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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8-02 18:36
[한국사] 낙랑군 변천사와 평양성
 글쓴이 : 흥무대왕a
조회 : 1,290  

지난 글에서 고구려의 수도 변천사를 추적했는데, 동천왕의 평양성이 수도는 아니었지만 평양의 대성산성일 것이라 추정했습니다. 247년에 고구려가 과연 평양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었는지 궁금하여, 낙랑군의 연혁을 조사 해 봤습니다.

낙랑군 변천사.jpg


위 자료는 문헌과 논문을 참고하여 정리했습니다. 상세 자료가 없는 것들은 추후 보완하겠습니다.

이렇게 정리 해 보니 역시나 또 여러가지 의문점이 생기네요.

1. 통설에서는 진번군 위치를 대방군과 동일한 황해도로 보고 있는데, 그게 맞을까요? 그렇다면 연나라가 황해도까지 진격해 왔다는 말일까요? - <사기> 처음 燕나라의 全盛期로부터 일찍이 眞番과 朝鮮을 침략하여 복속시키고, 관리를 두어 국경에 성과 요새를 쌓았다.

2. 초원 4년 호구부에서 한서 지리지까지 이르는 47년 기간은 인구가 안정적으로 0.8%씩 증가한 셈인데, 추가적인 영토확장은 없었을까요?

3. 한서지리지와 후한서군국지 간의 인구는 30% 가량 줄었는데, 무슨 사건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호수는 그대로라는게 무슨 의미일까요? 사회 구성이 핵가족으로 변화한 걸까요?

​일단 이 자료를 바탕으로 140년과 280년의 낙랑군(대방군 포함) 영역을 추정 해 봤습니다.

슬라이드3.JPG

슬라이드4.JPG



​이 그림은 인구밀도를 기준으로 영역을 추정해 본 것입니다. 280년의 인구는 36,120명으로 추정하고 영역을 그려보면 낙랑군과 대방군은 재령강을 중심으로 한 황해도 지역 정도만 차지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 140년 대비 어느 시점에 280년 영역수준으로 축소되었는지, 고구려가 247년에 평양에 종묘를 옮길 수 있었을지 기록을 살펴 보겠습니다.

​1. 삼국지 한전
[後漢의] 桓帝·靈帝 末期에는 韓과 濊가 강성하여 [漢의] 郡·縣이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니, [郡縣의] 많은 백성들이 韓國으로 유입되었다. * 桓帝(A.D 146〜167) 靈帝(A.D. 167〜189)

2. 삼국지 한전
建安 연간(A.D.196~220; 百濟 肖古王 31~仇首王 7)에 公孫康이 屯有縣 이남의 황무지를 분할하여 帶方郡으로 만들고,

3. 삼국지 한전
景初 연간(A.D.237~239; 百濟 古爾王 4~6) 에 明帝가 몰래 帶方太守 劉昕과 樂浪太守 鮮于嗣를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帶方·樂浪의] 두 郡을 평정하였다.

4.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19년
19년(245) 봄 3월에 동해(東海) 사람이 미녀를 바치므로 왕이 그를 후궁으로 받아들였다.

5. 삼국지 예전
正始 6년(A.D.245; 高句麗 東川王 19) 에 樂浪太守 劉茂와 帶方太守 弓遵은 [單單大]領 동쪽의 濊가 [고]구려에 복속하자, 군대를 일으켜 정벌하였는데, 不耐侯 등이 고을을 들어 항복하였다.

6.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 13년
〔13년(246)〕 가을 8월에 위(魏)나라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毌丘儉)이 낙랑태수(樂浪太守) 유무(劉茂), 삭방(朔方) 태수 왕준(王遵)과 함께 고구려를 쳤다. 왕이 빈틈을 타서 좌장(左將) 진충(眞忠)을 보내 낙랑의 변경 주민을 습격하여 빼앗으니 유무가 듣고 노하였다. 왕이 침략 당할 것을 염려하여 그 주민들을 돌려주었다.

7.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0년
〔20년(246)〕 겨울 10월에... 위(魏)의 장수가 이 말을 듣고 그 항복을 받으려 하였다. 유유가 식기에 칼을 감추고 앞으로 나아가 칼을 빼서 위나라 장수의 가슴을 찌르고 그와 함께 죽으니, 위군이 마침내 혼란해졌다. 왕이 군사를 세 길로 나누어 빠르게 이들을 공격하니, 위군이 어지러워져서 싸우지 못하고 드디어 낙랑(樂浪)에서 퇴각하였다.
8. 삼국지 한전
部從事 吳林은 樂浪이 본래 韓國을 통치했다는 이유로 辰韓 八國을 분할하여 樂浪에 넣으려 하였다. 그 때 통역하는 관리가 말을 옮기면서 틀리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 臣智과 韓人들이 모두 격분하여 帶方郡의 崎離營을 공격하였다. 이 때 [帶方]太守 弓遵과 樂浪太守 劉茂가 군사를 일으켜 이들을 정벌하였는데, 遵은 전사하였으나 二郡은 마침내 韓을 滅하였다.

9.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동천왕 21년
21년(247) 봄 2월에 왕이 환도성이 전란을 겪어 다시 도읍으로 삼을 수 없다고 하여, 평양성(平壤城)을 쌓고 백성과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을 옮겼다.

10. 삼국지 왜인전
정시 8년(A.D.247), 태수 왕기(王頎)가 [帶方]임지에 도착했다. 왜 여왕 비미호와 구노국 남왕 비미궁호는 평소 불화했는데 재사, 오월 등을 군(郡)으로 보내 서로 공격하는 상황을 설명한 적이 있다.

11. 삼국지 예전
[正始] 8년(A.D.247; 高句麗 東川王 21)에는 [魏나라의] 조정에 와 조공하므로, 不耐濊王으로 봉하였다. [不耐濊王은] 백성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계절마다 郡에 와서 朝謁하였다. 二郡에 戰役이 있어 租稅를 거둘 일이 있으면, [濊의 백성에게도] 供給케 하고 使役을 시켜 마치 [郡의] 백성처럼 취급하였다.


1번 기사를 보면 2세기 후반에 낙랑군의 인구가 줄어듬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때가 140년과 280년 간의 인구차이가 발생한 시점으로 보이는데, 정확히 말하면 26만명의 인구가 4만명으로 줄어들었으니 인구의 86%가 축소되어 군현으로 유지 자체가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2번 기사는 결국 공손연이 낙랑군을 포기하고 중심지를 대방군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개척했다고 표현했지만, 기존에 있던 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고, 인구는 오히려 줄었습니다. 다시 말해 204년경에 이미 대동강은 고구려의 영향력에 들어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인구가 95% 감소된 낙랑군이 현은 그대로 인걸로 봐서는, 낙랑군은 한반도내에서 이미 교치된 것으로 보입니다(대동강->재령강).

3번 기사. 바다로 가야했다는 건 서안평에서 낙랑까지 가는 육로가 폐쇄 되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4번 기사를 예전에는 이해 못했는데, 5번 기사와 연결해서 보니 이제 알겠네요. 예가 고구려와 결혼동맹 또는 신속되었다는 의미로 보여집니다.

5~8번 기사는 고구려-위 전쟁을 그리고 있는데, 저는 5번의 불내후의 항복이나 8번의 기리영 전투가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고-위전쟁의 에피소드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7번의 "낙랑에서 퇴각했다"는 표현이 의미심장하다고 봅니다.

9번의 평양성 축성은 이미 평양의 낙랑군은 204년전에 쫓아냈고, 대동강과 재령강 사이에 있던 낙랑군까지 영향력 아래 두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아닐까 싶습니다.

10번 기사는 8번 기사가 언제 일어난 사건인지 설명 해 줍니다. 246년에 기존 태수 왕준이 죽고, 247년에 신임 태수 왕기가 대방에 도착합니다.

11번 기사는 이해 불가합니다. 춘추필법에 따른 뻥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상황을 고려 해 본 결과, 247년의 평양성(대성산성) 축성은 가능하다는 것이 제 추정입니다.


참고로 아래 그림은 후한서 예전을 참고하여 그려본 위만조선의 영역입니다.

<후한서> 예전 - 예 및 옥저·고구려는 본디 모두가 [옛] 朝鮮의 지역이다.

위만조선의 지표유물이 뭘까요?

슬라이드5.JPG


* 참고자료
<삼국사기>
<사기><후한서><삼국지><진서>
장병진, 고구려의 대방 지역 진출과 영역화 과정, 고구려발해학회, 2020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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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폰 22-08-02 20:00
   
낙랑군 평양설은 일제 주장...실제 사료 그 어디에도 현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것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증거는 없음...그리고 해방 전 일제가 발굴한 70기 정도의 고분 역시 한의 낙랑 영역을 지지하는 것은 소수....더욱이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굴한 2천기여기의 평양 일대 고분에서도 한나라 잔재로 해석할 여지는 많지 않음. 오히려 최리의 낙랑국 유물로 해석할 여지가 컸다고 함./ 남한의 사학계가 이를 이상하게 낙랑재평양설로 왜곡하였지만...

여러 차례 주장한 것이지만... 북학학설...리지린인가 하는 자의 학설로서 우리나라 사학계에는 거품 물고 반발하지만...중공 쪽 학자도 그 타당성을 인정하였던 것이 바로 한사군 요동설

이 관점의 요지는 낙랑군이 요동반도 서쪽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고 있고, 고구려에 의해 포위당했어도 요동반도와 산동반도로 이어지는 열도를 통해 수백년간 중원 왕조와 교류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정학적으로 더 타당.

더욱이 요동의 공손씨의 위치를 생각하면...평양 아래 황해도에 대방을 둔다는 것은 어불성설...

리지린 학설 처럼 낙랑군을 요동반도 서안 쪽으로 두고 대방이나 현도 등을 위치시켜 보고...평양은 최리의 낙랑국을 두고 생각해 보시기 바람. 또 다른 관점이 들 수 있을 것임
     
광개토경 22-08-02 22:32
   
낙랑군 평양설이 일제의 주장이라는 건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했으면 못 할 소린데 ㅋㅋㅋ.

당장 현존하는 우리나라 관찬사서로서 으뜸인 삼국사기만 봐도 당장 알 수 있는데 뭔 일제의 주장이라고 함?

삼국사기 권37 잡지 고구려편만 봐도 작자의 지리적인식이 고구려 평양성 = 한대 낙랑군 = 고려 서경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패수는 대동강이라고 말하고. 그럼 김부식도 일제의 주장을 따라하는 것임?

당연히 후대 조선의 세종실록지리지만 봐도 평양부의 유래를 아예 위만조선의 왕검성 = 평양이라고 봄.

일단 적어도 낙랑군 평양설은 일제의 주장이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의 관찬사서들의 일관된 논리임. 그리고, 낙랑평양설적 유물이 조작되고 적다고 하지만, 정작 낙랑 유물은 평양일대가 다임.

적어도 낙랑 평양설이 통설인건 일제가 주장해서가 아니라는 거임 ㅋㅋㅋ.
윈도우폰 22-08-03 01:58
   
역사를 조금 공부하셨나 보네? 어설프게 사료랍시고 인용하는 것을 보니

삼국사기에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 어디 나옴? 그냥 해석이지... 그것도 님의 관점에 좀 부합하는 해석일 뿐...삼국사기 권37잡지 고구려편? 거기에 그런 것이 나온다고? 마치 기독교를 안 믿는 사람한테 성경의 어디 몇 편의 몇 구절을 인용하는 듯이 얘기하네 ...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역사서를 깊이 있게 봤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건가???

그리고 무슨 평양 발굴 유물이 다 한나라 것이라고 그러시나? 2천여기의 고분을 발굴한 북한은 그렇게 안 보는데... 왜 일제시대 때 발굴한 70기의 유물의 억지 해석만 옹호하려 하시남?

그리고...고구려본기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다면 삼국사기의 백제본기 및 삼국유사 등에 나오는 최리의 낙랑국은 또 뭐임? 그건 낙랑군의 오기로 볼 건가??? 결국 낙랑공주는 공주가 아니고 그냥 한나라 태수의 딸이라는 거임?

세종실록지리지 유래에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평양? 그게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증거? 그냥 옛 사람들이 들은 풍월을 기록한 것이 근거이고 역사라고라??? 그게 관찬사서라서 다 맞다고라???  고려나 조선의 관찬사서의 특징은 지리적 정확성이 아니라 유교적 이념이나 모화사상에 얼마나 적합하냐인데...일종의 활자맹신주의도 아니고... 어찌보면 학문적 기본에 대해 전혀 모르는 듯

조선시대 때도 평양설과 요동성은 대치되는 주장으로 팽팽했던 것이고 ... 단지 한사군 평양설이나 왕검성이 평양이라고 하는 것은 모화사상이 강했던 일부 또는 상당수의 사대부 들의 희망이 반영된 것인데 ...정약용을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평양설에 부정한 것은 또 뭐임?

님은 듣고 싶은 것...자기 주장에 유용한 것만 선택적으로 골라 주장하는 것이 딱 누구들 같음...

님처럼 통설을 주장하는 것이 문제...통설이 다는 아님...역사가 무슨 통설로 규정되는건가? 님은 그렇게 생각함? 지리개념이 떨어지는 유학자의 관점이 정통적 역사이고 일반적인 통설이 바로 역사라고???

좀 넓게 보삼...괜힌 북한의 리지린의 학설을 야그한게 아님. 리지린이 중공에서 한사군 요동설 주장하면서 학위를 딴 것이 그냥 왜곡된 사료를 잘 해석해서 대충 논문을 써서가 아님.
     
광개토경 22-08-03 12:34
   
그냥 노답 새퀴였네.

삼국사기 권 37은 고구려 강역에 대한 지리지적 성격이 있는것이고 삼국사기 관찬자 김부식의 생각이 담겨 있는거라서 중요한건데 뭔 개독교 타령이냐? 정신병잔가?

삼국사기를 쓴 작자가 생각하는 고려 당시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고구려 평양성에 대한 고찰인데 뭔 내 주관적이라는 개소리를 하지? 한번 가서 읽어봐라 븅딱아.

그리고, 세종실록지리지가 무슨 풍월 타령이냐? 애당초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 자체도 김부식의 삼국사기적 해석을 가져다가 쓰는거지. 무슨 관찬지리서가 대충 만드는 줄 아나.

뭐든지 역사나 지리서들은 관찬사서가 기본이야. 괜히 중국 정사들 가지고 역사 기본으로 삼는게 아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대까지 역사 인식(관찬사서)은 고구려 평양은 현 조선의 평양(고려 서경) 이거다.

우리나라 관찬사서가 그럼 중심이지, 그럼 뭔 책을 인용해?
          
윈도우폰 22-08-04 15:16
   
아 자슥 댓글 다는 수준 보소...완전 싸가지 없는게...후레xx이나 호로xx같은데?  내가 정신병자면 네 녀석은 뭔데? 사이코패쓰나 분노조절장애 뭐 그런ㄱ거?

좀 말같은 소리 좀 하고...어무에게나 욕하지 마라...니 애비 에미린테 하는 짓을 이런데 와서까지 하면 좀 그렇지 않니?

너 같음 녀석에게나 중국사서가 레퍼런스이지...넌 지리지가 뭔지도 모르니? 혹시 지리부도는 아니?

넌 중국이나  일본 아니 해외에 나가본 적 있기나 하니? 김부식이 해외에 나가 지리를 확인했겠니? 그냥 들은 것 정리한거지...그게 어떻게 정확하니?

어디서 관찬서라는 말은 들어봤나 보네
...그냥 용어나 사서 인용으로 아는체 하려는 녀석인 듯.....아 노부께서는 너겉은 얼치기랑  놀아주기 좀 그렇다. 일단 초등과정을 다시 공부하고 오거라
     
구름위하늘 22-08-03 14:18
   
김부식의 주장을 반박할 수는 있겠지만,
기록으로는 저렇게 되어 있습니다.
...

平壤城似今西京(평양성사금서경) : 평양성은 지금의 서경인듯하고,
而浿水則大同江是也(이패수칙대동강시야) : 패수는 바로 대동강이다.
何以知之(하이지) : 어떻게 이를 알 수 있는가?
唐書云(지당서운) : <당서>에는
平壤城(평양성) : "평양성은
漢樂浪郡也(한락랑군야) : 한 나라의 낙랑군으로서
隨山屈繚爲郛(수산굴료위부) : 산굽이를 따라 성을 둘러 쌓았고
南涯浿水(남애패수) : 남으로 패수가 놓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又志云(우지운) : 또한 [한지]에는
登州東北海行(등주동북해행) : "등주에서 동북쪽 바다길로 나서서
南傍海壖(남방해연) : 남쪽으로 해변을 끼고
過浿江口椒島(과패강구초도) : 패강 어귀에 있는 초도를 지나면
得新羅西北(득신라서북) : 신라의 서북 지방에 도달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고,
又隋煬帝東征詔曰(우수양제동정조왈) : 또한 수 양제의 동방 정벌 조서에는
滄海道軍(창해도군) : "창해 방면 군사는 선
舟艫千里(주로천리) : 박이 천 리에 뻗쳤는데,
高帆電逝(고범전서) : 높직한 돛은 번개같이 달리고
巨艦雲飛(거함운비) : 커다란 전함들은 구름같이 날아서
橫絶浿江(횡절패강) : 패강을 횡단하여
遙造平壤(요조평양) : 멀리 평양에 다달았다"는 기록이 있으니,
以此言之(이차언지) : 이렇게 보면
今大同江爲浿水明矣(금대동강위패수명의) : 지금의 대동강이 패수인 것이 명백하며,
則西京之爲平壤(칙서경지위평양) : 서경이 평양이라는 것도 또한 알 수 있다.

출처: https://hwalove.tistory.com/entry/%E4%B8%89%E5%9C%8B%E5%8F%B2%E8%A8%98-%E7%AC%AC-%E4%B8%89%E5%8D%81%E4%B8%83%E5%8D%B7%EC%82%BC%EA%B5%AD%EC%82%AC%EA%B8%B0-%EC%A0%9C-37%EA%B6%8C128%E9%AB%98%E5%8F%A5%E9%BA%97%E7%99%BE%E6%BF%9F%EA%B3%A0%EA%B5%AC%EB%A0%A4%EB%B0%B1%EC%A0%9C
광개토경 22-08-03 12:53
   
고조선 특히 위만조선의 왕검성이 현 평양인지 요동인지에 대한 논란을 떠나 현재 주류 학설인 낙랑평양설이 무슨 일제의 새로운 주장이라는 건 개소리라는거다.

아니 고려 조선시대 관찬사서나 지리서들이 명백히 낙랑평양설에 부합되는 역사인식하에 만들어졌는데, 그 조상님들도 일제의 논리에 따라 그런거야? ㅋㅋㅋ.

진심 정신 나간 새퀴들아 낙랑요동설 이런거 주장하는 건 좋은데 적어도 현 통설인 낙량평양설이 무슨 일제의 주장을 따른거라는 개소리는 하지 말자.
     
구름위하늘 22-08-03 14:24
   
낙랑평양설이 일제에서 "만들어진" 주장이 아니라,
고려와 조선 시대의 통설 중에 하나라는 것은 저도 동의합니다.

다른 분의 의견은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반대 의견이 존재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현재와 같이 낙랑평양설 이외에는 정사에서 언급도 못하는 경향이 일제부터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통설이 후대에서는 거짓으로 판명된 경우도 많으니
무조건 기록이 맞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은 기록의 번역이 아니라, 해석이니까요.
김부식의 기록 및 조선시대 기록도 원본이 중국 측 사서이고,
"사대주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편향성이 조금 있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위구르 22-08-03 14:32
   
애초에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백제의 중원 활동을 나몰라라 해서 근초고왕의 초기 21년 기록을 모두 비우기도 한 적이 있는데 그런 그가 당시 고려 경내에 평양과 낙랑 등 주요 지명을 비정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안 볼 수가 없습니다. 또 그가 인용한 당서 자체도 왜곡이 담긴 사서일 터이니 감안해야 하죠
          
광개토경 22-08-03 14:39
   
그러니깐 낙랑요동설을 주장하는건 알아서 하면 되는데, 통설인 낙랑평양설이 무슨 왜놈들 논리를 따라한다는 개소리는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고, 고대사로 올라갈수록 유물이나 유적이 더 중요하죠. 기록 자체가 너무 부실하니깐요.

아무리 북한지역의 낙랑유물이 조작이라고 주장해봤자 반대로 요동이나 요서일대의 낙랑시대 유물이나 유적은 본 적이 없음.
               
위구르 22-08-03 18:09
   
https://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171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 예전에 감방친구 박사님도 말씀하셨죠. ''여기에 결국 주형 프레스를 가한 것이 바로 일제의 식민사관이며''라고. 즉, 한사군 재평양설이 전에도 존재한건 사실이지만 일본에 의해서 확고히 뿌리내리고 타 설은 축출되었으니 일본의 역할이 큽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낙랑평양설이 무슨 일제의 새로운 주장이라는 건 개소리라는거다.'' 라고 하여 일본의 책임을 경감시키는 시도를 하며

''그냥 노답 새퀴였네.''

''정신병잔가?''

''낙랑군 평양설이 일제의 주장이라는 건 역사를 조금이라도 공부했으면 못 할 소린데 ㅋㅋㅋ.''

''개소리를 하지? 한번 가서 읽어봐라 븅딱아.''라고 패악질을 벌이는 것이 인성과 사고력이 파탄났다는 증거라는게 문제임
윈도우폰 22-08-04 15:32
   
통설 참 좋아하네...통설이 검증된 이론이라는건가??? 사회과학적 방법론을 얘기하자면 이론은 대립가설에 대한 논증을 거쳐 이론화되고 새로운 증거나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바뀌는건데....학문적 방법론 모르는 인간이 그저 사서나 활자 맹신... 다수의 주장이 꼭 오른게 아님...존 라울의 정의론에 Maximin principle이 있는데...소수의 의견이라도 함부로 무시하거나 소수를 희생양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얘기...통설을 중시한다는 사람 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통설이 도그마롸한 경우가 바로 우리 나라 역사 학계의 일부 주장...한사군 재평앵설도 그럴 여지가 크기 때문에 논쟁이 있는건데...그걸 막아보겠고 기쓰는...저기 싸가지 없는 녀석의 주정은 통설과 도그마화한 주장을 구분 못하기에 바로 얼치기 전형
파스크란 22-08-18 11:37
   
일고의 가치가 없는 내용입니다.

한4군은 한반도내에 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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