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22-03-21 07:11
[한국사] 고대 요동과 요서를 나누는 기준이 요수가 아닌 확실한 근거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958  

[출처] 수구리의 우리고대사(사마천 사기등 중국 고대 문헌의 지리적인 고찰)


■ 고대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요수가 아닙니다

 

     고대 요동은 요동군입니다(고대 요동은 요수 동쪽 지역을 나타내는 일반 명사가 아닙니다)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군과 요서군를 나누었다는 문헌 내용은 없으니
     요동군과 요서군을 구분하는 기준은 요수가 아닙니다

     요동군과 요서군을 나누는 기준이 요수가 아닌 근거는
     후한시대에 요서군을 나누어 요동속국을 설치했고,
     요동속국이 조조의 위나라 시대에 창려군이 되고 그 후에 요동군에 포함됩니다


■ 신당서(新唐書)(1) > 동이열전(東夷列傳)> 에 따르면..

【帝度遼水, 徹杠彴, 堅士心. 營馬首山,...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마수산에 군영을 설치한 뒤...】


마수산은 한나라 시대 요서군 유성현에 있었으니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 한나라 시대의 요서군 유성현 위치에 군영을 설치했고, 요동성을 공격하고 함락시킨 내용입니다


따라서

요수--> 한나라 요서군 --> 요동(요동성) 이므로

요서군과 요동군을 구분하는 것이 요수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사기 정의]

遼東郡在遼水東, 始皇築長城東至遼水, 西南至海
요동군은 요수의 동쪽에 있다. 시황이 장성을 동쪽으로 요수까지 쌓았고, 서남으로는 바다까지 이르렀다.


[사기 정의]는 BC 100년경의 사마천 사기를 서기 700년경의 당나라 학자 장수절(즉천무후 시대)이
사기를 해석한 풀이책(주석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이 요수 동쪽에 있다는 내용은
장수절이 고증없이 일반적인 생각(내용)을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서지리지, 후한서 군국지, 당태종이 직접 편찬 지시한 진서지리 내용을 보면
요수 동쪽이 요동, 요수 서쪽이 요서라는 내용도 없고 추정할 수 있는 내용도 전혀 없기에
장수절이 고증없이 본인의 생각을 말한 것으로 보이니 잘못된 틀린 주장으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고대 중국인들은 큰 강이나 큰 호수를 바다(海)라고 했으니 참고바랍니다


■ 가장 오래된 고지도가

 서기 1150년 경에 작성된 화이도인 고려시기인 남송에서 만들어진 지도입니다

고구려 멸망후 대략 500년 후이니 

당나라가  연나라 계의 위치를 포함하여 하북성 중부 지명을 하북성 북부로 지명위치를 모두 옮긴 후

수백년 후에 작성된 지도라고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서기 1200년 이후에 작성된 고지도로 위치를 찾는 것은 잘못된 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고지도를 참고는 하시고,.

중국 고대사서들을 지리적인 관점에서 원점에서 다시 위치 비정을 하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에 

지명위치를 하북성 북부로 옮겼다고 추정하는 근거는

거란의 남경인 지금의 북경을 연경이라고 부른 것이 대표적인 내용입니다
(거란의 남경이 북경인 것도 확실치 않지만..)

1)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는 하북성 호타하를 넘지 못했습니다
(염철론의 험고 내용과 사마천 사기를 지리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니
하북성 중부 거록현 위치가 연나라 도성 계의 위치였습니다)

2) 5호 16국 시대 전연의 초기 도읍인 용성이 진서지리지에 계현이라고 나와 있고
한단시 업으로 천도했으니 후연 북연도 계와 업이 수도로 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연 나라(춘추전국 시대 연, 전연, 후연, 북연)는 하북성 중부 호타하를 넘지 않았으니
거란의 남경인 지금의 북경은 연경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면 거란의 수도 남경인 연경의 위치는 북경이 아니고
거란의 수도 남경인 연경은 거록현이나 한단시 업이었는데
거란이 망하고나서 북경을 거란의 수도 남경이라고 지명 위치를 변경했을 수도 있습니다


■ 거란의 남경인 북경이 연경이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내용은

당나라가 망하고 5대 10국 시대
정식의 국호는 대연(大燕)이었으나, 후세의 역사가들은 걸연(桀燕)이라고도 하는 경우가 많은 중국 오대 십국 시대 초기의 군벌 유수광이 지금의 북경 부근에 세운 최단명 왕국인 연(燕)에서 유래했다고 봐야 합니디

유수광 연나라의 영토는 지금의 북경과 하북성 북부 일대로, 원래는 당나라 말기의 군벌이었던 노룡군 절도사(盧龍軍節度使, 본부는 지금의 베이징에 있었다) 유인공이 895년부터 할거하던 세력 범위 아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명위치 변경이 당나라 시대에도 이루어졌겠지만
당나라 멸망 후 5대 10국시대의 대연(大燕)이었고,걸연(桀燕)이라 불린 유인공의 연나라로 인해
하북성 중부의 지명이 하북성 북부로 지명위치가 확실하게 이동되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가장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우리나 역사학자들은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 지명이 
하북성 중부에서 하북성 북부로 지명 위치가 변경된 것을 모르고
춘추전국 시대 연나라가 북경과 하북성 북부에 있다고 믿고 있으니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구르뫼 22-03-21 14:19
   
수구리님의 지명고증은 장석암을 갈석산에 비정하여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저 역시 당나라의 지명이동을 주장하기에 기존 틀에서 벗어나야만 하는 어려움을 압니다.
이런 어려움을 알기에 수구리님의 글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25사를 기초로 문헌사료나 유적 등 근거자료가 명확해야 합니다.
저 역시 중국사료만 인용하는 점은 중국의 주장을 근거로 우리의 역사를 찾으려함입니다.
또한 제가 제시한 글이나 댓글에 오류가 있을시 인정하며 겸허히 받아드립니다.
수구리님이 진황도 갈석이나 낭아산이 아닌 장석암까지 오셔서 높게 평가하는 것이며
여러 사람에게 자료를 공개하여 정확한 고증을 할 수 있도록  함이니 곡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당나라의 지명이동이나  300여년동안 수보를 한 명나라 역시 고치치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사서오경과 황제의 어시 원문입니다.
주석이야 후대의 사람이 적은 것이니 당시 고칠 수 있던 것이기에 원문에 근거하여 말하겠습니다.

1.공자의 어록을 적은 尚書에 이르길
碣石 海畔山 禹夾行此山之右而入河逆上
갈석은 해변가에 있는 산이요 禹가 협으로 가서 갈석산의 오른쪽으로  하(河)로 들어가니
물이 위로 역류하였다.

역류라 함은 저지대에서 가능한 말이며 갈석은 하(河)와 바로 붙어 있음이니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장석암에서 역류와 하(河)와 관련이 있는가?
조공을 가는 도이(島夷)들이 장석암(갈석)을 오른쪽으로 끼고 하로 들어가면
순의 도읍지 포판(또는 수구리님이 비정한 도읍지)에 갈 수 있는가?

2. 수구리님이 인용하시는 염철론 험고에 이르길
燕塞碣石絕邪谷繞援遼
연은 갈석을 요새로 하고 사곡(邪谷)에 가로막히고 요수에 둘러싸여 도움을 받는다.

수구리님은 사곡(邪谷)을 형태시 사하로 비정하였는데
사곡은 말 그대로 골짜기를 의미하는데 사하(沙河)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또한 사곡(邪谷)은 후대에 斜谷과 혼동을 하여 기록되는 바
邪자는 斜의 의미로 골짜기를 의미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

* 요수에 대해 전에 댓글로 북류하는 문제점과  고죽국을 지나 갈석산이 나옴을 언급하였기에 생략함.

3. 조조의 步出夏門行 『염艷』이란 시에
당시 구강(九江)이 범람하여 이를 시찰하고 오는길에(經過) 지나치다 갈석을 가게 되는데
구강은 동정호 근처를 말하는데 구강에서 낙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형태시까지 갔는가?

4. 사마천 사기 봉선서에서 말하는 하상주의 모든 도읍지를 포함하여
하(河)와 락수(洛水) 사이에 장석암이 들어가는가?
(이 부분은 중국의 지명이동을 밝혀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절대적인 기준임.)

5. 고적의 연행가에 이르길
摐金伐鼓下楡關  旌旆逶迤碣石間
738년 징을 치고 북 두드려 유관으로 내려가니 깃발들은 갈석 사이에 연이어져 있네.

갈석은 하나의 산이 아닌 石如甬道數十里와 같은 용도이니 이와 장석암이 부합하는가?

甬道의 사전적 의미 : 양쪽에 담을 쌓은 길

상기 조건을 수구리님이 문헌적 고찰과 근거자료를 제시하면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지 않겠습니다.
     
수구리 22-03-21 23:08
   
1) 저는 갈석산 위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사곡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염철론의 험고와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에 나오는 내용이 연나라 도성 계薊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고대 중국 문헌에 나오는 전부이고 더이상의 의미있는 다른 문헌의 내용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1)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
          夫燕亦 勃碣之閒一都會也.
          연(燕) 역시 발(발해군)와 갈(갈석산) 사이에 있는 도회지이다.
          ※주) 발해를 발해군으로 보는 이유는 지금의 발해가 한나라 당시에 대해라고 불리웠고,
                    지금의 발해 바다라고 보면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서북쪽 바다이기에
                    계의 위치를 설명하는 기준으로 발해바다는 너무 넓어서 부적절합니다
                    따라서 위치를 어느정도 추정하고 알수있는 발해군으로 보는 것이 합당합니다
      (2) 염철론(鹽鐵論)의 험고(險固)
          燕 塞碣石, 絶邪谷, 繞援遼.
          연(燕)나라는 갈석산에 의해 막히고, 사곡(사하)에 의해 끊겼으며,
          요수遼水(대요수, 소요수)에 의해 둘러싸였다.

3) 연나라 도성 계薊를 하북성 형태시 거록현으로 확신하게 된 이유는
    발해군의 위치과 요수로 둘려쌓였다는 내용입니다
    한나라 시대의 발해군은 덕주시 부근이고, 덕주시에서 서쪽으로 강으로 둘러쌓인 험고는
    지금의 하북성 거록현이 유일하니 거록현이 연나라 도성인 계 薊로 보아야 합니다

4) 거록현이 연나라 도성인 계 薊이기에 장석암을 갈석산으로 비정하였고,
    형태시 계곡을 사곡으로 비정하였으며 사곡邪谷을 사하(沙河)가 발원하는 (沙谷)으로 본 것입니다
          
수구리 22-03-21 23:37
   
1)『상서』 ‘우공편’에는
 “도이島夷는 가죽옷을 가지고, 오른쪽으로 갈석을 끼고 황하로 들어온다.
(島夷皮服 夾右碣石入于河)”
--> 남쪽으로 가는데 오른쪽에 갈석산이 있다는 설명입니다

 (1) 우공시대에 황하(하수)는 안양시 동쪽에서 태행산맥을 따라 대륙택(거록현 서북쪽에 바다와 같은 큰 호수)까지 북쪽 방향으로 흘렸습니다
  ※주) https://image.baidu.com/search/detail?ct=503316480&z=0&ipn=d&word=%E6%B1%89%E6%B8%A4%E6%B5%B7&hs=0&pn=2&spn=0&di=138600&pi=0&rn=1&tn=baiduimagedetail&is=0%2C0&ie=utf-8&oe=utf-8&cl=2&lm=-1&cs=2004546440%2C3074758678&os=228817469%2C1292863117&simid=2004546440%2C3074758678&adpicid=0&lpn=0&ln=30&fr=ala&fm=&sme=&cg=&bdtype=0&oriquery=%E6%B1%89%E6%B8%A4%E6%B5%B7&objurl=https%3A%2F%2Fgimg2.baidu.com%2Fimage_search%2Fsrc%3Dhttp%3A%2F%2Fp1.itc.cn%2Fimages01%2F20200804%2F19102f419b414512a659fc53b3af8f4e.png%26refer%3Dhttp%3A%2F%2Fp1.itc.cn%26app%3D2002%26size%3Df9999%2C10000%26q%3Da80%26n%3D0%26g%3D0n%26fmt%3Dauto%3Fsec%3D1650464802%26t%3Ddc08b65b4007381dcf26e18d82264a9e&fromurl=ippr_z2C%24qAzdH3FAzdH3Fooo_z%26e3Bf5i7_z%26e3Bv54AzdH3FwAzdH3F98899n0aa_8da80l9b9%3F_u%3Dtg1jx_kjpwrw2ji5pgjof_c%26_p6wgf_%3Daaaa8l_iw58dn_gkw&gsm=3&islist=&querylist=&dyTabStr=MCwzLDQsNSwxLDYsNyw4LDIsOQ%3D%3D
중국 바이두 백과의 시대별 황하 흐름을 참조하시고요(우공시대 황하는 禹河故道)

(2) 물이 위로 역류하였다(逆上)는 역하(逆河)를 잘못 이해한 것으로 봅니다
※ 사마천 사기 하본기 제우(帝禹)
          北播為九河 同為逆河 入于海
          북쪽으로 아홉 개의 강줄기로 나누어지고 다시 합류하여 하나로 합쳐져
          역하(逆河)가 되어 바다로 흘러들었다.
          
수구리 22-03-21 23:53
   
2) 염철론에서 연나라 도성 계薊를 험고라고 했습니다
    계薊인 거록현 서쪽은 태행산맥으로 막혀있으니 갈석산인 장석암이 요새가 되는 것이고요
    연나라 도성 계가 북쪽과 서쪽, 동쪽은 요수에 둘려쌓였으니..
    남쪽 방향에 사곡(邪谷)이 있으면 염철론의 험고와 완전히 일치합니다

    연나라 남쪽은 조나라(한단시)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산서성 중부 장치시(중산국)로 가는 계곡을
    사하(沙河)가 발원하는 사곡(沙谷)으로 보았고
    험고의 사곡(邪谷)으로 본 것입니다
 
※주) 장석암도 석가장시입니다 고죽국도 저는 석가장시 부근이라고 보지만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고죽국이 장석암 입구 남쪽이면 말씀하신 진서의 내용과 일치할 수 있지만, 고죽국의 구체적인 위치를 특정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염철론의 험고의 요수(요수로 둘려 쌓였다)와 말씀하신 진서의 요수나 당태종이 건넌 요수를 다를 수 있습니다

수나라/당나라 시대의 대요수는 거록현 서쪽부터 형수시로 흐르는 부양하로 보고요
말씀하신 진서의 요수는 태행산맥에서 대륙택(지금의 부양하)으로 흘러드는 어떤 강일 수 있습니다
          
수구리 22-03-22 00:18
   
3) 말씀하신 步出夏門行 『염艷』이란 시에만 나타날뿐입니다
"步出夏門行"에서 "夏門"은 낙양 북녁 서문을 뜻하고,
워소의 아들이 북방민족(오환)에게 다라나서 북벌을 한 후에 지은 시가 "步出夏門行"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주장하시는 내용은 삼국지 위서나 알려진 내용과 다른 것으로 파악되었으니
혹시 명확한 내용이 있으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조조가 구강(양자강 남쪽인 오나라 손견의 영토로 추정됨)에 갔거나
갈석산에 올랐다는 삼국지 위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구르뫼 22-03-22 00:24
   
협우갈석에서 말하는 하는 황하가 아닙니다.
갈석은 협곡으로 양쪽으로 우갈석과 좌갈석이 20~30km정도 이어져 있으며
그 사이로 강물이 흐릅니다.
도이의 조공은 우갈석을 끼고 하로 들어오는 것이며
우공은 반대편에서 우갈석의 오른쪽으로 가보니 물이 역류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하의 역류방지를 위한 방죽이 있습니다.

역류를 하니 당연히 역하가 근처에 있을 것이며
역하의 근원인 뇌하 역시 추정되는 곳에 호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막화의 영향인지 물이 줄어들었어도 20km 정도 호수들이 있습니다.
구하에 해당되는 물길은 사라져 흘렸던 흔적만 보입니다.

조조의 염이란 시 다 읽어보고 얘기하세요.
                    
구르뫼 22-03-22 00:32
   
『염艷』
구름이 떠돌고 비가 내리니  / 雲行雨步
구강九江이 범람하였다네 / 超越九江之皋
몸소 살피다 서로 다른 의견 듣게되니 / 臨觀異同 
뜻을 품는 것을 망설이게 될 뿐 / 心意懷游豫
의당 어느 것을 따라야 할 지는 알 수 없었으니 / 不知當復何從
내가 갈석碣石에 이를 무렵에는 / 經過至我碣石
동해東海를 바라보며 마음이 못내 근심스러웠노라 / 心惆悵我東海

『관창해觀滄海』
동쪽의 갈석碣石에 임하여 창해滄海를 바라보니/ 東臨碣石 以觀滄海
물결은 일렁이고 산과 섬은 우뚝 솟았구나  / 水何澹澹 山島竦峙
수목樹木이 울창하고 초목이 무성하며 / 樹木聚生 百草豐茂
가을 바람은 소슬蕭瑟하고 홍파洪波는 솟구치니 / 秋風蕭瑟 洪波湧起
해와 달의 운행運行이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으며 / 日月之行 若出其中
찬란한 은하수도 마치 그 안에서 난 것 같도다 / 星漢燦爛 若出其裏
노래로 나의 뜻 읊을 수 있음을 다행스레 여기노라 / 幸甚至哉 歌以詠志

여기에서 산도(山島)의 의미는 갈석이 있는 지형을 추후 공개되면 아실 것 입니다.
                         
수구리 22-03-22 00:40
   
시의 내용은 알고 있습니다
조조가 구강에 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 내용이고요
조조가 갈석산에 올랐다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는 문헌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의 내용을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수구리 22-03-22 00:43
   
♥♥♥♥♥♥♥
지금과 같이 구르뫼님 댓글처럼 주장하시면
♥♥♥♥♥♥♥
토론이나 대화를 할 필요가 없지요 토론도 되지 않습니다

"入河逆上 : 하(河)로 들어가니물이 위로 역류하였다." 에 대해 구르뫼님이 주장하는

1) '우공은 반대편에서 우갈석의 오른쪽으로 가보니 물이 역류한다는 것입니다.
이곳에는 하의 역류방지를 위한 방죽이 있습니다." 와

2) "역류를 하니 당연히 역하가 근처에 있을 것이며
역하의 근원인 뇌하 역시 추정되는 곳에 호수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막화의 영향인지 물이 줄어들었어도 20km 정도 호수들이 있습니다.
구하에 해당되는 물길은 사라져 흘렸던 흔적만 보입니다."

에 대한
-----------------------
구르뫼님 주장을  확인할 수 있는 고대(춘추시대) 문헌 내용을 제시해 주세요
(공자가 말한 상서 내용이니 춘추시대 문헌 내용을 제시해야 합니다)
                         
수구리 22-03-22 01:15
   
"入河逆上 : 하(河)로 들어가니물이 위로 역류하였다." 에 대해
-------------
"물이 역류하니 역류를 막는 둑을 만들었을 것이고, 둑이 있으니 호수가 있을 것이다"라는
-------------
구르뫼님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상상인것 같은데..
자의적인(개인적인) 해석과 일치하는 장소는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치 않습니다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면
자의적인/개인적인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문헌을 제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수구리 22-03-22 00:38
   
4) 봉선서 내용
昔三代之 皆在河洛之閒 : 옛날 3대의 하(夏), 은(殷), 주(周) 수도가 모두 있었던 황하와 낙하(洛河)의 사이였다

는 내용만 있고, 갈석산이 하락지간에 있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시 정확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사마천 사기 하본기 제우(帝禹)에
道九山. 아홉 개의 산의 산맥에 도로를 개통했다.
太行、常山至于碣石,入于海.  태행산 상산 갈석산에 이르고,  바다로 들어간다.

에서 바다를 대륙택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구리 22-03-22 00:47
   
5) 石如甬道數十里  갈석산은 용도(양쪽에 담을 쌓은 길)가 수십리는

장석암 계곡길(용도와 비슷함)이 대략 20KM정도이니 4~50리입니다
               
구르뫼 22-03-22 00:51
   
상기 댓글은 문헌과 일치하는 장소가 있다는 말인데
무슨 문헌내용을 제시하나요?
추후 공개되면 문헌과  일치하는지 검증하시면 되지 않나요.
                    
수구리 22-03-22 00:55
   
"入河逆上 : 하(河)로 들어가니물이 위로 역류하였다." 에 대해
-------------
"물이 역류하니 역류를 막는 둑을 만들었을 것이고, 둑이 있으니 호수가 있을 것이다"라는
-------------
구르뫼님의 자의적인 해석이나 상상인것 같은데..
자의적인(개인적인) 해석과 일치하는 장소는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치 않습니다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면
자의적인/개인적인 해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문헌을 제시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구르뫼 22-03-22 01:35
   
조조가 갈석에 갔으니 관창해를 썼겠죠.
이제 세부적으로 사서를 읽는 중이라 제가 아는 견해에서는 사서기록에서 못 본것 같네요,
보출하문행에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때 써진 것 같은데
오환을 물리치고 개선하는  길에 썼다고 하니 찾아봐야죠.

뇌하 추정지는 방죽과 관련이 없는 장소이며
방죽이 있다함은 역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하락지간과 갈석은
갈석은 연나라 땅에 있었으며 연은 주나라 제후국이니 하락 사이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구리 22-03-22 01:45
   
"당시 구강(九江)이 범람하여 이를 시찰하고 오는길에(經過) 지나치다 갈석을 가게 되는데
구강은 동정호 근처를 말하는데 구강에서 낙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일부러 형태시까지 갔는가?"

는 뭔가요? 시의 내용으로 저렇게 주장해도 되나요?
(어떤 근거로 주장하셨나요 시 내용만 있나요? 시 내용만으로 저렇게 주장하면 곤란합니다)

"갈석산에 올랐다"
"구강에 갔었다" 라고 각각 주장했으면 저는 관심이 없었고요 제가 이야기할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시의 내용만으로 구강에 가서 돌아오는 길에  갈석산에 올랐다고 주장하면서
 구강에서 돌아오는 길에 갈석산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니..

구강 간 문헌 내용과 돌아오는 길에 갈석산에 올랐다는
문헌 내용을 반드시 제시해야 합니다
                         
구르뫼 22-03-22 01:55
   
1. 經過는 시간의 지나다는 뜻으로 어디를 지나다 들리다는 의미가 있어
구강에서 수구리님이 비정한 장석암에 조조가 일부러 갔을까? 물어보는 것이었네요.
2. 구강을 시찰하고 오는 길에 갈석을 갈 수 있다는 것은 둘 사이에 거리가 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입니다.

조조의 시는 문헌이 아닙니까?
                         
수구리 22-03-22 01:59
   
조조의 시는 문학 영역이기에 사실이 포함될 수도 있지만..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직접적인 1차 사료가 될 수 없습니다)
-----------
하지만 그만 하렵니다 "댓글 끝" 여기까지...
----------
시의 내용이 아니라,
구강에서 돌아오는 길에 갈석산에 간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문헌 제시없는 답변 제겐 의미 없습니다(이것이 교차 검증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토론하는 것 자체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헌 해석과 생각은 각자 마음대로 하더라도 개인 자유입니다)
 
 
Total 5,26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5268 [한국사] 우리 고대사 #7 : 맥족의 이동 윈도우폰 03-22 248
5267 [한국사] 우리 고대사 #12 : 한민족과 재가승 윈도우폰 03-22 291
5266 [한국사] 우리 고대사 #11 : 한반도의 왜(倭) 윈도우폰 03-22 171
5265 [한국사] 우리 고대사 #10 : 진국의 한(韓)족 윈도우폰 03-22 297
5264 [한국사] 우리 고대사 #9 : 고조선 유민과 신라 윈도우폰 03-22 113
5263 [한국사] 우리 고대사 #8 : 고조선의 이동 윈도우폰 03-22 251
5262 [한국사] 우리 고대사 #6 : 예족의 이동 윈도우폰 03-22 92
5261 [한국사] 우리 고대사 #5 : 맥족과 예족 윈도우폰 03-22 258
5260 [한국사] 우리 고대사 #4 : 단군조선과 토템 윈도우폰 03-22 104
5259 [한국사] 우리 고대사 #3 : 홍산문화와 적봉지역 주민 윈도우폰 03-22 272
5258 [한국사] 우리 고대사 #2 : 하화족과 동이족 윈도우폰 03-22 115
5257 [한국사] 우리 고대사 #1 : 우리 민족의 조상 윈도우폰 03-22 301
5256 [한국사] 《인류와 한국조선의 변천사 - 한경대전》 (1) 에피소드 03-21 160
5255 [한국사] 아래 지도에 대한 내 관점... 고조선 중심의 열국시대… (4) 윈도우폰 03-21 390
5254 [한국사] 위만조선 시기 판도 (2) 위구르 03-20 266
5253 [한국사] 우리는 동이가 아니다. (2) 윈도우폰 03-19 577
5252 [한국사] 2022년 고고학계의 경주 월성 발굴조사 보고서 (6) 홈사피엔스 03-19 268
5251 [한국사] 삼국사기 이해 (1)신라사 (7) 홈사피엔스 03-16 587
5250 [한국사] 《(고)조선의 "가르침"과 직접민주주의 "국민의원"》 에피소드 03-14 333
5249 [한국사] 《고구려 최초의 이름은 '홀본(일본)' 이다》 에피소드 03-14 549
5248 [한국사] 《안문관,연운16주,송나라.. 화하족 관점 대륙계보》 에피소드 03-09 696
5247 [한국사] [한겨례] 2024/3/8 [단독] 고대 일본 권력층 무덤 장식품… (2) 외계인7 03-09 494
5246 [한국사] 《고려 조상님들이 건축한, 서경(북경성)의 모습》 (7) 에피소드 03-08 645
5245 [한국사] 발해 멸망 이유 - 야율아보기의 쿠데타 (4) 하늘하늘섬 03-05 1856
5244 [한국사] 역사적 관점에서 조심해야할 사항 (8) 하이시윤 03-04 584
5243 [한국사] [ FACT ] 역사학자 <임용한> , 고려거란전쟁 전투씬… 아비바스 03-04 474
5242 [한국사] 《고려도경으로 알수있는 정확한 "고려 서경" 위치》 (2) 에피소드 03-03 625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