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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5-30 18:27
[세계사] 금나라는
 글쓴이 : 축동
조회 : 2,772  

발해의 후예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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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추옹 22-05-31 18:26
   
역사를 잘 모르나보네여.. 금나라가 거란과 싸울때 발해유민들 끌어들일려고 우리가 남이가했다가 (왕실에서 발해유민들과 결혼도 자주했었슴)
북송 점령한뒤엔 맹안모극제에서 발해유민들은 제외시키고 산동으로 강제이주시켰었슴.
     
위구르 22-05-31 18:27
   
그렇다고 실제로는 발해인을 무조건 배척하지는 않았죠 

발해인들이 금나라 조정에 진출한건 왜 빼먹음?
          
천추옹 22-05-31 18:32
   
내가 언급한건 그뒤 얘기임.. 금나라 조정에 진출하고 결혼하고한건 어디까지나 맹안모극제에 해당됐을때 얘기임.. 북송먹고나선 발해유민 = 송나라 유민과 같이 묶어서 취급했슴.
          
촐라롱콘 22-05-31 20:16
   
[위구르님]

발해 출신 일부가 금나라 조정에서 중용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고 해서
중용되고 우대되었다는 논리라면....

일제시대 구 조선왕실과 친일파 수뇌부계층이 일제에 의해 대우받았다고 해서
당시 조선인 전체가 차별받지 않았다는 논리의 비약과 뭐가 다른가요~~~???

금나라 초기 요나라와 송나라와 싸울 당시에는 병력 하나라도 아쉬운 처지인지라
요나라 치하의 발해인들을 동족처럼 우대했지만...
막상 요나라를 멸하고 송나라를 남쪽으로 쫓아내고 북중국을 장악하고 안정된 이후인
12세기 중엽인 금나라 중엽에 이르면 대부분의 발해인들을 맹안모극제에서 축출하고
한족과 같이 대우했습니다.

정작 금나라가 멸망시킨 요나라의 거란족들과 해족 등의 북방민족 출신들은
맹안모극제를 그대로 적용받은데 반하여......
               
촐라롱콘 22-05-31 20:22
   
동아게 뿐만 아니라 잡게와 이슈게에서도 종종 출몰하는 어떤 ㄸㄹㅇ는
발해인 몇몇이 금나라 외척이 되고 고위직이 되었다는 근거 하나 가지고

금나라역사를 발해 역사의 연장선으로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더욱 비약하여 금나라 역사는 한국사의 일부라고 지껄이던데.....^^

그런 논리라면 청나라 시기에 청태종을 비롯한 여러 황제들이 몽골출신 대복진(왕비)을
두었고, 적어도 청태종의 아들인 순치제부터 역대 황제들은 몽골의 핏줄 또한 진하게
이어받았는데 (금나라 황실에서의 발해핏줄의 농도와는 비교조차 안되게 걸쭉하게)
그럼 청나라의 역사는 몽골의 역사가 되는 것인지.......??? ^^
                    
위구르 22-05-31 20:46
   
''그런 논리라면 청나라 시기에 청태종을 비롯한 여러 황제들이 몽골출신 대복진(왕비)을
두었고, 적어도 청태종의 아들인 순치제부터 역대 황제들은 몽골의 핏줄 또한 진하게
이어받았는데 (금나라 황실에서의 발해핏줄의 농도와는 비교조차 안되게 걸쭉하게)
그럼 청나라의 역사는 몽골의 역사가 되는 것인지.......??? ^^''

답은 不입니다. 내가 제시한 근거로는 당연히 금나라에 대한 역사 영유권을 주장 못 합니다. 다만 나의 저 천추옹이란 자의 댓글에 대한 반론은 ''금나라가 국사다''라는 주장을 위함이 아니고 ''금나라가 발해인을 탄압했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입니다. 오독했습니까?
                    
위구르 22-06-02 02:57
   
이 호로자식은 수당 못 받았나 닫이 없네
               
위구르 22-05-31 20:32
   
일제시대 구 조선왕실과 친일파 수뇌부계층이 일제에 의해 대우받았다고 해서
당시 조선인 전체가 차별받지 않았다는 논리의 비약과 뭐가 다른가요~~~??? <- 발해인 중의 장호는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고위직까지 진출했고 세종과 해릉왕의 모친도 발해인이었죠. 왜정기 때 그렇게 높이 대우받은 조선인들이 있다고요?
               
위구르 22-05-31 20:38
   
당시 금나라의 지배민족인 녀진족은 실제로는 고구려 계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3179&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B%B0%9C%ED%95%B4+%EA%B8%88%EB%82%98%EB%9D%BC&sop=and)

녀진이라는 이름은 누리의 아침이라는 뜻으로 전에 그 땅에 있었던 조선과 상통하는 말입니다(https://www.youtube.com/watch?v=XTlWkUeBAoE)

그런데 아직까지 발해인들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지배층 내에 혼란이 생깁니다. 이미 대부분의 고구려계와 말갈 제족이 녀진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는데 말입니다. 거란족도 모극제에 존속시킨 마당에 발해인들을, 정체성을 잃기를 거부한 발해인들을 정신적으로 말살한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 보입니다. 즉, 당시 녀진족이 된 고구려계통의 사람들 조차도 그들 고영창 장군의 무리를 위험하다고 보았을 것입니다
               
위구르 22-05-31 20:45
   
금나라에서 발해부흥운동이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劉肅勇은 금나라가 발해유민을 다스리는 통치술이 뛰어 났기 때문이었다고 한다.30) 그러나, 요나라의 통치술이 결코 금나라보다 못했다고 단정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금나라에 맹안모극제가 있었던처럼 거란에도 남북원제가 있었다. 거란이 발해유민을 통제키 위해 실행했던 동단국의 요양 이동과 같은 강제 사민정책은 강력했다. 금나라에서도 발해인들에 대한 사민책이 있었다고는 하나,31) 이것은 어디까지나 거란에서처럼 발해유민의 부흥운동에 대한 대처였던 것은 아니다. 금초에 있었던 발해인에 대한 화북·산동으로 사치는 고영창의 대발해국이나 고욕의 난에 가담하였던 발해 세력, 또는 후발해 조정에 있던 무리가 아니었나 한다. 당시의 발해인이 고영창 세력이었을 가능성은 대발해국 당시 고영창이 금나라와 협상하면서 ‘황제’를 고집하다가 금에 의해 참살되었던32) 사정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올야 정권의 후발해 조정과 연결된 세력이었을 가능성은 금나라를 건국한 세력과 올야 정권은 일정하게 같은 ‘일가’이면서도 금나라 조정에서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견제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나라에서의 발해인 사치라는 의미는 거란초의 발해유민 사치와는 그 의미가 자못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거란과 이민족의 입장에 있던 발해의 부흥운동에 대비한 것이 거란의 사치정책이었다면, 금나라에서의 그것은 ‘일가’안에서의 반대세력을 소개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나라 조정에서 여진과 발해가 ‘본동일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발해인을 특별히 구별하였던 것은 거란내에 있었던 고영창 등의 발해유민 세력이거나 후발해 조정안의 지배층과 변방의 피지배 여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발해와 여진의 역사적 관계에서 금나라에서 발해유민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진이 세운 금나라는 발해와 일정하게 ‘본동일가’로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금나라는 한편으로 발해의 민족적 정통성을 계승한 왕조였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0461570&language=ko_KR&hasTopBanner=true

그 산동행 발해인들이 실제론 고영창 장군의 휘하에 있던 사람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확실해집니다. 그들은 끝까지 독자 세력화의 꿈을 가졌고 더더욱 위협적이죠. 더구나 그들의 수는 불과 3만 명입니다. 고작 3만 명이 발해인의 전체겠습니까 아니면 대부분이겠습니까? 그나마도 그 정책을 행한 희종을 처단하고 황위에 오른 완안적고내가 발해인의 아들입니다. 폭군으로 돌변한 그를 축출하고 황제가 된 완안 오록 역시 마찬가지고 그는 금나라가 망할 때까지 직계가 황위를 차지합니다. 그들을 놔두면 분열의 가능성이 클 테니까요. 같은 민족 내에서도 정치적 경제적 요인에 따라 살육이나 차별이 빈발하는 마당에 그런 이유라면 충분히 탄압할 수 있지 않습니까?
천추옹 22-06-01 06:48
   
겉핥기식 역사를 보면 저래 지맘대로 해석함 ㅉㅉㅉㅉ

금사 병지中
금사 병지中
熙宗皇統五年,又罷遼東漢人、渤海猛安謀克承襲之制,浸移兵柄於其國人,
희종(熙宗) 황통(皇統) 5년(1145년)에, 또 요동(遼東)의 한인(漢人)과 발해(渤海)의
맹안모극(猛安謀克)의 승습(承襲/봉작을 이어받음)의 제도(制度)를 파(罷)하고,
점차 병병(兵柄/병권)을 그 국인(國人/여진족)에게 옮겨,

금사 식화지 호구(戶口) 대정(大定) 29년 (1187년) 中
凡漢人、渤海人不得充猛安謀克戶。猛安謀克之奴婢免為良者,止隸本部為正戶。
무릇 한인(漢人)과 발해인(渤海人)은 맹안모극(猛安謀克)의 호(戶)에 충원(充員)하지 못하게 하였다.
맹안모극(猛安謀克)은 노비(奴婢)를 면해주고 양자(良者/양민)로 삼고,
종을 금하고 본부(本部)의 정호(正戶)로 삼았다.

금사 희종(熙宗) 본기 中
天眷元年 六月
乙未,詔百官誥命,女直、契丹、漢人各用本字,渤海同漢人。
천권(天眷) 원년(元年/1138년) 6월
을미일(乙未日)에, 조(詔)하여 백관(百官)에게 고명(誥命/임금의 명령)하여,
여진(女直)과 글단(契丹/거란) 및 한인(漢人)은 각각 본자(本字/고유 문자)를 사용하게 하였는데,
발해(渤海)는 한인(漢人)과 같게 하였다.


https://www.tinnews.co.kr/12531

◎ 해동역사에 수록된 발해의 역사와 그 풍속

 
1149년 9년 8월에는, 재신(宰臣)들의 의논에 따라 요양(遼陽)에 있는 발해의 백성들을 연(燕)나라 지방 남쪽으로 옮기고, 그 뒤에는 또 자주 산동(山東) 지방에서 수자리를 살게 하였다. 신유년에 이르러서 모두 내몰았는데, 옛날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혹 계단(거란) 지역으로 들어갔다. 이에 발해의 종족이 드디어 끊어져 전해지는 바가 없게 되었다.
     
위구르 22-06-01 13:37
   
다시 씀 1. 발해인 중에 고위직에 진출한 사람들이 있었고 2. 두 황제의 모친도 발해인이었고 3. 강제로 이주를 당하고 말살된 발해인들은 실제론 고영창 장군을 따르던 완고한 이들이었고 4. 결정적으로 고구려계의 대부분은 녀진족이었으니 발해인 탄압은 고구려계와 말갈계가 모두 새로이 갖게 된 녀진족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한규철 박사의 주장대로 금나라의 발해인에 대한 지배가 거란의 그것에 수준이 떨어지지 않았는데도 발해인이 독립 운동을 펼쳤다는 기록은 사서에 하나도 없음. 그것은 그 억압받은 발해인이 그저 소수였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생김. 근데 그건 모르거 겉핡기 이 지랄하냐 빡대가리야 바뀐게 없네
     
위구르 22-06-01 13:37
   
Marauder 22-06-01 07:16
   
우리나라 사람이야 발해가 한국역사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렇지 사실 여진족의 대다수는 발해에 속해있었는데 금나라 건국 세력이 다른 여진세력이라고 해도 같은 민족이고 결과적으로 금으로 통합됬으면 후예라고 할수도 있는게 아닌건지...?
같은 논리면 조선이 위만조선이나 낙랑군의 후예라고 할수는 없는거임?
물론 중국 역사로 뺏기기 싫다는 마음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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