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1-09-09 23:11
天安門 (天安门) 천안문사건이란?
 글쓴이 : 쿠르르
조회 : 5,400  

1989년 톈안먼 사건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톈안먼 사건(천안문 사건, 天安門事件)은 1989년 6월 4일,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학생과 시민의 민주화 시위를 중국 정부가 군을 동원해 무력 진압한 사건이다.

6·4 톈안먼 사건, 6·4 사건, 천안문 사태, 북경 대학살 사건, 텐안문 학살 등으로도 불린다. 애초 공식 발표로는 민간인 사망자 300여 명, 부상자 7천여 명이 발생한 사건이다. 국제적십자협회는 2,000 여명의 사망자를 발표했다. 비공식 집계로는 5천여 명 사망, 3만여 명 부상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 후 중국 공안부1990년 7월 10일 제5차 국무원 보고에서 정식 발표한 것을 따르면, 민간인 사망자는 875명, 민간인 부상자는 약 14,550명이었으며, 군인은 56명이 사망, 7,525명이 부상당했다.

목차

[숨기기]

[편집] 배경

덩샤오핑중국 공산당 내 개혁파들인 후야오방자오쯔양을 자신의 후계자로 정하고 그들을 정치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런데 1982년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한 후야오방덩샤오핑의 기대와는 달리 사상 해방, 언론 자유, 개인 자유의 신장, 법치주의, 당내 민주화 등 민주주의 노선의 과감한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치 개혁은 당내 보수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후야오방은 공산당 총서기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은 오랜 침묵 끝에 사망했다.

중국의 시위사태가 후야오방의 사망을 계기로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덩샤오핑을 중심으로 한 실용파가 집권하면서 추진해 온 개혁·개방 정책이 중국인의 생활수준 향상도 가져왔지만 여러 정치·경제적 부작용도 양산함에 따라, 정부에 대한 불만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그 불만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고, 후야오방의 정치 개혁 노선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덩샤오핑은 경제 개혁을 통해 중국의 근대화와 강대국 도약을 추진하였지만, 정치 개혁을 할 의사는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

[편집] 경과

  • 4월 15일 - 후야오방(胡耀邦) 사망과 함께 베이징 시를 중심으로 학생, 시민 시위 시작. 이들은 후야오방의 당 총서기직 해임 이유를 밝힐 것과 그의 명예 회복을 요구.
  • 4월 21일 - 경찰과 충돌이 빚어지면서 시위 참여 대학이 10여 개로 늘어났고 베이다오(北道)를 주축으로 한 47명의 저명한 학자들이 학생운동 지지 성명 발표.
  • 4월 22일 - 후야오방 장례식. 시안(西安)에서 군중이 10여 대의 차량에 불을 지르고 성(省) 정부를 습격하며 공산당 타도 외침.
  • 4월 26일 - 최고 실권자 덩샤오핑(鄧小平), 리펑(李鵬) 총리에게 시위 강경 진압 지시. 인민일보는 이 날짜 사설을 통해 학생 시위를 ‘반혁명 폭동’으로 규정.
  • 5월 13일 - 학생 수천 명 천안문 광장서 무기한 단식농성 시작. 시위 인원 며칠 새 200만 명으로 급증.
  • 5월 19일 - 자오쯔양, 단식 농성장 방문해 학생들에게 자신이 너무 늦게 온 것에 대해 사과.
  • 5월 20일 - 베이징 일부 지역에 계엄령 선포.
  • 6월 4일 - 0시 57분. 계엄군 본격적인 진압작전 개시. 중국 정부, 진압과정에서 민간인 300여 명이 사망하고 7천여 명이 부상했다고 발표. 비공식 집계로는 5천여 명 사망, 3만여 명 부상이라는 주장도 있음.

[편집] 사망자수

여러 출처에서 사망자수를 각기 다르게 추정하고 있다.

  • 10,000명 사망 (민간인과 군인 모두 포함) - 소련
  • 7,000명 사망 - 나토
  • 4,000 ~ 6,000명 사망. 그러나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 - 에드워드 팀펄레이크
  • 3,700명 이상 사망 (실종자, 비밀처형, 의료행위 거부를 제외) - 인민해방군 탈영자가 관리들 사이에 기록된 문서가 떠돌았다고 증언
  • 공식적으로 6월 4일 새벽 2,600명이 사망 (후에 부인) - 중국 적십자사. 익명의 한 적십자사 관리는 약 5,000명이 사망하고 30,000명이 부상당했다고 추정
  • 국제 앰네스티와 몇몇 시위 참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1,0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타임지에 개제. 국제 앰네스티의 다른 증언에 의하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사망했다고 추정.
  • 300 ~ 1,000명 사망 - 서방 외교관
  • 뉴욕 타임스의 니콜라스 D.크리스토프에 의하면 400 ~ 800명이 사망. 그는 병원 직원들과 의사, 관리로부터 수집된 정보를 기초로 수치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 기밀이 해제된 NSA 문서에 따르면 180 ~ 500명이 사망. (사태 초기의 피해자 수치들을 참조)
  • 241명 사망 (군인 포함), 7,000명 부상 - 중국 정부
  • 2006년 말까지 186명의 사망자가 신원이 확인됐으나 전체 피해자수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주장 - 천안문 어머니회. 천안문 어머니회는 이 명단에 사태 이후에 xx한 사람들까지 포함시켰다.

[편집] 영향

사건 이후 서양 세계와의 외교 관계가 악화되었으며 중국 내 덩샤오핑의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었다. 보수파의 압력으로 덩샤오핑은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개혁 정책들이 하나씩 뒤집혔다. 이념이 중시되고 개혁 이전의 중국으로 돌아가려는 반동의 움직임이 강화되었다. 1991년 덩샤오핑은 베이징을 떠나 군과의 유대 관계를 공고히 하며 보수파에 대한 반격을 준비한다.

[편집] 현재

2005년 11월 18일 ‘후야오방 기념대회’를 시점으로, 후진타오 중국 주석이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복권을 조심스레 추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를 언급하는 것은 위험한 일로 되어 있다. 후야오방에 대한 재평가는 곧 천안문 사태의 재평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쉽게 손을 댈 수 없는 뜨거운 감자이다. 지금도 매년 6월 4일을 전후하여 천안문 광장에는 중국 공안이 대규모로 배치되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검색엔진 구글에서도 중국정부의 요청으로 중국어 구글에서는 천안문사태에 대해 정보검색을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부적이라고 한자가 몇글자 올라와서 저것이 뭔가 궁금하신분들이 많으신거 같아서요... 중국근현대사에 대해서 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천안문에 대해서 아예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거 같아서 위키백과 붙입니다.

  중국의 근현대사는 책을 구해 알면알수록 코미디입니다. 정말 우울할때 중국 근현대사에 대해서 대략 공부해보면 피식 웃음이나죠.

  장개석VS마오쩌둥의 대립---> 월등한 전력의 장개석의 삽질부분이 포인트

  마오쩌둥의 공산당---> 대약진("영국철강을 십년안에 따라잡는다"는 구호아래 동네용광로만든 코미디)
                                  반우파투쟁
                                  문화혁명(이부분도 상당히 재밌습니다. 다만 아직 보도통제)

  그리고 중국에서도 민주화 운동이 없었다고 착각들 하시는데...

  분명 중국에서도 민주화 요구가 있었고 그 대표적 사례가 저 천안문 사건입니다. 뭐 자세한내용은 위에 위키에서 가져온 글이 충실하니 저것만 봐도 충분할듯합니다.

  천안문외에도 법륜공(파룬궁) 사태가 또 최근 중국 인권탄압의 대표적인 예...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11-09-09 23:36
   
잘은 몰라도 천안문과 같은 변을 민주화운동이라고 하기에는............ㅡ,ㅡ;

고려를 엎고 세워진 조선에,,,,반대한 정몽주를 민주화열사라고는 안하잖아요....지조와 절개 있는 선비로서 존경 할 만한 분이지......^^
     
짜샤밥퍼 11-09-10 05:46
   
이거 중공 민주화 운동 맞습니다만
1 11-09-10 00:02
   
쿠르르님 이것좀 퍼가도 될까요?
     
쿠르르 11-09-10 00:23
   
네 제글이 아니라 위키디피아에서 퍼온거라 괜찮아요..

그냥 출처를 위키디피아로 밝히시면 됨
깐따삐야 11-09-10 03:21
   
조선족 오금저리겠소 ㅎㅎㅎㅎㅎㅎㅎ
짜샤밥퍼 11-09-10 05:44
   
이런거 많이 자주 올리는게 아둔한자들을 깨우치는 방법인것 같음.

주위 국가들 국민들중 그래도 양심세력들이 있으니....
로이드 11-09-10 16:42
   
88올림픽과도 연관이 있으려나요? 냉전의 두축 소련과 미국이 동시에 참가하면서 냉전종식이라는 타이틀을 가졌으니..
총통 11-09-11 09:02
   
천안문 사건보다  천안문 학살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중국당국발표롤 겨우 몇십명 죽었다지만.

당시 목격자나,,탈출한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황을 봤을때 최소 2~3천명이 죽었을거라
합니다..

天安門 虐殺(학살)
가생의 11-09-24 00:06
   
 
 
Total 18,70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11152
1960 [기타] 진짜 역사는 똑같이 반복된다 (26) 백약 10-29 4441
1959 [기타] 다문화정책에 대해서......이건 가생이에서 토론 입니… (4) 곰돌이 10-29 3884
1958 [기타] 다문화에 대한토론글 입니다.....진정해님 보세요 (3) 곰돌이 10-29 3276
1957 [통일] 한국의 입장에서 다문화란 (15) 진정해 10-29 4070
1956 [중국] 中 "백제, 신라도 중국사" - 덩남아 유전자는 우리 역… (14) 슈퍼파리약 10-28 5123
1955 [일본] 아래 한시우님이 쓰신 오키나와같은 대학살은 제주… (2) 이눔아 10-28 3293
1954 [일본] 도쿄 교원노조 “독도 일본땅이라 말할 수 없다” 삼촌왔따 10-28 4087
1953 [중국] 대륙의 효자. 아버지계 큰 선물을 (13) 휘투라총통 10-28 8747
1952 [기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게 있죠. (6) 백약 10-28 3580
1951 [기타] 한국인들은 아랍에서 심지어 동물에 가까운 취급을 … (24) 슈퍼파리약 10-27 6325
1950 [중국] 오랑캐의 탄생 (4) 한시우 10-27 4405
1949 [중국] 중국 최초의 미녀 첩보원 서시(西施) (2) 한시우 10-27 5067
1948 [중국] 진시황 이래의 중국의 인구변천 한시우 10-27 4723
1947 [중국] 중국은 티베트를 어떻게 "역사 살해" 했나? (1) 한시우 10-27 4090
1946 [중국] 중국역사가 화려하다? 사실 식민지역사 한시우 10-27 3240
1945 [일본] 사무라이는 어디서 왔는가? 한시우 10-27 3606
1944 [일본] 일본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오키나와 대학살 (4) 한시우 10-27 3780
1943 [일본] 일본인들은 어디서 왔는가? (3) 한시우 10-27 5972
1942 [일본] 역대 왜왕 연포 (2) 한시우 10-27 4580
1941 [일본] 류큐왕국의 비밀! (1) 한시우 10-27 11891
1940 [북한] 리비아 북한 교민 귀국 금지 지시 받아 (2) 요플레 10-27 2881
1939 [북한] 탈북자의 남한 내 종북 세력 규탄 " 내 인생의 전부를… (10) 정상인임 10-27 3523
1938 [중국] 양심적 홍콩인이 쓴 책 <다시는 중국인으로 태어나… (9) 정상인임 10-26 4794
1937 [일본] 근로 정신대 할머니, 되려 일본 직원에게 6시간 감금… (6) 정상인임 10-26 3546
1936 [중국] 중국어와 동남아어 아프리카어의 공통점 - 성조어, … (13) 슈퍼파리약 10-26 6340
1935 [기타] 외노자들의 도가니(성폭력)은 왜 보도안하나 (14) 인디고 10-26 5798
1934 [중국] 짱깨 건드리면, 대포로 맞는다 (환구시보에서) (8) 보다보니 10-26 3846
 <  621  622  623  624  625  626  627  628  629  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