾸준히 받았으며, 고구려와 발해 시기 이미 도시 생활을 경험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몽골의 유목민들은 중원, 정주문화와는 확실히 단절된 공간에서 살았다. 칭기즈 칸 시기에도 정주사회에 대해서는 무지했다고 볼 수 있다.
몽골의 대학살 빈도가 후기로 갈수록 차츰 줄어드는 것도 몽골인들이 초기의 정주사회에 대한 무지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칭기즈 칸 사후, 제국의 영역이 정주지역으로 확대되면서 제국의 위정자들도 점차 정주지역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 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정주사회를 경험한 관료들을 채용하면서 유목국가에서 정주지역까지 통합하는 새로운 제국체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칭기즈 칸~우구데이 시대의 야율초재를 들 수 있겠다. 야율초재는 칭기즈 칸 시기에도 수차례 간언을 올려 정주민에 대한 대규모 학살과 약탈, 도시파괴 등을 중지하게 했고, 우구데이 시기에는 중국식 관제를 도입하여 몽골제국의 행정체제를 정주민들에게 맞게 고치고자 하였다.
칭기즈 칸 사후 쿠빌라이가 대칸으로 즉위하는 것을 계기로 몽골이라는 거대한 제국은 크게 4개의 칸국으로 분열되엇고 그 결과 몽골의 지배체제는 정주사회화 되었다. 원의 경우 중국식 관제, 일 칸국이나 차가타이 칸국은 무슬림의 관제로 지역을 통치하였고, 조치의 금장칸국은 러시아 대공들을 통해 조공을 수취받는 등 정주지역과 타협하였다. 몽골 제국과 정주민들의 타협은 몽골의 통치자들이 자신들의 유목민 전통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지만, 대학살이란 잔인한 통치방법을 배제시키게 되어 유라시아 세계에 새로운 팍스몽골리카라는 평화를 낳게 하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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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우 11-12-02 02:41
   
출처 돈미니 블로그
정상인임 11-12-02 10:06
   
저렇게 인구가 적은 나라가 저토록 잔인하게 죽였다는걸보니

몽골인이라는 자부심이 굉장했던듯
월하낭인 11-12-02 12:33
   
- 몽골리안 루트 8부가 좋았더랬는데..
 (지금은 자료 출처가 훨씬 풍부해졌겠지만)
한마디로 11-12-05 12:15
   
북방야만족! 몽골오랑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
이니 11-12-15 18:26
   
체력은 좋았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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