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맥이 예족과 맥족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한다면....맥족이 곰을 토템으로 하고 예족이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다른 부족이었다가 맥족 중심의 고조선이 예족을 통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임. 하지만 고조선이 강력해 졌을 때는 예족과 맥족이 통합되어 예맥족으로 통칭그러나 고조선이 연에 밀려 현 요서지역을 뺐기고 요동을 중심으로 움추려 들었을 때, 그리고 한나라에 망하게 되는 싯점에 맥족은 피지배층으로 전락되거나 유민(준왕그룹 외에 낙랑, 신라, 졸본 및 비류 등)이 됨.고조선 전성기 때 동쪽으로 밀려난 주류 내지 비주류 예족이 부여 및 함경도 동해안 쪽으로 거주 분포가 확대되었을 것으로 보임. 예족의 대표국가가 바로 부여로 예왕지인의 국인을 사용했다 하는데 이것이 신라 남해왕 때 예왕지인을 얻게 됨. 하지만 그 도장은 짝퉁일 가능성이 크고...어쨌든 신라는 예족 계열은 아니었지만 신라 남해왕이 그 도장을 받고는 아주 기뻐한 듯.삼한을 통칭하는 진국의 한인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맥족 계열(고조선을 이루는 주류는 아니고 고조선의 외곽에 위치하는 비주류)이 가능성이 큼. 사실 동해안 쪽으로 확장되었다는 예족이 한반도 내륙서쪽으로 들어오려면 험준한 낭림산맥이나 태백산맥을 넘어와야 하는데...이는 넘어오기 쉽지 않았고 결국 접근 가능한 루트라고 한다면 추가령 지구대를 통해 함흥에서 한반도 중부지방으로 예족이 들어 올 수도 있었을거임...그래서 동예가 강원도 영서지방까지 확대될 수도 있었던 것 같지만...즉, 춘천 중도의 레고랜드는 고조선 유적지가 아니고 동예의 유적지일 가능성이 더 클 듯...그리고 백제와 부딪혔다는 말갈이 읍루 쪽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들어올 수 있는 길목도 추가령 지구대였을 거임그리고...위만에게 쫒긴 기자조선(기자를 인정해야 할지 말지 모르겠지만...우리 조상들이 천년 넘게 빨아댄 인물이라)의 준왕이 충청도나 전라도 지역에 자리잡고 진왕 내지 한왕을 자처하려 했으나 고조선 수준 내지 고대국가 수준까지는 못가고 형식적 대빵 노릇을 한 듯...그 후 목지국왕이 마한 연맹체의 수장 겸 삼한의 대표를 하지만 그리 강력하지 못한 듯신라는 고조선 유민이 6촌을 구성하고 그 다음에 혁거세 그룹(2차 고조선 및 낙랑 유민), 석탈해 그룹(불명), 김씨 그룹(북방계열이라고 한다면 선비나 흉노?)이 왕좌를 차지하는데 신라가 포함되는 초기 진한은 마한이나 변한과 마찬가지로 토후국 수준으로 정치적 구심력이 떨어지는 맥족의 방계 정도 였을 것으로 보임. 하지만 동해안을 따라 확산된 예족이 포항 쪽에서 진한으로 들어와 섞였을 여지도 있을 듯말갈은 우리 민족과 다른 퉁구스계열이라고 하지만 이건 나중 얘기이고...이 시기의 말갈은 수렵이나 하며 살아가는 다소 미개한 사람 들로 정치적으로 집단을 이루지 못한 사람 들...이는 한반도 남해안에 살던 왜인과 비슷...예맥계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생활습관은 다른 족속...수렵채집하는 족속은 말갈...바닷가에서 문신하면 어로생활 중심을 하면 왜인...물론 영산강 지역 왜인은 정치적으로 발달해 탐라 및 큐슈까지 확대되기는 한데...소위 왜열도의 야요이인이 영산강 지역의 한반도 왜인과 정치적으로나 혈통적으로 밀접...이 왜는 그 후에 등장하는 야마또 왜와는 다른 왜
왜인의 경우 세 그룹으로 구분 가능할 듯...진한에 살던 해안가 왜인은 대마도나 시네마현, 이즈모현 쪽으로 넘어가고 이들은 신라의 분국은 아니지만 신라와 밀접 하지만 신라에 적대적 ... 가야가 성립되면서 밀려나는 변한지역 왜인은 큐슈 북쪽에 안착(남해안에서 배 없이 표류해도 도착하는 곳이 큐슈)...그래서 소위 왜 열도의 야요인의 중심이 됨...그리고 전라남도 해안가에 사는 왜인은 영산강 정치집단에 복속되고 마한의 기층민이 되고...궁극적으로 백제의 기층민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