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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13 12:59
[한국사] 고구려 침략시 당태종이 출발한 정주定州는 산동성 덕주시 부근이다...
 글쓴이 : 수구리
조회 : 2,128  

※ 주) 수나라/당나라 시대의 정주定州가
이전의 한나라나 후한, 삼국지, 5호 16국 시대 어느 지명에서 정주가 되었는지 추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신당서' 등에 의하면 645년 1월, 당태종은 
1) 육군 총사령관 이적(李勣)으로 하여금 보·기병 6만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유주에서 요동으로 진격하고,

2) 또 수군 총사령관 장량(張亮)으로 하여금 500여 척의 전함과 4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산동반도 동래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을 향하게 명령하고,

3) 3월에는 자신(당태종)도 정주를 출발하였습니다


여기서(제가 사마천 사기와 한서지리지를 고찰해서 얻은 결과임)

1) 이적이 출발한 유주는 한나라 탁군(
涿郡)으로 형태시(邢台市) 부근이며
  (연나라 도성 계薊가 거록현巨鹿縣이니 탁군은 계의 남쪽과 한단邯鄲의 북쪽에 있습니다)

2) 어양이 거록현 서북쪽에 있는 대륙택 부근이니 요동군은 형수시 안평현(
衡水市 安平縣)이고요
    (형수시 안평현이 광개토대왕 비문에 나오는 하평양下平壤이며 장수왕의 평양으로 보고 있습니다)

3) 당나라 수군이 향한 평양은 고구려 마지막 평양인 산해관이 있는 진황도시(秦皇島市)로 보이고요

4) 당태종이 출발한 정주(定州)는 한나라 발해군의 정현(定縣)으로
  지금의 산동성 덕주시(
德州市) 부근으로 봅니다(형태시 탁군의 동북 방향)

5) 마지막으로 
   당나라와 수나라 군사가 건너간 요수(遼水)
   거록현(巨鹿縣) 북쪽에서 형수시(衡水市)로 흐르는 부양하(滏阳河)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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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뫼 22-03-13 14:55
   
645년 당태종의 고구려 침공의 핵심은 마수산과 주필산입니다.
마수산 동북쪽 유성(한서지리지 유성 서남쪽 마수산)
요택과 요수를 건너 마수산에 주둔후 요동성 함략(즉 마수산은 요동에 있다는 말)

요동성은 어디에 비정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수구리 22-03-13 14:58
   
요서(군)는 석가장시 부근, 요동(군)은 형수시 안평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요동(군)이 형수시 안평현이니 요동성은 안평현 부근으로 보고 있습니다
     
수구리 22-03-13 15:14
   
[구당서(舊唐書)(1)  >  동이열전(東夷列傳)  >  고구려(高句麗)]
太宗은 遼水를 건너자, 詔書를 내려 橋梁을 철거하게 하여 士卒의 결의를 굳게 하였다. 太宗은 遼東城 아래에 이르러서는 士卒들이 짐을 지어다 구덩이를 메우는 것을 보았다. 太宗이 가장 무거워 보이는 짐을 나누어 친히 말 위에서 나르니, 따르던 관원들이 모두 송구스러워 허둥대며 앞을 다투어 [짐을] 날라서 성 밑으로 보냈다. 이 때 李勣은 이미 군사를 이끌고 遼東城을 공격하고 있었다.

[단지] 帝至遼東城下 : 『新唐書』高句麗傳과『資治通鑑』貞觀 19年條에 의하면, 이때 太宗은 馬首山에 營하였다고 합니다
          
수구리 22-03-13 15:19
   
[신당서(新唐書)  >  동이열전(東夷列傳)  >  고구려(高句麗)]
太宗은 遼水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馬首山에 陣營을 설치한 뒤, 太宗은 城밑에 이르러 군사들이 흙을 져다 참호를 메우는 것을 보고, 무거운 짐을 나누어 말 위에 싣고 가니, 여러 신하들이 놀랍고 송구스러워 앞을 다투어 흙덩이를 날랐다.
城안에 朱蒙祠가 있는데, 그 사당에 보존하고 있는 銷甲과 銛矛를 前燕 때에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는 망령된 말이 있었다. 한창 [城이] 포위되어 다급해지자, 美女를 꾸며 女神으로 만들어 두고는, 朱蒙이 기뻐하고 있으니 城은 반드시 온전할 것이라고 속이기도 하였다.
[李]勣이 抛車를 벌려 놓고 큰 돌을 3百步 이상 날려 보내자, [돌에] 맞는 곳은 다 무너졌다. 적들은 나무를 쌓아 누각을 만들고 그물을 이어 [막아] 보았으나 되지 않았다. 다시 衝車로 城壁과 城樓를 때려 부수었다.
이 때에 百濟가 金髤鎧를 바치고, 또 玄金으로 山五文鎧를 만들어 [보내와,] 士卒들이 [그것을] 입고 從軍하였다.註 252 太宗와 [李]勣의 [군사가] 모이자 갑옷이 햇빛에 번쩍거렸다. 마침 남풍이 거세게 불어서 군사들이 서남쪽으로 불을 놓자, 불길이 城 안으로 번져서 집은 거의 다 탔으며, 불에 타 죽은 사람은 1만여명이나 되었다. 士卒들이 城壁에 오르자 적들은 방패로 막았다. 士卒들이 長矛를 들고 돌격하자 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城이 드디어 무너지자, 군사 1만·戶口 4만·군량 5십만石을 노획하고, 그 땅을 遼州로 삼았다.
               
수구리 22-03-13 15:29
   
1) 신당서의 내용인(자치통감도 비슷함)
"馬首山에 陣營을 설치한 뒤,太宗은 城밑에 이르러'의 내용으로
 마수산이 요동성 부근이라고  주장하는데 ....

2) 한서지리지에 따르면 마수산은 요동군이 아니라 요서군에 있습니다
한서지리지 요서 유성현 : 유성현(柳城縣), 마수산(馬首山)이 현의 서남쪽에 있다.

따라서 마수산이 요동군에 있는지? 요서군에 있는지? 각자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구르뫼 22-03-13 17:45
   
太宗은 遼水를 건너자,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의를 다지게 하였다. 馬首山에 陣營을 설치한 뒤
요수를 건너고 마수산에 진영을 설치하는데...요수를 건넜는데 요서라니???
제가 유성이 요서인지 몰라서 이런 글을 몰어본게 아니라 핵심이라고 썼잖습니까?

핵심은 그런 지형구조여야 한다는 점.
요수가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흐르다 유성근처에서 서서남쪽으로 꺽여
유성과 요동성 사이로 요수가 지나가고
요수는 다시 동남쪽으로 마수산을 품고 흐르는 구조...
이 구조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양하가 요수라했는데 정확한 명칭은 호노하이며
이 구조가 성립되는 강이 요수입니다.
                         
수구리 22-03-13 17:55
   
---------------------
요수가 요동 요서를 나누는 기준이 아닙니다
---------------------
혹시 요수가 요동 요서를 나누는 기준이라는 사서 내용이나 문헌이 존재하면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마수산은 한나라 요서군에 있다고 한서지리지에 나와 있습니다
마수산이 한나라 요동군에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만....

다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고구려가 한나라 요동군과 요서군을 합쳐서 요동이라고 했다면..
마수산이 요동군에 있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마수산은 한나라 요서군에 있지요
(이름만 요동군이라면...지리적인 관점에서는 별로 중요치 않아 보입니다)
                         
구르뫼 22-03-13 18:10
   
제 가설을 보셨으니 요수4가 여기에 해당된다는 점입니다.
기존의 요수를 지나 요서에 10성을 쌓은 후 생긴 국경선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수구리님의 요수는
정형관에서 발원한 효수(?)가 동남으로 흘려 영진박에 모여 거록현으로 흐르는 호노하인듯한데
상기 구조와는 부합하지 않는둣 합니다.
                         
수구리 22-03-13 18:26
   
요서가 고구려 영토였고 요서에 10성을 쌓은 것은 맞지만...
요수가 요동 요서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기에..
 주장하시는 다른 내용에 동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부양하는 한단시에서 발원하고요.
지금의 정형에서 발원하는 강은
부양하인 (대)요수와 합쳐지는 수 많은 강 중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춘추전국 시대나 한나라 시대에
대륙택 부근의 융요(隆堯)의 요산(堯山)에서
요수가 발원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주) 참고적으로 융요(隆堯)의 요산(堯山)을 연산(燕山)으로 봅니다
                         
수구리 22-03-14 16:30
   
산서성에 요수 요산등의 요(遼) 명칭인 나타난 최초지도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약 5백년이 지난 후에 작성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지도인 화이도이니..

고려시대 남송에서 작성한 화이도의 산서성의 요수 요산등의 요(遼)는
 한나라 시대, 고구려 시대의 요(遼)지역으로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한나라 시대나 오,촉, 위의 삼국지 시대 등
알고자하는 시대의  고대 문헌과의 교차검증이 필요합니다)

♥♥♥♥♥♥♥♥♥
※주) 화이도華夷圖
♥♥♥♥♥♥♥♥♥
중국 남송 때인 1136년에 제작된 고지도이다. 중국 전역을 기록한 지도로서는 현존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남송 고종(高宗) 때인 1136년 제작된 지도로서 저자는 밝혀지지 않았다. 중국 전역을 기록한 지도로서는 현존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수구리 22-03-14 17:18
   
한서지리지의 군현위치(예전 댓글에서 밝히지 않은 군현 위치)

1) 좌부풍(하서 지역, 황하 서쪽)은 서안 동쪽으로 황하 서쪽(한성시 포함)
2) 좌풍익 북쪽인 황하 서쪽이 상군
3) 태원은 임분시를 포함한 산서성 서남부 분하와 황하 사이
4) 하동은 운성시를 포함한 황하 서쪽
5) 안문은 태원시,진중시를 포함한 분하 동쪽
6) 오원은 구원으로  진중시 서쪽으로 분하 서쪽
7) 운중은 여량산맥 중심인 여량시 누번현
8) 정양은 여량시 부근
8) 서하는 상군 북쪽과 여량시 서쪽으로 황하 서쪽의 연안시 동북부
9) 삭주는 섬서성 유림시 동남부로 황하와 무정하無定河 사이로 봅니다

조 무령왕이 "서쪽으로는 황하에 이르러 황화산(黃華山) 정상에 올랐다"는
황화산은 여량시 고성현에 있는 여량산맥에서 가장 높은  해발 2700M의 산으로 봅니다
                    
구르뫼 22-03-14 19:17
   
遼山이라는 지명은 이미 수나라 때 등장하며
한자는 다르지만 晉시기 轑陽, 후위시기 遼陽 입니다.

수구리님의 위치비정은 잘읽었습니다.
진한 시대 진장성 아래에서 역사가 쓰여졌기에
지명비정을 인정 받으려면 산서성과 하북성에서 진장성을 찾아 밝히셔야 합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진장성은 섬서성에만 있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 말씀드립니다.

분하 서쪽 장성은 북제장성(흔적도 없음)
산서성 恒州로 부터 유주의 하구(夏ㅁ)까지 북제장성
삭방(朔方)과 영무(靈武)에 장성은 수나라 장성
유림(楡林)에서 자하(紫河) 장성은 수나라 장성...

그리고 부양하가 요수라 비정하셨는데 북류하는 요수에 대한 기록이 혹시 있나요?
처음 들어보는 말이라서요.
                         
수구리 22-03-15 08:54
   
--------------------
"지명비정을 인정 받으려면
--------------------
산서성과 하북성에서 진장성을 찾아 밝히셔야 합니다."
라고 하셨는데 제가 동의하기는 어려운 주장입니다

진시황의 진장성은 전국시대 진장성과 조장성, 연장성을 연결하여 수리 보완한 장성이고요
지금부터 2천 2백 전의 장성으로 고구려 장성과 같은 완벽한 석축장성이 아니기에
장성의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 간간이 존재하고 있고요..
그것도 우리나라 영토가 아닌 지금의 중국 영토에 있습니다
(정확한 고증 없이 만리장성이 진시황의 만리 장성이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이
중국이 이게 그 장성이다 하면 고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입니다)

그리고 진시황의 진나라 이후 중국은 수많은 왕조가 생기고 없어졌으며
수많은 왕조 중에 장성을 만든 왕조도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발견되고 있고, 중국이 주장하는 고대 장성의 일부가
어느 왕조에서 만든 것이지 명확히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저는 유적 유물로 중국의 고대왕조의 영토나 지명위치를 주장하는 것을
무시하지는 않지만.. 믿지도 않고요..
단지 참조정보를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수구리 22-03-15 10:04
   
부양하가 요수인 근거는
1) 계가 요수에 둘려 쌓였다는 염철론(鹽鐵論)의 험고(險固) 내용과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의 내용이고요
2) 형수시 안평현에 또다른 부양하가 있어서 부양하 본류와 합류하니
형수시 안평현의 부양하가  요동군 요양현의 요수로 보이며,
3)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 요동을 치기위해 건넌 강이 요수이니
부양하가 요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록현 북쪽과 서북부에 있었던 엄청난 크기의 고대 대륙택이
당태종이 허급지급 달아나며 건넌 요택으로 봅니다

따라서 대륙택이 당나라 시대의 요택입니다
(대륙택은 지금의 부양하의 일부입니다)
                         
구르뫼 22-03-15 13:23
   
수경주 권3에 이르길
"옛날에 단경(段熲)이 강(羌)족을 쫓아 교문을 나가 주마수에 이르러 들으니
강족은 사연택에 있다고 하였다.
곧 이곳(교문)이다. 문은 즉 교산의 장성 문이다.
시황제의 명으로 태자 부소와 더불어 대장군 몽염이 쌓은 장성이
임조로부터 일어나 갈석까지 이르렀는데, 즉 이 성(城)이다"라고 하였다.

여기 나오는 강족 교산 교문 주마수 사연택(사연수) 갈석

상기 지명은 섬서성과 감숙성에 있는 지명입니다.
장석암이 갈석산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해보시고
업에서 동북쪽 정주(덕주)로 가서
다시 서남쪽 유주(형태시)로 가는 당태종의 비정상적 행군
업에서 바로 유주로 가는게 정상적 행군이라 봅니다.

유주를 형태시부근을 비정하시던 수구리님이 결정할 문제이니
더는 이 문제에 논하지 않겠습니다.
                         
수구리 22-03-15 14:29
   
1) 전국시대 연나라 도성 계의 위치는
사마천 사기 화식열전과 염철론의 험고에 나와 있듯이 발해(군)과 갈석산 사이입니다
따라서 갈석산이 장석암으로 되어야 정확한 위치가 성립니다..

2) 당태종은 발해군의 정현(정주)에서 요수인 부양하를 건너면 되고
  이적은 유주 탁군인 형태시에서 요수인 부양하를 건너면 됩니다..

 말씀하시는 내용인 정주로 가서 유주로 간다는 말씀을 이해하기 어렵네요
                         
수구리 22-03-15 14:34
   
그리고 수경주의 내용 하나로 갈석산 위치를 주장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는 교산이 갈석산이고 주장하시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네요

(교산이 갈석산이 아니라
교산에 있는 교문은 진시황의 만리 장성의 성문 중에 하나로 보기에
물론 맞다고 생각하다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겠지요
제 말은 교산이 갈석산이라고 명확하게 주장할 수가 없을 뿐더러
사마천 사기의 다른 내용으로 보면 교산이 갈석산이 아닐 가능성이 더욱 많아 보입니다)
                         
구르뫼 22-03-15 15:00
   
갈석과 갈석산이 섬서성에 있다는 근거는 많으니 추후 글로 쓸 예정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당태종이 유주에 안갔다고 하니 이 글만 쓰죠.

645년 5월6일(음력 4월6일) 四月癸卯에 誓師于幽州하고 大饗軍하다
幽州에서 출정식을 열어 결의를 다지고 군사들에게 크게 연회를 베풀었다.

5월10일(음력 4월10일)丁未  車駕發幽州  당태종 유주 출발
                         
수구리 22-03-15 15:17
   
유주에는 군이 여러개 있고요
제가 형태시라고 주장한 탁군은 유주의 군 중에 하나입니다
(당나라 당태종 시기의 유주와 정주는 인접해 있으니 먼거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첨언하면
 섬서성에 어느 시기인가 일시적으로 갈석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연나라 도성 계에 인접해 있고, 발해군과 가까운 갈석산이 아니라면
우리 고대사인 고구려나 고조선과 관련이 없다고 보는 것이 제 생각이고요
최종적인 판단은 구르뫼님이 하시면 되겠지요
                         
수구리 22-03-15 16:03
   
대중적인 관점에서는 갈석산 위치가 중요한 어필포인터가 되겠지만..
갈석산을 찾았다고 우리 고대사 영토를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갈석산은 고구려 영토나 고조선 영토를 찾는 여러 단서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생각은
갈석산의 위치가 명확하지도 않고, 갈석산 위치에 대해 논란이 많기에
갈석산으로 고구려 영토나 고조선영토를 주장하는 것이 맞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논란이 많은 갈석산 위치로 제대된 주장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요)
                         
수구리 22-03-15 16:25
   
제 개인적으로는 진장성 동단 끝을 갈석산으로 보지 않습니다

진장성 동단 끝은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요동군의 양평으로 보고요
전국시대 연나라 요동군 양평이 진나라/한나라 무수로 이름이 변경되었고-->이후에 수성으로 바뀌었다고 중국 고대학자들이 주장하는데..
저는 요동군 양평을 한나라 무수로 보고, 지금의 형수시 안평현이나 요양현으로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 무수 위치만으로 요동군 양평을 안평이나 요양으로 보지 않았고
여러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 것입니다
                         
위구르 22-03-17 00:57
   
란하가 압록수였다는 근거는 끝까지 제시를 안하고 아래에 쓴 지적 댓글에는 답이 없고 리세민이 유주를 거치지 않았다는 개소리나 지껄여대고 진짜 여기저기서 지랄도 가지가지다 이 자식은
                         
수구리 22-03-17 06:39
   
위구르야!!! 개소리나 지껄이는 돌대가리 중국 개같은 놈아!!!
진황도시가 고구려 평양인 장안성이니  평양 서쪽인 난하가 압록수인 것이 분명하다

중국 멍멍이인 니가 개같은 소리 할 것 같지만...
혹시라도 니가 우리나라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중국 개같은 멍멍이 소리 내지말고... 
압록수 위치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우리말로
중국 고대 사서나 문헌 내용으로 어느 강이 압록수인지 증명하고 주장하면 되느니라!!!!

내 경험으로 보니,
우리말 잘 모르고 이해 못하는 돌대가리 중국놈들이 "개소리 지껄인다" 등의 막말을 하니..
니가 돌대가리이고, 막되먹은 중국 어린 애놈 같다.
♥♥♥♥♥
분노조절 장애가 있고 뭐 달라고 땡깡부리고 개판치는 위구르 중국애놈야!!!
♥♥♥♥♥
여기는 중국애가 막말하고 땡깡부리고, 꼬장부리고, 장난치는 놀이터가 아니니라..
중국과 일본 애들이 많이 놀고 있는 매국사학인 신민사학 옹호하는
네이버 부흥 역사카페에 가서 지금처럼 개판치고 칭찬받거라!!!
                         
수구리 22-03-17 07:44
   
고대 요동은 요동군입니다(요수 동쪽 지역을 나타내는 일반 명사가 아닙니다)

요수를 기준으로 요동군과 요서군를 나누었다는 문헌 내용은 없으니
요동군과 요서군을 구분하는 기준은 요수가 아닙니다

요동군과 요서군을 나누는 기준이 요수가 아닌 근거는
후한시대에 요서군을 나누어 요동속국을 설치했고,
요동속국이 조조의 위나라시대에 창려군이 되고 그 후에 요동군에 포합됩니다
위구르 22-03-13 15:52
   
유물사관의 유물을 유물유적 할 때의 유물로 착각하고 구차하게 변명하는 모습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485
     
수구리 22-03-13 16:03
   
그만해라 창피하지도 않냐?
사서 문헌에 대해 토론할 자신이 있으면 사서나 문헌 내용으로 토론하면 됀다
          
위구르 22-03-13 18:55
   
''그만해라 창피하지도 않냐?
사서 문헌에 대해 토론할 자신이 있으면 사서나 문헌 내용으로 토론하면 됀다''

그니까 내가 압록수가 현 란하였다는 근거를 내놓으라 했잖아 무뇌충아. 니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서 이러냐?  그리 사서 문헌으로 토론하길 좋아하는 자식이 왜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379 여기서는 끝까지 잡아뗐냐?
     
수구리 22-03-13 16:06
   
그리고 유물(唯物,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는 의미)과
유물(遺物,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질문화)의 차이를 설명하던지?

아니면
다음 내용에 대해 반박할 수 있으면 더욱 좋고 바람직한 태도다

-----------------------------
마르크스 유물사관(唯物史觀)을 기본 이념으로 해서 발전한 역사관이
----------------------------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입니다

유물(遺物)을 중시하는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의 실체는
      요동반도의 고구려성 흔적을 없애고 고구려성 위에..
      새로운 가짜 장성 일부를 만들어 요동반도에 있는 진시황의 진나라 만리장성이라고
      선전 선동하고 있습니다

유물(遺物))이 중요하기에 유물(遺物)을 조작하는 것이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입니다
      중국 산동성에서 고조선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고
      중국 산동성의 고인돌은 중국이 대부분 파괴하였습니다
          
윈도우폰 22-03-13 16:37
   
원숭이는 엉덩이가 빨게서 사과라는 주장과 뭐가 다를까???
               
수구리 22-03-13 17:16
   
원숭이는 엉덩이가 빨게서 사과라는 주장과 니 엉덩이는 뭐가 다르냐?
                    
윈도우폰 22-03-14 18:29
   
아그야...어떻게 한글 실력이 이 다지 엉망이냐? 도대체 초등학교는 어디 나왔니? 아무리 당황했어도 의미는 통하게 써야지...이 노부가 구문론까지 들먹여야 하나? 아그야...앞 부분은 원숭이 엉덩이가 빨갛다는 여러 품사로 구성된 절(節)이고...너 님이 말하는 엉덩이는 하나의 단어(품사)이고 니 엉덩이는 구에 해당하는거다... 어떻게 절과 하나의 단어를 놓고 비교하여 뭐가 다르냐고 하면 그 의미가 통하겠니? ... 너님이 말한 단어가 절에 있어 주부의 명사에 대응하는 거겠니...아니면 술부의 형용사에 대응하는 거겠니... 원천적으로 구문이 취약한 원시언어인 한문 쪽만을 공부해서 그런가? 너님이 영어 쪽으로 토플이나 토익같은 시험을 보면 구문 쪽으로는 다 빵점일 것 같다... 어쨌든 그러한 문해력으로 사서를 나름 번역해 봤다고? 구문 개념이 취약한 녀석이 무슨 사료 해석? 그래서 대응되는 지명에만 그렇게 집착하나? 하기야 지명은 문맥해석이 필요없기 하지...
          
위구르 22-03-13 18:53
   
그리고 유물(唯物,오직 물질만이 존재한다는 의미)과
유물(遺物,선대의 인류가 후대에 남긴 물질문화)의 차이를 설명하던지? <-

''중국 고대 사서 문헌 내용의 해석을 이야기 하는데
유물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유물 사관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물사관 주장하려면...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가서, 북한가서 주장하시던가?''

이게 니가 한 말이지. 유물 요구에 황당해하는 꼬라지가 니가 무식하다는 증거고 임마. 뭐? 유물 이야기가 왜 나오냐고? 내 그런 멍청한 소리는 처음 듣는다. 강단사학 추종자냐? 그러고서 바로 유물 사관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유물 사관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지랄 하더니 북한으로 가라며 제대로 된 답은 커녕 조롱이나 한 주제에 뻔뻔하다. 나라면 부끄러워서 할복하겠다 이것아
윈도우폰 22-03-13 16:33
   
너 님아...정주가 어디있는지가 뭐가 그리 중요해? 사기와 한서지리지 같은게 중요한게 아니고...너 님이 주장하고 싶은 역사적 맥락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하고...수단적으로는 이 천년 전에 문필가 들이 쓴 사서보다는 너님이 직접 정주에 가서 너 님이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해 현장 검증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나?

내가 보기에는....너 님이 언급하는 사서라는게 기껏해야 너 님이 주장하고 싶은 주장에 대한 레퍼런스에 불과한 것 같은데...주장은 안 보이고...  레퍼런스에 불과한 나오는 지명 등에 너무 집착하는 듯....그런 것이 설사 정확하더라도 너 님이 주장하고자 하는 것이 뭔지는 몰라도 이를 공고화하는데는 별 도움이 안 될 듯 한데?

혹시 너 님은 한자나 한문을 기반으로 한 때때로 궤변스럽기까지 한 해석력을 자랑하고 싶은건가? 글을 올리는걸 보면 이상하게 맥락을 잡아 글을 올리는 것 같으이^^...

전에 기원 전에 상해 쪽에서 왜인의 선조가 해류를 타고 왜 열도로 통나무 배타고 올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기억이 드는데...그런 것을 보면 지리나 교통에 대해서는 깜깜인 것처럼 보이고...이 번에 유물사관에 대해 주장하는 것도 보면 너님의 무식 보다는 남의 지적을 잘 못 받아들이는 성격 같음...

사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변명과 억지, 궤변을 줄기차게 논파하는 것을 보면...어렸을 때 아는체 하다가 많이 욕 먹어서 그런게 고착된...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반응하는건가? .... 정신과 상담까지는 아니더라도 심리적 진단이 필요할 듯 보이는데 ...
     
수구리 22-03-13 17:15
   
또 또라이 같은자가 나타났네..

반말하고 엉터리 니 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니 가족들의 카톡에서 하라고 내가 전에 말했었지... 기억력이 형편 없나 보네....

다른 사람 논리를 반박하려면 니가 주장하는 근거나 내용을 이야기해야 되지 않나?
지 주장이 없으면 남의 주장을 말로만 비판하는 것은 비판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역사 연구가인 것 같은데... 학사/석사나 박사면 뭐하나!!! 토론이나 대화의 기본이 없는데...
          
위구르 22-03-13 18:56
   
''반말하고 엉터리 니 만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은
니 가족들의 카톡에서 하라고 내가 전에 말했었지... 기억력이 형편 없나 보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379 반말을 먼저 한게 누군데 반말 운운함? 적반하장 그 자체고 이 인간은 대체 어떻게 빌어먹고 자랐는지 감도 안 온다
          
위구르 22-03-13 18:57
   
반말을 문제삼는 이 자식이 정작 다른 데서는 상대방을 무시하고 쌍욕을 한 증거 자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254&sca=&sfl=&stx=&spt=0&page=0
Korisent 22-03-15 09:36
   
잘 보고 갑니다 수구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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