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長衣)라고도 한다. 보통 초록 바탕에 흰색 끝동을 달았고 두루마기와 비슷하다. 조선 전기에는 남자들이 겉옷[袍]으로 착용하였다. 《세조실록(世祖實錄)》에 보면, 세조 2년 3월 양성지(梁誠之)의 상소에 "대개 의복이란 남녀 귀천의 구별이 있는 법이어서 하민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여인들은 남자와 같이 장의 입기를 좋아하고, 혹 의상(衣裳) 사이에 입어 3층을 이루며, 이런 풍습이 거국적으로 퍼지는 것은 사문(史文)에서 말한 복요(服妖)이니 금하자"고 하였다.
또, 조선의 역대 왕이 죽었을 때 소렴(小殮)·대렴(大殮)·실재궁(宲梓宮) 의대(衣襨) 목록에 많은 수량의 장옷을 사용한 것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도포 등과 함께 남자의 포(袍)로 조선 후기까지 사용한 장옷을 언제부터인지 여자들의 쓰개용으로 사용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의복의 간소화와 더불어 남자의 포는 두루마기 한 가지만 남고, 장옷은 여자의 전용 쓰개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장옷의 형태는 두루마기와 거의 같으며, 다른 점은 소매 끝에 흰색 끝동을 넓게 대었고, 옷깃·옷고름·겨드랑이에 대는 삼각형의 무를 옷색 또는 다른 색으로 대었다. 장옷의 색은 기록에 의하면 분홍·보라·초록·유록색·옥색·남색·황토색·흑색 등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의 여인들의 내외용 쓰개로 사용한 장옷은 주로 초록 무명이나 명주였고 안은 흰색으로 하였다. 깃의 형태는 좌우가 대칭이며, 앞은 맞대어 맺음단추를 달았고, 이중 고름(홍색과 자주색)이 양쪽에 달려 있어 손으로 잡아 아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