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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4-09-15 22:50
[한국사] 고구려 후기의 인구에 대한 추정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1,655  

丙子胡亂 당시 淸軍의 構成과 規模라는 논문의 내용



''먼저 팔기만주의 경우는 입관 직전 약 250개 니루가 있었지만 崇德 연 간의 증가분을 감안하면 병자호란 

전야에는 약 240개 니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팔기몽고는 위에서 서술한 대로 80개 남짓의 

니루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병자호란 전야 팔기만주․팔기몽고의 니루 총수는 320~330 개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天聰 말기의 니루 총수가 약 330개였다는 郭成康의 추산과도 부합한다. 이 숫자에 天聰 말 

니루당 동원 가능 갑사 60명을 곱하 면, 팔기만주․팔기몽고의 정규 병력 총수는 약 2만 명 수준으로 계산된다''
(12쪽)


입관 직전에 있었던 만주 팔기의 니루의 수: 250

아래는 청나라 팔기의 인구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추정(A Demographic estimate of the population of the Qing eight banners) 논문에 나온 1648년의 청나라 인구의 표

저자는 마크 엘리옷 교수(만주족의 청제국, 건륭제의 저자)



스크린샷 2024-09-15 204351.png




여기서 계산을 시작하자면 1648년은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북경을 점령한지 4년 후입니다

만주 팔기의 입관 직전 총 병력이 250 곱하기 60인 15000이며

위 표에서 1648년의 만주 팔기의 총 인구는 20,6961명에서 38,9436명입니다

나누면 병력이 전체 만주 팔기 인구의 0.0724에서 0.0385배고

반대로 말하면 전체 인구가 병력의 13.7에서 25.9배입니다



고구려가 후기에 30만 명의 병력을 보유했으니 대입하면

고구려의 인구는 413,9220 명에서 778,8720 명에 달하게 됩니다

청나라는 당시 경제를 위해 전쟁에 사활을 걸었고 고구려는 중원의 통일 왕조와 싸워야 했으니

병사를 많이 차출해야 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일단 고구려의 후기 인구를 413,9220 명 혹은 778,8720 명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추가로 고구려의 인구에 대해 유명한 기록인 69만7000호에 5를 곱한 348만5000이란 값은

당나라가 차지하지 못한 지역에 살거나 파악하지 못한 인구를 제외한 기록이니 당연히 실제

인구보다 적었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다들 아시듯 농경 국가였죠

김용만 박사는 '고구려를 점령한 당나라의 행정력이 미친 곳은 고구려 전체 영토가운데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들은 동부만주에는전혀 세력을 뻗지 못했고, 요동에서 평야에 이르는 선과 점을 중심으로 통치했으며, 곧

고구려 부흥군에 밀려 철수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고구려 전역을 통치하지는 못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당나라가 통치한 영역은 본인이 추정하기로는 서로는 고구려의 서쪽 경계였던 현 난하에서 동으로는 

현 압록강 부근, 북으로는 서랍목륜강 일대에 불과했습니다


김용만 박사는 또 '때문에 이와 같이 추론했던 것이고, 그것이 350만 설보다는 더 타당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고구려인의 인구를 약 500만 정도로 보고, 여기에 복속민까지 합쳐서 약 1000만으로 보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고구려의 총 인구를 1000만 명으로 보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만주 팔기의 인구와 대비해서 본인이 추정한 최대치인 778,8720명을 뛰어넘는 놀라운 수치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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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4-09-23 11:54
   
인구추정은 어렵습니다. 지금같은 가구형태가 아니라서요.
하지만 반농반유목 경제의 인구추정은 만주족인구추정방식이 맞다고 봅니다. 문제는 고구려가 인구부양이 가능한 요동평원을 장기간 몇백년을 점령했기에 좀 틀리지않을까 합니다.  남만주일대는 소빙기에도 고량등을 비롯한 농산물 생산력이 우수했던 곳이니까요. 소빙기에 여진족이 있었던 삼강평원은 생산력이 많이 떨어졌죠
     
위구르 24-09-25 17:14
   
고구려가 나중에 차지하게 된 현도군과 요동군, 낙랑군, 요서군의 전한 시대 인구를 합치면 125만3427명이고 우북평군의 16개 현 중에서 통설에 따르면 5개가 난하의 동쪽에 있었으니 전체 인구에 현의 비율로 대입하면 10만 명으로 다 합치면 135,3427명이라 지금의 난하에서 태자하 중류 즈음(낙랑군과 고구려의 경계)까지의 인구 부양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죠. 고구려는 성장하면서 북쪽의 부여와 동쪽의 옥저, 북동쪽의 말갈까지 병합했고 서쪽으로 대릉하까지 진출한 후인 장수태왕 때에는 인구가 3배로 늘었다고 했습니다. 이후에는 난하까지 차지했죠

또 고구려 때에는 길림성 북부도 농사를 짓기 좋았지만 발해의 멸망을 전후로 백두산이 폭발하고 16세기에 소빙하기가 도래해서 청나라 때는 말씀하신 대로 남만주로 한정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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