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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10-18 09:29
[한국사] 금나라의 발해인은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2,938  

신라의 가야인과 양태가 비슷했다고 보입니다

가야는 신라에, 대발해국은 금나라에 멸망당했고

최고위급 인물을 배출했다는 점(가야의 김유신, 발해의 장호)

황실과 통혼을 해서 세력을 가졌다는 점

자신들과 적대적인 황제를 제거했다는 점(신라의 혜공왕, 금나라의 희종)

점차 견제를 받아서 약화가 되었고 결국 동화되었다는 점



다만 요나라에서 항쟁을 벌이던 발해인들이 금나라에서는 잠잠했고

애초에 여진족이 발해인(고구려계)과 말갈족이 합쳐져서 새로 생성된 민족이란 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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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4-10-18 13:16
   
대발해(大渤海)는 발해가 멸망한 후 발해유민인 고영창이 세운 나라이다. 국호는 대자가 존칭이므로 발해라 해도 무방하지만 역사적 구분을 위하여 굳이 대발해라 불리게 되었다. 대원국(大元國)이라고도 부른다. 1116년에 건국하여 총 5개월간 이졌다. 1116년 1월 1일 고영창은 군사를 몰고 거란족 요나라의 동경유수(東京留守) 소보선(蕭保先)을 척살한 다음 대발해를 건국하였다. 멸망(926년) 후 거의 200년이나 지났는데도 발해의 기치 아래 사람들이 꽤 모였음을 알 수 있다.
하이시윤 24-10-18 13:17
   
건국 10여일만에 요나라 동경도 관할하에 있던 요동의 79주 중 50여주를 지배하는 기염을 토했지만, 1116년 5월 요의 장수 장림(張琳)이 대발해를 공격하자 대발해는 당시 흥기하던 여진족의 금나라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금나라와의 지원군 협상에서 금나라가 고영창에게 요동에서 물러날 것과 칭제를 물릴 것을 요구했지만 황제를 고집하다가 건국 5개월만에 멸망해버린다. 금나라의 요구는 사실상 요동에서 물러나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것인데 고영창이 들을 리가 없다. 같이 요동에서 발흥했던 흥료국과 비교하면 대발해는 흥료국에 비해 국가 체제도 갖추지 못했고, 원군이 되어줄 수도 있을 고려에게 오히려 자신에게 표를 올리라고 하는 등, 그 한계가 명확했다. 또한 발해가 없어진지 200년이 넘었기 때문에 발해인 스스로의 정체성도 희미해졌고, 때문에 발해부흥운동을 진압하는데 앞장선 이들도 발해유민 출신들이었다. 즉 대발해에는 국제적 안목과 발해유민들을 통합할 리더십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금의 장수인 알로(斡魯)가 고영창을 사로잡고 대발해를 멸망시켰다.
하이시윤 24-10-18 13:17
   
대발해는 발해부흥운동 최후의 나라로서 이후 발해인들은 금나라 여진족들의 강온책으로 말미암아 통혼을 하고 군대에 충원되는 한편, 강제로 중원에 이주당해 여진, 한족과 혼혈하여 상당수가 동화되었다. 그래도 남은 발해인들은 요동에 살고있었고 원나라가 고려왕족을 요동을 관리한 심왕 자리에 임명하고, 고려와 조선이 요동 정벌을 계획할 정도로 명나라 초기까지도 동화되지 않은 발해와 고려인들이 많이 남아있었지만[2] 이마저도 대다수가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를 거쳐 동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이시윤 24-10-18 13:19
   
926년 발해가 요에게 멸망한 이후 각지의 발해유민들은 요나라에 대한 저항운동을 계속했는데, 여기서 세워진 가장 유명한 나라가 다름아닌 정안국이다. 이런 발해 부흥 운동은 정안국이 망하면서 일단락된다.

요의 대외원정과 재정적 문제로 이 지역에 세금을 부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이 지역의 발해인과 거란인들의 갈등이 빚어진다. 마침 연 지역에 기근이 일어나 요의 호부사 한소훈, 호부부사 왕가 등이 백성들을 수탈하자 요 조정을 향한 발해 유민들의 원망은 커져만 갔다.

이때 대조영의 7대손 동경사리군 상온(東京舍利軍 詳隱) 대연림이 이 틈을 타 두 사람과 사첩군 도지휘사(四捷軍 都指揮使) 소파득 등 호부 관원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이 일로 인해 백성들은 통쾌해했고 많은 백성들이 대연림을 따르기 시작했다.

천경(天慶)[3] 원년인 1029년 8월 3일, 그가 천경이라 건원하고 흥료(興遼)를 세우자 많은 백성들 뿐만 아니라 동, 북의 여진도 그를 따랐다. 나라의 이름을 풀이하면 요동/요하(遼)에서 일어난다/일으키다(興)라는 뜻이다.

건국하고 한달 뒤인 9월, 고려 현종에게 대부승 고길덕(高吉德)을 사신으로 보내 흥료국의 건국을 고하는 한편 군사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참지정사 곽원이 수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출병을 강행했지만 큰 성과 없이 고려는 뒤로 물러나게 된다.[4]
     
하이시윤 24-10-18 13:22
   
한편 대연림과 같이 반란을 모의했던 동경부유수 왕도평(王道平)은 흥료국을 배반하고 탈출에 성공, 요성종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는 각 주에서 군사들을 모아 국구상온(國舅詳穩) 소필적(蕭匹敵)[5]에게 요충지를 차지해 대연림이 서진하는 것을 막게 했다.

이때 보주를 지키던 발해태보 하행미((夏行美))에게 대연림이 몰래 사람을 보내 통수 아율포고를 제거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행미가 도리어 그를 잡아 야율포고에게 보내고 이어 흥료국에 가담한 무리 100명을 유인하여 모두 죽여버렸으며 상황 보고를 받은 야율포고도 마찬가지로 보주의 발해 병사 800명을 죽이고 동쪽 길을 끊어버린다.

황룡부의 황편(黃翩)도 보주의 하행미와 마찬가지로 협조하지 않자 대연림은 마침내 군사를 나누어 심주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자 절도부사 장걸은 대연림에게 거짓으로 귀순한 뒤 자꾸만 시간을 끌어 방어 태세를 만들었고, 흥료군이 요양으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1029년 10월, 요성종은 남경유수(南京 留守) 연왕(燕王) 소효목(蕭孝穆)을 도통으로, 소필적을 부통으로, 해육부대왕(奚六部大王) 소포노(蕭蒲奴)를 도감으로 삼아 요양성을 포위하게 한뒤 성에서 5리 떨어진 곳에 보를 쌓고 망루를 세웠다. 1029년 12월, 태사 대연정(大延定)은 도통 소효목의 공격을 맞서기 위해 동, 북여진 종족들을 끌어모아 항쟁하는 한편 고려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으나 고려는 거부했다.[6]

천경 2년인 1030년 1월, 다시 고려에 사신을 파견했으나 무의미했다. 3월, 요나라는 긴 울타리를 쌓아 성을 감싸 감시한다. 이로써 흥료국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졌다. 5개월을 버티며 7월에 또 고려에 사신을 보내 표문을 바치지만 고려는 다시 무시했다. 7월에 사신으로 보낸 유충정(劉忠正)은 20여년 전 목종의 총애를 받았던[7] 발해 유민 출신 고려인과 이름이 한자까지 같은데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만 동일인이라면 고려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인연으로 호소해 보려고 했던 듯하다. 하지만 1009년에 강조에게 살해당했다고 기록에도 있기 때문에 동일인이 아니며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면 현종과 인연이 있었던 인물과 이름이 같은 사람을 내세웠던 것일 수도 있다.

결국 8월, 흥료국의 장군 양상세(楊祥世)가 요군과 내통해 동경성의 대문을 열었다. 결국 대연림은 체포되었고 반요투쟁은 1년만에 끝난다. 8월에서 9월 사이, 흥료국은 또 고려에 사신 이광록(李匡祿)을 보냈지만 고려에 도착했을 때 이미 흥료국이 망했다는 것을 알고 아예 고려로 귀순하였다.

후에 후산(吼山)에서 흥료국의 병사들이 부흥운동을 하였으나 궤멸되었고 1031년 남해성(南海城, 현 랴오닝성 안산시(중국) 하이청시)이 항복하면서 완전히 멸망했다.

요나라는 전성기였음에도 이 일로 동부에 대한 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발해인들을 윤주, 내주, 습주, 천주 등으로 분산하여 강제 이주시키는 한편 발해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했고, 동경유수 소효목은 흥료국 유민들을 관대하게 대해주는 등 유화정책이 실시된다.
하이시윤 24-10-18 13:19
   
이렇게보니 만주사도 장난아니군요
     
위구르 24-10-20 11:53
   
덕분에 대발해국을 발해로 부를 수 있다는 점은 처음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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