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조선열전”에 의하면 전국시대에 연국이 진개전쟁의 결과로 난하의 동부연안, 즉 고조선의 서부 변경지대에 있었던 진번과 조선을 복속시키고 그 지역에 鄣塞(장새)를 설치하였는데 진시대에 이르러는 그것을 요동외오에 속하게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장새와 요동외오는 어떻게 해석 되어져야 하는가? 이 점은 “사기색은”이 밝혀준다. “사기”“ 黥布列傳(경포열전)”에 나오는 “오”에 대해서 “사기색은”은 주석하기를 “오라고 하는 것은 변경에 있는 亭(정)과 塞(새)를 말한다. 오 로써 변방을 둘러싸고 항상 그것을 지킨다”고 하였다. 이것은 오와 鄣(장)을 매우 명료하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오와 장은 다 같이 초소를 말하는데 특히 변경에 있는것을 오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기 조선열전” 에 나오는 전국시대의 연국이 고조선과의 경계에 축조했던 鄣塞(장새)는 국경선에 있었던 초소였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진국이 연국을 멸망시킴에 따라 장새가 속하게 된 요동외오는 요동에 있었던 외곽의 초소를 지칭한 것임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요동외오는 진개전쟁 후에 요동의 국경지대에 설치하였던 최전방 초소였는데 연국이 진국에 멸망 됨으로써 그것도 진국에 속하게 되었고 장새를 행정적으로 이 요동의 외오에 소속 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한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사기 조선열전”에서 연국이 조선을 친 후에 장새를 축조한 사실을 특별히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위략”에서 진개전쟁후에 국경이 만.번한 이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경선에 변화가 있었음을 말하여 주고 있는 것이다. 진개가 고조선을 침략한후 연국의 내부 사정의 악화로 인하여 퇴각을 함으로서 고조선과 연국의 국경은 그 전과 대체로 비슷하게 되었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고 다소 고조선 지역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만.번한 지역에 설치된 장새라는 국경의 요새를 축조하여야만 했고 만.번한 이라는 새로운 지역이 국경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보아야한다.
그런데 장새나 요동외오가 모두 진개전쟁후에 설치된 국경의 초소 또는 요새라면 서로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가? 그것은 새와 오의 차이를 확인함으로서 분명하여질 것이다.
“漢書(한서)”“ 佞幸傳(영행전)”에서 안사고는 오에 대해서 주석하기를 “오는 새와같은 것이다. 동북에 있는 것을 새라 하고, 서남에 있는 것을 오라고 부른다. 새라는 명칭은 鄣塞(장새)에서 온 것이고, 오는 ”傲遮(오차)“의 뜻을 취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새와 오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데 단지 그 위치하는 방향에 따라 달리 불리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조선과 연국의 사이에 있었던 새와 오의 경우는 발해에서 가까운 지역, 즉 난하 하류 동부유역은 요동의 서남쪽이 되므로 이 지역에 있었던 국경 초소는 오라고 불리어졌고, 그보다 북쪽인 난하 상류나 중류 동부 유역에 있었던 초소는 새라고 불리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것은 추정에 불과한 것이므로 이 점을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하여는 당시에 위치가 분명한 새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위치가 분명하게 학인되는 연국의 새로는 令疵塞(영자새)가 있다. 이 영자새는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난하 중하류의 서부연안에 있었다,
그리고 영자새를 서북쪽의 기점으로 하여 창려 갈석에 이르는 자연적 장벽을 이용한 長城(장성)을 경계로 하여 서쪽으로는 난하에 의하여 제한되고 동남쪽은 발해에 잇닿은 지역이 전국시대 연국의 요동이었음은 앞에서 확인된 바 있다. 그러므로 영자새는 바로 연국 요동의 서북부에 있었으며 강에 의하여 형성된 국경선이 장성에 의하여 형성된 국경선과 만나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아 대체로 이 지역이나 그 보다 북쪽에 있었던 국경의 초소가 새로 불리어 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장새는 영자새가 있었던 지역에서 약간 동쪽으로 이동된 지점에 있었을 것이고 요동외오는 그보다 남쪽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이동한 지점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한 초에 이르러 장새와 요동외오가 너무 멀어 지키기 어려우므로 그것을 버리고 장새와 요동외오를 설치하기 이전의 국경 초소를 수리하여 다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 수리해서 사용한 遼東故塞(요동고새)는 영자새와 장성에 있었던 초소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게 되어 고조선과의 국경성에 있었던 서한의 초소는 난하의 서부연안과 장성에 위치하게 되었고 鄣塞(장새)가 있었던 난하의 동부연안과 요동외오가 있었던 장성의 동부지역은 다시 고조선과 기자국에 속하게 되었다. 위만이 서한으로부터 기자국으로 망명할 때 塞(새)를 나와 패수를 건넜다고 한것은 이상과 같은 지리적 관계를 잘 설명해 준다. 즉 국경 초소인 새가 패수의 서부연안에 있었음을 알게 하는데, 패수는 난하의 한 부분이거나 지류에 대한 명칭 이었다. 이 사실은 이미 소개된 “한서 지리지 요동군 번한현”의 반고의 주석에서 “그곳에 패수가있다” 고 한 기록과 번한현이 난하 동부연안에 있었던 사실을 연결시켜 보면 분명해진다.
ㅊㅊ 윤내현 한국고대사신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