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 109권 군국지
地東西九千三百二里,南北萬三千三百六十八里
땅은 동서로 9302리, 남북은 13368리다
한나라가 동서로는 서역 경영과 한사군의 위치 때문에 알아봐야 하지만 남북은 대체적으로 얼마인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직선거리로 2275 킬로인데 13368 리이므로 10리가 대략 1.702키로입니다. 한나라의 1리가 416미터라서 곱하면 5561키로가 나오지만 자연의 제약을 크게 받으면서 직접 측정한 거리라서 직선거리는 짧습니다.
이걸 4천리에 대입하면 688키로입니다.
적어도 사학계에서 비정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땅에 국한된 면적일 수는 없습니다
요사의 아래와 같은 기록으로 보면
辰州 奉國軍 節度, 本 髙麗 蓋牟城. 唐太宗 㑹 李世勣 攻破 蓋牟城, 即此 渤海 改為 蓋州 又改 辰州 以辰韓得名. 井邑駢列最為衝㑹. 遼 徙 其民 於祖州, 初曰 長平軍, 户二千. 隸 東京 留守司, 統縣一, 建安縣
진주(辰州) 봉국군(奉國軍)이 설치되었으며 절도를 두었다. 본래 고구려의 개모성(蓋牟城)이었다. 당나라 태종이 이세적(李世勣)과 만나 개모성을 공파한 곳이 바로 여기이다. 발해는 개주(蓋州)로 고쳤다가 다시 진주로 고쳤으니, 진한(辰韓)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정읍(井邑 : 아홉집이 나누어 경작하는 토지)이 나란 줄지어 모여있다. 요나라가 조주(祖州)에서 백성을 옮겨왔다. 처음에는 장평군(長平軍)이라 하였는데, 호구수는 2,000이다. 동경유사사에 예속되었으며 관할하는 현은 건안현(建安縣) 하나이다.
진주가 위치했던 현 개주시(盖州市)는 지금의 료동 반도 서부에 있습니다. 거기에 진한의 연고가 있었습니다.
여기를 영토에 포함시킨 삼한이 존재했다가 고구려 시대에는 다 잃고 남쪽으로 쪼그라들었음에도 진수가 과거의 정보를 우겨넣어서 쓴 결과 삼국지에 삼한이 등장한다고 보입니다.
참고 자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8804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