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했는데 고종이 아관파천을 하는 등 비굴한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로씨야에 붙을려고 하자 위협을 느낀 제국주의 영국이 일본에 힘을 실어서 조선을 아예 지배하게 할려고 했습니다. 총리대신인 이등박문은 다만 조선을 직접 지배하기 보다는 경제적으로 종속시켜서 경제적 이득을 수탈하는 길을 택할려고 했고 식민지에 대한 직접 지배가 도리어 적자를 내는 당시의 추세로 볼 때 일본에 있어 합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하필이면 그 로씨야와의 회담을 위해 방문했던 하르빈에서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됨으로써 일본 정계에서는 유능했던 현실주의자가 사라지고 동시에 분노와 침략 야욕이 가득 차는 결과로 이어졌고 완전히 합병으로 길을 정한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나자 여러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이등박문이 염려한 대로 조선의 백성들이 격렬하게 저항했고 일본은 그걸 진압하느라 물질적인 소모를 치름과 동시에 인권을 탄압한다고 비판을 받아서 서양 열강들에게 견제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조선을 직접 지배하고 나자 일본이 그리 바라던 대륙 진출이 가시화되었고 만주국을 세운 다음에 제국주의 영국이 바라는 대로 소련을 공격하는 대신에 중원을 공격했는데 그로 인해 열강의 원한을 산데다 그들 특유의 야만성을 최대로 발휘해 수많은 전쟁 범죄를 저질러서 견제의 명분을 축적했습니다. 일본이 중원에 깊숙히 들어가서 발을 뺄 수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미국이 치명적인 경제 제재를 가했고 석유를 못 구해서 싸우지도 많고 주저앉게 생긴 일본은 중일 전쟁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불가피하게 벌이게 된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했는데 그것은 확실히 미국이 의도한 것으로 애초에 미국 정부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 계획을 알고도 방치해서 기습을 당해줬습니다. 그리해서 서양의 골치거리였던 비서구 강대국 일본은 미국의 속국 가깝게 전락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미국이 지원한 공산당이 국민당을 몰아내고 중원을 장악하자 모택동이라는 뛰어난 지도자의 통치에 의해 중공은 불과 삼십년만에 청나라가 축적하고 국민당이 지키려 애썼던 중원의 부를 모두 무너뜨렸고 1억 명 가까이를 죽었고 수천년간 그들 한족이 스스로 만들거나 이민족에게서 훔쳐 간수해온 문화와 지식이 말살되는 과업이 달성되었습니다. 중원이 반대로 국민당의 지배 하에 놓였다면 합리적으로 발전을 거듭해서 미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터인데 그걸 안 미국이 그렇게 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럼에도 중공은 위협적인 상대가 될 수 있었기에 약점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것이 북한입니다. 6.25 전쟁 때 되도 않게 일본군을 참전시키는게 어떠냐고 제안하던 미국이 정작 훨씬 효율적인 대만의 중원 침공을 가로막고 북진통일을 주장하던 이승만 대통령을 암살할 계획을 세우고 중공군이 넘어오는 부교를 부수기 위해 출진한 공군 부대에게 중공 땅으로 넘어가면 안되니까 부교 방향을 따라서 날지 말고 수직으로 날아서 맞추라고 명령하는 병1신같은 짓을 거듭한 것은 우리나라를 통일시킬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북한을 남겨둬가지고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면 중공이랑 로씨야를 묶어가지고 두들겨 패기 위함인데 북한은 그에 부응해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죠. 이렇게 해서 동양은 미국의 감시 하에 놓여 마치 명나라의 간섭에 휘둘리던 여진족(녀진족)의 꼬라지처럼 되었고 이 국제질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불가피했던 사건이 바로 조선 병탄이었습니다.
만약 조선의 호로자식같은 황실과 지배층이 국제 정세를 알고 대처했다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는 꼴은 피했을 것이고 기껏해야 로씨야의 경제권에 놓여있지만 독립은 유지하는 카자흐스탄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선의 황실과 고종은 너무 멍청했습니다. 동학 운동을 일으킨 농민들이 탐관오리들은 처벌해도 황제는 건드릴 수 없고 그래도 잘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고종은 청나라군을 부르면서까지 진압하려 했으니 그걸 알게 된 동학운동 세력은 배신감을 느껴서 일진회를 만들어 일본에 붙어먹고 조선을 멸망시키려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볼 때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외교에 실패해서 외국의 신뢰를 잃고 내정에도 실패해서 민심마저 잃은 지배층 때문이고 마지막으로 그런 명백히 무능하고 죄악 넘치는 이씨의 후예인 주제에 나이살 처먹고서 지금도 황실 후예랍시고 이리저리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인간은 철퇴로 때려죽여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그의견보단 위 의견이 좀더 맞는것 같습니다. 영국은 극동지방에 영향력이 별로 없어요. 영국은 일본의 한반도지배까지 용인했지 만주지배는 용인하지 않았는데도 일본 스스로의 힘으로 만주 넘어서 중국까지 침략했습니다. 즉 애초에 영국이 제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건 비약입니다.
차라리 러시아에 붙으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죠.
그건 맞습니다. 제국주의 영국은 너무 멀리 떨어진 극동에 힘이 닿지를 못했고 영향력을 직접 투사하는 대신 일본을 동맹국 급으로 대하면서 조선을 차지하게 유도하고 그를 기반으로 로씨야를 견제해주길 바랬죠. 그런데 그 대신 대적하라는 로씨야는 놔두고 서양의 만찬장인 중원을 침공해서 혼자 차지할려고 하니까 틀어졌습니다. 쓰고 보니 제 댓글이 너무 길어졌었는데 어느 부분을 보고 말씀하셨나요
세도정권 부정부패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국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을 정도로 국정을 세도가가 망쳐놨는데, 어떻게 국방이나 산업에 신경을 쓸 수가 있는지..
세도가가 부정부패 한 기간이 대한민국 건국부터 지금까지 입니다.
아프리카 신생국 중 독재하는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국가를 보면 답이나오죠.
그 아프리카 신생국이 갑자기 외세에 강압을 받으면 정치인이 갑자기 정신차린다고 해도 방어할 수 있을까요
고종 황제가 개혁하려고 노력했으나, 이미 사람들의 인식과 시스템이 세도정치의 부정한 상태여서, 개혁이 미진한 부분이 다분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