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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09 14:51
[한국사] [正史] 명나라의 지명이동 (遼남경·金중도는 보정시)
 글쓴이 : 구르뫼
조회 : 1,436  

               명나라의 지명이동 


고려사 권43 공민왕 20(13714) 중서성이 자문으로 알리기를,

북원[前元] 요양행성 평장사 유익이 금주(金州복주(復州개주(盖州해주(海州) 등의 땅을 가지고 귀순하니

명나라 황제가 요양위(本衛)의 지휘로 임명하였다.”라고 쓰여진 이 기록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는 요양행성과 진동행성으로 구성되어 원나라에 의해 지배와 자치권을 인정받은 나라로 

요양행성이 명나라에 넘어가면 그 서쪽에 있던 진동행성은 자연적으로 명나라 군현으로 편입되니 

이에 명나라는 당나라가 이동시켰던 보정시 근처의 지명을 북경에서부터 요령성 요양으로 

지명을 이동시키며 우리의 진동행성 기록을 삭제해 버렸다.

진동행성은 고려총관부와 압록수가 있던 지역으로 오늘날 위치 비정을 보며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에 올바른 위치를 찾아 복원하는 첫단추를 밝히니 삼가 고찰하여 진정한 역사를 복원하길 바랄 뿐이다. 


1.jpg


원문1] 春秋地理考實圖(1891) 無終 (자료1 참조)


   하북성 당현과 완현의 북쪽 산마루 지역


원문2] 保定郡志 卷9 職官

 

   田疇(169~214) 北平完縣人 (三國志 卷11 田疇 右北平無終人)

 

   蒙恬 長城在今遂州界即安肅縣地方

 

해석] 보정군지(1494) 9 직관

 

   전주 북평군 완현사람이다.(삼국지에는 우북평군 무종인이다.)

 

   몽염 (주석에) 장성은 지금 수주경계 즉 안숙현지방에 있다.

   

원문3] 古今同姓名錄 王褒 字子登范陽襄平人漢末成仙號清虛真人

 

해석] 고금동성명록(()元帝(508~555) )

 

   왕표 자는 자등이요 범양군 양평인이다. 한말 신선이 되었고 호는 청허진인이다.

   

원문4] 牧隱集 燕山歌 長城中斷居庸關

 

해석] 목은집(李穡(1328~1396) ) 연산가 장성은 거용관에서 중단되었다.


원문5] 保定府志(1680년) 요나라析津府(남경) 금나라中都路 (자료참조)


   중국이 발표한 보정시 연하도유지 지역이 연경이다.

    

설명]명나라시기 중국인들은 몽염의 진장성을 보정시에 있는 두 개의 연남장성으로 인식하였으며

오늘날 내장성과 산해관으로 이어지는 장성은 명나라 시기 수축장성이라고 중국문물국에서 밝히고 있다.

고려말 이색 역시 그의 시에 거용관(자형관)에서 장성이 중단되었다고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또한 우북평군 무종현은 하북 완현 근처이며 요동군 양평현은 6세기 양나라 시기에 범양군에 속한 군현임을 

알 수 있으며 범양은 중국지명대사전에는 탁군과 대흥현에 치소를 두었다고 하였다.

이는 1680년 보정부지에 보정부가 상곡군 탁군 범양국의 연혁을 가지고 있었음을 밝혔으며

요나라 석진부(析津府) · 금나라 중도로(中都路)가 있었다고 

보정부의 연혁에 명시하였고 명나라 시대에 북경으로 이동되었다.

범양 위치는 양수경의 수경주도에 근거하여 안숙현(보정시 서수현) 근처에 비정하였으며

이는 추리도와 비교하여 비슷한 위치이기에 표시하였습니다.

참고도에 목림구(木林口일운大林) 위치를 추리도와 지도에 표시하여 비교하도록 하였으며

빨간선의 진장성은 중국문물국에서 밝힌 진장성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를 참조로 군현의 위치를 비교하여 사라진 鎭東省을 고증하시기 바랍니다.


(목림구는 木에서 林水村으로 바뀌었고 지명은 한자를 바꾸던지 앞뒤를 바꾸는 전형적 지명이동 형태입니다.

진장성은 위 참고도의 표시 외에 수성과 서수현으로 이어지는 장성이 아래로 하나 더 있습니다.)

  

원문6] 十五國風地理之圖拓片 東海今鎭東省

 

해석] 십오국풍지리지도탁편(元代) 동해는 지금의 진동성이다.

 

원문7] 詩傳旁通 卷15 東海則髙麗鎭東省之地醫無閭山則懿州遼陽省之地

 

해석] 시전방통(元代) 15

 

   동해는 즉 고려 진동성의 땅이다. 의무려산은 즉 의주 요양성의 땅이다.


원문8] 貞觀政要 卷1 高麗 東夷國名 本扶餘別種 居遼東 周封箕子之國也 今爲鎭東省


해석] 정관정요 권1  고(구)려는 동이의 나라요 부여의 별종이다.  요동에 거주한다. 

   周나라가 기자를 봉해준 나라이다. 지금 鎭東省이 되었다.


원문9] 史記 卷33 齊太公世家 太公望呂尙者 東海上人

 

해석] 사기 권33 제태공세가 태공망 여상은 동해상인이다.

 

설명]강태공의 고향은 하남 휘현(輝縣)이며 주나라의 개국공신으로 ()나라의 왕이 되었다. 

동해는 휘현을 근거로 넓은 의미로 태행산맥 동쪽이요 좁게는 보정시 동쪽의 지역을 의미한다고 판단된다.


자료1] 春秋地理考實圖(1891無終
경_春秋地理考實圖.jpg


자료2] 十五國風地理之圖拓片(元代) 東海今鎭東省
경_十五國風地理之圖拓片(반전).jpg

자료3] 保定府志(1680년) 요나라析津府 금나라中都路
11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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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뫼 22-03-11 00:42
   
상기 참고도에는 모순점이 있다.
과연 주무왕이 자기 동생을 적진의 한가운데에 봉지를 줄 수 있을까?
연나라 수도 연경은 무종의 서쪽이나 서남쪽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당나라가 고구려의 영역을 차지하고 
주나라=진한=삼국=수당의 강역이 처음부터 이와같았다는
춘추필법에 의한 지명조작이었다는 것이다.

고구려를 고증할 때에는 섬서성과 산서성을 논해야 할 것이며
고려시대는 상기 참고도에 의한 역사복원일 것이다.

요나라 남경 석진부=금나라 중도=원나라 대도=현 북경이라는 명나라의 지명조작은
보정부지가 밝힌 연경의 근원을 참조하여 빠른 시일내에 복원을 해야 할 것이다.
     
수구리 22-03-11 18:24
   
사마천 사기를 보면 연나라가 북경이라는 내용은 없습니다
따라서 춘추필법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 역사학자들의 해석의 문제입니다

사마천 사기를 주나라 무왕이 동생 석에게 봉한 것이
1) 주 본기에는 연燕이라 했고,
2) 세가(연소공세가)에는 北燕이라고 했는데...

고대 중국 역사학자들이 남연(南燕)이 있기에 북연(北燕)이라고 했다라고 해석했고..
북연을 북北자를 북경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런데 BC 500년 경의 공자 시절에 쓰여진 춘추좌전에는 남연이 나오지 않고 연나라만 나옵니다
사마천 사기에도 남연이 나오지 않고 연나라만 나옵니다

따라서 북연은 남연이 있어서 북연이 아니라
낙양북쪽에 에 봉했기에 낙양 북쪽(北)의 연燕나라로 보아야 합니다
          
수구리 22-03-11 18:32
   
연나라 초기 위치는 낙양 동북쪽인 황하 근처 연진현延津縣입니다
(중국 고대학자 중에서 연진현이 연나라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여러명 있고요)

그래야 연나라 북쪽에 산융(산서성 중부 장치시)이 있다는 사마천 사기 내용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춘추시대에 안양시 부근의 위나라와 연나라가 연합하여
 낙양에 주 헤왕의 동생 퇴를 주왕을 옹립한 내용과도 일치하고요
(연나라가 북경이라면 불가능한 내용으로
황하근처이고 위나라 근처인 연진현에 연나라가 있었기에 가능한 내용입니다)
               
수구리 22-03-11 18:48
   
衛혜공 25년(기원전 675년)혜공은 주나라가 검모의 체류를 허용한 것에 원망을 품고 연(燕)나라와 함께​ 주나라를 공격했다.

주 혜왕(周 惠王)은 온(溫) 땅으로 달아나고,
위나라와 연나라는 주 혜왕의 동생 퇴(頹)를 왕으로 세웠다.

혜공 29년(671년), 정나라가 주 혜왕(周 惠王)을 다시 주나라로 돌려보냈다.

[출처] 37-03[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7.衛康叔世家(위강숙세가) (03/08)<선공(宣公), 혜공(惠公), 검모(黔牟)>
                    
수구리 22-03-11 19:17
   
燕장공 12년(기원전 679년), 제나라 환공(桓公)이 처음으로 제후의 맹주가 되었다.

장공 16년(기원전 675년), 송(宋)나라가 위(衛)나라와 함께 주 혜왕(周 惠王)을 공격하니
혜왕은 온읍(溫邑)으로 도망쳤고, 혜왕의 동생 희퇴(姬頹)가 주나라의 왕이 되었다.

장공 17년(기원전 674년), 정나라가 연나라의 중보(仲父)를 잡고 혜왕을 주나라로 돌려보냈다.

[출처] 34-02[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2/06) <연나라의 군주들>
                    
수구리 22-03-11 19:18
   
鄭여공 후5년(기원전 675년)에 연나라와 위(衛)나라가 주 혜왕(周 惠王)의 동생 희퇴(姬頹)와 함께 혜왕을 정벌하자 혜왕은 온(溫)나라로 달아났고, 동생 희퇴를 왕으로 옹립했다.여공 후6년(기원전 674년)에 주 혜왕이 정나라에 급하게 알리자, 여공은 군사를 보내 주나라 왕자 퇴를 공격했지만 이기지 못하고, 주 혜왕과 함께 돌아왔고, 주 혜왕은 역읍에 거주했다.

여공 후7년(기원전 673년) 봄에 정 여공이 괵숙(虢叔)과 함께 왕자 퇴를 습격하여 죽이고, 혜왕을 주나라로 되돌아가게 했다.

[출처] 42-03/10[史記(사기) 세가(世家)] 권42. 정세가(鄭世家) (03/10) <정여공(鄭 厲公), 정 소공(鄭 昭公), 정 자미(鄭 子亹), 정 자영(鄭 子嬰)>
               
수구리 22-03-11 19:19
   
燕장공 27년(기원전 664년), 산융(山戎)이 연나라를 침략하자, 제 환공이 연나라를 구하러 나서 북으로 산융을 정벌한 다음 제나라로 돌아갔다.

연 장공이 제 환공을 배웅하느라 제나라의 국경 안으로 들어갔는데, 제 환공은 연 장공이 밟은 땅을 떼어서 연나라에게 주고,

[출처] 34-02[史記(사기) 세가(世家)] 권34.燕召公世家(연소공세가:연세가) (02/06) <연나라의 군주들>
                    
수구리 22-03-11 19:20
   
진秦나라 양공은 그로부터 44년 후(기원전 664년)에 산융이 연나라를 침공했다.
연나라는 곧 위급함을 제나라에 알리자 제나라 환공(桓公)은 북쪽으로 가서 산융을 공격해 그들을 패주시켰다.

[출처] 110-1/15[史記列傳(사기열전)] 권110.匈奴列傳(흉노열전) (1/15)
               
수구리 22-03-12 08:20
   
사마천이 사기에서 사용한 춘추필법이 여러개 있지만...
1) 위만조선의 영토가 수백리인데 수천리라고 뻥을 친 내용과
2) 북부여인 동호(東胡)를 호(胡)나 흉노(匈奴)로 표기하여
    한나라 시대에 북부여인 동호를 사기에서 표현하지 않고 지운 것이 있습니다
위구르 22-03-11 23:16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379

유물론의 유물을 유물 유적할 때의 유물하고 착각하는 저지능을 가진 저 유사학자를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수구리 22-03-12 08:25
   
마르크스 유물사관을 기본 이념으로 해서 발전한 역사관이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입니다

유물(遺物)을 중시하는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의 실체는
      요동반도의 고구려성 흔적을 없애고 고구려성 위에..
      새로운 가짜 장성 일부를 만들어 요동반도에 있는 진시황의 진나라 만리장성이라고
      선전 선동하고 있습니다

유물(遺物))이 중요하기에 유물(遺物)을 조작하는 것이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입니다
      중국 산동성에서 고조선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고
      중국 산동성의 고인돌은 중국이 대부분 파괴하였습니다
          
위구르 22-03-12 13:17
   
끝까지 반성을 안하네. 그러면 내가 유물을 근거로 요구하는게 어째서 유물론자로 불려야 할 까닭인지 물을 때 이리 답하지 않았냐? 너는 그냥 수치를 감추기 위해서 말을 바꿀 뿐이야
          
위구르 22-03-12 13:31
   
그리고 ''유물(遺物))이 중요하기에 유물(遺物)을 조작하는 것이 중국의 유물사관(遺物史觀)입니다
      중국 산동성에서 고조선 유물인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었고
      중국 산동성의 고인돌은 중국이 대부분 파괴하였습니다'' 이딴 개소리는 관심 없으니까 집어 치우고 쓸데 없는 말 좀 작작 지껄여라. 시간 패죽이기 밖에 안되니까
          
위구르 22-03-12 13:31
   
뭐만 하면 중공 탓 식민사관, 춘추사관 운운하면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대충 덮고 무마시킬려고 발악하는 꼴이 불쌍하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379
위구르 22-03-11 23:18
   
XX리 = 위치 비정의 근거를 묻자 끝까지 잡아떼면서 무식함을 감출려고 발악한 인간말종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97379
     
구르뫼 22-03-12 15:14
   
위구르님과 수구리님의 논쟁은 간단한 이유입니다.
저 역시 느끼는 바라 몇 자 적습니다.
나의 주장을 내세울 시 기본적으로 근거문헌이나 유적 등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이 지점을 기준으로 역사를 고찰한 바 이렇다 해야 정상이라 생각합니다.

수구리님이 이 부분을 제시해야 맞다고 판단되며
사기나 한서의 본기 내용은 현 북경이나 섬서성에 맞쳐도 성립되며
서로 의견이 다른 지역을 비정했을 때 정확한 위치 비정을 위해 근거자료는 필수임을 말함입니다.

최근 있었던 평양성에 대해 안동상도호부가 그려진 1247년 고지도가 있습니다.
추후 공개 예정입니다만 상기 제가 그린 참고도를 기준(현재 형세)으로 원화군현지를 비교하면
100리 또는 강 하나의 오차가 있습니다.
이는 추리도 우적도 화이도 등 송나라시절 그려진 고지도의 당하는
100리 정도 아래 또는 당하 아래에 있는 사하로 비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추리도의 지명을 상기 참고도에 옮기면 상상이상의 배치가 됩니다.
계하 위에 강이 몇 개인가 확인하시면 어디가 압록강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한 분의 노력으로 고려 첫수도 송악(개성)은 찾은 상황입니다.
고려 개성이 훗날 압록강 밖에 개주 촉막군이 된 기가막힌 사연입니다.
최자의 삼부시와 목은선생이 말한 고려의 북경이라는 지명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섬서성에서 한서가 말하는 요서군 비여현과 발해라는 지명을
평주와 영주를 밝힐 때 쓰려다 좀더 고찰하려 했다는 사실을 밝힙니다.
또한 발해라는 지명 역시 섬서성에 존재하며 이곳에 발해라는 지명이 존재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럼 왜 있을까?
          
위구르 22-03-12 16:16
   
저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성이 결여되어서 상대방에 대한 禮儀가 없고 무조건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여 타협하지를 않으며 상반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욕설과 비난을 서슴지 않는 말종입니다. 사고력은 파탄나서 주장을 할 때 기본이 되는 사료적 근거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고 그것을 요구하면 '수강료를 내라', '꼬투리를 잡을거 같아서 답을 하지 않겠다',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라는 헛소리를 내뱉습니다. 대화 상대로 조차도 여길 수 없는 인간이죠.
          
위구르 22-03-12 16:17
   
선생이 쓰신 글을 읽어봤는데 료수를 지금의 형대시 부근으로 비정하신 근거가 궁금합니다
               
구르뫼 22-03-12 18:21
   
저는 직접 요수를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한서지리지를 근거로
형태시 위쪽에 제수가 있어 그곳이 유주지역이라고 언급한 걸 착오하신듯 하며
오늘날  형태시는 기주입니다.
또한 현토군 요산에서 요수가 발원하니 산서 하북 요령을 통틀어 요산은 여기 한 곳이니
요산에 있는 청장수가 요수여야 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지요.

이에 부연설명을 하자면 저는 대명제로 가설 2개가 있습니다.

가설1] 당나라가 섬서성에서 보정시쪽으로 지명이동
가설2] 한나라 시기 청장수 영역으로 확장되고 당나라가 보정시쪽으로 지명이동

그러면 사서에서 말하는 요수가 4개 필요합니다.

요수1 - 연과 동호 사이
요수2 - 동호가 물러가고 생긴 요수
요수3 - 한무제가 한4군을 설치하고 생긴 요수
요수4 - 고구려가 한4군을 수복하고 요서에 10성을 세울 시 요수

가설1과 가설2에 따라 요수4는 변수가 작용되어 자료조사중입니다.
상기 청장수가 요수인 경우는 요수3에 해당된다는 견해입니다.

상기 본문내용중
빨간선의 진장성은 중국문물국과 중국장성연혁고(1935년)를 기반으로 표시한 연남장성입니다.
                    
수구리 22-03-13 06:26
   
예의는 아닌 것 같아서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내용에 대해 의견을 말씀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주장하신 근거를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2) 제시하는 사료가 없으니 말씀하시는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고요
3) 중국 문물국, 중국장성 연고는 현대 사료이기에
    1000년전 2000년전의 연남장성 위치를 주장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댓글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입니다
                    
수구리 22-03-13 06:41
   
추가적으로 구체적인 의견을 말한다면..
1) 현토군의 고구려현: 요산에서 요수가 나오는데(한서지리지)
    요산에서 나오는 요수가 청장수인 근거를 설명해 주면 좋겠습니다
2) 가설1과 가설2를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인지에 따라서..
 성립가능한 가설인지 아니면 합당한 가설인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요수 4개에 대한 사서나 문헌 내용을 제시해 주시면..
 시대에 따라서 또는 문헌에 따라서 요수가 여러개라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구리 22-03-13 08:06
   
심백강 선생은
 북경이 거란 요나라의  남경이었고 최초로 연경(燕京)으로 불렸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국하고
주장하시는 요나라 남경이 보정시였는데..
명나라 시대에 북경으로 옮겼다는 말씀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지금의 북경이나 보정시에 있었던 요나라 시대의 남경을 연경이라고 한 것은
5호 16국 시대의 연(337~436, 전연, 후연, 북연)나라의 연경으로 봅니다
(5호 16국 시대 호타하 북쪽의 하북성은 고구려 영토였기에..
전연, 후연, 북연의 연나라 수도가 보정시라는 것도 믿을 수가 없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보기에..
산서성 평요고성, 장치시와, 하북성 석가장시, 안양시 업성을 5호 16국 시대 연나라 수도로 봅니다)

♥♥♥♥♥♥♥♥♥♥♥
따라서 보정시나 북경이 연경이라고 불리운 것은
♥♥♥♥♥♥♥♥♥♥♥
 5호 16국 시대 연나라(전연, 후연, 북연) 수도인 연경으로
춘추전국 시대의 연나라 수도인 연경은 아니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수구리 22-03-13 12:38
   
또한
'신당서' 등에 의하면
645년 1월, 당태종은 육군 총사령관 이적(李勣)으로 하여금 보·기병 6만과 거란·말갈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유주에서 요동으로 진격하고,

또 수군 총사령관 장량(張亮)으로 하여금 500여 척의 전함과 4만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산동반도 동래에서 바다를 건너 평양을 향하게 명령하고,

3월에는 자신(당태종)도 정주를 출발하였습니다

여기서
1) 이적이 출발한 유주는 탁군으로 형태시 부근이며
  (연나라 도성 계가 거록현이니 탁군은 계의 남쪽에 있습니다)
2) 어양이 거록현 서북쪽에 있는 대륙택 부근이니 요동군은 형수시 안평현이고요
3) 당태종이 출발한 정주(定州)는 한나라 발해군의 정현(定縣)으로
  지금의 산동성 덕주시 부근입니다(형태시 탁군의 동북 방향)
               
구르뫼 22-03-13 14:20
   
먼저 명나라의 지명이동을 이해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명나라의 지명이동은 송나라 기록이 많아 고증하는 문제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수구리님도 계현을 거록현이라고 했으니
명나라 이전에 지명이동이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후한서와 원화군현지는 지명마다 리정(거리)이 있어
특히 원화군현지는 다른 곳을 비정하게 되면 위치가 달라져야만 합니다.
이는 지리지 조작이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저는 현재의 보정시로 지명이 이동된 시점을 고구려 멸망 후 원화군현지가 쓰여진 사이라고 봅니다.

계현 얘기가 나왔으니 고구려 멸망전에는 당연히 보정시가 아니겠지요.
저는 섬서성에서 찾고 있는 것이며
가설은 아직 증명되지 않은 것이기에 자료가 극히 희박합니다.
다합쳐봐도 10개 남짓 정도 이며 섬서성을 연구하는 분도 손에 꼽습니다.
제가 처음 쓴 영주와 평주를 밝히며에
북제시 연주의 위치를 표시했으니 찾아보시고 이 정도 거리 이동이면 사서 조작은 당연한 것입니다.

상기에도 가설이라고 했으며 이를 검증중이며
요수1은 요수2 요수4와 같을 수도 있으니 자료를 조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요수3은 길림쪽에 가짜 말고 중국에서 요산이 다른 곳에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요.

공개안한 증거자료중 하나입니다.

周書 卷34 併肥如郃陽二邑合一千八百户改封華陽縣侯

양표열전에 양표는 섬서성 동주 합양을 봉토로 받은 합양현백이었으며
망산전투에 참가한 공로로 합양과 비여 두 마을을 아울려 합쳐 식읍 1800호와 봉작을 화양현후로 고쳤다는 말입니다.

요서군 비여현....섬서성 합양 근처의 절대좌표입니다...
영주와 평주를 밝히며의 포성현과 백수현 일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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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8 [한국사] 글과 돈은 한자(漢字)로 바꿀수 없는 것이다 (5) 백운 07-07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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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5 [기타] 인도 사원(발해 왕관문양) & 아즈텍 사원 형태 유사 조지아나 06-28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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