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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07 08:43
[한국사] 글과 돈은 한자(漢字)로 바꿀수 없는 것이다
 글쓴이 : 백운
조회 : 1,510  

"글은 돈을 뜻하는 말이다."

이 말은 참일까, 거짓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더위 먹은 일 있냐고 한 소리들 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글에서 나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오늘은 글과 돈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해볼까 한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법은 처음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각자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공동체생활을 시작하며 서로에게 필요한 의식주를 교환을 통하여 얻게 되자 거래(去來)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되었다.

거래의 초기에는 물물교환을 통하여 서로의 필요성을 충족시킬수 있었으나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작동하기 시작하자 필요한 물품을 매매(賣買)하는 시장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윽고 시장이 점점 활성화 되고 거래량이 늘어나자 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집단이 형성되는 데, 역사는 이들 무리를 상(商)나라라고 하고 그들을 상인(商人)이라 불렀다.

당시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는 의식주에 필요한 거래를 활성화시키고 매매의 관계를 명확히 보증하기 위하여 이들 상인(商人)에게 거래의 증거로 쓰일 증표를 만들게 하니 이로써 글(㓞)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게 된다.

글(契)의 초기 형태인 글(㓞)의 갑골문을 보면 봉(丰)과 도(刀)가 합쳐진 글자로 나타난다.

봉(丰)은 '예쁘다'는 뜻과 함께 '무성하다'는 뜻도 갖고 있는 데, 이는 거래량을 나뭇판에 그 숫자만큼 많이 그었다는 것이고 또한 명확하게 알아볼수 있도록 잘 새겼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글(㓞)이 교묘히 새기다는 뜻을 갖고 있는 데 계약을 맺을 때는 계라고 부른다.

글(㓞)을 처음에는 나뭇판에 그었기에 나무 목(木)을 더하여 글(栔)이라고 하였으나 이후 서로간의 큰 약속이라는 뜻으로 큰 대(大)를 더하여 글(契)이라고 불렀다.

글(㓞, 栔, 契)을 지금은 계라고 부르고 새기다는 뜻과 맺다는 뜻을 갖고 있는 데, 이는 거래량을 나뭇판에 새겨서 계약의 증표로 삼았다는 것을 알수 있다.

지금은 모두가 계약(契約)이라고 부르는 계(契)는 글자가 처음 만들어질 때는 글이라고 불렀다.

글자의 발음을 기록한 고대의 사전을 운서(韻書)라 하는 데 이를 처음으로 체계화시킨 것이 수(隋)나라 때 편찬된 운서인 절운(切韻)이다.

절운(切韻)에서 글(契)의 발음은 기흘절(欺訖切)로 기록되어 있다.

운서(韻書)가 나오면서 모든 글자의 발음은 반절법(反切法)으로 표시하는 데 이는 두 글자의 소리를 반씩 끊은 다음 하나로 합하여 발음을 하라는 뜻이니 기흘절(欺訖切)은 기흘반(欺訖反)으로 바꾸어 쓸수도 있다.

반절법(反切法)에 따라 기흘절(欺訖切)을 풀이해 보면 먼저 기(欺)에서 초성인 기역(ㄱ)을 취하고 그 다음 흘(訖)에서 중성과 종성인 을(ㅡㄹ)을 취한 후 이를 합하여 발음하여야 하니 곧 '글'로 소리가 난다.

어떤 이는 기흘(欺訖)이 당시에도 기흘로 소리났느냐고 묻던 데 당(唐)나라 때 운서인 당운(唐韻)을 찾아보면 분명하게 기흘로 소리가 난다.

그럼 글(契)의 처음 발음은 글이었다는 것이고 계는 나중에 나온 발음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계약(契約)을 글약으로 불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글자를 글이라고 발음하는 민족은 우리밖에 없다.
그러니 글은 온전히 우리 한민족이 만든 것이다.

물론 모든 글자를 처음부터 글이라고 부르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글(契)을 만들도록 지시한 분이 천(天)이고, 천(天)은 조(朝)에서 나왔으며 조(朝)의 뒷부분인 月은 주(舟)와 인(人)이 합한 글자가 나중에 변한 것이니 글자의 조성원리에 비쳐보면 글(契)이라는 글자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글자가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글자를 글(契)이라고 부르게 된 데에는 상인(商人)들의 공(功)이 그만큼 컷다는 뜻이리라.

그렇기에 상(商)나라의 시조를 설(契)이라 부르게 된 것이니 수 없이 많은 갑골문이 오로지 상나라의 수도인 은허(殷墟)에서 쏟아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기인한다고 할 것이다.

지금은 글을 쓴다라고 하지만 이는 붓이 나오고 난 다음에 생긴 말이고 처음에는 글을 긋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글을 긋는 도구를 또한 글(鍥)이라 하였는 데 지금은 경음화 되어 끌이라 부르고 있다.

또 글에서 나온 것이 그림인 데 그림은 그린다고 한다.

이에서 알수 있듯이 유사한 용도로 쓰이는 글자는 그 자음을 모두 한 가지로 통일하여 썼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른 글자들에서도 그러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해는 환하다고 하는 것이나 밤에만 보이는 별은 밝다고 하는 것 등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해가 밝다거나 별이 환하다고 하는 것 등은 글의 쓰임새에 어긋난다고 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뭇판에 거래량을 글(鍥)로 그은(새긴) 것을 글(㓞)이라고 하는 데 이를 칼로 반을 나누어 매매당사자간에 나누어 가지게 되니 이는 나중에 실물을 교환하는 증표(證票)로 쓰이게 된다.

반쪽의 증표는 끝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은 후 허리춤에 꿰 차고 다녔는 데 이렇게 묶은 끈을 경(經)이라 하였으니 경(經)은 글(㓞)을 묶었다는 뜻이다.

상인(商人)들은 한꺼번에 여러 개의 글(㓞)을 경(經)으로 묶어서 다니며 거래를 주관하였는 데 이러한 행위를 경리(經理)라고 하고 나중에는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확대하여 쓰이게 된다.

경리(經理)는 이후 그 뜻이 점점 확장되어 나중에는 "글로써 세상을 다스려 만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 생겨나게 되고 지금은 이를 줄여서 경제(經濟)라고 부르고 있다.

그럼 경제(經濟)가 원활하게 잘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글(㓞)을 얼마나 잘 다스리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글(㓞)을 나뭇판으로 만들다 보니 재질의 특성상 얼마 가지 못하고 썩게 되어 보관과 유통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게 되었다.

더불어 주조기술의 발달로 쇠를 흔하게 사용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되니 이때부터 글(㓞)을 쇠로 만들게 된다.

그러나 쇠는 너무도 단단하여 거래량을 새기기도 힘들 뿐더러 둘로 쪼개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쇠를 도(刀)의 형상으로 만들고 손잡이 부분에 구멍을 뚫어 끈으로 묶을수 있게 하였으니 이는 글(㓞)과 경(經)의 취지를 그대로 살린 것이었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보고 명도전(明刀錢)이라는 명칭을 붙였는 데 아마도 쇠글이라 불렀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여 나중에는 주화(鑄貨)를 둥글게 만들고 가운데에 구멍을 뚫었는 데, 이때부터 글(㓞)의 의미는 사라지고 경(經)의 뜻만 남게 된다.

그리고 지금은 일제(日帝)의 영향으로 주화의 가운데 구멍마저 사라졌으니 이로써 글(㓞)과 경(經)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게 된 것이다.

다만, 주화를 부르는 명칭만은 돈으로 남아있으니 이는 도(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 글(㓞)이 변하여 도(刀)가 되고 도(刀)가 변하여 돈이 된 것이니 결국 돈은 글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글(㓞)과 경(經)에 대한 흐름이 단절되고 그 의미마저 우리의 기억속에서 사라지자 지금은 글이라는 말 대신에 한자(漢字)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자(漢字)라는 명칭은 일본(日本)이 만든 것으로 갑오개혁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쓰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갑오개혁 이전에는 그 어떤 곳에서도 한자(漢字)라는 단어를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 선생이 쓴 서포만필(西浦漫筆)에는 전통적으로 써온 글자를 문자(文字)로, 지금의 한글은 국서(國書)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그 당시까지도 문자(文字)라고는 불러도 한자(漢字)로 부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문자(文字)라는 단어 역시 그 연원을 찾아보면 문(文)은 가슴에 새긴 문신(文身)을, 자(字)는 집안에서 아이를 낳는 모습을 상형한 글자임을 알수 있다.

그러니 문자(文字) 또한 글(㓞)을 대표한다고 할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글자는 오로지 글(㓞, 契)만이 대표할 수 있는 것이다.

한자(漢字)라는 명칭은 일본이 한어(漢語)를 참고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한어(漢語)는 몽골인들이 원(元)나라를 세우고 나서 한족들이 쓰는 말이 그들과 다르자 몽골어와 구분하기 위하여 만든 명칭이다.

원나라는 그들이 다스리는 백성들을 모두 네 단계의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했는 데 기존의 한족(漢族)들은 3등급으로, 끝까지 저항한 남송(南宋)의 무리들은 4등급으로 분류하고 노예처럼 사고 팔았다.

또한 온갖 못된 짓은 한족들이 저지른다 하여 한(漢)을 접미사로 붙여 새로운 말을 만드니 괴한(怪漢), 치한(癡漢), 색한(色漢), 악한(惡漢), 냉혈한(冷血漢), 무뢰한(無賴漢) 등의 신조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니 한어(漢語)는 이런 자들이 쓰는 말이라는 뜻이고 한자(漢字) 또한 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중국인들은 한자(漢字)라는 말 대신에 국어(國語)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한자(漢字)를 중국인들이 만든 글이라고 주장하고 마치 그것을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문(漢文)이나 한시(漢詩) 등과 같은 괴상한 말을 만들어내고 문자를 만든 주체를 중국으로 점점 고착화시켜 나가니 우리 주변에서 글(㓞)의 정통성은 완전히 사라지고 한자(漢字)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랗다면 소위 한자(漢字)라고 부르는 글자를 과연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라고 할수 있는 지 한 번 살펴보자.

전술(前述)한 글(㓞)의 탄생과정 외에도 글(㓞)의 조성원리를 이해하면 이를 단번에 판단할수 있을 것이다.

농초(聾樵) 박문기(朴文基) 선생이 쓴 <대동이(大東夷)>에는 한자(漢字)를 인간의 호흡법에 따라 만들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한자를 읽을 때 들숨과 날숨이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숨을 쉬기가 편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출입(出入)이라는 단어는 출(出)이라고 할 때의 날숨과 입(入)이라고 할 때의 들숨이 조화로워야 숨쉬기가 편하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출입(出入)을 추루(churu)로 발음하고 있으니 모두 날숨이 되어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것이다.

또 출(出)은 나간다는 뜻이니 숨을 내보내야 하고, 입(入)은 들어온다는 뜻이니 숨을 들이마셔야 한다.

그러나 추루(churu)로 발음하면 출입(出入)의 의미를 전혀 찾을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모든 글자의 발음은 반절법(反切法)을 따르도록 하고 있으니 일자일음(一字一音)이 원칙이다.

청(靑)나라 강희제 때 만든 강희자전(康熙字典)은 그때까지의 모든 운서(韻書)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책이다.

강희자전에서 북(北)의 발음은 박묵절(博墨切)이라고 하니 박(博)의 초성(ㅂ)과 묵(墨)의 중성(ㅜ) 및 종성(ㄱ)을 합하여 북으로 불렀다는 것을 알수 있다.

또 경(京)은 거경절(居卿切)로 나오니 거(居)의 초성(ㄱ)과 경(卿)의 중성(ㅕ) 및 종성(ㅇ)을 합하여 발음하면 경이 된다.

그럼 강희자전에 따라 북경(北京)을 읽으면 북경이 되는 것이지 결코 베이징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반드시 북경으로 읽어야 반절법(反切法)에 따른 일자일음(一字一音)의 원칙을 지킬수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이 그들 문자의 발음을 연구할 때는 온전히 한국인들의 발음만 바이블로 여기고 있다.

그 다음으로 글자의 조성원리는 먼저 기본이 되는 글자를 만들고 이어서 다른 글자를 덧붙여 가며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원칙이지 기존에 있는 글자를 파자(破字)하여 새로운 글자를 만들수는 없는 것이다.

즉, 일(一)이 있고 난 다음에 이(二)와 삼(三)이 있게 되는 것이지 그 역순은 성립할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 왕(王)이 황(皇)보다 먼저 나온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알수 있다.

그런데 어찌 아버지인 왕(王)을 아들인 황(皇)의 아래에 둘 수가 있단 말인가?

이것이 소위 스스로 문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자들의 작태이다.

그 다음으로 스스로 문자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면서 글자의 뜻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천(天)을 설명함에 있어 그들은 사전에서 천공적 천(天空的 天)이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가?

그냥 "천(天)은 천(天)이다"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천(天)은 다른 어떤 글자보다 그 뜻을 분명하게 밝혀줘야 하는 중요한 글자이다.

우리는 천(天)을 하늘이라 하여 그 뜻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바로 이 하늘 천(天)자 덕분에 모든 글자를 우리 한민족이 만들었다고 당당하게 주장할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늘은 한알이 변한 것으로 이는 큰 알에서 태어난 분을 가리키는 말이며, 이 분이 한민족의 최고지도자로서 인류역사를 새롭게 펼치셨다는 것을 이미 설명 드린 바 있다.

그러니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중국인들이 이런 과정을 어찌 풀어낼 수가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글자는 처음으로 문명을 연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바로 그 문명을 연 주인공이 우리 한민족이니 굳이 글자를 누가 만들었는 지 논할 필요성 조차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인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방대한 분량의 역사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오랜 시간 지속적으로 문자연구에 메달려 왔을 테니 결코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중화중심주의가 그들의 발목을 잡아 서로를 구속하고 있기에 쉽게 입밖으로 내뱉고 있지 못할 따름이다.

그래도 그 중에 양심이 살아있는 임어당(林語堂)이나 서량지(徐亮之) 같은 일부 학자들은 문자를 만든 주인공이 한민족이고 자기들은 빌려 쓰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동안 이를 스스로 조작하거나 숨긴 사실을 많이 부끄러워 하였다.

사정이 이와 같은 데도 불구하고 글자를 만든 주인공인 한민족은 남의 글자인 한자(漢字)를 우리가 왜 써야 하느냐고 주장하며 한자(漢字) 퇴치운동마저 벌이고 있는 추세이다.

이 모두가 진실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에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에 기인한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을 거쳐가며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고 발전시키지는 못할 망정 버려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현실이니 도대체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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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은 우리에게 말과 글을 동시에 물려주었다.
그리고 그 쓰임새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말은 사람들의 입과 귀를 거쳐가며 의사를 전달하는 체계이기에 그 유산은 오로지 귀로만 물려받을수 있다.

반면 글은 사람들의 손과 눈을 거쳐가며 의사를 전달하는 체계이기에 그 유산은 온전히 눈으로만 물려받을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이 없는 민족은 그들의 역사를 오로지 말에 의지하여 전달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말로 전해지는 역사와 글로 전해지는 역사가 서로 달라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는 말을 따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수 있다.

왜냐하면 글은 쓰는 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내용이 달라질수 있고 시간이 흘러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게 되면 끊임없는 변조와 조작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로 전해지는 역사를 함부로 믿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폐단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화자(話者)의 의도에 의해 거짓이 개입될 수는 있어도 한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대를 이어가며 거짓말이 전체적으로 퍼져나가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절대 잊어버리면 안되는 선조들의 역사는 대를 이어 말로 전해져 왔으며, 특히나 유목을 하며 이리저리 옮겨다닐 경우에는 글을 갖고 다니기 불편하기에 구전문학(口傳文學)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말과 글이 다른 역사기록은 말에 의지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선조들 역시도 이런 문제를 깊이 고민하였기에 글속에 말을 집어넣고자 부단히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그것이 바로 이두(吏讀)나 구결(口訣) 등인 데, 구결(口訣)은 일본에 전해져 가타카나 문자의 탄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하여 말을 글속에 완전히 집어넣은 작품이 탄생하게 되니 바로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편찬한 훈민정음(訓民正音)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종대왕을 위대한 성군(聖君)으로 추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훈민정음에서 나온 글자를 주시경(周時經) 선생을 거쳐가며 한글이라 부르고 있으니 기존에 써 오던 글자를 한자(漢字)라는 말 대신에 옛글이나 본글(本㓞) 등으로 부를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글(契)의 의미를 완전하게 되살릴수 있으며 우리의 또 다른 선조인 상인(商人)들의 공(功)을 세종대왕처럼 높이 기릴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모두 이루어질 때 비로소 한민족이 경제(經濟)의 주체가 되어 돈을 자유롭게 다스릴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美國)이 돈을 다스리고 있고 그들이 경제의 주체가 되어 전세계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속을 해부해 보면 한민족의 또 다른 일파라고 할수 있는 하자르(Khazar)족이 실질적으로 돈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하자르족은 현재 이스라엘 국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유대교에서 믿는 신인 아알(la)이 바로 우리의 한알(天)이라는 것을 이미 설명을 드렸다.

바로 이 무리들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로 드러나 있다.

그래서 연준을 미국 정부에서 직접 운영하고자 몇몇 대통령들이 시도하였으나 공교롭게도 모두 암살로 생을 마쳤으며 그 배후에 이들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이들은 세계곳곳에서 주도적인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동안 쌓은 부(富)를 바탕으로 미국을 몇 번이나 살수 있을 것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세계 경제의 또 다른 한 축은 중국(中國)의 화상(華商)이 이끌고 있다.

화상(華商)의 무리는 객가인(客家人)들이 중심이 되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객가인(客家人)은 묘예(苗裔)라고 하여 중국의 묘족(苗族)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묘족(苗族)은 스스로를 몽족이라 부르고 자기들이 고구려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현재 중국정부의 통치에서 벗어나고자 분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다.

객가인은 중국의 광동성 등 남부와 홍콩, 대만, 싱가폴, 태국, 필리핀, 미얀마 등에 걸쳐서 약 8천만명이 살고 있다.

객가인의 대표적 인물로는 손문, 등소평, 이등휘(대만), 이광요(싱가폴), 코라손 아키노(필리핀), 탁신 친나왓(태국) 등이 있으며 유명 연예인으로 장국영, 여명, 주윤발, 주걸륜 등이 있다.

객가어(客家語)는 북경어 보다는 광동어에 더 가깝다고 할수 있으며 당(唐)나라 때의 발음을 많이 간직하고 있기에 우리 발음과 가장 많이 닮았다.

그래서 금(金)을 북경어로는 진(Jin)이라 하나 객가어로는 김(Gym)이라 발음한다.

또 "나는 북경에 간다"를 말로 할 때는 "我北京去"라고 하나 글로 쓸 때는 "我去北京"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북경 사람이 광동지역에 가면 전혀 말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객가인들은 한족들보다 두뇌가 뛰어나고 상술(商術)에도 월등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화상(華商)을 이들이 이끌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나라 한상(韓商)은 비록 국제무대에 진출이 늦었지만 빠르게 세계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다.

조금의 시간만 더 주어진다면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설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두뇌를 갖고 있고 누구보다 뛰어난 상술로 경쟁에서 앞서나가며 지금의 고도성장을 조기에 이룩하였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시간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글(㓞)을 만들고 줄기차게 경영(經營)을 해온 선조들의 유전자가 면면히 이어져 왔기에 오늘날 한민족의 후손들이 전세계 각국에서 두드러진 경제활동을 할수 있게 된 것이리라.

그러니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민족의 후손들이 하나로 단결하여 범세계적인 경제공동체를 만들고 유로화와 같은 공통의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다.

비록 한민족 연방국가를 만드는 것은 조금 뒤로 미루더라도 EU와 같은 경제공동체는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향후 다른 민족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할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글을 만들고 돈을 다스리며 경제를 관장해온 주인공인 한민족에게 맡겨진 사명을 비로소 완수할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세계곳곳에서 한민족의 후손들이 돈때문에 신음하고 아파하며 귀중한 목숨을 버리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무엇보다 증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돈의 향방을 예측하느라 피가 마르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단지 달러라는 화폐를 우리가 다스리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이 모두가 돈을 다스리던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망각해버리고 남의 손에 그 역할을 맡긴 데 따른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는 데 다시 또 무엇을, 얼마나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바라건데 돈의 본디 주인은 우리 한민족 뿐이라는 사실을 제발 잊지  마시기를..

※ 카톡에 올린 글을 옮기다 보니 존칭어가 생햑되어 있습니다.
많이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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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구르 22-07-08 19:19
   
하자르가 한민족과 동족이라는 점은 아직 못 믿겠지만 케네디와 링컨같은 미국 대통령들이 유태인의 자본을 건드렸다가 죽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백운 22-07-08 23:38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몇몇 대통령들이 유대인의 자본을 건드렸다가 비명에 간 점은 저와 생각이 같으시군요.

유대인은 크게 세파라드 유대인과 아슈케나지 유대인으로 구분되지요.

세파라드 유대인은 노아의 장남인 셈(Shem)의 후손들을 이르는 말로서 현재 이스라엘 국민의 약20%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나머지 80%를 차지합니다.

물론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Ham)의 후손인 미스라임 유대인도 일부 있지만 통상 세파라드 유대인에 포함하지요.

아슈케나지 유대인은 셈족과는 혈통이 완전히 다른 투르크계 하자르(Khazar)족을 말합니다.

Khazar는 카자르로 부르기도 하고 하자르로 부르기도 하는데 저는 크하자르로 새기고 있습니다.

왠지 크한(Khan)과 친연성이 있어 보이니까요.

하자르족은 모두가 투르크족은 아니고 지배층이 투르크족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점점 부계와 모계가 뒤섞여 나중에는 투르크계를 구별하기 힘들어지니 지배층의 혈통을 따라서 투르크족으로 분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 있는 유대인은 대부분이 이들의 후손입니다.

이들중에 로스차일드 가문, 록펠러 가문, JP 모건 가문 등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요.

현 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은 40년만에 비유대인으로 자리에 앉았으나 친유대인 성향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자르족이 미국의 금융을 이끌고 있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럼 하자르족이 투르크족이고 이들 역시 우리와 혈통이 같고  역사 및 문화 등을 공유하고 있으니 한민족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민족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가는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를수 있겠지만 저는 같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후손들은 모두 한민족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약 5천년 이전에 갈려나간 북아프리카의 베르베르족도 포함이 됩니다.

베르베르족은 스스로 고귀한 민족이라는 뜻의 이마지겐으로 부르는데 이들 역시 역사와 문화 등을 우리와 공유하고 있습니다.

베르베르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이밖에도 제가 생각하는 한민족의 후손들은 셀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범한민족 경제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혹여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냥 같은 혈통끼리 뭉쳐야한다는 염원 정도로 간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구르 22-07-09 00:13
   
제가 보기에 지금 시대에는 유태인의 실체를 아는지의 여부가 유무식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인듯 싶습니다. 정황상 증거가 넘치는 유태인의 금융 세력의 실체를 얘기하면 음모론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해가 안되고 그들에 맞서던 동시대 인물인 박정희 대통령과 케네디가 시해를 당하고 지금은 모리배들이 대통령으로 노릇하고 있다는 점이 같습니다.

김재규는 자신의 뒤에 미국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미국에게 버림받았음이 확실해지자 민주주의를 위해서 그랬다고 헛소리를 했고 오스왈드는 어이없이 죽임을 당했고 부스는 총격전으로 죽어 입막음이 되었죠. 레이건도 금융에 개입하려다가 피격되었다고도 하는데 잘 모르겠습니다.

중공의 송홍병이란 사람이 쓴 화폐전쟁이 유태인 세력에 대해 자세히 알기에 좋고 유스터스가 쓴 미국은 점령당했다는 개략적으로 이해하기에 좋은것 같습니다
               
부르르르 22-07-11 00:08
   
오호....다까끼 빠 뇌피셜
                    
위구르 22-07-11 00:54
   
전부터 치매걸린 소리 지껄이고 자빠졌네 곧 죽을 늙은 홍위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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