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0년 5월 필리핀 남부에서 납치된 인질들. / AP 연합뉴스
필
리핀은
세계적인 납치의 본거지라 불릴 정도로 납치사건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필리핀 언론에서조차
"몸값을 노린 납치사건이 필리핀에서 가장 수익이 많이 나는 산업"이라고 할 정도다.
필리핀에서 납치가 산업화된
것은 30년 전부터다. 700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지만 무슬림과 소수 민족도 많다. 이들이 독립국가를
설립하기 위해 무장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납치사건을 저질렀다. 그때만 해도 인질 납치는 종교적, 정치적 명분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납치가 손쉽고 효율적인 자금 확보 수단임이 증명되면서 납치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필리핀에서
납치사건이 빈발하는 또 다른 요인은 정부에 대한 신뢰 부재, 불안한 치안, 빈부 격차 등이다. 테러단체들이 돈 많은 사업가나 그
자녀들을 납치한 후 경찰에 알리지 말라고 협박하면서 몸값을 요구하면 경찰을 신뢰하지 않는 부자들은 몰래 돈을 지불하고 인질을
구했다.
여기에 범죄단체들도 가담했다. 부유한 화교를 납치해 수백만달러를 뜯어내는 것이 가장 쉬운 돈벌이가 됐다.
납치 피해자의 3분의 1은 화교 즉, 중국계 필리핀인이란 통계가 있을 만큼 화교는 범죄단체들의 표적이다. 이들은 필리핀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지만 이 나라 부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납치 피해자 중 약 10%는 외국인이란 통계도 있다.
납
치 기술도 점점 발달해 표적으로 삼은 사업가 소유의 사업체에 취직을 한다든지 그 집에 운전사나 가사도우미로 취직을 해 미리 정보를
빼내는 경우도 늘었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5~15세 어린이를 집중 공략하기도 했다. 하굣길에 차에 태운 후 여러 대의 차량을
동원해 길을 막고 도주하는 것이다.
필리핀에서 납치가
산업화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테러단체는 민다나오 지역을 무대로 활동하는아부 사야프(Abu Sayyaf)다. 테러집단으로
지목된 이 단체는 2002년 유럽인 수십 명을 인질로 잡아 수백만달러를 요구하기도 했다. 아부 사야프는 과거엔 독립국가를
세우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요즘엔 아예 돈벌이를 위한 납치에 더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리핀 납치에 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필리핀의 한 시민단체는 1993~2002년까지 2142명이 납치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숫자는 경찰에
신고된 사건만 포함된 것으로 실제 납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컨설팅업체는 2005년 경찰에 신고된
납치사건은 44건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실제 발생 건수가 최소한 세 배가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