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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4-16 20:52
[한국사] 금나라 출자에 대한 기록 모음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2,657  

1. 국사 기록
2. 금나라 기록
3. 청나라 기록
4. 원나라 기록
5. 송나라 기록
6. 남송 기록
7. 현대 한국 학자들의 시각
8. 사견

1. 국사 기록

고려사(高麗史) 예종 4년

昔 我太師盈歌嘗言 我祖宗出自大邦 至于子孫 義合歸附 今 太師烏雅束亦以大邦爲父母之國

예날에 우리 태사 영가가 일찍이 우리 조종은 대방(고려)으로부터 나왔다. 자손에 이르기까지 귀부함이 
의롭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태사인 오아속 역시 대방을 부모의 나라라고 하였습니다.

고려사(高麗史) 예종 10년

或曰 昔 我平州僧今俊遁入女眞 居阿之古村 是謂金之先 或曰 平州僧今幸之子克守初入女眞 居阿之古村, 娶女眞女 生子 曰古乙太師 古乙生活羅太師 活羅多子 長曰劾里鉢 季曰盈歌 盈歌最雄傑 得衆心 盈歌死 劾里鉢長子烏雅束嗣位 烏雅束卒 弟阿骨打立

혹자는, 옛날 우리 평주의 승려 금준에 도망쳐 들어가 아지고촌에서 살았는데, 이 사람이 바로 금나라의 선조라고 말했다. 또 어떤 이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한다. “평주의 승려 김행의 아들 김극수가 애초 여진의 아지고촌에 들어가서는 여진 여자에게 장가들어 아들을 낳아 고을태사라 했다. 고을이 활라태사를 낳았고 활라는 아들을 많이 두었다. 장남이 핵리발이고, 막내아들은 영가였는데, 영가가 슬기와 용맹이 가장 빼어나 민심을 얻었다. 영가가 죽자 핵리발의 장남 우야소가 지위를 계승했고, 우야소가 죽자 그 동생인 아구타가 그 자리에 올랐다.”

2. 금나라 기록 

금사(金史)

金之始祖諱函普 初從高麗來 年已六十餘矣

금의 시조의 휘는 함보다. 처음 고려로부터 왔다. 년배가 이미 60여세였다

대금국지(大金國志) 금국초흥본말(金國初興本末)

或又云 其初酋長 本新羅人 號完顔氏 完顔 猶漢言王也 女真妻之以女 生二子

혹자가 또한 말하길 그 첫 추장은 본래 신라인이다. 완안씨라 불렀다. 완안은 한어 왕과 같다. 녀진의 여인을 처로 삼았다. 두 아들을 가졌다

3. 청나라 기록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新羅王金姓相傳数十世則 金之自新羅來無疑 建國之名亦應取此 金史地理志乃云 以國有金水源爲名 史家附㑹之詞未足憑耳

신라왕 김씨성이 서로 수십세를 전했다. 즉 금은 신라로부터 왔으며 의심이 없다. 건국의 이름은 역시 마땅히 여기서 취했다. 금사지리지에 운운하길 나라에 금의 수원이 있음으로 해서 이름(국호)으로 삼았다 했는데 사가가 부회한 것이니 의지해 듣기에 족하지 않은 글이다(들을 필요가 없는 글이다)

4. 원나라 기록

문헌통고(文獻通考)

又云 其酋本新羅人 號完顏氏

또 말하길 그 추장은 본래 신라인이다. 완안씨라 불렀다


이역지(異域誌)

女真 在鴨綠之陽 長白山之下 古肅慎氏之國也 始因新羅人完顏氏者奔於國 遂家焉

녀진: 압록의 북에 있고 장백산의 아래에 있었다. 예날에 숙신씨의 나라였다. 처음에 신라인 완안씨가 
나라에서 도망함으로 인하여 마침내 집안을 이루었도다

5. 송나라 기록

구조편년비요(九朝編年備要) 28권

女真其初部族本新羅人號完顏氏完顏猶漢呂王

녀진은 그 첫 부족이 신라인이 뿌리이며 완안씨라 불렀다. 완안은 한어의 음으로 왕과 같다


송사(宋史)

已而金使復至 用新羅使人禮 引見宣政殿 徽宗臨軒受使者書

이어 금나라 사신이 거듭 도착했다. 신라 사신의 례를 썼다(써서 맞이했다). 선정전에서 인견했다. 휘종이 
나와 사자의 글을 받았다

自海道入界河及往高麗新羅登萊州界者徒二年 五百里編管 往北界者 加二等 配一千里

바다길로부터 경계의 강과 고려, 신라, 등주, 래주의 경계에 들어가는 자는 형벌 2년과 편관(유배) 500리에 처하고 북계로 가는 자는 2등급을 더해 일천리로 귀양을 보낸다

6. 남송 기록

건염이래계년요록(建炎以來繫年要錄) 1권

阿固達 其先新羅人也

아고달(태조 아골타) 그 선조는 신라인이다


건염이래조야잡기(建炎以來朝野雜記) 을집(乙集) 19권

完顏之始祖指蒲者 新羅人 自新羅奔女真,女真諸酋推爲首領

완안의 시조 지포란 자는 신라인이다. 신라에서 녀진으로 갔다. 녀진의 모든 추장이 수령으로 추대했다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 18권

女眞始祖掯浦出自新羅

녀진의 시조 긍포는 신라에서 나왔다


송막기문(松漠紀聞)

女真酋長乃新羅人 號完顏氏

녀진 추장은 곧 신라인이다. 완안씨라 부른다

7. 현대 한국 학자들의 시각

책 오랑캐 홍타이지 천하를 얻다에서 저자 장한식은 금나라 시조 관련 기록을 짤막하게 인용하고서 추가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남겼다.

청나라 키메라의 제국에서 구범진은 애신각라(愛新覺羅)가 신라를 사랑하고 기억한다는 뜻이란 설이 돌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하여 금 시조 관련 기록은 언급도 하지 않고 부정적으로 취급했다.

국내에서 유목 민족사의 거장 노릇을 하는 김호동은 아틀라스 유라시아사에서 김함보를 언급했으나 고려로부터 왔다는 기록을 두고서 당시의 고구려의 정치적 위용을 빌렸기 때문에 고려라고 기록했다면서 이미 멸망한지 200년이 가까이 되는 고구려(발해)의 지역(만주)에서의 위상이 금나라가 그들 시조를 날조하면서까지 고(구)려 운운할 정도로 높았다는 정신병적인 주장을 함과 동시에 금 시조가 신라 출신이라고 하는 숱한 기록을 무시했다. 

8. 사견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 혹은 고려에서 왔다는 기록이 꽤 많이 보이며 더 나아가서 금나라와 녀진족을 아예 신라로 취급하는 송나라의 기록, 금나라의 국호가 김씨 성에서 나왔다는 청나라의 기록까지 있음을 보면 금나라의 시조가 신라 출신임은 만주원류고의 표현대로 의심할 수가 없다. 신라가 고려로 표기된 경우는 착각으로 김함보가 넘어가던 때가 신라의 땅을 고려가 막 차지한 시기라 이웃 국가들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 그 때 김함보가 만주로 이주함은 마치 멸망한 백제의 귀족들이 왜 열도로 넘어감과 같은데 왜 열도가 백제의 영향권 내에 있어서 익숙한 곳이었듯이 만주의 남부는 한동안 신라의 강역에 속해서 신라인들에게 낮설지 않은 곳이었다. 고구려가 망하고 쭉 지배했다가 드디어 발해의 9대 임금 선황제 대인수에게 공파를 당했으니 사서에 평정이라고 묘사될 정도로 발해의 큰 승리이자 신라의 참패였으므로 그 때 다 잃었을 것이다. 김함보가 망명한 때는 그 820년대로부터 불과 백여년이 지난 시기였다. 사실 당시 새롭게 등장한 녀진이란 말은 주리진이라고도 하니 진은 아침을 뜻하는 신의 음차고 녀(女)와 주리(朱里)는 누리를 뜻하는 말이니 누리의 아침(이기훈의 주장)이라는 뜻이다. 이는 조선과 같은 계통임을 알 수 있고 밝은 해란 뜻의 발해와도 통하는 면이 있다. 해가 가장 밝을 때는 동쪽에서 뜨는 아침이고 발해의 다른 국호인 辰은 아침, 震은 동쪽이란 뜻이 있다. 즉, 녀진이란 말은 발해란 이름을 계승한 다른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 이전의 지명인 아사달과 관련됐을 수도 있다. 

당시 녀진족은 한자를 알고 농사를 짓고 정주하는 등 문명인의 면모가 있었다. 그런데 김함보가 간 부족은 법도 없어서 서로 죽이기를 일삼고 다투면서 살던 전형적인 야만인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고구려인이 다수인 여타 녀진 제족과 달리 순수한 말갈의 후예였을 것이다. 그들은 고구려 후기에도 몸에 돼지 기름을 바르고 반지하 생활을 한다고 묘사된 오랑캐들이다. 그래서 김함보는 굳이 그 부족의 지도자가 되기를 택했고 실제로 일을 잘 처리하고 질서를 잡아 신망을 얻어서 수령이 되었다. 그 때 김함보가 혼자였을 리는 없고 무리를 대동했을 것이며 그들이 주축이 되어 지도층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 상태로 이어지다가 점차 강성해져서 다른 무리들을 흡수해 대국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물론 개국할 당시 녀진족은 그 대부분이 고구려계였고 완안 녀진같이 말갈계가 주축을 이룬 경우가 오히려 드물었다. 

국호 금에 관해서는 대금국지에서 안출호에서 금이 나오기 때문에 금이라 지었다고 하는데 국호를 그리 단순하게 지을 리가 없다는 상식으로 보면 허황된 주장이나 안출은 아침을 뜻하는 말의 음차고 금(金)은 아침의 광경처럼 광채를 보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거기에 시조가 김 씨이니 아침과 공통점이 있는 황금을 뜻하는 김(金)을 한자식 국호로 채택함은 타당한 결정이었다. 이에 관해서 의심이 없다(無疑)라고 확고히 단정을 지은 만주원류고의 기록은 마치 후일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자들이 나올 것을 념두에 두고 쓰여진듯 하다.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작은 신라에서 거대한 금 제국의 시조가 났다는 점이 당장에 쉽게 믿기는 곤란함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서에 기록이 있으면 본인의 상식을 내세워서 부정하면 안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금나라가 국사에 포함되어야 하는지의 여부는 둘째 치고 금 시조가 신라인임은 사실이다


참고 기록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3179&sca=&sfl=

http://qindex.info/i.php?x=41735#41735

https://www.youtube.com/watch?v=XTlWkUeBAoE

https://baike.baidu.com/item/%E4%B9%9D%E6%9C%9D%E7%BC%96%E5%B9%B4%E5%A4%87%E8%A6%81/5704963

https://zh.wikisource.org/wiki/%E5%A4%A7%E9%87%91%E5%9C%8B%E5%BF%97

https://zh.wikisource.org/wiki/%E9%87%91%E5%8F%B2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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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서로77 22-04-17 22:48
   
우리가 북한과 통일하지 못하고 수백년이 흐른다면 더이상 하나의 나라라고 하지 못하겠지만 같은 민족임을 의심하지는 못하겠죠...고구려 영토를 생각할시에 만주 북방지역에살던 사람들도 나라이름만 바뀌었지 결국 우리와 별반 다를게없던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핏줄로 연결된 사람들이겠죠...금나라 시조가 신라인이라는데는 의심의 여지가없어 보입니다...
     
위구르 22-04-17 23:52
   
고구려가 망하고 신라가 이 땅을 차지했는데 발해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막대한 피해를 입은 탓에 적대적인 감정이 쌓였다가 결국 삼국사기에서 발해가 제외되고 여러 기록에서 발해를 그저 적으로 여기는 현상이 보이는게 고구려인의 우리 역사에서의 1차 이탈이고 그 발해가 망하고서 고구려인들이 녀진족이 됐는데 이름도 생소하고 생활 양식이나 사고방식, 기질 등이 너무 이질적으로 변한 탓에 동족 의식이 간간이 보이던 발해와 달리 녀진족은 오랑캐나 이민족으로 취급되었으니 2차 이탈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녀진족은 우리 역사에 포함되어야 하는데 신라와 고려만의 편협한 시각이 극복되어서 되찾아야 합니다.

북한 얘기를 보고 전에 발로 쓴 반 동북공정에서 저자가 북한의 이질성을 경고하며 녀진족이 되어가고 있다고 표현한 대목이 기억납니다.
alskla9 22-04-18 17:49
   
흥미롭네요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세우고 제대로 알려면 우선 북한과의 통일이 전제조건인것 같습니다
더불어 만주지역과 요하지역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한반도만큼이나 아주 중요한 역사적 무대였던만큼 현재는 중국땅인게 너무 아쉽군요
     
위구르 22-04-20 01:18
   
고려의 국경선은 지금의 요하에서 흑룡강에 이르렀다는 연구결과가 있으니 고려만을 국사로 보더라도 만주에 대한 영유권이 있지만 금나라까지 국사에 편입되면  더할 나위가 없죠. 그런데 그런 논의조차도 없고 또 만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한과의 자유통일이 우선인데 둘 다 요원해서 가망이 안보입니다
Korisent 22-04-19 20:58
   
오 잘보고 갑니다.
Marauder 22-04-20 17:07
   
잘봤습니다. 관련내용은 봤는데 이렇게 모아놓은건 처음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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