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다문화는 그 용어의 시작부터가 사기적이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도 아니고,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영으로 인해 유입된 다양한 인종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나라에서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도대체 적용될 수가 없다.
인종적 갈등이나 여러 문화의 충돌에 의한 갈등을 완화하고자 시도하는 것이 다문화와 똘레랑스 일 것인데, 그런 충돌이나 갈등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미래에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또는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갈등을 앞서 원용하여 오히려 다문화라는 용어하에 다름을 부각시켜 앞으로의 갈등을 앞장서서 조장하는 것이 다문화이다.
앞으로 코시안들이 어떤 특정 소외계층화 되거나 한쪽 부모의 외래문화를 따르고자 하여 한국사회에서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면 그때에서야 다문화나 똘레랑스가 주장될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오히려 온전한 한국사람으로 한국의 정체성을 갖지 못하도록 하고, 한쪽 부모의 모국(외국)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너희는 다르다고 자꾸만 얘기하는 것이 현재의 다문화가 하는 일이다.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다문화가 아니라 갈등을 조장하고, 사회가 잘 융합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갈라놓고 파편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한국의 단일문화를 따르려는 아이들에게 자꾸만 너희는 태생적으로 순수한국인과 다르니 외국에서 온 한쪽부모의 모국의 문화를 많이 배워서 그 나라와 한국의 가교가 되어야 한다고 속삭이며, 나머지 토종한국인들은 그것을 모두 배려하고 존중하라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에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다문화의 갈등을 창조하고 조장하여 다문화주의 사회로 만들어 나가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중이다. 이는 앞으로 있을 대대적인 이민자수용에 앞서 그 환경을 먼저 구축하려는 시도일 것이라고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