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기 조선열전에는 서한의 무제가 군사를 파견하여 위만조선을 친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 그해 가을 누선장군 양복을 파견하였는데 齊(제)를 출발하여 渤海(발해)에 떳다,,,,,,, 누선장군은 제의 병사 7천을 거느리고 먼저 王險(왕험)에 이르렀다. 右渠王(우거왕)은 성을 지키다가 누선군이 적은것을 탐지하고 바로 성을 나가 누선을 공격하니 누선군은 패하여 흩어져 도망하였다 ”
고 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누선장군 양복이 이끈 수군은 제를 출발하여 발해를 항해한후 위만조선의 우거왕과 전쟁을 하였다. 그런데 제는 지금이 산동성 이었으므로 발해의 위치가 확인되면 누선군의 항해 방향을 알수 있고 그렇게 되면 위만조선의 위치가 밝혀지게 된다
2.
그러면 당시의 발해는 어디였는가? 이에 대한 해답은 “戰(國策(전국책)”과 “史記(사기)”에서 찾을수 있다. 전국책 “齊策(제책)” 에는 “齊國(제국)의 북쪽에 渤海(발해)가 있다”고 하였고, “史記(사기)” “河渠書(하거서)”에는 “黃河(황하)가 발해로 흘러 들어간다”고 하였다. 전국책은 전국시대의 상황을 전하여 주고 사기는 서한 무제때에 편찬되었으므로 이 기록은 전국시대와 서한시대의 발해의 위치를 알게하여 주는 것이다
그런데 戰國時代(전국시대)의 齊(제)국은 지금의 산동성에 위치했었으므로 당시의 발해는 산동성 북쪽에 있었다는 것이 되며, 황하는 지금의 발해로 흘러 들어 가므로 당시의 발해는 지금의발해와 다름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
이렇게 볼때 위만조선을 치기위해 양복의 군대는 산동성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발해를 항해 하였고 위만조선의 우거왕은 이를 맞아 싸웠으니 위만조선의 위치는 발해의 북쪽, 즉 지금의 중국 하북성 동북부로부터 요녕성지역에 위치 하였을 것임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