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子胡亂 당시 淸軍의 構成과 規模라는 논문의 내용
''먼저 팔기만주의 경우는 입관 직전 약 250개 니루가 있었지만 崇德 연 간의 증가분을 감안하면 병자호란
전야에는 약 240개 니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면 무난할 것이다. 팔기몽고는 위에서 서술한 대로 80개 남짓의
니루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병자호란 전야 팔기만주․팔기몽고의 니루 총수는 320~330 개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天聰 말기의 니루 총수가 약 330개였다는 郭成康의 추산과도 부합한다. 이 숫자에 天聰 말
니루당 동원 가능 갑사 60명을 곱하 면, 팔기만주․팔기몽고의 정규 병력 총수는 약 2만 명 수준으로 계산된다''
(12쪽)
입관 직전에 있었던 만주 팔기의 니루의 수: 250
아래는 청나라 팔기의 인구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추정(A Demographic estimate of the population of the Qing eight banners) 논문에 나온 1648년의 청나라 인구의 표
저자는 마크 엘리옷 교수(만주족의 청제국, 건륭제의 저자)
여기서 계산을 시작하자면 1648년은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북경을 점령한지 4년 후입니다
만주 팔기의 입관 직전 총 병력이 250 곱하기 60인 15000이며
위 표에서 1648년의 만주 팔기의 총 인구는 20,6961명에서 38,9436명입니다
나누면 병력이 전체 만주 팔기 인구의 0.0724에서 0.0385배고
반대로 말하면 전체 인구가 병력의 13.7에서 25.9배입니다
고구려가 후기에 30만 명의 병력을 보유했으니 대입하면
고구려의 인구는 413,9220 명에서 778,8720 명에 달하게 됩니다
청나라는 당시 경제를 위해 전쟁에 사활을 걸었고 고구려는 중원의 통일 왕조와 싸워야 했으니
병사를 많이 차출해야 했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일단 고구려의 후기 인구를 413,9220 명 혹은 778,8720 명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추가로 고구려의 인구에 대해 유명한 기록인 69만7000호에 5를 곱한 348만5000이란 값은
당나라가 차지하지 못한 지역에 살거나 파악하지 못한 인구를 제외한 기록이니 당연히 실제
인구보다 적었을 것입니다. 고구려는 다들 아시듯 농경 국가였죠
김용만 박사는 '고구려를 점령한 당나라의 행정력이 미친 곳은 고구려 전체 영토가운데 극히 일부분입니다.
그들은 동부만주에는전혀 세력을 뻗지 못했고, 요동에서 평야에 이르는 선과 점을 중심으로 통치했으며, 곧
고구려 부흥군에 밀려 철수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고구려 전역을 통치하지는 못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당나라가 통치한 영역은 본인이 추정하기로는 서로는 고구려의 서쪽 경계였던 현 난하에서 동으로는
현 압록강 부근, 북으로는 서랍목륜강 일대에 불과했습니다
김용만 박사는 또 '때문에 이와 같이 추론했던 것이고, 그것이 350만 설보다는 더 타당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는 고구려인의 인구를 약 500만 정도로 보고, 여기에 복속민까지 합쳐서 약 1000만으로 보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고구려의 총 인구를 1000만 명으로 보는 견해를 내놨습니다
만주 팔기의 인구와 대비해서 본인이 추정한 최대치인 778,8720명을 뛰어넘는 놀라운 수치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