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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18 07:05
[한국사] 중국 산동성에서 고조선의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는데 한성 백제의 유물은?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1,458  

[출처] 수구리의 우리고대사(사마천 사기등 중국 고대 문헌의 지리적인 고찰)

■ 중국 산동성은 고조선 영토였고 한성백제 영토였습니다

    고조선 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2007년 중국 산동성에서 출토되었고,

    산동성에는 고인돌 유적이 매우 많이 있었는데 중국이 대부분 파괴하였습니다

 

 

■ 한성백제 유적/유물이 한반도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 이유는?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서동이전에 따르면
    
 초기백제인 한성백제(漢城 百濟)의

     하남(河南) 위례성은 황하 남쪽의 위례성이고,(고대에는 황하를 줄여서 하河라고 했습니다)

     한성은 한나라 강의 의미인 한수漢水 남쪽 성이니 한성백제는 중국 산동성에 있었으니..
     한반도에 초기 백제인 한성漢城백제 유적/유물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풍납토성 등 한강 주변의 고대유적들은 

     한성백제 유적이 아니라 고조선 후예들(중마한)의 유적일 수도 있습니다

 

 

■ 백제와 신라가 고구려로부터 빼앗은 

   한성(평양)은 요동반도 요양근처의 고구려 한성(평양)으로 봅니다

 

    『수서 동이열전(隋書 東夷列傳) 』 

    高句麗 都於平壤城, 亦曰長安城, 東北六里, 隨山屈曲, 南臨浿水. 復有國內城·漢城, 並其都會之所, 其國中呼爲 「三京」.

    고구려 도성은 평양성으로 장안성이라고 하는데, 동서가 6리이며 산을 따라 굴곡이 지고 남쪽은 패수에 닿아 있다.
    또 국내성과 한성이 있는데, 모두 도회지로 그 나라에서는 「삼경」이라 일컫는다.

 

    서해(황해)를 중심으로 구글 지도를 보면..
    삼국시대 선박 건조 기술과 항해술을 고려하면 한반도 중부(한강)에서 산동반도로 가는 것은 쉽지 않고요
    지금의 요동반도에서 산동반도가 가는 것은 섬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쉬워 보입니다

    따라서 중국 고대 여러 문헌들과 삼국시대 선박 건조기술과 항해술을 고려해 보니..

    신라가 백제로부터 빼앗은 한성(중국 대륙으로 통하는 중요한 지역)은 지금의 서울이 아니라

    요동반도에 있었던 태조 왕건 고려의 서경인 요하근처 요령성 평양(한성)으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 고대 요동과 요서를 구분하는 기준은 요수가 아닙니다

 

     고대 요동은 요동군입니다(고대 요동은 요수 동쪽 지역을 나타내는 일반 명사가 아닙니다)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군과 요서군를 나누었다는 문헌 내용은 없으니
     요동군과 요서군을 구분하는 기준은 요수가 아닙니다

     요동군과 요서군을 나누는 기준이 요수가 아닌 근거는
     후한시대에 요서군을 나누어 요동속국을 설치했고,
     요동속국이 조조의 위나라 시대에 창려군이 되고 그 후에 요동군에 포함됩니다

 

 

■ 고조선 대표유물인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이 중국 산동성 여러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1)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중국 산동성 여러장소에서 출토되었고
         산동성에 많이 있었던 고인돌은 중국이 대부분 파괴했습니다
     

     2) 중국 산동성에서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고 고인돌이 있었지만...
         우리나라 대학 역사교수들은 산동성에는 고인돌도 비파형동검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3) 산동성 비파형 동검 출토 내용

         (1) 중국 산동성에서 고조선 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중국 산동성에서 발견되었다는
               논문을 2007년 중국학자가 발표하였고.
         (2) 중국 산동성에 있었던 수많은 고인돌을 중국이 파과하였지만 지금도 산동성에 고인돌이 존재하는 증거와
         (3) 산동성의 고조선 유물에 대해 우리나라 대학역사교수들이 거짓말을 어떻게 하는지

          다음 동영상에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m6RlPZ2v7dU&t=543s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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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시윤 22-03-18 07:44
   
■ 중국 산동성은 고조선 영토였고 한성백제 영토였습니다

    고조선 대표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2007년 중국 산동성에서 출토되었고,

    산동성에는 고인돌 유적이 매우 많이 있었는데 중국이 대부분 파괴하였습니다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ㅡ

커뮤니티에서 글을 쓰더라도 출처를 밝히시는게 맞습니다.
1. 비파형동검이 2007년에 출토되었다.
→그렇다면 보고서가 있을 겁니다. 그걸 제시하여 주세요
2. 고인돌유적을 대부분 파괴하였다
→파괴했다는 뉴스나 보고서가 있을 겁니다. 그걸 제시하여 주세요
3. 산동성에서 비파형동검이 나오고 고인돌이 있으니 고조선영토였다
→대체로 산동성에 래이족이 살았다는 것은 알고있죠. 하지만 바로 고조선의 영토였다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죠. 연결고리를 제시하여 주세요
4. 산동성은 한성백제의 영토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가 한성백제라고 주장하시는거면 산동성에서 한성백제의 유적유물이 나왔다라고 주장하는 논문이나 보고서를 제시하여 주세요
     
수구리 22-03-18 07:50
   
1) (사단법인) 대한사랑의 매림역사TV 동영상에서 제시된 논문을 직접 확인하시면 됩니다
2) 고인돌 파괴도 KBS 역사스페셜 내용이니 확인이 필요하시면 직접 요청하시면 되겠지요
3) 중국 고대 사서 내용으로도 충분히 검증되고 확인이 되지만..
식민사학자들인 역사교수들이 저런 논문을 쓰겠습니까?(오히려 논문 통과를 방해하겠지요)
 10년쯩 지나면 논문이 나올 것이니. 조급해하지 마시고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이시윤 22-03-18 07:51
   
유투브에 나오는 주장을 근거로 삼으시면 역사연구가가 할 행동은 아니죠. 사서와 논문과 발굴보고서를 제시하셔야죠. 전 역사연구가 아니기에 상관없지만요. 제가 글을 올릴땐 연구가님들의 평가를 받고자 올리는 것이지만 수구리님은 역사연구가이신데 근거를 유투브로 삼으시면 곤란하죠.
     
수구리 22-03-18 08:11
   
제 답변이 부족하시더라도 직접 확인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이고요

KBS 역사스페셜 보도 내용도 믿지 못하겠고,
매림역사 TV에서 (사단법인) 대한사랑의 사무총장이 알리는 명확한 근거도 믿지 못하시면
본인이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정확한 역사적인 진실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되겠지요

그리고 직접 확인한 결과
제 글에 문제가 있다면 직접 확인하신 내용으로 글을 쓰시면 됩니다

직접 조사하고 찾아서 알게된 내용을 본인이 직접 글을 쓰서 주장을 하는 것이
역사 연구자나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해야하는 역활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이시윤 22-03-18 09:07
   
그러시다면
앞으론 역사연구가로 대접하지 않을게요.
그냥 소설가로 대우할게요
     
수구리 22-03-18 09:18
   
그리고 산동성의 동이족은 고조선 사람들이었고
산동성은 마한 진한 변한의 영토였고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이 살던 곳이라고
사마천 사기와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 명확히 나와 있으니...

산동성 동이족이 우리 역사와 관계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원래부터 없는 것이고 거짓말을 한것입니다

산동성의 동이가 우리 조상이지만 우리와 관게없다는 주장의 근거는
1) 산동성에 고인돌과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지 않았다는 엉터리 주장과
2)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을
엉터리로 해석한 일제 식민사학을 추종하는 대학 역사교수들의 주장으로 알고 있는데..

산동성에서 비파형동검과 고인돌의 발견으로 산동성이 고조선 영토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삼국지 위서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마한,진한, 변한이 산동성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으니
산동성 동이족이 우리들의 선조였다는 분명한 사실이 밝혀졌다고 봐야 합니다
          
위구르 22-03-18 13:16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마한,진한, 변한이 산동성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으니''

https://m.blog.naver.com/hanhyi/221417021712

어딜 봐서 산동성에 있다고 기록돼있냐 치매환자야
          
위구르 22-03-18 13:17
   
○ 韓(한)

<韓>有三種: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辰>/$殿本《考證》<王會汾>謂《晉》·《梁》二書皆作[弁韓], 當從改. 今按: 《魏志》亦作[弁韓].$/. <馬韓>在西, 有五十四國, 其北與<樂浪>, 南與<倭>接. <辰韓>在東, 十有二國, 其北與<濊貊>接. <弁辰>在<辰韓>之南, 亦十有二國, 其南亦與<倭>接. 凡七十八國, <伯濟>是其一國焉. 大者萬餘戶, 小者數千家, 各在山海閒, 地合方四千餘里, 東西以海爲限, 皆古之<辰國>也. <馬韓>最大, 共立其種爲<辰王>, 都<目支國>/$《魏志》作[治<月支國>]. 《校補》謂《魏志》及《通志》[目]均作[月], 附載五十餘國亦作[月支國], 則此作[目支]誤也. 今按: <月支>乃<西域>國名, 《魏志》及《通志》之作[月支], 或後人習見[月支]之名而臆改與? 當考.$/, 盡王<三韓>之地. 其諸國王先皆是<馬韓>種人焉.

'한'은 세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마한'이요, 둘은 '진한'이요, 셋은 '변진'이다.[왕회분이 진과 양 두 책에 모두 '변한'이라하미 마땅히 고쳐 따라야 한다. 위지도 역시 '변한'이라 기록했다.] '마한'은 서쪽에 있어, 오십사개국이 있으며 북으로 '낙랑'에 접하고, 남으로 '왜'에 접한다. '진한'은 동쪽에 있어 십이개국이며 북으로 '예맥'에 접한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으며 역시 십이개국으로 남쪽은 역시 '왜'에 접한다. 무릇 칠십팔국으로 '백제'는 그 일국이다. 큰 나라는 만여호를 거느리고 작은 나라는 수천여가를 거느리니 각각 산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다. 땅은 합하여 사천여리이고 동서로 바다를 경계로 하니 모두 옛 '진국'이다. 마한은 가장 커서 함께 그 무리에서 '진왕'을 세워, '목지국'에 도읍하니,[위지에는 '월지국(月支國)에서 다스렸다.'하고 위지에서 통지까지 '目'을 '月'으로 썼고, '오십여개국이 역시 월지국이라 짓고 따르니,' 곧 이것은 '목지'의 잘못이다. '월지'는 '서성'국명이다. 위지에서 통지까지 '월지'로 기록하니 '월지'라는 이름이 후세사람이 혹 보고 익혀 고친 것이 아닐까? 마땅히 생각해봐야 한다. ] 다하도록 삼한땅에서 왕노릇하였다. 그 여러나라의 왕은 모두 '마한'의 종류에서 먼저 시작하였다.


<馬韓>人知田蠶, 作 布. 出大栗如梨. 有長尾 , 尾長五尺. 邑落雜居, 亦無城郭. 作土室, 形如 , 開戶在上. 不知 拜. 無長幼男女之別. 不貴金寶錦 , 不知騎乘牛馬, 唯重瓔珠, 以綴衣爲飾, 及縣頸垂耳. 大率皆魁頭露 ,{魁頭猶科頭也, 謂以髮 繞成科結也.  音計.} 布袍草履. 其人壯勇, 少年有築室作力者, 輒以繩貫脊皮,  以大木,  呼爲健. 常以五月田竟祭鬼神, 晝夜酒會,  聚歌舞, 舞輒數十人相隨 地爲節.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 號爲[天君]. 又立蘇塗,{《魏志》曰:[諸國各有別邑, 爲蘇塗,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蘇塗之義, 有似浮屠.]} 建大木以縣鈴鼓, 事鬼神. 其南界近倭, 亦有文身者.

'마한'사람들은 논농사와 양잠을 알고 면포를 지었다. 큰 밤이 나오는데 배만했다. 긴꼬리가 있는 닭이 있어 길이가 오척이나 되었다. 읍락이 섞이어 있으니 또한 성곽이 없다. 흙으로 집을 짓고 사니 모양이 무덤과 같고 출입구가 위로 있다. 꿇어 업드려 절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어른과 어린이, 남녀가 다름이 없고, 금은 보화와 비단 그물의 귀함을 모르며 소나 말을 타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오직 큰 구슬로써 옷에 꽤메어 치장하고 귀에 달아 늘어뜨리니 목에까지 이르렀다. 큰 무리를 이끄는 자는 괴두에 상투를 틀고[괴두는 마치 과실수와 같다. 터럭을 둘러 과실과 같이 모여 묶었다. ' '음은 '計'이다.] 베옷에 솜을 틀고, 신을 신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장대하고 용감하여 어린애들도 성을 쌓고 집 짓는데 힘을 쓰고, 문득, 허리에 줄을 매어 큰 나무에 매달리어 소리치며 강건함을 부르짓었다. 항시 오월이면 논경계에서 귀신에 제사지내며 주야로 술마시며 모임을 가지고, 무리지어 노래하고 춤추다. 문든 수십인이 서로 춤추며 땅을 밝으며 따랐다. 시월 농사일을 마치면 또한 이와 같이 하였다. 여러나라의 읍락이 한 사람을 주인으로 천신에 제사지내는데 이를 '천군'이라한다. 또한 소도를[위지에 말하길 제국에는 각각 다른 읍이 있으니 '소도'라 한다. 나라가 망하여 도망가 이에 이르면 모두 이를 잡지 못한다. '소도'를 의라하니 이는 '부도(불탑)'와 같음이 있다.] 세워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기었다. 그 남쪽경계는 왜와 가까와 역시 몸에 문신을 하였다.

<辰韓>, 耆老自言<秦>之亡人, 避苦役, 適<韓國>, <馬韓> 割東界地與之. 其名國爲邦, 弓爲弧, 賊爲寇, 行酒爲行觴, 相呼爲徒,/$按:<王先謙>謂《魏志》[爲]上有[皆]字.$/ 有似<秦>語, 故或名之爲<秦韓>. 有城柵屋室. 諸小別邑, 各有渠帥, 大者名臣智, 次有儉側, 次有樊 ,/$按:《集解》引惠棟說, 謂《魏志》[ ]作[穢].$/ 次有殺奚, 次有邑借.{皆其官名.} 土地肥美, 宜五穀. 知蠶桑, 作 布. 乘駕牛馬. 嫁娶以禮. 行者讓路. 國出鐵, <濊>·<倭>·<馬韓>  從市之. 凡諸(貨)[貿]易, 皆以鐵爲貨./$據殿本改. 按: 汲本[貿易]作[質易].$/ 俗憙歌舞飮酒鼓瑟. 兒生欲令其頭扁, 皆押之以石.{扁音補典反.}

'진한'은 늙은 노인이 말하길 '진나라'에서 도망한 사람이다. 고역을 피하여 달아나 '한국'에 이르르니, '마한'이 동쪽 경계를 나누어 주었다. 각나라를 '방'이라 하고 궁을 호라 하고 도적을 '관'이라하고, 술을 '상'이라 하고 서로 부르는 것을 '사'라 하니[위지에는 '爲'위에 '皆'자가 있다.] '진'나라 말과 같음이 있다. 고로 혹 말하길 '진한'이라 한다. 성책과 집이 있고, 모두 작은 별읍이 있어 각각 우두머리가 있다. 큰 우두머리를 '신지'라 하고 다음은 '검칙' 다음은 '번지'[위지에는 ' '이 '穢(예)'로 적혀 있다.] 다음은 '살해' 다음은 '읍차'이다.[모두 이는 관명이다.] 토지가 비옥하고 좋으며 오곡이 마땅하고 양잠을 알아 비단을 지었다. 소와 말을 타고 시집가고 장가가는데 예가 있고 길가는 자는 서로 길을 양보하였다. 나라에 철이 나오니 '예', '왜', '마한'이 함께 쫓으니 이를 거래 하였다. 무릇 철로 무역하니, 모두 철을 재화로 하였다. 풍속이 가무에 음주하고 북치고 거문고 타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우두머리를 시키고자 머리를 편편하게 하니, 모두 돌로써 머리를 눌렀다. ['扁'음은 '보전'으로 바뀌었다.]

<弁辰> 與<辰韓>雜居, 城郭衣服皆同, 言語風俗有異. 其人形皆長大, 美髮, 衣服 淸. 而刑法嚴峻. 其國近<倭>, 故頗有文身者.

'변진'은 '진한'과 섞이서 산다. 성곽과 의복이 모두 같다. 언어 와 풍습은 다름이 있으니 사람의 형태가 모두 장대하고 아름다운 머리를 가지고 있고 의복은 밝은 것을 두르며, 형벌과 법은 엄하다. 나라 가까이 '왜'가 있어 고로 두루 몸에 문신을 한다.

初, <朝鮮王><準>爲<衛滿>所破, 乃將其餘衆數千人走入海, 攻<馬韓>, 破之, 自立爲<韓王>. 準後滅絶, <馬韓>人復自立爲<辰王>. <建武>二十年, <韓>人<廉斯>人<蘇馬 >等詣<樂浪>貢獻.{<廉斯>, 邑名也.  音是.} <光武>封<蘇馬 >爲<漢><廉斯邑君>, 使屬<樂浪郡>, 四時朝謁. <靈帝>末, <韓>·<濊> 盛, 郡縣不能制, 百姓苦亂, 多流亡入<韓>者.

처음에 조선왕 '준'이 '위만'에게 깨져 이에 장수와 남은 무리 수천을 이끌고 바다로 들어가 도망하여, 마한을 공격하고 이를 깨뜨린후 스스로 '한왕'에 올랐다. '준'후로 망하여 끊어졌다. '마한'사람들이 다시 스스로 '진왕'이라 하였다. '건무' 이십년 '한', '염사', '소마시' 사람등이 이르러 '낙랑'에 조공하였다.['염사'는 읍의 이름이다. ' '음은 '是'이다.] '광무'가 '소마시'를 한의 '소마읍군'에 봉하고 사신으로 '낙랑군'에 속하게 하니 사시 알현하였다. '영제' 말에 '한','예'가 함께 흥하고, 군현이 능히 제도 하지 못하자 백성들이 괴롭고 어지러워 많이 떠돌아다니다. '한'으로 들어갔다.

<馬韓>之西, 海島上有<州胡國>. 其人短小,/$按:《集解》引沈欽韓說, 謂《魏志》[人]下有[差]字.$/  頭, 衣韋衣, 有上無下. 好養牛豕. 乘船往來貨市韓中.

마한의 서쪽 바다섬 위에 '주호국'이 있다. 사람들이 작고,[위지에는 '人'자 밑에 '差'자가 있다.] 머리를 깍고 가죽옷을 입는데 위만 있고 아래는 없었다.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하고 배를 타고 왕래하며 '한'에서 재화를 교역하였다.



두뇌도 없는 짐승 종자새끼
          
수구리 22-03-18 13:47
   
○ 濊(후한서 동이열전 내용)
濊 北與高句驪·沃沮, 南與辰韓接, 東窮大海, 西至樂浪. 濊及沃沮·句驪, 本皆朝鮮之地也.
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옥저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해 있고, 동쪽은 대해에 닿으며, 서쪽은 낙랑에 이른다. 예 및 옥저·고구려는 본디 모두가 [고] 조선의 지역이다.
(그리고 한韓이 모두 옛 '진국'이라고 했으니 마한,진한,변진도 고조선 지역입니다)

元朔 元年(B.C.128), 武帝年也. 濊君南閭 畔右渠, 率二十八萬口詣遼東內屬, 武帝以其地爲蒼海郡, 數年乃罷. 【集解】惠棟曰, 顏籀云, 南閭者, 薉君之名.
원조 원년(B.C.128) 에 예의 임금 남여 등이 우거를 배반하고 28만구를 이끌고 요동에 귀속하였으므로, 한무제는 그 지역으로 창해군을 만들었으나, 수년 후에 곧 폐지하였다.
(그래서 창해군이 폐지된 지역은 예전의 예濊로 남게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 平準書(사마천 사기 평준서: 한무제 BC 128년 내용)
置滄海之郡,則燕齊之閒靡然發動.  창해군(滄海郡)을 설치하니 연(燕), 제(齊) 사이가 바람에 휩쓸리듯 소란해졌다.
(고조선 영토에 한나라 창해군을 설치했으니 고조선인들이 걱정하고 반발해서 소란스럽다고 표현했을 것이고, 고조선인들의 반발로 창해군이 몇년 후에 폐지되었기에..
예濊의 정확한 위치는
제나라와 연나라 사이인 하북성 중부 동부해안 부근으로 비정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
창해군인  예濊의 정확한 위치는 제나라와 연나라 사이인 하북성 중부 동부해안 부근이고
1) 예濊의 남쪽이 진한이니 진한의 위치는 산동성 동부가 됩니다
2) 진한 서쪽인 산동성 동부 서쪽이 마한의 위치이니 마한은 산동성 서부가 되고요
3) 예濊의 서쪽이 낙랑이니 낙랑의 위치는 하북성 중부가 됩니다
4) 예濊의 북쪽에 고구려와 (동)옥저가 있으니
    고구려와 (동)옥저의 위치는 하북성 북부가 됩니다

----------
누가  치매환자이고, 두뇌도 없는 짐승 종자새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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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는 분들은 잘 아실 것으로 판단됩니다
               
위구르 22-03-18 20:05
   
예는 북쪽으로는 고구려·옥저와, 남쪽으로는 진한과 접해 있고, 동쪽은 대해에 닿으며, 서쪽은 낙랑에 이른다. 예 및 옥저·고구려는 본디 모두가 [고] 조선의 지역이다. <- 산동 운운할려면 이걸로는 안돼지 빡대가리야 역사 연구 방법 몰라서 이 지랄이냐

그리고 니가 산동에서 한반도 사이를 왕래하기 어렵다는 주장과 백제가 산동에 건국했다는 주장이 상충하는데 그건 왜 언급이 없냐. 그걸 몰라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638 에서 답도 안함? 그러니까 널 짐승으로 취급하는거야 발정난 원숭아
위구르 22-03-18 08:52
   
''한성은 한나라 강의 의미인 한수漢水 남쪽 성이니 한성백제는 중국 산동성에 있었으니..
한반도에 초기 백제인 한성漢城백제 유적/유물이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껄여놓고 뒤에는

''삼국시대 선박 건조 기술과 항해술을 고려하면 한반도 중부(한강)에서 산동반도로 가는 것은 쉽지 않고요''

이러면 백제가 산동에서 건국했다가 무슨 수로 이 땅에 왔다는거냐 멍청아.

근거도 없이 상식으로 사실인 양 지껄이는게 지겹지도 않냐
구르뫼 22-03-18 14:45
   
댓글에 저를 언급한 걸 보니 어제 많은 일이 있어나 보네요.
어제 사기정의 원문 입니다.
史記集解 卷88 진장성을 설명하는 기록에 임조에서 요동을 언급하며 요동에 대해
遼東 [正義]  遼東郡在遼水東 始皇長城 東至遼水 西南至海之上

1.영진현 밑의 부양하가 요수인 경우 계현(거록현)이 요수 동쪽, 정주(덕주시) 역시 동쪽
부양하(호로하)를 건너가면 요수는 남북 개념이 되어 요동성이 요북성이 되는 이상한 상황

2. 업에서 바로 유주(형태시)로 가면 되는 것을
업쪽에 동쪽으로 덕주에 가고 다시 서쪽으로 형태시로 가는 당태종의 이상한 행보
이를 믿으라고 하면 안됩니다.정상적 사고로 이런 행군은 미치지 않고는 불가능

3. 당태종은 유주에서 북평을 걸쳐 요택과 요수를 건너는데 북평은 어디인가?

4. 요수의 서쪽 즉 부양하의 서쪽 어디에 진장성이 있고 서남쪽에 해가 있는지 확인부탁합니다.

5. 낙랑군을 하북성 중부라 했는데 낙랑군에 서쪽으로 흘러 해로 들어가는
패수 열수 대수는 어떻게 비정하시는지 묻고 싶네요.
     
수구리 22-03-18 14:53
   
사기정의는 고구려 멸망후에 당나라 측전무후 시절의 장소절이라는 학자가
BC 100년 경의 사마천 사기를 800년 후인 서기 700년경에 해석한 문헌입니다

따라서 사마천 사기나, 한서지리지, 후한서 지리지
그리고 당태종 직접 편찬 지시한 진서지리지에도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군과 요서군을 나누었다는 내용이 없으니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요서를 나누었다는 장소절의 주장은 근거없는 장소절 개인의 의견으로 봅니다
          
구르뫼 22-03-18 14:59
   
당태종은 북평에서 요택과 요수를 건넙니다.
요동과 요서를 요수 기준이 아니라고 하여도(수구리님 주장)
당태종이 요수를 건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럼 상기 1~5번 답변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수구리 22-03-18 15:16
   
어느 기록에 당태종이 북평에서 요택과 요수를 건넜다는 내용이 있는지요?
(제 기억으로는 구당서 신당서에는 없는 내용 같은데...)
     
수구리 22-03-18 15:05
   
1번은 이미 답변드린 내용이고요
2번은 당나라 시절에 유주와 정주가 이웃에 있었으니 전혀 이상하지 않고요
(구르뫼님은 정주와 유주를 어디에 비정하시는지 궁굼하고요
유주와 정주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시면 이상해 보이겠지요)

사실은 구당서 기준으로(신당서는 큰 부분은 비슷하지만.. 다르게 표현된 내용이 있습니다)
당태종이 정주에, 당군이 유주에 있었다는 명확한 내용이 없습니다 당군이 유주에 있었다고 문헌 내용이 있고,
태자가 정주에 있었다는 내용이 있지요
다만 다른 내용으로는 당태종이 정주에서 요동으로 떠나는 당군을 격려했다는 내용이 있으니,
일반적으로 당군은 유주, 당태종은 정주라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유주에서 요동으로 가는 방향에 정주가 있으니
유주가 형태시 동쪽 부근, 정주가 덕주시 서쪽 부근으로 보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
답변은 여기까지 하고요(나머지 질문한 내용 중 상당수는 제가 쓴 글에 이미 있지만..)
----------------
3번은 어디에 나오는 문헌내용인지 알려주시고요

위만조선, 한사군 위치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제가 질문 드립니다 그래야 공평하지요?
4번 요수를 어느강으로 보시는지?..
5번 패수, 열수, 대수를 어느강으로 보시는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의 흐름이 많이 변할 수 있는 하북평야 이기에
고대 강의 흐름으로 지금의 강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구르뫼 22-03-18 15:51
   
3번은 資治通鑑/卷197 645년 5월20일(丁巳:음4월20일) 車駕至北平 북평에 도착

곤란한 질문이었나 보네요...
하북성 중부에는 서쪽으로 흐르는 강이 거의 없지요.
요수가 북쪽으로 흐르는다는 것도 수구리님 때문에 처음 알았고요.
전에도 말했지만 이미 수구리님이 비정한 위치는 전쟁시뮬레이션 등 다양하게 해보고
최종 탁록성이 있는 하남 신향시 부근을 제외하고는 가설 부적절으로 폐기했습니다.

좀더 사서의 내용만이 아니라 주변 변수도 활용하시면 좋을듯 합니다.
               
수구리 22-03-18 15:59
   
북평에 도착했다는 내용이네요
고구려 침공시 당태종이 북평에서 요택과 요수를 건넜다는 내용이 아니군요!!!

질문하신 내용에 대해 곤란하지 않고요 저는 답변만 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토론을 하려면 서로 주고 받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남성이나 산서성 남부에서 요수나 요동을  찾고, 주장하는 내용도 알고 있지만...
주장하시는 것은 그분들 자유이기에 관여하거나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요수 요동을 하남성 하내지역과 산서성 남부로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이을형 숭실대 전 법대 교수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역사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 틀린 위치 비정으로 보고 있습니다
( 토론할 기회가 찾아오면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요..)
                    
구르뫼 22-03-18 21:28
   
저는 섬서성에서 자료를 조사중이기에 적은 자료로  비정을 할 수 있으나 시간을 두고 조사중입니다.
상기 하남 신향현과 위현 쪽에서 고증이 수구리님 주장보다 사서에 더 부합하네요.
낙양  비간묘 업 정주 유주 북평 요택 요수 마수산 요동성 안시성
당대 교통로와 일치하는 주장을 하시는 분들도 있으며
당대 교통로를 무시한 진군을 믿으라니 ???

그리고 형태시와 덕주시가 이웃하는 거리라니 직선거리  170km가 이웃 거리라니 헉...
당태종이 북평에 도착하고 이세적의 뒤를 따라 가는데
아무리 아전인수한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않나요.
그래도 사기나 한서 등 상고사를 연구해 나름대로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보기 좋아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네요.
왜 여러 사람이 수구리님에게 근거자료를 요구하는지 알면서도
그래도 기대했었는데 ???...
                         
수구리 22-03-18 21:46
   
■1) 제가 이해를 못하게 답변했을 수도 있네요..

형주시 중심부가 아니라 형수시 동쪽이고요.  덕주시 중심이 아니라 덕주시 서쪽이면..
그리 먼거리가 될 수가 없지요

그리고 한서 지리지 기준으로 유주가 탁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진서 지리지 기준으로 보면
 유주는 범양국, 연국, 북평국, 상곡군, 광녕국, 대국, 요서군입니다
※주) 지금의 형태시와 형수시의 부양하 남쪽지역이 당나라 유주의 일부로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구당서를 기준으로 보면
정주 가까은 곳의 유주의 어느 군에 당태종의 당군이 주둔했을 것이고
이해하기 쉽게 제가 형태시 부근이라고 한 것입니다(형태시도 넓은 지역입니다)
지금도 형태시, 형수시, 덕주시가 붙어 있고요

■2) 사서에 부합한다는 것은 기준의 문제이고요
 사서의 어떤내용에 부합한다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될 수 있기에
저와 생각이 다르시니 더이상 논쟁하지 않겠습니다

■3) 저는 사서나 문헌 내용을 제시하고
제시한 문헌으로 해석가능한 것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른 분들이 근거자료를 요청하고 질문하는 내용 중의 대부분은
제가 주장하는 것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내용으로 제 글을 비판하고 꼬투리 잡기위한 수단이나  핑게로 보고 있으니.. 제가 그들의 주장에 모두 답변할 이유가 없지요

다만 본인들이 파악한 사서나 문헌 내용을 제시하면서 반론하고
제게 답변을 요구한다면 저도 성실히 답변하겠지만..
무조건 질문하고 요구하는 것에 제가 모두 답변할 이유가 없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가능한 답변을 하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1차 답변한 내용 중에서 또다른 질문을 받고, 다시 2차 답변하면.. 다시 2차 답변한 내용 중에서 또다른 질문을 받고, 또, 또, 또 계속적인 질문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구르뫼 22-03-19 12:15
   
끝까지 실망시키네요.
사서를 인용한 창작 소설은 그만하는게 나을듯 하여
수구리님 비정의 핵심인 갈석산의 모순을 공개합니다.
갈석산(장석암:형태시 서북)  고죽국(석가장 부근)  요수(부양하)

晉書에 이르길
遂進師,經孤竹,越碣石,次于遼水。
文懿果遣步騎數萬,阻遼隧 堅壁而守南北六七十里,以拒帝。
마침내 진군하여, 고죽을 지나고 갈석을 넘어서 요수(遼水)로 향하였다.
공손연은 과연 보기(步騎) 수만 명을 보내어, 요수(遼隧)를 막고,
벽(壁)을 견고히 하여 남북으로 6-70리를 수비하며 사마의를 막고 지켰다.

사마의는 고향인 하남 온현에서 지인과 잔치를 하고 공손연을 진압하기 위해
온현 → 고죽국 → 갈석 → 요수(遼水) → 요수(遼隧) → 양평(襄平)

갈석은 고죽국 위에 있어야 하는데  갈석이 고죽국 아래에 있다.
또 갈석을 지나 요수(遼水)를 지나야 하는데 헐 요수를 이미 지났다.

창작소설은
정사인 晉書와 비교해 갈석을 기준으로 고죽국과 요수를 반대로 비정했다.
또한  한나라 상흠(桑欽)이 지었다는 수경(水經)의 물흐름을 반대로 만들었으며
상기 晉書의 남북 6~70리의 벽은 요수(遼水)를 따라 배치된 상황으로
사마의는 요수현을 우회하여 북쪽의 양평(襄平)을 공격한다.
이 상황의 남북 6~70리의 벽은  요수를 기준으로 동서로 나누어진  요서 요동이다.
                         
수구리 22-03-19 14:56
   
서로 주장은 다르지만 대화는 가능한 분인줄 알았는데..
구르뫼님!!! 역시 실망시키지 않네요..

1) 갈석산이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진시황의 만리장성 끝인 요동군의 양평을 찾는 것입니다
2) 요수를 왜 찾나요?  BC 300~ BC 100년 사이에
전국시대 요동군을 찾기 위함이고, BC 200년 경의 위만조선,
BC 100년경의 낙랑군의 위치를 찾아야

고조선 영토와 고구려 영토를 확인할 수 있고
더 나아가서 고구려 시대 서기 600년 경의 요수,요동군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낙랑군 설치 당대기록인 "사마천 사기"나 "염철론의 험고"를 고찰해서
확인한 위치가 창작소설이라고 폄하하고,무시하고, 부정하다니...

구르뫼님 주장은 한마디로 소설이 아니라 망상입니다

BC 100년 이전의 요수, 갈석산, 요동군의 위치를 부정하기 위해서.
600년 후에 작성된 서기 500년 경에 작성된 진서의 특정 내용을 사용하다니...

(진서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려면 진서만으로는 곤란하고요
고죽>갈석산>요수> 양평의 진서내용을 뒷바침할 수 있는 다른 사서 내용도 학인하시고 주장하기기 바랍니다
그래야 진서가 서기 500년경의 문헌이기에 해당주장을 어느정도 인정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 주장이 공상소설이라는 망언을 할 것이 아니라
본인이 생각하는 요수, 요동, 갈석산 위치를 비정하고 주장하시면 됩니다...)

------------------
구르뫼님께 요구합니다
------------------
서기 500년경의 진서 내용으로 갈석산이나 요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찿는 것도 아니고
누워서 망상으로 숭늉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수나 갈석산등 제 주장을 부정하시려면
사마천 사기나 염철론의 험고 내용을 사용해서 부정하시기 바랍니다
♥♥♥♥♥♥
요수나 갈석산의 제 주장은
정상적이고 양심적인 학자라면 어느 누구도 부정이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

추가하여 구르뫼님 주장인
하남성 낙양 부근(신향시)에 요수가 있고, 낙양근처에 요동군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중국 고대  역사서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니 소설도 아니고 한마디로 망상입니다

※주) 구르뫼님 주장: 요수는 최종 탁록성이 있는 하남 신향시 부근

("요수가... 전에도 말했지만 이미 수구리님이 비정한 위치는 전쟁시뮬레이션 등 다양하게 해보고 최종 탁록성이 있는 하남 신향시 부근을 제외하고는 가설 부적절으로 폐기했습니다"
구르뫼님의 댓글 중에서.)
                         
수구리 22-03-19 21:06
   
고구려 영토관련해서 요수가 중요한데..
진서에 나오는 요수가 아니라, 당태종이 고구려를 침입한 신당서(新唐書) 내용입니다

■ 신당서(新唐書)(1)  >  동이열전(東夷列傳)> 에 따르면..
【帝度遼水, 徹杠彴, 堅士心. 營馬首山,... 당태종은 요수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마수산에 군영을 설치한 뒤...】

마수산은 한나라 시대 요서군 유성현에 있었으니
당태종이 요수를 건너 한나라 시대의 요서군 유성현 위치에 군영을 설치했고, 요동성을 공격하고 함락시킨 내용입니다

따라서
요수--> 한나라 요서군 --> 요동(요동성) 이므로
요서군과 요동군을 구분하는 것이 요수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구려와 직접 관련있고,
누구도 반론할 수 없는 명확한 내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문헌을 찾는 노력도 없이..

사마천 사기의 지리적인 고찰을 통해 확인한 내용을 제가 주장해도 믿지 않는 분들이 있고
오히려 제 주장을 공상소설이라고 하시니...
고구려 영토의 정확한 위치를 어느 세월에 찾을 것이며, 이런 현실을 어찌해야 하는지요?
                         
구르뫼 22-03-19 22:07
   
이것을 설명하려면 상당히 길어지니 요점만 쓰죠.
1. 고구려 태조왕시 요서10성을 세우니 유성을 점령하고 여기에 요동성을 세웠다면 ???
2. 요서10성을 세웠다면 기존 요수를 넘어갔다는 말이며 새로운 국경선(요수)이 생기며
이 요수가 당태종이 넘어간 요수일 확률이 높죠.
3. 유주자사 진의 무덤이 전달하는 내용은  유주(연경)를 두고 중국과 고구려의
각축전이 이어지며 최종 당태종 시기에 당나라 영역이 되었다.

이 내용이 합리적이 아닐까요?

상기 수구리님 댓글을 보며 상흠(桑欽)의 수경(水經)은 한나라시 문헌 아닙니까?
요수는 동남쪽으로 흘려 전체적으로 남류하다 동으로  흐르는 강입니다.
(수구리님의 주장처럼 북류를 한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진서가 후대에 나왔다고 해도 고구려 존속시 지리를 포함하고 있고
핵심은 고죽국(요서)과 요동 근처에 갈석이 있어야 하며
중국의 입장에서는 고죽을 지나 갈석에 가는 행로이며
이는 시대를 떠나 이 지형구조는 불변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쓸 글로 갈석의 의미가 될 것 같네요.
갈석과 갈석산은 다름을 말씀 드립니다.
                         
수구리 22-03-19 22:19
   
주장하시는 수경의 요수 흐름은 변수와 고려할 내용이 있으며
당태종의 요수와 직접적인 관련은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당태종이 건넜다는 요수이기에
더 이야기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니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심사숙고하시고 스스로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위구르 22-03-20 00:14
   
''더 이야기하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니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자존심도 없는 쓰레기가 또 도망치는구나
Marauder 22-03-18 19:13
   
평양성 장안성 뒤에 동서가 6리라고 해석이 되어있는데 한자로는 동북6리라고 쓰여있음
     
수구리 22-03-18 19:27
   
동북아 역사재단에서 해석한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인데..
정확한 내용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정확한 해석은 동북6리 맞는 것 같은데..
동북 6리로 해석한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동서 6리는 이해하기 쉬운데..)

따라서 동북아 역사재단은
동북6리가 맞으나 오기로 보고 동서6리로 해석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구르뫼 22-03-18 21:29
   
수서 원문은 동서6리입니다.
위구르 22-03-18 23:24
   
''한성은 한나라 강의 의미인 한수漢水 남쪽 성이니 한성백제는 중국 산동성에 있었으니''

라고 했으면서 같은 글에

''삼국시대 선박 건조 기술과 항해술을 고려하면 한반도 중부(한강)에서 산동반도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라고 지껄인거부터 설명좀 해봐라. 백제가 산동에서 건국했는데 그리 서해를 건너기가 힘들면 이 땅에 오지도 않고 망할 때까지 산동 지역에 있었다는거냐 원숭아? 답을 할 능력이 없으면 없다고 시인하던가 무시하고 지랄이네
위구르 22-03-18 23:35
   
이 놈은 지한테 불리한 반박에는 그냥 답을 안하고 씹는 짓거리를 습관화했다고 보임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462

비판글에 치매노인마냥 떼쓰면서 거지같은 발악을 하는 모습
위구르 22-03-19 17:05
   
''서로 주장은 다르지만 대화는 가능한 분인줄 알았는데..
구르뫼님!!! 역시 실망시키지 않네요..''

원숭이가 사람보고 대화가 안된다고 떼를 쓰는 꼴. 그야말로 인면수심이 따로 없음. 지랑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말이 안통하는 바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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